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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10/14 23:18:27
Name   와인하우스
Subject   윤여정 주, <죽여주는 여자> (2016)
https://youtu.be/NPzNcBHHhKc

(유의) 영화의 주된 내용 전부를 요약했습니다.


주인공 ‘소영’은 실향민 출신으로 젊었을 땐 양공주 생활을 하다, 어찌어찌 노년에는 파고다 공원에서 노인들 상대로 4만원에 몸을 팔며 생계를 잇는 ‘박카스 할머니’입니다. 그래도 뭔가 기술이 뛰어난지 ‘죽여주는 여자’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권역에서는 유명한가 봅니다. 소영의 고객인 할아버지들도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입니다. 돈이 없기도 하지만 깔끔한 행색들을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들이 소영에게 몸을 맡기는 건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는 노인들 특유의 공감대가 작용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소영은 이태원의 허름한, 세탁소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까무잡잡한 애들이 한 둘이 아닌] 골목에 살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거리죠. 그러나 어째 음침한 분위기는 풍기지 않습니다. 소영의 이웃인 트랜스젠더 밤무대 가수 ‘티나’와 한쪽 다리가 절단된 성인 피규어 작가 ‘도훈’도 나름의 유쾌함이 있는 인물들입니다.


소영은 어느날 부인과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알고보니 그 담당의사는 코피노 아이와 필리핀 현지처를 버리고 떠난, 간호사의 말을 빌리면 [다 똑같은 한국 남자 새끼]였습니다. 이미 한국에서 세 아이의 아빠였다지요. 이야기는 병원에 필리핀에서 무작정 찾아온 여자가 의사를 가위로 찔러버리고 경찰에 붙잡히는데, 자기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묘한 연민에 소영이 도망친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시작합니다. 한국어도 영어도 통하지 않는 아이였지만 소영은 개의치 않고 아이를 손주 돌보듯 합니다. 조금 뜸을 들이긴 했지만 도훈과 함께 이주여성센터를 찾아가 구치소에 갇힌 아이 엄마와 재회하고요. 어째 이상한 할머니가 애를 데려갔는데도 엄마는 소영을 순순히 믿고 고마움을 표시하기까지 합니다.


어느날 소영은 자신의 옛날 고객인 ‘재우’와 마주쳐 잘 보이지 않게 된 할아버지들 이야기를 합니다. 누구는 진즉에 죽었고, 누구는 풍에 걸려 쓰러졌고, 자기도 이제 남자 구실을 할 수 없다는 그런 얘기들요. 소영은 풍에 걸렸다는 할아버지의 병실에 찾아갑니다. 맞춤양복을 입고 빳빳한 돈을 들고 다니던 멋쟁이 할아버지는 밥도 혼자서 먹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1인실의 넓은 병실을 쓰고 있지만 미국에 사는 아들 내외는 내년에나 다시 올 수 있겠다고 말하며, 영어가 더 편한 손자와 손녀는 냄새나는 할아버지를 대놓고 꺼려합니다. 아침드라마 사모님 타입의 며느리는 소영을 돈 때문에 온 것이 아닌가 경계합니다. 가족들이 나가자 할아버지는 소영에게 “도와달라”며 울부짖고, 소영은 농약을 사서 손을 부들부들 떨며 할아버지의 입에 붓습니다. 이상한 죽음이었지만 가족들은 부검을 거부하고 묻어버립니다.


멋쟁이 할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재우에게 소영은 ‘제가 보내드렸다’며 고백을 합니다. 재우는 ‘어쩌자고 그랬냐’고 말하지만 놀랐을 뿐 힐난하는 기색은 없습니다.
재우와 소영은 어느 독거노인의 집에 찾아갑니다. 이 노인은 가난하고 배우자도 없고 삶의 의지도 죽음의 의지도 없는데다 치매끼까지 보이는, 놔두면 분명히 추한 최후를 맞을 게 분명한 사람입니다. 재우는 소영을 설득하고, 소영은 ‘알 바 아니다’고 거부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세 사람은 산에 오릅니다. 정상에서 재우는 자리를 비우고, 소영은 깎아지른듯한 낭떠러지에 선 치매노인을 뒤돌아선채 밀어버립니다. 떨어지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모든 의지를 잃어버린 노인에겐 [밀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지요.


그리고 어느 낮에 재우는 소영에게 데이트를 하자고 전화를 겁니다. 어제가 아내의 5주기였다는 재우는 소영에게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고급 호텔로 자리를 옮깁니다. 재우는 소영에게 수면제를 내밀며, 혼자 떠나긴 너무 아득해서 그냥 옆에만 있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신사복을 입은 재우는 독극물과 수면제를 섞어서, 소영은 푹 잘만큼의 수면제를 먹고 같이 눕습니다. 날이 밝자 재우는 싸늘하게 식어있었고, 소영은 호텔방을 나섭니다.


재우는 소영의 가방에 봉투를 남겨두었습니다. 봉투에는 고맙고 미안하다는 편지와 100만원이 들어있었죠. 소영은 절에 100만원 중 일부를 시주하고, 집에 돌아가 도훈과 티나, 민호(코피노 아이)와 다음날 소풍을 가자고 합니다.


