-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5/03 16:57:33
Name   moneyghost
Subject   제가 가지고 있는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단상
  누군가가 저에게 인생책을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주저없이 '이기적 유전자'라고 말 할 겁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제법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워낙 유명한 책이고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많이 읽히고 있는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낮잡아서 이야기하면, 이 책은 저자의 발견이 아니라 타인의 중요 연구들을 저자가 갈무리하고 조리있게 펼쳐내어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만들어진 신'과 더불어서 이 책은 도킨스를 세계 유명 석학으로 만들었지요.

  책을 읽다가 문득 이기적 유전자가 생각나서 한 번 저에게 박힌 이 책의 인상과 관련된 몇가지 일화?를 써봅니다.

1. 제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 겨울방학 때였습니다. 당시 처음으로 유럽으로 여행을 갔는데 비행기 안에서 읽을 책을 고른 것 중 하나가 '이기적 유전자' 였습니다. 출국날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오는 기내식을 먹고, 책을 펼치고 읽었는데 정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혹시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나 몇 번은 다시 읽었던 기억이 나고,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읽곤 하는 책입니다.

2. 대학교 신입생 때, '사고와 표현'이라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신입생 (혹은 재수강 학생....)을 대상으로 글쓰기나 사고능력을 함양(?)시키기 위한 목적의 강좌 (였을였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모르겠네요.)인데요. 그때 교재의 글 중, 벌의 생활사를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논의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한 분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사실 이기적 유전자 관점이 유명하지만 잘 살펴보면 유전자의 행동이 이타적인 경우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그 관점이 반드시 바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의 논지로 말했습니다. 그순간 저는 '응? 그 책을 읽었다면 그런 말이 나올 수 없는데?'라고 생각했지만
- 강의실에서 아무도 그에 대해 반박하지 않음.
- 그분이 저보다 공부를 더 잘하고 수업 성적이 더 좋음.
-나서기 싫음.
와 같은 이유로 '혹시 내가 잘못 읽었나?'라고 생각만 하고 넘어갔었답니다. 그분은 이제 병원에서 일하고 계실 텐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궁금하네요.

3. 제가 대학원생이 되고 나서, 우리 학교에 최재천 교수가 두 번 방문하셔서 강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통섭'을 주제로 한 강의였는데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중 한 분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관련 질문이 있었지요. 그중에 나왔던 질문이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나서 정말 우리가 이기심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정말 이기적 유전자로 이루어져 있다면 우리 사회가 과연 이렇게 돌아갈 수 있었을까? 우리가 이타적인 존재가 될 수는 없을까?'
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최재천 교수는 '다시 한번 '잘' 그 책을 읽어보라.'라고 짧게 대답하셨지요.

4. 이기적 유전자의 끝부분 즈음에 '확장된 표현형' 책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에 매료된 저는 서점에서 확장된 표현형을 산 다음 읽었지요. 한 번 읽고 '이게 뭔소리야?'라고 느끼고 그냥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대한 평을 검색해보았더니 번역이 문제라는 의견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이뿐만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도 번역이 문제라는 의견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 단순한 호승심?이었겠으나,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영문으로 된 이기적 유전자와 확장된 표현형 원서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한 페이지에 한 시간을 소요(?)하면서 그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제 인생에서 원서를 처음 사게 된 계기도 이 이기적 유전자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홍영남 선생님).  그리고 그렇게 '확장된 표현형'도 제 인생책이 되었습니다.
  
        
5. 올 해 초에 도킨스가 내한와서 강연을 했습니다. 저는 아주 좋아라하고 그 강연을 신청하고, 강연 끝난 후에 사인도 받고 그랬지요. 사인을 받기 위해 늘어선 긴 줄에 많은 학생분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분들이 개정판 이기적 유전자를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 나이 때 저는 이해하지 못할 책을 저렇게 어린 분들이 가지고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라고 생각하는 한 편 이전에 장대익 교수가 라디오 캐스트에서 '학생 중 열에 아홉은 이기적 유전자를 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습니다.


