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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2/12 23:13:45
Name   메아리
Subject   푸코의 자기 배려와 철학상담(8)

5. 자기 배려와 철학상담의 연관성

     

  지금까지 푸코가 설파했던 자기 배려를, 파르헤시아와 아스케시스라는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푸코가 자기 배려 연구를 통해 강조한 것은 철학적 삶입니다. 그런데 그 철학은 우리가 이전부터 알고 있던 철학과는 다릅니다. 소크라테스 시대를 거쳐 헬레니즘 시대에 만개했던 철학입니다. 플라톤 이후 니체 이전까지, 서양 철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본질주의 철학과는 괘를 달리합니다. 이른바 존재의 양식(style of existence)으로서 철학입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낮게 평가된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의 모습을 통해 그는 철학이 어떠한 모습을 지녀야 하는가에 대해서 다시금 사유하려 합니다. 그런데 푸코가 말하는 자기 배려로서의 철학 실천은 철학상담에서 지향하는 바에 많이 닮아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 유사점에 대해서 알아보고 왜 그런 유사점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타인과의 철학 실천으로서 파르헤시아

  소크라테스의 자기 배려에서 주된 것은 파르헤시아였습니다. 그것은 그 이전까지의 정치적 파르헤시아와 구분되는 철학적 파르헤시아로서의 특징을 가집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삶을 통해 정치적 파르헤시아의 수행은 오히려 거부했으며 자신의 사명으로서 철학적 파르헤시아를 수행합니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배려하라고 호소합니다. “삶 자체와 동일시되는 철학적인 파르헤시아는 철학을 실천하고, 자기 자신을 돌보며, 다른 사람을 돌보고,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것을 시험하고 시험하고 시험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철학적 파르헤시아로 이루어지는 담론은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수사학적 담론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전달하려는 자와 전달받는 자 모두를 매 순간 끊임없이 시험하는 그런 담론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배려는, 이러한 시험과 검증이 대화를 통하여 촉발되어 당사자로 하여금 그 시험과 검증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진리와의 관계는 이러한 시험과 검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철학적 파르헤시아는 이런 의미에서 하나의 로고스가 다른 하나의 영혼에 작용하여 진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유대감입니다. 자기 배려는 개체 단독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 이러한 유대를 통해 접근 가능한 것입니다. “파르헤시아는 이중적 실천이며 대등한 두 사람 사이의 실행이자 무엇보다도 도덕적 자질과 윤리적 목적이 동등한 사람들 간의 관계이다.”

