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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05/10 13:13:30 |
Name | 메아리 |
Subject | 냄새 - 단편 소설 |
이번 학기에 나도 소설을 쓸 수 있다라는 과목을 듣고 있습니다. 과제가 소설 두편이네요 중간/기말 ㅋㅋㅋㅋ. 팔자에 없던 소설을 쓰게 되서 공유합니다. 칭찬/비난 모두 환영입니다. 어짜피 과제인데요 뭐 ㅋㅋㅋ 냄새 정호는 오늘도 같은 시간에 지하철에 올랐다. 익숙한 냄새들이 그를 맞이한다. 비슷한 냄새, 비슷한 사람들 …. 출근 시간에 이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늘 타던 사람들이다. 몇몇 다른 사람들이 타기도 하지만 이 시간대에는 늘 타던 사람들이 타기 마련이다. 이들의 냄새에 익숙해진 지도 이제 꽤 되었다. 아침마다 버터와 딸기잼을 바른 식빵을 먹고 오는 30대의 청년, 어젯밤엔 술을 한잔 한 것 같다. 늘 먹던 베이컨 냄새는 나지 않았고 싸구려 인스턴트 스프 냄새가 났다. 사람이 먹은 알코올의 냄새는 시간에 따라서 다르다. 먹은 지 채 한 시간이 지니지 않은 경우엔 소주면 소주, 맥주면 맥주 그 술 자체의 냄새가 난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그 알코올이 분해되어 우리가 술 냄새로 알고 있는 그 냄새가 난다. 달큰한 감 썩은 내. 하지만 술이 거의 깰 무렵부터 그 냄새는 고약한 화학약품 냄새로 변한다. 늦은 저녁 지하철의 냄새가 감썩은 내라면, 아침 지하철 안을 지배하는 술 냄새는 고약한 화학약품 냄새다. 아마 그 청년은 아침에 제대로 씻지도 못한 듯하다. 늘 쓰던 스킨 냄새는 오늘따라 더 진하지만, 그 속에는 고린내가 남아 있다. 이 청년이 이러는 건 그리 자주는 아니다. 거의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비슷한 상태로 출근한다. 아마도 어젠 회식이 있었나 보다. 메뉴는 삼겹살이었던 듯하다. 그 고린내들 사이로 돼지고기 기름내가 배어있다. 20대의 한 여성이 화장을 시작했나 보다. 그녀는 거의 매일 아침 열차 안에서 화장을 한다. 이제 막 기초를 끝내고 색조를 시작한 듯싶다. 코를 찌르는 화장품 냄새가 열차 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아주 독특한 화장품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쓰는 화장품의 배열은 나름 독특했다. A사의 기초에 이어 B사의 비비크림, 다시 A사의 눈 화장품에 이은 B사의 립스틱 …. 그녀가 채 화장품 냄새로 가리기 전, 정호는 그녀의 어젯밤 흔적을 잡아냈다. 비누냄새와 샴푸냄새, 그리고 옷장 냄새와 세탁세제 냄새로 미루어 그녀는 깨끗이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온 게 분명하다. 하지만 어딘가에 큼큼한 냄새가 묻어 있다. 가죽 냄새와 떡 진 걸로 보아 아마도 손가방은 어제 들었던 것을 들고 나온 듯싶다. 이 큼큼함은 싸구려 모텔의 냄새가 확실하다. 오래된 곰팡이와 침구류 먼지와 담뱃진과 인간의 욕정이 섞인 냄새.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어제는 퇴근 후에 누군가와 뜨거운 밤을 보냈나 보다. 그게 남자 친구인지 클럽에서 만난 하룻밤 상대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어제 그녀가 모텔에 갔다는 점이다. 어쩌면 출장을 갔다가 오늘에야 온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 그녀에게서 이런 큼큼한 냄새가 났었다는 기억은 전자의 추론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다음 역은 X, X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열차의 문이 열리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와락 들어왔다. 순간 정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강아지 배설물 냄새가 덮쳤기 때문이다. 아마도 누군가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 탄 것 같다. 아침에 나오기 직전에 그 강아지를 끌어안고 예뻐해 준 게 틀림없다. 그 강아지는 주인을 배웅하기 직전에 대변을 본 게 확실하고 …. 본인은 모르겠지만 강아지의 흔적은 고스란히 그의 몸에 묻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미처 눈치 채지 못하고 있지만 이 냄새는 지금 만원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묻게 될 것이다. 몇몇 사람은 이게 강아지 배설물의 냄새인지 알지는 못하겠지만 세탁하기 전까지 계속 이 냄새와 같이 다닐 것이다. 