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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02/13 14:44:48 |
Name | 기쁨평안 |
Subject | 금융권의 차세대 시스템이 도입되는 과정 |
이 글은 전에 올린 글(https://redtea.kr/?b=12&n=570 )과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측면의 이야기입니다. 개별적인 경험이므로 일반화할 수는 없음을, 그리고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일부 각색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금융권의 차세대 시스템은 고도화된 현재의 금융거래 처리에 한계가 있는 오래된 시스템을 싹 다 걷어내는 작업입니다. 여기서 오래된 시스템의 코어 부분은 "포트란"으로 구현 된 것이 많이 있데,이를 수정, 보완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 자체가 없어서 문자 그대로 '그냥 내버려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네요. 지금까지 별 문제 없었으니까 그냥 건드리지 않은 거죠. 이런 부분까지도 싹 다 걷어내다보니 대대적인 개편이 불가피한데요. 차세대 프로젝트는 대형 컨설팅 업체가 PM으로 붙고, 대형 SI 업체(삼성 SDI, LG CNS, 인텔 등..)가 개발쪽에 붙습니다. 차세대 일정은 대략 5년을 잡고 시작을 합니다. 사이즈가 크고 프로세스가 복잡하면 당연히 기간은 더 늘어나겠지만, 일단 5년을 잡는다 치면, 3년을 기존 프로세스 분석에 보통 사용을 합니다. 그러면 컨설팅 업체 직원들이 전략기획팀이나 인사팀, 총무팀 같은데서 그려준 전체 업무 프로세스를 가지고 각 지점, 부서, 업무 현장으로 파견을 갑니다. 그래서 실무 직원 옆에 붙어서 꼬치꼬치 물어봅니다. '여기 이렇게 되어있는 건 이건가요? 저기 저거는 이걸 말하는 건가요?' 이러다보니 당연 실무직원들에게는 불만이 쌓입니다. 가뜩이나 바빠죽겠는데 자꾸 와서 캐묻고 따지고 질문을 해대니 견딜 수가 없죠. 하지만 본사 차원에서 공문이 내려오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실무직원들은 대충 가르쳐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들어, 컨설팅 직원이 "A가 D로 가는데 B에서 C를 건너뛰네요? 원래 이런건가요?" 이러면 실제로는 경우에 따라 C를 건너뛰기도, 건너뛰지 않기도, 때로는 E와 F 지나서 다시 D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걸 어느세월에 다 이야기를 해줄까요. 그냥 실무직원은 '네. 대부분 그래요.' 이러고 맙니다. 그러면 컨설팅 직원은 "네 그렇군요.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여기 설명을 다 했음 으로 되어있는데 사인해주세요." 이러고 사인을 받고 떠납니다. 그럼 직원은 '아휴 겨우 끝났네. 쓸데없는데 시간낭비나 하고. 쯧쯧' 이러고 다시 현업에 몰두를 하지요. 이런 식으로 부실하게 모아진 프로세스 분석은 사실 실제 업무의 한 절반 정도나 제대로 반영할까요? 3년에 걸쳐서 이런 반쪽짜리 분석 결과 모으는데요. 이 3년동안 제도가 바뀌고, 관련 지침과 규정이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제대로 반영이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컨설팅 회사는 이 결과를 SI에다가 던집니다. SI는 이걸 하청에 하청에 하청을 주고, 마지막 하청업체는 자신들의 직원과 프리랜서들로 구성된 팀을 짜서 각각 맡은 부분을 개발합니다. 개발과정에는 본사 직원들이 배정되어 감독을 하는데요. 정작 본사 직원들도 가장 말단 업무에서 일어나는 모든 프로세스를 다 알고 있지 못합니다. 