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6/11 19:58:41
Name   제주감귤
Subject   '악녀'를 보고-약 스포.


'신세계'의 엘리베이터 씬을 보고 빵 터진 기억이 나네요.
주인공의 등이 보일때는 적들이 갑자기 착해졌는지 공중에 칼을 휘두르거나 
칼등이나 손잡이로 주인공 등을 정성껏 안마해주더군요.

악녀를 보면서도 그런 걸 많이 느꼈습니다. 
이게 가능할까 하는, 그런 비현실적 액션들,
떡대들이 느릿느릿 몰려와 자신의 목을 칼에 갖다대주는 그런 장면들은
어느 순간부터 놀라움보다는 묘한 쓴웃음을 유발하게 합니다. 

음식 재료들이 냄비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칼 끝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려가는 조연들

이 영화도 비현실적이지만
내가 다른 백 여명의 쌩판 모르는 사람들과 두 시간동안 깜깜한 극장에서 
하필이면 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게 더 비현실적인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

굳이 저렇게 쳐죽여야 할까. 굳이 저렇게 피를 뒤집어써야 할까 하는...
'굳이' 가 붙은 그런 말을 되뇌게 하는 장면들을 끊임없이 주시해야 하는 일은 너무 피곤합니다.

하지만 액션의 영화적 사실성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이제는 굉장히 익숙해진 (그리고 아저씨 이후로는, 극도로 잔인하고 과격해진) 
그런 발전된 한국신 액션이 이 영화에 다 있습니다.

근데 왜인지 모르게 너무 재미없어요. 그리고 너무 잔인합니다.
그래서 결국 재미없고 잔인한 액션신이 계속 반복됩니다.

숙희의 과거도 궁금하지가 않아요.  쓰다보니 정리가 되는데요.
캐릭터들이 너무 밋밋하고 무미건조합니다.
숙희(김옥빈)는 딱 그냥 복수심에 불타는 악녀입니다. 끝.
눈을 치켜뜬다든지 하는 게 연기의 전부입니다.

신하균은 존재감 있는 척 하려고 하는데 걍 묻혔어요. 그냥 신하균입니다.
게다가 과거와 현재를 부단히 오가면서 
캐릭터성은 두드러지는 부분 없이 애매모호하게 희석되어 버렸습니다.

이들의 캐릭터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설명하고는 있지만 그게 와닿지가 않아요. 
현실에는 없고 영화에만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집니다.  과거는 유구한데 현재가 너무 빈약해요.

1인칭 액션이 주는 감흥은 크지 않았습니다. 
예상한 대로였고, 어떤 면에서는 전체적인 질을 저하시킨 것처럼 느꼈습니다.
속도감있다기보다는 촐싹댄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그 잔인함.
모든 방향으로 피를 뿌려대며 닥치는대로 사람을 죽이는 영화를 
아무리 19세 영화라지만 전국상영하는게 과연 맞는 일인지.

물론 이보다 훨씬 심한 영화도 많지만.
그냥 회의감에 빠져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한 줄 평 : 3점



1
  • 얼굴이 예쁘니 미녀라고 합시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95 정치'대북송금·뇌물' 이화영 세번째 구속…변호인 "유례없는 일" 1 과학상자 23/10/14 1301 3
9491 일상/생각'대체 가능'에 대한 기업과 일반인의 인식 간 괴리 12 AGuyWithGlasses(산타는옴닉) 19/07/30 4110 4
9667 도서/문학'더 브레인:삶에서 뇌는 얼마나 중요한가?' 간단 리뷰 5 개발자 19/09/15 4202 4
3917 방송/연예'또!오해영', 사랑의 재발견. 10 마르코폴로 16/10/15 6811 1
9798 도서/문학'메데이아, 또는 악녀를 위한 변명'을 읽고 2 치리아 19/10/08 3790 7
6869 영화'메존일각'에서부터 클래식 할리웃 거슬러 올라가보기 5 구밀복검 18/01/01 3232 5
6485 일상/생각'무빠' 대입 설명서 18 CONTAXS2 17/10/30 3803 1
5011 정치'무해한 음모'에 부쳐: 대체로 무해한 음모(a mostly harmless scheme) 9 221B Baker St. 17/02/26 6247 10
10844 일상/생각'문화적 전유' 개념을 반대하는 이유 3 치리아 20/08/08 5066 9
13821 일상/생각'믿는 것'과 '아는 것', 그리고 '하는 것' 날이적당한어느날 23/05/07 1218 0
5357 도서/문학'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고 드는 생각 7 지니세이 17/04/03 4015 0
14148 일상/생각'부의 추월차선'을 위한 변명 5 realwealth 23/09/18 1906 0
10109 도서/문학'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감상 1 야근하는밤비 19/12/23 4376 2
7287 영화'사라진 밤' 평가 : 스포일러 다량 함유 11 化神 18/03/26 5171 0
9648 도서/문학'삼체 3부 사신의 영생' 짧은 감상평(스포없음) 8 개발자 19/09/10 3361 3
7154 경제'식근론'에 대한 단상, 한국은 독립국이 맞는가? 23 hojai 18/02/23 6287 4
14139 정치'실무중심 법학'의 모순과 문제점 (1) 3 김비버 23/09/10 1578 11
5771 영화'악녀'를 보고-약 스포. 4 제주감귤 17/06/11 3209 1
6235 영화'애나벨-인형의 주인' 을 보고. 14 제주감귤 17/09/06 4902 0
7135 일상/생각'여권 태워버려' 처럼 당사자가 싫어하는 호감 표현, 괜찮은가요? 8 라밤바바밤바 18/02/18 5334 1
6725 IT/컴퓨터'옵션 열기'의 정체 16 Toby 17/12/07 8498 34
9005 사회'우려 먹는다'는 소리 참 아무데나 쓴다 싶다... 5 The xian 19/03/27 3451 13
9695 사회'우리 학교는 진짜 크다': 인도의 한 학교와 교과서 속 학교의 괴리 2 호라타래 19/09/23 4223 9
3007 문화/예술'월말인데 돈이 없다. 돈을 벌어야겠다.' 22 당근매니아 16/06/12 5423 1
12899 기타'위즈덤 칼리지' 청취 후기 (매우 간단, 노 스포) 및 토론 모임 인원 모집 16 Mariage Frères 22/06/08 3408 5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