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03/12 23:09:52
Name   하얀
Subject   [웹툰후기] 어떤 글의 세계
'가담항설' 이란 웹툰을 얼마 전에 보았습니다.

저는 웹툰을 잘 보지 않기에 유명 웹툰이나 작가에 대해 모릅니다.
웹툰의 대사를 발췌한 추천글로 호기심이 생겨 우연히 보았고,
그 이후 공교롭게도 제 일상과 닿아 간간히 떠오르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작품에서 '글의 힘'이란 매우 중요합니다.

글로 뚫을 수 없는 것을 꿰뚫고, 고칠 수 없는 것을 고치고,
본래보다 그 성질을 더 강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글 혹은 글자를 마음 속 깊히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각인을 새길 수 있고,
그 글(글자)의 의미는 물건 혹은 사람에 새겨져 그대로 효과를 발휘합니다.

저는 일종의 ‘기획’일을 하는데 모든 것은 ‘보고서(기획서)’를 통해서 이뤄집니다.
‘보고서’를 쓰지 않으면 일이 시작되지도, 진행되지도, 끝나지도 않습니다.

제대로된 ‘보고서’가 있어야 내 의도를 펼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고서’는 내 생각을 담는 도구이자, 다음 일을 추진할 수 있게하는 도구입니다.

제대로된 '도구'를 만들어 내는 것은 웹툰에서 각인을 새길 수 있는 조건과 같습니다.
1. 바탕이 되는 방대한 지식
2. 각인을 새기고 싶다는 강한 욕망
3. 각인이 사용될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정

1,2,3이 100%가 되는 보고서는 쓰지 못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한번이라도 써볼까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2,3 중 하나라도 비면 역시 써지지 않습니다. 대부분 2는 약하니 1,3을 조금 더 채워
꾸역꾸역 쓰긴 하는데, 2가 1,3 조건을 리드하는 보고서랑 다릅니다. 전혀.

웹툰에서는 ‘욕망’이라고 했지만 ‘의지’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아니면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울면서 쓰던지요.

지금 저는 이게 게임아이템을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만약 제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어떤 일을 맡고 싶으면, 그 일에 대한 보고서를
그 누구보다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씁니다. 그런다고 그 일을 맡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쓰지 않으면 카드로 던져볼 수도 없습니다.
때로 이 세계에서 ‘정치’보다 ‘보고서’가 빠릅니다.

제가 쓰는 보고서는 양식화된 형태이기에 정해진 글자수 내에 쓸 수 있는 말이
정제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향상’, ‘함양’, ‘제고’ 이런 단어를 구분하여
적확하게 쓸 수 있어야 하기에 그 하나하나의 의미를 음미하는데
그 시간이 괴롭고 또 즐겁습니다.
괴로운 것은 제가 부족한 것을 매번 느끼기 때문이고,  즐거운 것은 세계가 확장되기에 그렇습니다.
얕던 깊던 숙고하여 받아들이고 나면 단어의 색채가 달라지고 명암이 달라지는 느낌이 듭니다.

신기하지요. 이 나이에 이제야 글을 깨우치고 있으니까요.

===================================================

어떤 슬픔은 어렴풋한 슬픔이고
어떤 슬픔은 처절한 슬픔이죠.

소소한 슬픔도, 아련한 슬픔도, 잊혀가는 슬픔도,
문득 기억이 떠올라 때때로 가슴이 아파지는 슬픔까지,
같은 슬픔조차도 사실은 전부 달라요.

책을 읽고 풍부한 단어를 알게 된다는 건,
슬픔의 저 끝에서부터,
기쁨의 저 끝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감정들의 결을
하나하나 구분해내는 거예요.

정확히 그만큼의 감정을
정확히 그만큼의 단어로 집어내서
자신의 마음을 선명하게 들여다보는 거죠.

내가 얼만큼 슬픈지, 얼만큼 기쁜지.
내가 무엇에 행복하고, 무엇에 불행한지.
자신의 마음이 자신을 위한 목적을 결정하도록.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타인에게 정확히 전달하도록.



같은 단어를 알고 있다면
감정의 의미를 공유할 수 있고
같은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면,
감정의 흐름을 공유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만들죠.


- 가담항설 90화 중








7


    다시갑시다
    현재 연재작들중에 제가 가장 즐기면서 보는 웹툰이에요
    평생 이공계 공부만한 입장에서 말씀하신 글의 힘을 저에게 가장 잘 표현한 작품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웹툰을 보면서 힘이있는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될줄은 몰랐어요 ㅎㅎ
    1
    오늘도 써야 할 것들을 잔뜩 두고 퇴근합니다.
    저도 이공계 출신으로 인생에 이런 시간들이 올 줄 몰랐습니다. 인생이란 참 알 수 없지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770 문화/예술LCK 개막 기념(?) 김정기 X LoL 아트웍 7 여름 19/01/17 4487 0
    8768 문화/예술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의 간단 정리 13 메존일각 19/01/16 8139 8
    8729 문화/예술동양의 디즈니를 꿈꾼 일본 애니메이션 백사전의 피 1 레이즈나 19/01/05 5140 10
    8204 문화/예술리퀘스트 받습니다. 9/12 오후 12시 마감(예정) 22 여름 18/09/11 4842 5
    8063 문화/예술트로피의 종말 4 구밀복검 18/08/16 5417 10
    8035 문화/예술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스포츠 광고 Top 8 12 Danial Plainview 18/08/10 5270 8
    7855 문화/예술한산대첩은 (단)학익진일까? 쌍학익진일까? 4 메존일각 18/07/16 7917 2
    7813 문화/예술왜 일본 만화 속 학교엔 특활부 이야기만 가득한가 - 토마스 라마르 30 기아트윈스 18/07/09 6377 22
    7732 문화/예술[강철의 연금술사] 소년만화가 육체를 바라보는 관점(스압) 2 자일리톨 18/06/23 8081 14
    7547 문화/예술[이가전] 라파엘 로자노-해머 개인전, Decision Forest 3 은우 18/05/18 4747 1
    7507 문화/예술Weather :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7 하드코어 18/05/10 5523 2
    7501 문화/예술때늦은 <라이프 오브 파이> 리뷰 12 자일리톨 18/05/10 5927 14
    7482 문화/예술북유럽 신화 한토막 - 블랙기업 아스갈드 편 9 제로스 18/05/04 4383 10
    7370 문화/예술아오바 5 알료사 18/04/11 5182 2
    7230 문화/예술[웹툰후기] 어떤 글의 세계 2 하얀 18/03/12 5014 7
    7147 문화/예술마그리트 '빛의 제국' 4 하얀 18/02/23 5206 11
    7082 문화/예술우효(OOHYO) 단독 공연 후기 4 나단 18/02/10 4920 5
    7055 문화/예술사라진 세계, 우아한 유령(Vanished World, Graceful Ghost) 7 하얀 18/02/06 4680 14
    7012 문화/예술프사 그려드립니다. 71 1일3똥 18/01/28 8695 24
    6917 문화/예술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후기 4 化神 18/01/08 6212 1
    6626 문화/예술칸딘스키의 초창기 작품들 8 나단 17/11/20 8622 6
    6614 문화/예술남자. 꿈. 노오력. 10 알료사 17/11/18 6186 20
    6537 문화/예술친구놈이 헬로윈 파티 사진을 보내왔다. 4 tannenbaum 17/11/05 4437 3
    6494 문화/예술가을방학 콘서트 후기 22 나단 17/10/31 6286 4
    6383 문화/예술가을 인디공연 세종문화회관뒤뜰 2 naru 17/10/07 3930 3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