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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02/11 21:16:41 |
Name | 메아리 |
Subject | 푸코의 자기 배려와 철학상담(2) |
2. 파르헤시아와 아스케시스 자기 배려를 말함에 있어서 푸코는 고대에 있었던 특정한 두 행동 양식에 집중합니다. 그것이 바로 파르헤시아(parrhêsia)와 아스케시스(askêsis)입니다. 자기 배려를 진리의 주체화를 수행하는 실천이라 말할 때, 파르헤시아가 그 방향이 타인을 향하는 것이라면 아스케시스는 자신을 향하는 것입니다. 파르헤시아는 말하는 자가 자신이 하는 말에 연루되는 것으로 즉, 진리를 알고, 체험하며, 진리가 되어 버렸고, 이 진리를 자신이 체험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진리를 말함으로써 자신은 진리를 다시 마주해야 하는 겁니다. 파르헤시아가 자기 배려에서 가지는 의미는, 그것이 특히 철학의 실천적인 면을 확연히 드러내 줌으로써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파르헤시아는 근본적으로는 정치적인 개념으로서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인이 아고라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말할 수 있었던 정치적 자유를 실천하는 한 가지 방식이었습니다. 파르헤시아가 이러한 정치적 실천의 영역으로부터 철학적 실천의 영역으로 들어가 철학적/윤리적 파르헤시아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사실 소크라테스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활동을 계기로 파르헤시아가 철학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때로는 죽음을 감수할 정도로 용기 있게 진리를 말함으로써 타자를 바르게 인도한다는 의미에서의 철학, 파르헤시아로서의 철학이 발생됩니다. 소크라테스에 있어서 파르헤시아를 행사한다는 것은 자기가 진리를 말하고 있다는 주장일 뿐만 아니라 자기가 진리에 입각해서 삶을 살고 있다는 주장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파르헤시아는 정치의 영역에서 철학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주체가 진리와 관계하는 또 다른 방식인 아스케시스는 존재론의 차원에서 진리와 맺는 관계의 한 방식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푸코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에서 주체는 인식만으로 진리에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단순한 인식행위를 통해서는 진리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전제”한다는 겁니다. 진리를 탐구함에 있어 그 인식은 물론이고 그것이 주체에게 깃들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필요했으며, 이 훈련을 아스케시스라고 말합니다. 아스케시스는 진리를 주체에게 새기는 방식으로서의 육체적, 정신적 훈련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고대 그리스·로마에서는 진리를 자명하게 주어지는 인식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인식뿐만이 아니라 훈련이 더불어 필요하다고 여긴 것으로, 진리를 얻기 위해서 실천이 반드시 함께 해야 했다는 겁니다. 사실 자기 배려의 이 두 가지 행동 양식이 강조하는 것은 실천입니다. 주체가 진리를 마주할 때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준비하는 실천을 바로 자기 배려라 합니다. 즉 우리가 진리와 관계 맺을 때, 그것은 인식의 대상일 뿐 아니라 실천해야 하는 어떤 것이라는 겁니다. 푸코가 자기 배려 연구를 통해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실천이었습니다. “나[푸코]는 이론 안에서 무엇이든 말할 수 있다고 결론짓지 않는다. 반대로 엄격하고 조심스러우며 ‘실험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중략]… 내가 이 모든 ‘실천’에 애착을 갖는 것은 개념을 ‘적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경험하고 수정하기 때문이다.” 푸코는 자기 배려에 대한 연구를 통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철학이 지금의 철학과 비교하여, 삶에서의 역할과 모습이 달랐다는 점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푸코는 고대 모델로부터 그 실천적 모습을 복원하여 철학의 실천적 모습을 강조하려 합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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