  스툴티티아에 대한 세네카의 언급은 파르헤시아의 이러한 특징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건강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 누군가 그를 밖으로 끌어내야 한다.” 이 말은 자기 배려가 의미하는 진리와의 관계 양상이 관계적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자기 배려를 통해 창조된 삶의 방식은 궁극적으로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유용하다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배려는 그 단어가 글자 그대로 나타내는 바와는 다르게 자신만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을 배려함을 통해 자신을 배려하는, 또한 자신을 배려함을 통해 타인을 배려하는 그러한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자기 배려를 가능하게 하는 촉발제이자 자기 배려를 통해 다시 향하게 되는 목적지이기도 합니다. 철학의 실천에 있어서 타인의 존재는 이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라베에 따르면 철학상담의 장에서 철학상담자가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 보이는 일이 중요한 것은 단지 잘못된 결론을 방지한다거나 권위 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인간성을 증명해 보인다는 의미에서 중요합니다. 라베는 흄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철학자가 되어라. 하지만 네 모든 철학 가운데에서 여전히 한 인간으로 남아 있어라.” 이 말은 철학상담자가 문제에 대한 정답을 제시해줄 것만 같은 냉철하고 차가운 전문가로서 내담자 앞에 있는 것이 아닌, 생기 있는 철학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화의 동반자로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생기 있음이란, 만일 자신의 견해가 잘못됐다는 것이 드러날 경우 그것에 대한 교정과 보완에 인색하지 않은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틀릴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에서 내담자는, 설사 오류가 있다 할지라도 진정성 있는 자신의 말을 할 수 있는 안전함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이 진리라 믿었던 것이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바로 진실에의 용기’, 파르헤시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진실에의 용기가 발현되는 순간이야말로 철학자에게 있어 비록 위태롭지만 필연적이고 진정한 진리의 순간이라 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행했던 파르헤시아 역시 철학실천으로서 철학상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행한 행동은 상대방에게 철학을 알려주는 강의가 아니라, 대화하는 사람과 같이 진리를 탐구하려 하는 태도를 취했다는 점에서 철학상담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파르헤시아는 진리를 위해서 타자에게 상처도 줄 수 있고, 그래서 때로는 타자의 부정적 반응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록 변명을 보면, 아테네 법정에서 형량에 대한 판결을 앞두고 소크라테스는 회피가 아닌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의 길을 따르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지 않을 수 있음에도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흔히 이야기되듯이 준법의 준엄함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진리에 입각한 삶을 살고 있고 그래서 그것을 피할 필요가 없으며, 만일 진리를 따른 결과로 죽음이 주어진다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는 진리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철학자의 모습으로 죽은 것이고 그것을 통해 온전히 자신의 로고스를 에토스로 구현해낸 철학자의 모습을 남겼습니다. ‘진실에의 용기’,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처했던 죽음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대하는 이러한 태도가 철학자가 가져야 할 모습이라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아테네 시민들에게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철학상담에서도 소크라테스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사실상 철학상담의 시조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대화법은 철학상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효용성 높은 방법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상담사들이 소크라테스의 그것을 철학상담의 대화 모델로 여기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철학상담의 연구자들이 소크라테스 대화법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철학에서 소크라테스가 차지하는 위상은 그가 수행한 파르헤시아를 통한 자기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더불어 그가 수행했던 철학의 모습을 통해 지금의 철학상담은 그 실천에 있어서 힘을 얻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철학에 있어 타인의 존재가 어떤 의미인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철학은 혼자 수행하던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타인은 자기 배려를 가능하게 해주는 존재였습니다. 타인은 소크라테스의 철학 실천에 있어서 필수적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철학실천이 철학상담의 형태를 띄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철학상담은 반드시 타인과 함께 해야 하는 철학실천이기 때문입니다.

     

2) 실존의 미학을 이루려는 철학적 훈련으로서 아스케시스 


  (1) 거리두기와 실존의 미학

  그로는 자기 배려를 거리두기의 윤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거리두기, 자기와의 관계에서 자기가 행하는 활동과, 자기를 이 활동의 주체로 만드는 바 간의 간극을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간극은 자기와 자신의 행동 사이에 필요한 경계 상태를 구축할 수 있는 거리이자 주체가 자기 변형을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말합니다. 젠킨스는 이 공간을 잠재적인 자기 변형의 공간으로, 자기가 자신에게 취할 수 있는 윤리적 자유의 공간이라 말합니다. 여기서 윤리적 자유라는 것은 어떤 윤리적 문제에 있어서 자신이 스스로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자신이 스스로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지식이나 권력, 또는 자기 도식이나 타인의 도식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의 실천으로서 자기 배려에서 이 공간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 자유는 스스로에 대한 통제에서부터 나오는데, 억압하거나 통제하는 권력에 대항할 자유를 넘어서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제어하고 통치할 수 있는 자유인 것입니다.