이 사람의 냄새도 처음 맡는 것은 아니다. 늘 강아지 냄새를 묻혀오긴 하지만 대변 냄새를 이렇게까지 묻혀 온 것은 처음이었다. 늘 숙취에 절어 아침을 맞는 60대 남자도 오늘 역시 이번 역에서 전철에 올랐다. 그의 가방 안에서 매캐한 건설현장의 먼지 냄새가 나는 걸로 보아 그는 일용직 노가다인 게 분명했다. 그의 인생에서의 고난이 고스란히 냄새로 느껴졌다. 숙취와 담배와 먼지와 피곤의 냄새, 해장도 채 하지 못했는지 어젯밤부터 절은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그에게 눅진하게 눌어붙어 있었다. 그가 내 뱉는 한숨, 한숨마다 그대로 인생의 고단함이 묻어 있었다. 그가 풍기는 냄새에선 행복함이 1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냄새에선 그냥 살아 있으니까 살아간다는 허무함이 느껴졌다. 그 뒤로 어린 여학생이 올라탔다. 아직 학생이 타기엔 조금 이른 시간인데, 이 시간에 타는 학생들은 드물긴 하지만 가끔 있기도 하다. 비누 냄새와 살짝 바른 듯한 기초 화장품 냄새가 났다. 특이한 건, 이아침에 어디서 한 대 빨고 왔는지 담배 냄새가 난다는 점이다. 그것도 요새는 잘 피지 않는 빨간 말X로 냄새가 난다. 오랜만에 맡는, 익숙하지 않은 말X로 냄새다. 건너편에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선 파스 냄새가 난다. 특히 무릎에서 강하게 냄새가 나는 걸로 보아 아마 관절염을 앓고 있나 보다. 저 나이 또래의 어르신들은 사실 온몸이 파스 투성이다. 그래서 저런 어르신이 두어 명 있으면 코가 얼얼해진다. 파스 냄새가 후각을 마비시키는 통에 다른 냄새는 맡을 엄두도 못 내게 된다. “아저씨 여기 앉으세요.” 누군가 정호의 팔을 끌어당겨 자리에 앉혔다. 비척비척 정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사실 이 시간에 자리에 앉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가끔 이렇게 누군가 자리가 나면 끌어당겨 주곤 한다. 정호는 손에 들고 있던 걸 가방 안에 주섬주섬 챙겨 넣었다. 그리고 자신을 끌어 당겨 줬던 쪽으로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사실 이렇게 앉아 있어야 사람들의 냄새를 구분하기도 더 좋았다. 오랜만에 편히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정호는 절로 살짝 미소가 나왔다. 어느새 지하철은 수많은 사람들의 체취로 가득 차 버렸다. 역과 역 사이 구간에서 지하철 안은 사실 거의 진공이나 다름없다. 바람도 공기의 흐름도 거의 없다. 어쩌다 사람이 지나가면 출렁거리긴 하지만 곧 잠잠해 진다. 이 시간의 지하철은 냄새로 사람들을 구별하는 거의 최적의 장소, 최적의 시간이었다.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냄새가 있다. 자기 냄새에 익숙해진 각자의 삶 속에서 스스로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지만 모두 다른 냄새를 품고 살고 있다. 마치 다 그런 듯 살지만, 각기 다른 냄새들로 이루어진 삶을 산다. 그 냄새들은 그들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그들의 어제와 오늘과 그리고 내일도 보여준다. 정호는 그 냄새들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이렇게 냄새에 민감해 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겨우 몇 해 전이다. 처음에 정호는 이 능력이 당황스러웠다. 이 능력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할지도 몰랐고 어떻게 써야할 지도 몰랐다. 요 근래 들어서야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을 뿐이다. 특히 처음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냄새를 맡았을 때는 정말 곤욕스러웠다. 그 냄새들을 각기 구분할 수도 없었고, 누구 냄새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때의 지하철은 그에게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냄새 지옥. 맡고 싶지 않은 냄새로 가득 찬 지옥이었다. 상상해보라. 나는 그저 어떤 장소에 있을 뿐인데 내가 듣고 싶지 않은 갖가지 목소리가 다 들린다고. 정호는 미치지 않으려고, 그 냄새들의 주는 충격을 흘려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그 냄새들이 무슨 냄새인지 찬찬히 분석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냄새들과 모르는 냄새를 구분했고, 모르는 냄새에 대해 알기 위해서 시간 내서 시장이나 마트에서 가서, 거리에 나가서 의도적으로 냄새를 맡았다. 