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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02/11 21:18:10 |
Name | 메아리 |
Subject | 푸코의 자기 배려와 철학상담(3) |
3. 철학상담 80년대 후반 소련의 몰락 이후, 거대 담론으로서 철학은 위력을 잃게 됩니다. 90년대 초부터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 시대가 열립니다. 그때는 거대 담론의 폐지가 화두인 시대였습니다. 난해한 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 담론들로 인해 철학은 멋들어진 장식품 이상의 역할을 포기합니다. 공산주의의 실패로 인한 이념의 몰락은 사유의 몰락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사실 인문학의 위기가 아닌 시절은 없었습니다. 근대 이후 과학적 사고의 대중화로 인하여 인문학은 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런 거대 담론의 몰락 시대에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철학이 우리의 삶에 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이 고민에 대한 한 가지 답으로 ‘철학실천으로서 철학상담’이 나타납니다. 1984년 독일에서 처음으로 철학상담소가 세워집니다. 그것은 아헨바흐에 의해 세워진 ‘철학 프락시스’입니다. 이후 유럽 뿐 아니라 미국 등에도 철학상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집니다. 매리노프는 Plato, Not Prozac!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릅니다. 이후 피터 라베, 라하브 등의 철학상담 연구자/상담자들이 활동합니다. 철학상담계는 활동하는 철학상담자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게 구분되나, 대륙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유럽계와 실용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영미계로 크게 나누어집니다. 유럽 같은 경우 실제 상당수의 철학상담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철학상담자에 대한 훈련도 체계화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임상철학(Clinical Philosophy)이라는 이름으로 꽤 대중화되어 있는 편입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요원합니다만, 2010년 이후 점차 철학상담이란 분야가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사실 심리상담과 철학상담의 구분과 차이점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현재 행해지는 대부분의 상담은 심리학을 베이스로 하는 심리상담입니다. 물론 그 심리학의 유형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부터 융의 분석심리학, 퍼얼스의 게슈탈트 심리학, 인지행동주의 심리학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요즘 들어 어빈 얄롬이 대표하는 실존주의 심리치료라고 하는 영역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어빈 얄롬 같은 경우 정신의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합니다.) 실존주의 심리치료 같은 경우는 어느 정도 철학, 특히 실존주의를 베이스로 하는 심리치료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것과 철학상담을 구분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 같은 경우에는 실존주의 심리치료와 철학상담의 차이점에 더 주목합니다. 사실 심리상담의 영역에서 이미 철학의 여러 효과들을 치료에 이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지치료의 소크라테스 대화법같은 경우 철학상담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굳이 철학상담이 필요할까요? 심리상담의 영역에서는 이미 철학이 상담분야에서도 사용되고 있고 지금의 상담이 활성화되면 되지, 굳이 철학상담이라 명명하여 별개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즉, 상담이란 멜팅팟(melting pot)에서 같이 공존하면 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철학상담의 영역에서는 그러한 접근에 대해서 경계하고 있습니다. 기존 상담과 대비하여 철학상담에는 자신들 만의 고유의 특성이 있고, 그런 이유로 기존 상담의 영역 안에서 공존하기엔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첫째 철학상담이 대두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정신분석계열(정신분석, 정신역동, 라캉 등)의 상담에 대한 반작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정신분석의 접근법이 틀렸다라는 것은 아니고, 단지 이러한 접근법들이 가지고 있는 태도와는 다르게 내담자들에게 접근하려 한 것입니다. (물론 해당 영역에서는 반박할 만한 내용이긴 합니다만,) 정신분석계열에서의 상담은 분석가/내담자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누군가는 분석자의 위치에, 누군가는 내담자의 위치에 ‘고정되어’ 상담이 진행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발생하는 역동, 전이나 역전이 등이 중요하게 취급됩니다. 이것은 ‘전문가에 의한 대상자의 치료’ 개념입니다. 그런데 철학상담은 (적어도 제가 공부하는) 이러한 전문가/대상자 구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치료’의 개념도 아닌 겁니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깁니다. “그럼 도대체 철학상담이란, 뭘하는 건가요?” 철학상담이 주목하는 대화의 유형은 소크라테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상담의 시조로 대우받고 있는데요, 그가 수행했던 고대 그리스에서의 활동을 철학상담의 중요한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그것은 논박술과 산파술로 나뉩니다. (아시겠지만, 소크라테스는 석공과 산파의 아들이었습니다.) 그가 수행했던 행위, 나중에 아테네의 젋은이들의 현혹한다 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는 그 행위를 지금의 철학상담에서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푸코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철학상담은 단적으로 두 사람이 철학적 대화를 나누는 겁니다. 그런데 그 철학적 대화의 주제는 어떤 것일까요? 소크라테스의 예를 들자면, 생활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들입니다. 어떤 거대 담론이 주제가 아니라 각기 자신의 삶과 관련된 문제가 그 대화의 주제인 겁니다. 자유나 정의, 평화 등의 거대 가치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것들을 직접적인 대화의 주체로 선정하여 이야기하진 않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청년이 자기는 돈을 벌고 싶다, 큰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탈법도 가능하다(걸리지만 않는다면)고 생각한다고 말한다면, 그 청년의 그 생각에 대해서 그 자신이 검토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주는 겁니다. 당신의 그 생각이 무엇이 잘못됐고, 그래서는 안 되고 인간이라면 이래야 되고... 이런 얘기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흔히 꼰대 짓이라 명명되는) 그 청년의 생각에서 어떠한 부분이 다시 검토되어야 하는 지를 상담자가 함께 찾아봐 주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대부분의 가치 판단은 배제하고 그 사람의 상황과 처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사람이 자신의 사유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작업 후에 다시 그가 가치에 대한 사고를 정립할 수 있도록 함께 해줍니다. 대부분, 자신의 사유 안에서 다른 방식의 사유를 전개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조력자가 필요합니다. 나와는 다른 방식의 사유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길을 열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죠. 혹시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심리상담과는 약간 궤가 다릅니다. 상담자의 역할도 심리상담과는 약간 다릅니다. 심리상담의 영역에서는 회피하려고 하는, 가치의 문제에 대해서 다룰 수 있고, 다루려 합니다. 그래서 철학상담자를 위한 훈련은 심리상담을 수행하는 상담자의 그것과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특히 생각하는 방식으로서 철학에 대해서 능통해야하는 겁니다. 대상자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어린 시절에서 기인한 그의 숨겨진 문제를 찾아내어 그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이 생각하는 바에 대해서 다시 검토하는 작업에 동반하는 것, 철학상담의 모습은 대략적으로 이렇게 이야기될 수 있습니다. (단, 여기서 말하는 철학상담의 모습은 제가 지향하는 바에 대해서 아주 단편적으로 말한 것이고, 다른 철학상담자 분들은 다른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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