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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04/22 08:07:52 |
Name | 메아리 |
Subject | 적대적 현실 하에서 全生을 실현하려는 실천의 하나 : 무(武) - 1 |
이번엔 동양 철학 쪽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그리 잘 알지는 못하지만, 학부 시절 써놓았던 글을 바탕으로 한 번 써 보려 합니다. 무술(武術), 즉 동양의 대인전투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흥미를 끄는 주제이긴 합니다만, 재미는 보장 못합니다. 서양에서는 전쟁이라는 장에서, 화약 무기의 발전 이후로 대인전투술의 중요성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됩니다. 누가 전투를 잘하는가보다 어느 편이 더 강한 화력을 가졌는가가 더 중요해 지게 됩니다. 풀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하고 랜서와 롱소드를 휘두르던 기사는 더 이상 전장에서 효용적인 존재로서 가치를 잃어버립니다. 그에 비해 동양에서는 상당히 늦게까지 대인전투술은 전장에서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서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전하게 유지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서양에서 동양의 대인전투술-무(武)를 신비주의적으로 보는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미 현대화-서양화 되어 버린 동양에서도 武의 기원적인 의미는 탈색되어, 이제 그것은 단지 영화나 소설 속에서 신비와 경이를 일으키는 요소 정도로 밖에는 취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 그것이 유지되고 있다하더라도 전쟁의 장 속에서 보여졌던 그 기원적인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건강을 위한 일종의 단련이나 정당한 룰 안에서 정당한 방법으로 싸우라는 식의 게임 정도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여기서는 싸움기술로 알려진 武의 바탕에 깔린 사상적인 측면, 세계를 상호 적대적인 세력들 간의 제어체계로 본 동양에서의 세계에 대한 인식 방법을 동양, 특히 중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했는가를 엿보고, 그 와중에 무는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1. 武라는 글자와 그것에 붙여진 명칭을 통해서 武의 의미를 생각해보기 武라는 글자는 止자와 戈자의 결합입니다. 春秋左氏傳의 해설에 따르면「楚莊王曰 ; 夫武定功 兵, 故止戈爲武」라고 하여 '천하의 兵戈를 중지하고 난동을 부리지 않게 하는 것(즉 전쟁을 중지시킴)이 바로 진정한 武威의 미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창을 멈춘다'는 의미를 전쟁을 중지시킨다는 의미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止戈의 의미를 "내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창을 멈추게 한다"라거나 혹은 戈자의 의미를 부연해서 "대립함을 멈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략적 인식이라는 동양사상의 중요한 전제 중에 하나는, 나와 타인의 관계가 제어하거나 제어 당하는 단지 두 관계만이 설정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전제하에서라면 타협, 중도라는 게 불가능해지는데, "대립함을 멈춘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완전히 제어했음-제어 당했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武를 해석한다면 武力, 武術 등은 '(상대방을) 제어하고자 하는 힘, 제어하는 기술'을 나타내는 말들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武力, 武術등, 武가 관계하는 것들은 보통 물리적, 육체적인 것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소설이나 시, 그림, 음악등 예술 작품을 접했을 때, 그 작품이 우리에게 끼치는 힘, 즉 이러저러한 감동을 일으키게끔 유도 내지는 강제하는 힘을 武力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서 止戈에 대한 두 번째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요, 止戈를 '창으로 멈추게 한다'라고 해석한다면 武라는 글자가 물리적인 영향력을 뜻할 수 있습니다. 이 해석에서 止의 의미는 상대방의 적극적인 의지나 행동을 그만두게 한다는, 멈추게 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수단으로 창(戈)이 사용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武자는 물리적인 영향력을 나타낸다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해석은 각자 결여된 부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대립함을 멈춘다-상대방을 완전히 제어한다'는 의미에는 핵심적인 의미인 물리적인 영향력이 빠져있고, 두 번째 '창으로 멈추게 한다'는 의미에는 구체적인 대상이 지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에는 武라는 글자가 가지는 물리적인 영향력이라는 의미가 빠져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武라는 글자의 뜻을 이루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두 번째 의미를 보완적으로 채택하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武는 '물리적인 영향력으로 (상대방을) 제어함'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武라는 글자는 보통 軍과 연결되어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軍人을 武人이라고 한다거나 조선시대 양반이 文班과 武班, 즉 행정관료와 군사관료로 되어 있다고 할 때에도 武를 軍의 의미로 사용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두 글자의 의미가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는데요, 軍이라는 글자를 풀어서 생각해보면,"「 圍也, 四千人爲軍, 從包省從車. 車, 兵車也」 車(戰車)로 주위를 둘러 진을 친다는 뜻이다. 그러나 금문의 형태를 보면 兵車를 가지고 집 밑에서 쉬고 있음을 나타낸 자이니 지금의 병영과 같은 것이었는데, 후에 병사의 집단을 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혹은 "車의 상단에 민갓머리를 붙여 車가 군병과 군수물자 등의 신속한 운반이나 이동에 지극히 효과적임을 뜻하게 하고 민갓머리로 적의 관찰로부터 보호함을 뜻한 글자"라고도 합니다. 軍과 관계된 글자인 兵의 뜻을 살펴보면, "兵:「械也, 從 持斤, 幷力之兒」 두 손에 무기(斤)를 들고 있음을 나타낸 자로 고대에 병사가 적을 치기 위하여 가진 각종 기계를 총칭한 것이다."라 합니다. 