어쩌다 모르는 냄새가 풍겨오면 그 냄새가 무슨 냄새인지 알아내려 노력했다. 한 번 맡았던 냄새는 잊지 않기 위해 자기 전에 다시 떠올렸다. 그 덕 때문인지 이제는 냄새들이 주는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단지 그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그 냄새들이 무슨 냄새들의 혼합인지 켜켜이 분해해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농도나 묵힘 정도에 따라 얼마나 됐는지 추측해 볼 수도 있게 됐다. 이렇게 냄새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구성해 볼 수 있게 된 후로 이 능력을 얼마간 즐겼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냄새는 사실 많은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내 준다. 냄새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이면을 드러내 주기도 한다. 어느 누가 저 깔끔해 보이는 아가씨가 지난밤에 싸구려 모텔에서 뒹굴다 나왔다는 걸 알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앳됨이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저 여학생이 골초라는 사실을, 특히 독한 말X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그 장면을 보지도 않고 어떻게 눈치 채겠는가? 이 능력으로 얻은 정보가 언제나 즐거움만을 준 것은 아니다. 특히 여름에 쓰레기 수거차라도 지나가면 머리가 뒤틀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수산시장이나 청과물 시장에 가면 시체와 음식물 썩은 냄새에 욕지기를 참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런 것들은 넓게 트인 외부에서 겪어야 하는 일이기에 얼른 그 장소를 피하기라도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대중교통 수단에서 암내라도 가진 사람이 타면 숨을 쉴 수도 없었다. 특히 그런 암내를 감춘 경우가 더 곤욕스러웠다. 다른 사람은 살짝 ‘이게 무슨 냄새야?’ 하는 정도의 암내도 정호에겐 엄청난 악취였기 때문이다. 그럴 때 정호는 냄새가 주는 인상과 자신이 받아들이는 감각을 분리시키려 노력한다. 이 냄새는 악취가 아니다, 나쁜 냄새가 아니다. 이렇게 극복하지 않았다면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그런 사람이 꽤 있었기 때문에 이런 훈련이 필요했다. 하지만 정말 고역은 그런 악취가 아니었다. 가끔 향수를 진하게 뿌리고 오는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 정말 고역이었다. 그 좋은 냄새가 무슨 고역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정호에겐 그것이 결코 좋은 냄새가 아니었다. 몇 분 맡고 있다 보면 나중엔 후각이 마비되어 코가 얼얼거릴 지경이었다. 이 향수 냄새를 배제하기 위해서 고생을 좀 했다. 몇 주에 걸쳐 화장문 전문점에 들려 향수 뿐 아니라 화장품 냄새 전반에 대해서 학습했다. 덕분에 이제 화장품 메이커는 물론이고 무슨 성분으로 이루어졌는지도 알아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렇게 냄새를 추적하고 분석하고 파악하는 능력을 가진 이후로 냄새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아침에 무엇을 했는지, 저녁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에 다녀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정호는 주변 사람들의 냄새를 분석해 보면서 이 능력을 훈련해 왔다. 뭔가 틀린 점이 있다면 그것이 왜 틀렸는지를 다시 분석해 가며 오류를 보정해 나갔다. 이제는 거의 틀리지 않는다. 정호는 자신의 능력에 어느 정도 자신이 붙었다. 1년쯤 전부터는 거의 틀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냄새만 맡고도 그 사람이 하는 일을 짐작할 수 있었고 아침을 뭘 먹었는지, 어제 회식 안주가 무엇인지도 맞추어냈다. 처음엔 주변 사람들이 신기해하기도 했지만 이제 다들 별 신경 쓰지 않는다. 정호도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짓은 그만두었다. 이제는 이렇게 지하철 같은 곳에서 혼자서 자신의 능력을 즐기며 사람들을 읽곤 한다. 