 진화라는 주제에 정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런 저에게 이기적 유전자는 항상 가지고 다니고 싶은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책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 때문에 제 전공과 크게 관련이 없는데도 제 책장에는 진화와 관련된 많은 책들이 즐비하게 되었고 또 관련 주제는 흥미롭게 찾아보곤 합니다. 참 대단한 책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1


    레지엔
    저도 학생 때 교양에서 이걸로 토론이 논쟁되는 걸 경험했는데... 이기적 유전자의 '이기적'이 무슨 의미인가를 오독하는 케이스가 너무 많아서 논쟁을 포기했습니다.
    moneyghost
    '이기적이다'라는 문구가 참 자극적이라 그런건가 싶기도 해요.
    구밀복검
    굳이 따지자면 (자연선택적) 합리적 유전자 정도가 될 텐데...따지고 보면 이기나 합리나 거기서 거기긴 하죠. 문제라면 진의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왜 이기와 합리가 같은 것인지 모를 거란 게..
    Erzenico
    만들어진 신은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은 뒤 쓰인 책이고 이기적 유전자와 함께 명성을 일군 책은 눈먼 시계공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에선 별로 유명하지 않지만...
    moneyghost
    아 그럴까요? 세계적인 석학 랭킹을 소개하는 문구에 항상 만들어진 신이 나와서 그 책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눈먼 시계공은 역작이라고 생각하고 어느 석학은 이 책으로 인해 무신론자로 돌아섰다고 말씀하셨지요.
    님니리님님
    '자 meme이란 개념을 제안할께요. 발음은 알아서들 하세요'라는 맥락으로 읽혔던 구절이 있었는데, 꽤 유쾌한 할아버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었죠.
    기아트윈스
    저거 누가봐도 '메메' 아닙니까!
    님니리님님
    저희 베이징에선 '미미'라고 읽습니다!
    기아트윈스
    ㅋㅋㅋㅋ 설마 진짜예요?
    님니리님님
    요리왕 비룡에서 '미미'라고 발음하는거 봤습니다!
    오독의 본질적인 원인은 각 개체들 행위의 이기성과 유전자 층위의 이기성을 분리시키지 못해서 생겨나는 것이죠. 자기복제가 유전자의 목적이라는 추상적인 명제를 전제 해야 유전자가 이기적이라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기 때문에 오독이 이해가 안 될 정도는 아니지만; 그리고 도킨스의 종교에 대한 전투적 행보도 어느정도 영향이 있을테고 특히 한국에선 언어영역이나 논술 모의고사에서 발췌된 지문들을 성악설 같은거랑 엮어놓거나 하는 케이스가 좀 되서 그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조금 세련된 문제들은 이 오독을 잡아낼 수 있는가를 묻기도 하지만... 뭐 가장 뻔한 이유는 제목을 읽고 책을 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이겠죠.
    알료사
    저는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며 개인적으로 제일 아이러니했던것이, '만들어진 신'으로 그렇게 종교를 비판했던 작가의 저작인데 결과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있는것이 아니라 무언가 초월적인 존재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점은 사실상 종교의 그것과 별 차이도 없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겁니다... ㅋ 특히 두번째 챕터에서 먼 옛날 지구상에 처음 생명체가 생겨날 때를 상상으로 재구성해 묘사한 장면에서는 새로운 창세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명한 무신론자의 책에서 <창조>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의 그 묘한 느낌이란... ㅋ (번역이 제대로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불타는밀밭
    종교는 인격신을 가정하니까요. 인격신을 가정한다면 제사도 드려야겠고, 공물도 바쳐야겠고... 기도도 해야겠고...

    유전자는 그럴 필요는 없으니까요.
    Erzenico
    창조라는 단어에서 창조의 행위자가 있다는 것을 상정하는 것은 우리 말의 프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be created라고 원문에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수동태가 일상적인 영문에서는 행위자를 상정하지 않은 수동태도 많이 쓰이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Danial Plainview
    홍영남 선생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렇게 번역해둔 게 뭐가 자랑이라고 자랑스레 얘기하는 걸 본 적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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