이런 軍과 兵의 뜻을 보면, 이것들이 추상적인 어떤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그 대상이 뚜렷하고 구체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軍이나 兵은 武가 의미하는 물리적 영향력의 구체적인 형태를 지시하고 있습니다. 즉 武라는 글자는 이러한 軍과 兵이라는 대상 언어에 대해서 메타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제하에서라면 軍人을 武人이라고 하는 것에서나 武班의 군사관료의 의미에서 軍과 武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軍이라는 글자는 집단을 나타냅니다. 여기에서 武와의 중요한 차이점이 나타나는 데요, 실제에서는 武라는 글자가 軍을 포함하여 軍 이외의 다른 대상들도 지칭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재야 武人이라는, 軍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武人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들이 있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軍이라는 글자가 집단을 나타내는 한정적인 의미를 가진 반면에 武라는 글자는 그 의미가 상당히 포괄적이고 광범위하면서도 동시에 개별적일 수 있습니다. 즉, 軍은 집단에만 적용될 수 있는 단어이지만, 武는 집단에게도 개인에게도 적용 가능한 글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武術이라는 단어를 볼 때에도 '물리적인 영향력으로 상대방을 제어하려는 기술'이라고 해석한다면, 그것은 개인적, 개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武는 오히려 軍과 뚜렷이 구분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武라는 글자의 적용 범위가 軍을 포함하면서도 그 적용은 개개인에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武의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나타내는 글자로 쓰였던 것들로 道, 藝, 術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 글자들은 상당히 낯익은데 선진시대의 사상들에게서 많이 보여졌던 것들이기에 그렇습니다. 武術, 武道, 武藝에서 術, 道, 藝의 의미는 방법이나 기술을 나타내고 있는 데요, 의문이 생기는 부분은 왜 하나의 대상에, 즉 물리적으로 상대방을 제어하는 기술이라는 의미에 다층적인 단어들이 중복돼서 사용되고 있는가 입니다. 다시 말해서 방법이란 의미로 사용된 세 가지 단어들은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은 확실하지만, 또한 분명한 것은 서로 구별하고자 사용됐을 것이라는 점이다. 術은 기본적인 뜻으로 기술, 방법을 나타내지만, 藝는 재주라는 뜻을 가지며 그 기술이 다른 것과 구별되는 특이함을 가진다는 것을 나타낸다 할 수 있습니다. 또 道는 1차적으로는 방법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도리, 이치라는 의미까지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武術, 武藝, 武道에서 術, 藝, 道라는 글자들은 武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를 나타낸다고 보여집니다. 그 세밀한 의미가 武의 기술, 武라는 재주, 武라는 것의 도리, 이치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術, 藝와 道의 경지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로 莊子의 庖丁解牛를 들 수 있는데요, 「莊子」 내편의 제 3편 養生主를 보면 … 臣之所好者道也, 進乎技矣. 始臣之解牛之時, 所見無非牛者. 三年之後, 未嘗見全牛也. 方今之時, 臣以神遇, 而不以目視. 官知止, 以神欲行. 依乎天理, 批大 , 導大 . 因其固然, 技經肯 之未嘗, 而況大車瓜乎. … 라고 하여 技와 道의 차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보여지는 소를 잡는 기술의 발전은 첫째, 始臣之解牛之時에서 所見無非牛者하는 단계와 둘째 三年之後, 未嘗見全牛也 그리고 셋째, 方今之時, 臣以神遇, 而不以目視. 官知止, 以神欲行하는 단계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에서 세 번째로 이행하는 부분에 장자 철학의 핵심인 자의식의 유무에 의한 선이 그어지고 있습니다. 技로 소를 잡는 단계는 기술 의존적인 상태로, 소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소를 잡는, 소와 나 사이의 긴장 상태가 유지된 상태를 말합니다. 소를 타자로 인식하는 자의식이 있음으로 해서 소와 나 사이에 대립관계가 설정되고 있습니다. 道는 자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과학적 지식이 아닌 (而不以目視) 神에 따라 소를 잡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技와 道는 이렇게 뚜렷한 구분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技는 術을 나타낸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藝를 어디에 위치시켜야 하는지는 고민해 봐야 합니다. 장자는 현대적 의미에서 예술을 뜻하는 '藝'라는 글자를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장자뿐만 아니라 「論語」등에서도 그런 의미로는 '藝'라는 글자가 쓰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藝에서 노닌다. 遊於藝" "염구는 재능이 많다. 求也藝", 장자에서는 "設聖人耶, 是相於藝也"와 禮, 樂, 射, 御, 書, 數를 六藝라고 할 때처럼 예술이라는 의미가 아닌 실용생활 속의 어떤 기교능력을 나타낸 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예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藝는 技와 術 등의 낱말과 별 차이 없이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道는 術과 藝와는 다른 지평으로서 궁극적인 것-그것이 목적이든, 방법이든-을 나타내는 동양의 오랜 화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지 싸움 기술에 불과한 武의 경지가 術, 藝에서 道까지로 넓어질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武에 부여됐던 의미의 확장이 보여집니다. 단지 先秦 시대에 전쟁이라는 현실에서 타인을 죽이려는 의도로만 그것이 사용되었더라면 궁극적인 경지를 뜻하는 道라는 명칭은 결코 붙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術, 藝, 道라는 경지의 명칭이 先秦시대, 즉 상호 적대적 대립체계에서 서로를 제어하려는 체계로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던 시기에 붙여진 것이라고는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 현실인식의 자세가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 선진 시대에 그러한 명칭을 붙일 수 있었던 근거가 마련되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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