누군가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냄새는 상당히 많은 단서를 제공해 준다. 단지 그 사람의 직업이나 식단 정도가 아니라 어떤 경우엔 성격까지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아주 강박적인 사람은 몸에서 비누 냄새가 강하게 난다. 너무 자주 씻고 오랜 시간 씻고 비누를 많이 쓰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여름에도 땀 냄새보다 비누 냄새가 더 강하다. 단지 비누 냄새가 아니라 아예 세제 냄새가 강하게 나기도 한다. 빨래도 강박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비누 냄새, 세제 냄새 그리고 화장품 냄새 외에는 풍기질 않는다. 향수를 많이 쓰는 경우에는 그 사람이 주변에 신경을 많이 쓰는 성격이라고 짐작해도 된다. 아마도 주변의 평가에 민감한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칭찬에 예민하다. 조금만 칭찬해줘도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사람들의 냄새 사이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정호는 갑자기 몰려든 낯선 냄새들 사이에서 다시금 감각을 집중했다. 전철이 역에 서고 내리는 사람들과 타는 사람들이 교차한 것이다.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덕에 안내 방송을 놓쳐 이번 역이 어딘 지 몰랐지만 정호는 이내 알아차렸다. 이 냄새들을 K역에서 타는 사람들의 냄새다. 그런데 그 익숙한 냄새들 사이에서 정호는 뭔가 이질감을 느꼈다. ‘오늘 처음 타는 사람이 있나?’ 낯선 이, 정확하게는 낯선 냄새였다. 막 세탁소에서 세탁한 듯한 셔츠를 입은 남자. 아직 새 옷 냄새가 채 빠지지 않은 정장을 입었고, 외산 명품 남성 화장품 냄새에 비추어 보면 상당히 자신을 꾸미는 사람인 게 틀림없다. 이 남자에게서 나는 냄새가 낯선 이유는 이런 냄새 사이에 희미한 피 냄새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피 냄새가 난다는 게 문제는 아니었다. 사실 피 냄새는 어떤 의미로는 익숙한 편이다. 생리 중인 여자에게서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서 피 냄새는 난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피 냄새이기도 했고 혹은 다른 이의 피에서 나는 냄새이기도 했다. 소독약 냄새와 같이 나는 경우에는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고, 어린 친구들의 경우에는 코피가 나는 경우이거나 상처에서 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자신의 상처에서 나는 피와 고름이 섞인 냄새가 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서 나는 피 냄새는 독특할 뿐 아니라 이질적이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의 피에서 나는 냄새인 것 같았는데,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처럼 소독약 냄새를 동반하고 있지는 않았다. 혹 몸 어딘가 상처가 났고 거기에서 나는 냄새일지도 모르지만 뭔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피 냄새와 함께 매캐하고 찌릿하고 자극적인 냄새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냄새는 분명 흔히 맡을 수 있는 냄새는 아니었다. ‘어디서 맡아본 냄새이긴 한데…’ 정호는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서 그 냄새에 집중했다. 어디선가 맡아본 적이 있는 냄새인 건 확실했다. 낯설지만 분명 경험이 없는 냄새는 아니었다. 아주 흔하고 쉽게 맡을 수 있는 냄새는 아니었지만 어디선가 맡아본 냄새이긴 하다. ‘이건 … !’ 화약 냄새가 분명했다. 매캐하면서도 찌릿한 이 냄새. 온갖 화학 약품과 숯이 버무려져 탄 듯한 냄새. 군대에서 자주 맡았던 그 냄새다. 훈련소에서 처음 사격 훈련을 했을 때 겪었던 그 냄새가 분명하다. 정호는 훈련소에서 처음 봤던 총 쏘는 장면을 아직 잊지 못한다. 중대장이 사격장 앞에서 사격 시범을 보였었다. 그는 K2 소총에 탄알을 일발 장전하고 훈련생들 앞에서 서서 쏴 자세로 맞은 편 바위에다 사격을 했었다. 그때 그 소리, 그 냄새는 잊혀 지지 않는다. 이명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고 그 광경을 목격한 충격도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전까지 사내 얘들이라면 동경해 마지않던 그 폭력적 도구가 정말 폭력적으로 다가왔었다. 