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5/09 16:09:56
Name   마르코폴로
Subject   도망친 여인, 돈나푸가타

-돈나푸가타 안씰리아


-돈나푸가타 앙겔리




맛은 단순히 미각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와인의 맛 역시 그러합니다. 좋은 와인은 그 와인 하나로 술자리의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는 스토리가 있어야 하죠. 신대륙의 뛰어난 와인들보다 구대륙의 와인들이 여전히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까닭은 와이너리가 쌓아온 시간과 그 속에서 발생한 이야기들 때문입니다. 시칠리아의 돈나푸가타는 이런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한 조건을 갖춘 와이너리입니다. 돈나푸가타는 이탈리아어로 ‘도망간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실제 이 이름의 유래 속 주인공은 프랑스 루이 16세의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의 친언니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입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공주로 이탈리아 부르봉 왕국, 페르디난도 4세와 결혼해 왕비가 됩니다. 강한 품성을 지닌 그녀는 정치에 관심 없는 남편을 대신해 1792년부터 나폴리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죠. 마치 자신의 어머니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처럼 말이죠. 그녀가 실권을 장악하고 얼마 뒤, 1793년 프랑스 혁명으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당합니다. 마리 앙투와네트와 각별한 자매애를 자랑했던 그녀는 큰 충격을 받죠.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공화파와 극심한 대립각을 세우게 됩니다. 이후 1806년 나폴레옹의 군대가 나폴리를 장악하면서 마리아 카롤리나는 권력에서 쫓겨나 시칠리아 섬으로 도망칩니다. 그녀가 몸을 피한 곳이 지금 돈나푸가타 와이너리가 소유한 포토밭 중 하나인 '콘네사 안텔리나'입니다. 결국 이 비운의 여인은 시칠리아를 거쳐 본국인 오스트리아로 추방돼 1814년 뇌졸중으로 사망합니다.

이같은 역사 때문인지 돈나푸가타에서 생산하는 와인레이블에는 마리아 카롤리나의 비극적인 운명을 나타내는 듯한 슬픈 여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화이트 와인인 안씰리아는 레이블에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가 눈물을 흘리며 머릿결을 휘날리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레드와인 앙겔리의 경우 화려한 여인이 말을 타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허겁지겁 도망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죠. 하지만 맛은 레이블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줍니다. 시칠리아 토착 품종인 네로다볼라와 메를로를 블랜딩해 만든 이 와인은 가벼운 바디감과 높은 산도, 풍부한 과일 향을 자랑합니다. 상당히 발랄한 느낌의 와인이죠. 향의 지속력은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토마토와 올리브 오일을 기본으로 하는 이탈리아 남부 음식과 잘 어울릴 듯 하네요.

와인의 레이블에 그려진, 급히 도망치는 여인의, 흩날리는 긴 머리를 보니 대선 기간 동안 떠나간 분들이 생각납니다. 홍차넷이 도망친(?) 이를 위한 쉴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소개해 봤습니다.








타임라인에 쓰려했는데 900자가 조금 넘네요. 사진은 구글이미지에서 가져왔습니다.



6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072 요리/음식피자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네요... 2 덕후나이트 19/04/13 5161 0
    8895 요리/음식영국 음식이 맛이 없는 과학적인 이유 115 문학소녀 19/02/22 9324 113
    8801 요리/음식홍차넷 맛집 탐방 - 쌍문동판다쓰 9 The xian 19/01/26 5393 10
    8714 요리/음식아이스크림 마시쪙 5 温泉卵 19/01/01 4443 5
    8504 요리/음식위스키 입문, 추천 22 Carl Barker 18/11/11 15646 30
    7913 요리/음식랩노쉬(Labnosh) 푸드쉐이크 시식기 5 BONG 18/07/22 7740 3
    7907 요리/음식와인뉴비의 최근 마신 와인들 5 암사자 18/07/22 6196 1
    7822 요리/음식[펌]하겐다즈 좋아했는데 못 사먹겠네요. 17 알겠슘돠 18/07/10 5804 0
    7705 요리/음식[Cafe Carioca - 2] Begining of pour over days 11 Erzenico 18/06/17 4972 1
    7676 요리/음식[Cafe Carioca - 1] 나는 어쩌다 커피를 마시게 되었는가? 22 Erzenico 18/06/13 4931 7
    7527 요리/음식카놈빤과 모시떡 7 늘보 18/05/15 4294 2
    7464 요리/음식집에서 뒹굴대는데 부엌에 빵이랑 잼 등등도 같이 굴러다닐 때 25 la fleur 18/05/01 6167 14
    7379 요리/음식패스트푸드에 대한 기억 9 사슴왕 말로른 18/04/13 4704 3
    7277 요리/음식THE BOOK OF TEA 개봉기 26 나단 18/03/25 5760 10
    7188 요리/음식인싸들의 힙한 라면. 요괴라면 후기 17 Morpheus 18/03/03 7719 1
    7112 요리/음식떡볶이 부터 시작된 정크푸드에 대한 진영싸움 15 맥주만땅 18/02/14 4691 2
    6940 요리/음식결혼하지 않는 남자. 18 tannenbaum 18/01/14 6212 5
    6801 요리/음식혼밥이란 무엇인가? 5 Beer Inside 17/12/21 7809 8
    6285 요리/음식2박3일 속초 휴가 (먹기만 함..) 10 꿈꾸는늑대 17/09/15 5460 6
    6142 요리/음식그레이스 켈리의 와인을 찾아서 11 마르코폴로 17/08/22 8077 4
    6078 요리/음식평양냉면 첫경험 26 커피최고 17/08/09 6159 5
    5690 요리/음식식욕터지는 다이어터의 의식의 흐름 - Chicken Wings 20 elanor 17/05/24 4797 2
    5653 요리/음식백종원식 국물있는 밀떡볶이 만들기 4 피아니시모 17/05/17 6543 5
    5592 요리/음식도망친 여인, 돈나푸가타 1 마르코폴로 17/05/09 6322 6
    5476 요리/음식그대의 뽀얀속살을 그 위에서 보았을때 내 심장은... 11 다시갑시다 17/04/20 5553 7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