  푸코는 이 공간이 현재의 자기생이라는 작품사이의 거리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고대의 주체는 자신의 삶을 작품의 재료로 간주했고 자신을 예술 작품으로 창조하는 것에 몰두했습니다. 이것을 푸코는 실존의 미학(l’esthétique de l’existence)’이라 부릅니다. 이는 주체가 숙고된 규칙에 따라 자신의 생을 구축하고 자기 실존의 근간 내에서 일정한 행동 원리들을 보여주려 하는 것을 말합니다. 푸코는 주체와 진리가 서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이유로서 주체가 그들의 삶을 어떤 하나의 미학적 가치를 지닌, 그리고 어떤 양식의 기준에 부합하는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자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스토아 철학에서 엄격한 절제를 바탕으로 한 윤리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렇게 진리와의 관계를 존재의 근거로 삼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어떤 존재론적 구조, 즉 자신의 삶에 대한 존중이자 삶을 통한 아름다움의 구체적인 구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각 개인은 절제하는 행동의 형상화를 통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주체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심세광에 따르면 푸코는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대신에 그들은 나는 나를 무엇으로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자기 변형의 전제조건으로 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파악, 심층적 성격이나 심지어 무의식에 대한 것 파악조차 끝난 상태에서야 비로소 자신에 대한 변형이나 향상이 가능해진다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정체성이 실천해야 할 행동보다 우선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주체의 문제에 있어서 고대 그리스·로마의 핵심 사항은 자기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자기의 삶을 작품의 재료로 삼아 어떠한 작품을 만들 것 인가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발명해내는 일이다.”

  자기와 자신 사이의 공간은 주체가 이러한 실존의 미학을 구현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자, “개인적이고 윤리적이며 미학적인 실천의 영역으로서 자신을 구축해가는 공간입니다. 이러한 실존의 미학을 이루기 위한 자기 기술(la technique de soi)’, 즉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행실과 실천을 규정하는 훈련은 주체가 자신의 변형을 통해 주체화를 수행하는 중요한 방법이었습니다. 이 공간은 자기가 자신과 관계를 맺는 전제조건이기도 하고, 자신과의 관계가 가능해지는 영역이기기도 합니다. 여기서 관계란, 단지 타자와의 관계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자기 역시 관계맺음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주체가 타자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전제가 바로 이 주체와 타자 사이의 간극입니다. 관계에 있어서 주체와 타자 사이에 거리가 존재해야만 비로소 둘 사이의 관계맺음이 가능해지는데, 자기와의 관계를 위해서도 이 거리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과의 관계를 위한 이 거리는 관념적이고 사유적인 거리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정 정도의 꾸준한 자기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거리는 일정하지도 물리적이지도 않고, 드러내 보이는 것도 측정하는 것도 힘듭니다. 고정되어 있고 확정적이며 견고한 공간이 아니라 불확정적이고 유연한 공간이기 때문에 생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의 노력이 투여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의 투여가 바로 고행과 훈련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기와 자신 사이의 이 공간은 너무 커서도, 너무 작아서도 안 됩니다. 너무 가까우면 자기와 자신의 활동이 일체화되어 스스로에 대한 변형의 시도가 힘들어 지고, 반대로 너무 멀면 자기와 자신의 활동 사이의 관계 맺음이 힘들어 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거리는 스스로에 대한 변형의 시도가 가능할 정도이면서 자신의 활동에 대한 관계 맺음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여야 합니다. 이점이 이 공간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겪는 어려움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거리의 적절함은 규정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닌, 상황과 처지와 개인의 고유성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실존적인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자신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한 지에 대해서 항상 고민해야 합니다.

  거리두기는 자기 변형을 위한 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입니다. 자기와 자신 사이에 어느 정도의 간극이 유지되고, 자기와 자신이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의 변형이 가능해집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이러한 거리두기 노력이 아스케시스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시대의 아스케시스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변형시키는 훈련이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아스케시스를 수행했던 이유는 진리와 관계 맺기 위해서 자기에서부터 자신까지의 거리를 확보하는 방법을 자신의 삶에 새겨 두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아스케시스는 훈련, 즉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에게서 거리를 둘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을 철학적으로 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거리두기를 통하여 자신은 삶에 대한 철학적 숙고를 수행할 수 있는 계기와 여유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삶에 대한 철학적 숙고는 결국 자기가 자신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가는 실존의 미학을 구현하기 위한 숙고입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지 문제에서 벗어나기가 아니라 삶의 가치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와 맞물린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가는 실존의 미학은, 이후 자신이 또 다른 유형의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에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과 계기를 줍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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