직접 사격을 했던 순간보다 처음으로 직접 총을 쏘는 장면을 봤던 그 때가 더 강하게 기억이 새겨져 있었다. 화약 냄새는 가끔 예비군 훈련을 끝내고 지하철을 타는 젊은이나 갓 휴가를 나온 병사들에게서도 맡을 수 있는 냄새다. 그런데 이 남자에게서는 피 냄새와 화약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피와 화약 냄새가 섞여 있다니 …. 보기 드문, 아니 맡기 힘든 냄새였다. ‘이 남자는 … 대체 뭐지?’ 정호는 살짝 무서운 마음과 함께 이 남자의 오늘 아침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다. 아침 출근길의 지하철에 피와 화약 냄새가 나는 남자가 탔는데 어떻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나. 지하철에 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아마 꿈에도 상상 못할 일이었다. 기껏해야 해장국 냄새나 버터 냄새, 아니면 숙취 냄새가 나야 하는 아침 지하철에서 피와 화약 냄새를 맡은 것이다. 정호는 이 냄새의 근원에서 마치 어떤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걸쭉하고 불길한 무언가가 그 남자에게서 흘러나와 열차의 바닥을 흥건히 흘러 다니는 거 같았다. 그것은 분명 처음 느껴지는 기운이자, 낯설고 무서운 기운이었다. 정호는 문득 자신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장은 요동치고 있었고 손에는 땀이 가득했다. 무언가 위험한 일이 일어날 듯한 예감이 엄습했다. ‘신고해야 하나?’ 신고? 어디다가 뭐라고 신고해야 하나? 여보세요, 경찰이죠? 여기 지하철에 피와 화약 냄새가 나는 남자가 탔어요. 왠지 저 남자에게서 짙은 죽음의 냄새가 납니다. 피와 화약 냄새라면 상상이 되지 않아요? 그 사람은 아침에 막 무슨 범죄 같은 걸 저지르고 지하철에 탄 거 같아요. 아예, 제가 냄새를 좀 잘 맡는 편입니다 …. 미친 사람 취급받기 딱 좋은 소리였다. 이런 식으로 신고했다가는 오히려 본인이 잡혀갈 지경이다. ‘뭔가 다른 단서가 필요해.’ 정호는 뭘 하든 간에 우선 그 남자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신고를 하든지 말든지 간에 뭔가 그 남자에 대해서 더 알아야 했다. 정호는 그 남자에게서 나는 냄새에 더 집중했다. 아주 작은 냄새라도 놓치지 않을 기세로 후각에 신경을 모았다. 그 남자에 대한 작은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 냄새들을 하나하나 찾아 자신이 갖고 있는 기억과 대조해 보기 시작했다. 담배 냄새는 그 남자의 뒤에 서있는 남자에게서 나는 냄새고, 순댓국 냄새는 그 남자 좌측의 학생에게서 나는 냄새고 …. 하지만 오히려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그 남자를 특정 지을 수 있는 다른 냄새는 찾기 힘들었다. 뭘 먹거나 어디에 들르거나 하지는 않은 거 같았다. 그 남자의 어제 저녁이나 오늘 아침 행적은 여전히 묘연했다. 그냥 비누 냄새와 치약 냄새 정도가 조금 날 뿐이다. 아마도 새벽 일찍 깨끗이 씻고 나선 게 분명하다. 아침 요기는 씻기 전에 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일 것이다. 그 외에는 … 아주 옅은 양초 냄새가 났다. 향초도 아닌 양초라니 …. 어디 새벽 미사라도 드리고 온 건가? 언뜻 보기에 그저 평범한 멋쟁이 회사원이었다. 넥타이를 했는지는 구분가지 않지만, 좋은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를 하고 있었고, 역시 좋은 가죽으로 만든 구두를 신고 있었다. 화약이나 총 같은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차림새였다. 그렇다고 특별히 군인 같지는 않았다. 군인 특유의 냄새가 없었다. 장교건 사병이건 간에 집단생활 때문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군인은 특유의 군대 냄새가 난다. 그렇다면 경찰? 하지만 경찰치고는 너무 고급진 행색이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총을 다룰 수 있는 곳이라곤 경찰 아니면 군대뿐일 텐데 …. 점차 생각이 복잡해 졌다. ‘총이라고 단정 지어 생각할 순 없잖아? 화약을 다룰 수 있는 곳은 또 어디가 있지? 이 남자는 혹시 화약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아닐까? 화약 냄새는 몸에 밴 냄새고 피 냄새는 그저 오늘 아침에 세수하다가 흘린 코피가 아닐까? 괜히 너무 확대 해석을 한 건 아닐까?’ 