큰 틀에서는 보면 대충 맞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한 1년 동안에 걸쳐 프로토 타입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면 본사 임직원들과 다 모아 놓고 시연회를 엽니다. 막상 이렇게 뚜껑을 열어보면 그 결과가 정말 충격과 공포입니다. 본사는 다 뒤집어집니다. '이 개XX들이 뭘 만든거야?' '어떤 XX가 일을 이따구로 가르쳐줬어?' 온갖 험한 소리가 다 나오죠. 그러면 컨설팅 회사 PM은 지난 3년동안 사인받아놓은 프로세스 분석도를 들이밉니다. (이제 4년이 지났네요) 그 동안 바뀐 내용도 많고, 부실하게 알려준 것도 많은데, 오랜 시간이 지나서 퇴사한 직원도 많고 다른데 발령난 직원도 많고.. 아무튼 엉망진창입니다. 진정한 차세대 프로젝트는 지금부터 시작이 됩니다. 고위 임원진과 오너 회장님 모르게 비상 TFT가 꾸려집니다. 그러면 회사 안에서 정말 A부터 Z까지 잘 아는 완전 에이스 중 에이스 들만 차출되어 들어옵니다. 당연 그들이 원래 속해있던 부서에서는 쌍욕을 하며 난리가 납니다. 하지만 어쩔수 없죠. 조 단위가 넘어가는 예산이 들어가는 프로젝트 엎어지면 한두명 모가지 날아가는 걸로는 끝나지 않거든요. 에이스들이 모여서 프로세스 처음부터 다시 검토에 들어갑니다. 그들도 맨날 날밤을 지세웁니다. 프로세스 분석과 시스템 구성 기획과 개발이 동시에 진행이 됩니다. 하청에 하청에 하청 직원들의 이탈이 가속화 되고, 빈 곳은 새로운 프리랜서 개발자들로 채워집니다. 퀄리티 관리는 개나 주고 일단 돌아만 가게 만듭니다. 온갖 쌍욕과 비난과 책임 덮어씌우기가 난무한 가운데 능력있는 PM이라면 정말 미친놈처럼 일정을 맞춰 냅니다. (제가 본 PM은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회의 진행과 일정관리를 잘하더군요. 하지만 이 사람은 그 능력에 걸맞게 프로젝트 중간에 더 큰회사로 이직을 해버리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일정에 맞춰 개발을 해 내면, 보통 3~6개월 테스트 기간 잡지만 최종 완료는 한달전, 혹은 2주 전에 개발이 완료되고 테스트 기간이 한달에서 2주 밖에 안남게 되는 거죠. 가끔 오너회장님이 '잘되가나?' 물어보면 다들 머리를 조아리며 '아무 이상 없습니다.' 이러고 가니까.. 남은 한달동안은 이제 현업에서 뒤집어 집니다. 밤새 테스트를 하고...결국 '핵심 주요 업무 50%까지만 테스트 진행'으로 쇼부를 보고 테스트를 완료합니다. 그리고 보통 한 3, 4일 전에 치명적인 오류가 나타나죠. 그럼 이제 누가 총대를 매느냐로 온갖 정치질을 하다가 결국 한명이 책임을 지고 진실을 보고합니다. 6개월에서 1년의 추가개발을 하기로 하고 SI 업체에서는 기간 연장의 책임이 고객사에 있음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공문을 보냅니다. 소송을 거네 마네 또 쌍욕이 오고가다가 대충 금액의 50% 정도로 합의를 보고 추가 개발에 들어갑니다. 완료가 되면 이 결과를 가지고 SI업체는 대단한 레퍼런스로 삼으며 엄청 홍보를 합니다. 고객사도 차마 실패했다는 소리를 못하고 대단히 성공했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정도면 엄청 양호한게, 롤백 한 고객사도 엄청 많거든요. 물론 성공적으로 런칭을 한다 해도 실제 현업에서는 한 2년간은 기존 시스템과 차세대 시스템을 같이 사용을 합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테스트에 테스트에 안정화에 안정화 작업을 계속한 끝에 최종 적용을 하죠. 이렇게 해서 도입된 차세대 시스템을 기존 직원들이 어떻게 쓰는지는 앞선 글에 일부 밝힌 바가 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은행의 이런 사태는 지극히 당연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네요.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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