놀이공원과 비싼 식사 등 그들의 처지에서 쉽게 쓸 수 없는 소비를 소영이 대뜸 하자 도훈은 어디서 스폰이라도 물었냐고 실없이 묻지만 소영은 그저 혼자 쓸 수 없는 돈이 생겼다고 할 뿐입니다. 그러다 식당 TV에서 재우의 사건이 보도되는 것을 봅니다. 뉴스앵커는 [서울 시내 한 특급 호텔에서 금품을 노려 호텔방으로 노인을 유인한 뒤, 수면제에 독극물을 타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고 보도합니다. 재우가 직전에 인출기에서 백만원을 빼낸 게 찍혀서 경찰이 ‘금품을 노렸다’는 추정을 한거지요. 도훈과 티나는 ‘어떻게 돈 백만원에 사람을 죽이냐’고, ‘요즘 할마시들 무섭다’고 지나가는 말을 하지만, 소영은 착잡한 표정으로 [그 사람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 아무도 속사정은 모르는 거거든.]이라고, 뒤이어 [그냥 거죽만 보고 대충 지껄이는 거지.]라고 말합니다.


소영은 그날 밤 티나가 일하는 트렌스젠더바에서 체포되었고, 구속된 소영은 교도소에서 숨을 거둡니다. 영화는 ‘무연고’라고 적힌 소영의, 아니 ‘양미숙’의 유골함을 클로즈업하며 끝납니다.



완벽한 영화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가만히 납둬도 될 상황에서 설명충 캐릭터가 분위기를 깨고(도훈이 코피노를 설명할 필요도, 우연히 흑인 혼혈아인 주한미군 병사를 마주쳤는데 그가 엄마가 날 버린 사연을 소영에게 낱낱이 말할 필요도 없죠), 극의 내용에 휘말려 각 캐릭터의 상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건당 4만원을 받는게 수입의 전부인 소영은 그다지 생활이 곤궁해보이지 않고, 윤계상이 분한 ‘도훈’이 ‘이 모양인데 여자가 꼬이겠어요’하는 장면에선 물음표가 붙는 식이죠.


작중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너무 착합니다. 도훈이 월세를 네달이나 밀려도 가벼운 핀잔만 주다 나중엔 그랑 사귀는 티나도, 아무리 잘 돌봐줬다 한들 이상한 할머니가 아이를 데려갔다는 데도 기분나쁜 내색이 없는 민호 엄마도(또 코피노 사건이기 때문에 아이의 존재가 입증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요),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오직 소영의 연민을 상징하는 장치로 기능할 뿐인 민호도, 소영을 막 대하지 않는 손님들도 말이죠.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적나라한지, 어줍잖은 동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가치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모두가 외면한 그곳에도 삶은 돌아간다는 걸 알려줍니다. 우리는 고독사에 대한 기사는 읽지만,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의 무력감은 모릅니다. 우리는 남녀평등에 대한 여러 주장과 반박은 알지만, 노년 여성이 젠더 문제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는 명백한 사실은 알면서도 무시합니다. (소영은 도훈을 데리고 이주여성센터를 가며 ‘여자 혼자가면 무시당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사치를 부리고 과거를 세탁하는 젊은 여성들의 성매매는 알지만, 누군가의 성매매는 유일하고 어쩔 수 없는 삶이라는 사정은 모릅니다. 우리는 가난하고 못난 사람들의 악함과 배타성은 알지만, 그런 곳에서도 나름의 연대의식이 작동한다는 사실은 모릅니다. (다만 이 연대의식은 선악관념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은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중간에 생략했지만 소영을 쫓아다니는 어리숙한 다큐감독이 나옵니다. 그는 OECD 노인빈곤율이 어떻다느니 하는 말을 곁들여 소영의 인터뷰를 따려 들죠. 소영은 매우 기분나빠하며, 사랑 얘기나 찍지 왜 이런 걸 하냐고 묻습니다. 아마도 소영에겐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일 것이고, 별 것도 없는 남의 일에 쓸데없이 신경을 쓸만큼 참 사치스럽다고 느꼈을지 모릅니다. (근데 나중엔 못이겨서 잠깐 인터뷰를 해주긴 합니다) 감독이 어떤 내용의 작품을 찍을 지는 모르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불쾌한 일인 거죠. 소영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끄러울 건 없는데 대놓고 쪽팔릴 마음은 없어요.”]


저는 어떤 운동에 빠질 수 없는 성정의 사람이고 어느 개인이나 집단을 연민한다는 것도, 연대한다는 것도 익숙지 않습니다. 무분별한 동정이 때로 더 나쁜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요새 유행하는 냉소주의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파악이 안된 냉소는 조롱에 불과합니다. 다만 저는 알려고 들 뿐입니다. 단순한 팩트주의를 넘어서 그 안에 깔린 사회적 조건과 기저 심리를 말이죠. 대단한 배움을 가진 것도 대단한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기본 태도가 그렇다는 거니까요. 이 영화를 보며 다시금 저 편협하고 미약한 경험과 인식으로 모든 걸 재단하는 시민-대법관들에 대한 혐오감과 동정과 연민, 분노에 현실을 매몰시키는 운동가들에 대한 한심함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후자의 사람들-대체로 요새 인터넷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는-은 이 영화를 보고 마치 모든 진리를 깨우친듯 눈물을 흘리겠지요. 아니면, 왜 이것밖에 못 찍었냐고 훈계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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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문단을 반으로 갈랐을때 앞과 뒤가 자기적시같아서 영화와 리뷰가 완결되는 느낌..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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