정호는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하나는 화약을 다루는 회사의 연구실이나 뭐 그런데 다니는 회사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다. 이 시간에 오늘부터 갑자기 지하철은 탄 건 어제 집을 이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충분히 개연성 있는 추론이었다. ‘그래, 별일 아닐 거야. 뭔가 내가 오해하고 있는 거겠지. 지금 여기는 매일 있는 평범한 출근길의 지하철 안이잖아. 무슨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 그저 내 신경과민일 거야.’ 정호는 다른 경우도 생각해 봤다. 예를 들면 요새 많이 생기는 사설 사격장을 다녀온 건지도 모른다. 비록 정호가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관광지에는 심심치 않게 있고, 서울 시내에도 그런 곳이 몇 군데 있다고 들었다. 그곳에선 얼마간의 돈을 내면 영화 속에서나 보던 갖가지의 총을 쏘아볼 수 있다고 한다. 가본 적이 없어 그곳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이 아침에 사격장에서 사격을 한다고?’ 정호는 이내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주말도 아닌 평일 새벽 댓바람부터 돈을 내고 사격 연습장에서 총을 쏴대다니….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다.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미국이라도 ‘아침 출근 전에 취미삼아 사격장에서 열 발만 쏴보고 갈까?’ 바쁜 아침 출근 시간에 운동 삼아 할 수 있는 선택지로는 형편없었다. ‘혹시 발파 작업자가 아닐까?’ 예전에 발파 작업자와 마주친 적이 한 번 있다. 직업상 화약을 다루어야 했던 그는 온 몸에 화약 냄새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가 일하던 곳은 경상도 어딘가의 고속도로 터널 작업 현장이라고 했다. 폭약을 사용하는 발파작업은 생각보다 흔하다고 한다. 일반 공사 현장에서도 기초 공사 중에 큰 돌이 나오면 심심치 않게 폭약을 쓴다고 한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정호는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다. 괜한 자신의 과민함을 탓하며 식은땀을 훔쳐냈다. 바쁘게 뛰던 심장도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고 마음도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괜히 흥분했던 자신이 살짝 부끄러워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냄새를 통해 상상하기 시작하면 가끔 이런 식으로 끝도 없이 막연하게 상상해 나가기도 한다. 냄새가 단서가 되어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한번은 누군가에게서 향냄새를 맡고 여러 가지로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아마 그 사람은 상갓집에 들려 나온 듯싶었다. 그런데 그 향냄새 뒤로 여러 가지 복잡한 냄새가 숨어 있었다. 땀과 타액, 그리고 그런 것과 다른 타인의 체액 냄새 …. 그 사람이 상갓집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정호는 그 냄새를 근거로 상갓집에서 그에게 일어난 일들을 상상해 봤다. 오랜 만에 초등학교 시절 짝사랑했던 여자 동창을 만난 남자는, 그 여자와 눈이 맞아 상갓집이 아닌 어딘가에서 밤을 새고 …. 뭐, 대충 이런 식이었다. 정호는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많이 했고 즐기기까지 했다. 이 남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현실적으로 돌아와 정호는 이 사람도 그 발파 작업자처럼 화약과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사람은 발파작업자라기엔 무리인 점도 있었다. 예전에 만나봤던 사람에 비하면 옷차림이나 행색이 너무 깔금하고 고급지다. 공사판 비슷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차림새는 마치 금융권에서 일하는, 그러니까 마치 돈 잘버는 펀드매니저 같았다. 몸에 걸친 것들은 비싼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사용한 향수나 화장품도 한결같이 고급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분명 꽤 돈을 잘 쓰는 사람인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그쪽 일을 하던 사람이라면 좀 더 냄새가 강하게 났을 텐데 … ?’ 