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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5 22:00:19
Name   메아리
Subject   서평 -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2018년 창비 소설부문 신인문학상 수상작인 이 작품은 인터넷 상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창비 홈페이지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뷰를 기록하며 찬사를 받았다. 근래 ‘소설’이 이렇게 화제를 일으킨 적이 있던가?
  
- 삶은 피상적이기 마련

  작가가 제시하는 것들은 대부분은 피상적이다. 예를 들면 스크럼. 피상적으로 도입된 스크럼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영어식 이름도 마찬가지다. 원래 의도했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그것은 일을 결정적이지 않을 정도로 망치고 있다. 주인공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렇다. 천재 개발자라는 허울도, 주인공이 현실을 잊고자 듣는 클래식 음악도, 우동마켓의 본질을 흐리는 거북이알의 게시글까지 말이다.
  작가는 연달아 피상성을 투척해댄다. 그것들이 우리 삶의 적나라한 모습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것들을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게 드러낸다. 카드사의 대표가 인스타에서 하는 행태도, 거북이알이 자신이 키우는 거북이의 이름을 짓는 방법도 각자 삶이 지니는 필연적 피상성이라 할 수 있다. 가장 결정적인 건 바로 포인트다. 돈 자체가 이미 일종의 구체적 추상이다. 실재하지 않는 가치를 실재하게 해주는 무가치한 종이 쪼가리들. 그런데 그 위에 포인트라는 한 층의 추상이 더 쌓인다. 오직 컴퓨터 시스템 속에만 존재하는 숫자들. 이젠 최소한의 물질이었던 종이 쪼가리조차 필요 없게 된 것이다. 포인트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그만큼 세상이 피상적이라는 말이자, 실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피상적이지만 동시에 본질적이다. 카드회사의 대표 같은 경우, 자신의 인스타보다 공연 공지를 먼저 올렸다는 이유로 공연기획팀이었던 거북이알을 좌천시킨다. 이런 피상적 인물이 동시에 ‘포인트’가 가지는 피상성을 지적하며 거북이알을 곤경으로 몰아넣는다. 거북이알도 마찬가지이다. 거북이의 이름을 온통 비싼 외제차에서 따 지을 정도로 피상적인 그녀는, 동시에 자신에게 월급으로 주어진 ‘포인트’라는 비실재를, 우동마켓을 통해서 극복해 낸다. 아무것도 아닌 포인트를 실물로 바꾸어 내는 그 재주. 주인공도 마찬가지이다. 클래식 애호가로서 살아가는 그녀는 힘들게 번 돈으로 조성진의 콘서트를 보러 가기 위해 홍콩으로 간다. 동시에 케빈에게 본질을 바라보라는 충고의 말을 남기기도 한다.

  작가는 끊임없이 일상의 피상성과 이상의 본질성을 대비시킨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상을 꿈꾼다. 일상을 이상에 종속시킨다. 이상을 위해 일상을 희생한다. 일과 꿈을 분리하여 대립시킨다. 그 희생 제의의 축제일이 바로 월급날이다. 스스로 삶의 유격을 느낄 때 즈음해서 월급이 입금된다.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절대 그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껍질을 껍질로만 놔두기.

  묘하게 발랄할 문체로 일상의 절망을 말하기. 그 발랄함 때문에 그 절망이 절망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절망이 절망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게 아니다. 절망을 절망답게 느껴야 자신의 삶을 바꾸려 노력할 텐데, 덕분에 우리는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래서 그 절망이 더욱 절망스럽다. 절망을 절망으로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절망.

- 고민없는 삶 속에서

  “글쎄요, 저희 대표나 이사는 매일매일 그런 생각을 하겠죠? 어떻게 돈 끌어오고, 어떻게 돈 벌고, 어떻게 3퍼센트의 성공한 스타트업이 될지 잠들기 직전까지 고민하느라 걱정이 많을 거예요. 전 퇴근하고 나면 회사 생각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나도 그래요. 사무실 나서는 순간부터는 회사 일은 머릿속에서 딱 코드 뽑아두고 아름다운 생각만 하고 아름다운 것만 봐요. 예를 들면 거북이라든지, 거북이 사진이라든지, 거북이 동영상이라든지.”

  그때 케빈은 카이스트 레고 동호회에서 삼년 동안 총무일을 했던 경험을 예로 들며 자신의 사회성을 증명하려고 했다. 나는 대표 옆에 투명인간처럼 앉아 있다가 비어져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아야 했다. 카이스트, 레고, 총무, 그 어느 하나도 사교적으로 들리지 않는데, 총무가 아니라 회장이라면 또 몰라. 내성적인 개발자는 대화할 때 자기 신발을 보고 외향적인 개발자는 상대방의 신발을 본다더니, 이 세계에서 레고 동호회란 대체 뭐란 말인가. 크레이지 파티광쯤 되는 건가.

  “코드를 좀 멀리서 보면 어때요?”
  케빈은 말없이 나를 올려다봤다.
  “자기가 짠 코드랑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덧붙였다.
  “버그는, 그냥 버그죠. 버그가 케빈을 갉아먹는 건 아니니까.”

나는 내 맥북의 “쵸팽” 폴더를 열었다. jpg, gif, avi로 된 수천개의 조성진이 모니터 위에 좌르륵 펼쳐졌다. 그중 하나를 더블클릭했다. 입을 오리처럼 오므리고 앞머리를 찰랑거리며 연주하고 있는 gif파일이 떠올랐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연주하고 있는 곡이 드뷔시의 「달빛」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완벽하게 잘생겼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우아하게 생겼을까.

  장류진의 이 소설은 부드럽고 푹신한 문체와는 달리 달콤한 비아냥이다.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배신의 캐릭터들이다. 누군가가 깨닫나 보다 라는 느낌을 주나 싶으면 그는 곧바로 피상성의 바다로 자신의 몸을 던져 버린다. 누구도 일상을 벗어날 수 없다. 누구도 일상에서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일상의 견고한 덫은 우리가 그 덫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만든다. 그 일상이 우리 세계의 전부인 줄 알게 한다. 이 일상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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