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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9/11 20:01:46
Name   와인하우스
Subject   어베일러블.
https://youtu.be/eieOeGpQtDI

가고픈 데 있으면 전화해 혼자 있기 싫으면 on a Friday
난 혼자잖아 몇년째 그냥 남자인 친구로 생각하면 돼
그 사람에겐 네가 아까워 외롭기엔 넌 너무 아름다워
사람들 말대로 슬픔은 나눠 불편해 할 게 없어 나와 너


(알아 헤어지고 울 때마다 위로해주고 또 챙겨주고 했잖아
니가 날 좋아하는 게 티가 나 미안하지만 넌 남자로 보이지 않아)

--------------


나도 티가 났을까. 안그런척 하려는 나의 행동들이 오히려 당신에게 확신을 심어준 것은 아닐까, 가끔씩 번민에 빠져든다.
너무나도 상냥했던 당신은 지나치게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의 모든 무례한 행동에도, 감정과잉에도 당신은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포근한 눈으로, 따스한 글귀로 나를 감싸주었다. 나는 물론 기뻤지만, 한편으론 분명히 나따위 것에 삭아들어갔을 당신의 내면이 걱정되기도 했다. 당신이 조금만 솔직했더라면, 차라리 선을 조금 그어주었더라면 이렇게 내가 삭아들어가는 일은 없었을 텐데.
물론 가장 솔직해야 했던 건 다른 누구 아닌 나다. 무엇보다 당신의 상냥함에 끌렸던 건 나니까, 그걸 책망한다는 건 그야말로 적반하장이겠지.

반성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나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미워서가 아니라 저 노랫말에 나를 투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굳이 그 얘기를 서로 하지는 않았지만) 당신은 꽤 연상인 남자와 긴 연애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사실을 왠지 모르게 늘 의식하고 있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므로, 나는 그 남자의 모습을 편협하고 질투심 섞인 상상에 깃대어 그려보았다.
그는 경험만큼 사려 깊고 경제적으로도 여유 있는, 그야말로 신사일테지만(별볼일 없는 사람이 당신과 만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으므로) 오히려 그렇기에 틈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권태에 빠진 오래된 연인들이 간혹 그렇듯, 드러나지 않은 관계의 균열이 당신의 마음 속 찾기 힘든 어느 구석에 찰과상을 내고 있을 지도 몰랐다. 주변에선 멋진 커플이라고 속 모르는 소리를 해댈 테지만, 당신의 기품있는 눈동자에 아주 잠깐 공허감이 스친다면 그것은 나만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모를 '한 번의 기회'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나에게 있어 당신이 이렇게 큰 존재인 것만큼, 당신 역시 그 반의 반만큼이라도 나를 여겨주었으면 하는 소망에 가까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실은 당신이 슬픔을 스스로 극복하는 주체적인 사람이기를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렇듯 나는 당신을 추앙할 '수단'으로 삼았음에 대하여 참회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나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 당신은 그저 둔감했을 뿐이고, 나는 내 의도보다도 훨씬 감정을 잘 숨겼던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사춘기 남학생들처럼,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당신을 좋아하는 내 모습에 도취되었던 건 아닐까?
그래도 그런 우울한 추론을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당신을 그리는 게 훨씬 황홀한 일이지 않은가. 누가 나를 비참하다 비웃을 수 있을까. 진실을 마주하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는데. 바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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