해당 계통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보통 씻어도 그 냄새가 잘 지워지지 않는다. 오랜 기간 누적된 냄새는 씻는다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어디에서 어떤 일하는 사람은 금방 알아챌 수 있는 것이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무리 사위를 해도 아무리 향수를 써도 소독약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환경미화원에서는 어쩔 수 없이 쓰레기 냄새가 난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무리 씻고 향수를 뿌려도 그 밑에 깔린 음식 냄새를 지울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람은 매일같이 화약을 옆에 두는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그 정도로 강하게 냄새가 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다 화약이 묻은 것이고 어쩌다 피가 묻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다. 정호가 이런 생각에 빠져 있던 바로 그때였다. “우와 이것 좀 봐!” 복잡한 차안에서 앞에 서 있던 남녀 커플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호들갑 떠는 소리에 옆에 있던 여자가 그의 핸드폰을 넘겨보며 말을 이었다. “뭔데?” “속보가 떴잖아. 지금 K역 화장실에서 머리에 총을 맞은 시체가 나왔대.” “K역? 방금 전에 지나간 거기? 몇 분 전에 지나갔는데 … ” “이야~ 무슨 영화도 아니고 …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이래?” “죽은 사람은 누구래?” “아직 그런 이야기는 없는데? 그냥 발견되었다는 속보뿐이야.” “우와 무섭다. 우리나라도 이제 막 총으로 사람 죽이는 거야?” “설마 … 미국처럼 그러기야 하겠어? 아직 총을 구하긴 힘들어.” “그럼 이 사람을 죽인 사람은 총은 어디서 구한 걸까?” “어떻게 알겠어? 범인이 잡히면 또 몰라도 ….” 남녀의 대화를 듣고 나서 정호의 심장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자신이 느꼈던 위화감이 다시 현실이 되어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마엔 다시 식은땀이 흘렀고 손은 축축해졌다. ‘설마 이 사람이 지금 이야기되는 사건과 관계된 건 아니겠지? 만일 이 사람이 저지른 짓이라면 어쩌지? 그냥 경찰에 전화를 걸까? 무작정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다고 우선 말해야 하나?’ 정호의 심정은 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안절부절 못할 뿐이었다. 입술은 바짝바짝 말라갔고 머리는 텅 비어 갔다. 자신이 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모리 속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정호가 할 수 있을만한 일을 별로 없었다. “출입문 닫겠습니다! 출입문 닫겠습니다!” 문을 닫겠다는 안내 방송에 정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순간 당황했다. 이런 저런 생각 중에 갑자기 그 남자의 냄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열차의 문은 닫혔고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다. ‘내린 걸까?’ 열차가 역에 선 후에 그 남자의 냄새가 사라졌고, 그리고 다시 열차는 출발했다. 정호는 열차 안의 냄새를 다시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칸을 옮긴 건지, 아니면 열차를 내린 건지 아무튼 그 남자가 사라진 건 확실했다. 어디에도 그 남자의 냄새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휴~’ 정호의 입에서 절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안도라는 감정이 그리 적합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아무튼 안도했다. 그 남자가 사라진 것이 지금 이순간은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생각됐다. 그 냄새를 맡고부터 지금까지 너무 불안하고 초조하여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정호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훔쳤다. 하지만 정호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만일 K역에서 일어난 사건과 그 사람이 관련되어 있다면 빨리 사람들에 알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 사건과 관련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지?’ 감정은 많이 진정되었지만 생각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지금 상황은 신고를 하기도, 안하기도 뭐한 상황이었다. 신고를 한다면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이 이렇게 모른 채 하고 넘겨도 되는 일일까? 정호는 아무튼 자신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겐 알려야 했다. 정호는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들 중에 공권력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을 하나둘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국회의원을 많이 알고 있다던 김 사장, 동네 파출소장과 막역한 사이라고 했던 근석이, 친구가 이번에 검사로 임용됐다고 했던 자원봉사자 박 군 …. “다시 내리실 역은 Y, Y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정호가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 열차는 목적지인 Y역에 도착하고 있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정호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들고 출입문 쪽으로 나아갔다. 어찌되었든 간에 아무튼 서둘러 이 열차에서 벗어나야겠다 싶었다. 열차는 멈추고 문이 열리자 열차에서 내렸다. 그는 가방에서 아까 챙겨 넣은 시각장애인용 하얀 지팡이를 꺼내어 폈다. 시각장애인들이 가지고 다니는 이 지팡이는 정호의 아주 약해진 시력을 대신해 주는 필수적인 도구였다. 거의 매일 다니는 Y역은 정호에게 익숙한 곳이다. 열차에서 내려 양쪽 끝에 출입구로 이어진 계단이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정호는 왼쪽 출구로 이어진 계단을 올라 자신이 출근하는 복지재단으로 가면 된다. 언제나처럼 정호는 지팡이를 앞세우고 왼쪽 출구로 향했다. 타닥타닥 앞에 장애물이 있는 지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 늦은 건 아니었지만 정호는 서둘러 역사를 벗어나고 싶었다. 오늘 아침의 기억에서부터 되도록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그때, 정호는 갑자기 자신의 뒤편에서 맡아 본 적이 있는 낯익은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흠칫 놀란 정호가 뒤쪽으로 몸을 돌리려던 순간 열차 안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냄새가 덮쳐왔다. “눈이 불편하신 분이었군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 처음 들어보는 차가운 목소리가 정호에게 말을 걸었다. 정호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장은 이미 폭발 일보 직전까지 펄떡거리고 있었고 다리는 얼어붙어 한 발짝도 떼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 남자는 정호의 오른팔에 들려 있던 지팡이를 빼앗은 후 팔을 꽉 붙잡고 정호가 가야 하는 출구 반대쪽으로 정호를 이끌었다. “출구가 많이 머네요. 제가 모셔다 드리죠.” 입조차 얼어붙은 정호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는데 이미 혀가 굳어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남자는 더욱 차가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서 갑시다. 제가 궁금한 게 아주 많습니다.” 남자의 이 말은 정호로 하여금 공포를 지니게 하는데 충분했다. 남자는 정호를 질질 끌면서 서둘러 반대편 출구 쪽으로 향했다. 정호는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있었던 모든 일이 그저 꿈속에서 벌어진 일이길 바랄 뿐이었다. [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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