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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9/02 15:32:35
Name   BDM
Subject   민주주의는 경제발전에 독인가 약인가(하편)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상관관계

상편에서는 이 얘기를 하기 위해, 근대화 이론에서 시작해 치열한 양 쪽 입장 즉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의 대표격인 이론과 논리를 소개했다.

논쟁이 수십년에 걸쳐 지리하게 전개되고 있던 와중에 결국 비교정치학, 정치경제학의 '끝판왕'인 쉐보르스키가 자신의 동료들과 10년가까이 빡세게 연구해 이 논쟁을 끝장낸다. 물론 다소 허무한 결론이기도 하다.

쉐보르스키라는 다소 어려운 이 이름은 친숙한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인데, 정치경제학을 포함한 비교정치학 분야에서는 오랜 기간 최고의 학자로 명성을 날려온 사람이다. 경제와 투자 그리고 정치의 관계부터, 민주주의와 시장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논리, 심지어 사회과학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안 다루는 분야가 없는데, 다뤘다 하면 되게 잘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폴란드 수학자 출신으로 미국의 시카고대학에서 오랜시간 근무했다, 깊은 역사사회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역사학/사회학자와도 디테일에서 밀리지 않고 논쟁할 수 있고, 경제학자와도 수학적 모델링의 오류 가능성에 대해 논쟁할 수 있는 좀 괴물같은 학자다. 어쨌든, 이 양반은 이 지리멸렬한 논쟁을 완전히 끝장내고자, 1910년대부터 모을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모아 민주화 → 독재회귀 → 재민주화 등 모든 케이스를 하나의 사례로 다시 분절시켜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경험적 분석을 시도한다. (국가가 100여개~200여개가 되는 동안 각각 민주화와 독재회귀 등을 분절시켜 케이스로 만드니 수천개의 케이스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책을 하나 써 내는 데 그게 바로 [Democracy and Development]라는 책이다. 왠지 책 제목부터 '여기에 답이 써있음!! ㅇㅇ' 할것 같지 않은가.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상관관계가 없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생존과 경제발전의 수준은 상관이 있다.

아래 그림을 보자. (출처는 앞서 언급한 쉐보르스키 등이 저술한 바로 그 책이다.)



어떤가? 소득수준과 민주주의 국가의 비율을 어느 시점에 잘라본 이 그림을 보면, '경제발전이 이뤄지면 민주화가 따라온다'는 근대화 이론의 주장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위 그림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주로 정치적인 이유이거나 국제적인 이유) 민주화가 이뤄졌을 때, 때 마침 그 국가의 경제발전 수준이 높을 때 생존하는 확률이 높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겠냐는 거다. 같은 시간대에 부유한 국가나 가난한 국가에서 랜덤하게 민주주의가 탄생한다고 치자. 그런데 이런 신생민주주의가 부유한 국가에서 살아남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또 랜덤하게 부유하거나 가난힌 국가 양국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부유한 쪽에서 생긴 민주주의 체제가더 많이 살아남는다. 그래서 수 십년이 지나면 위 그래프가 그려진다.
이러면 전혀 새로운 가설을 만들 수 있다.
"민주화는 랜덤하게 일어나지만, 그렇게 일어나면 잘 사는 나라에서 유지가 잘 되고, 못 사는 나라에서는 권위주의로 돌아갈 확률이 더 크다."

가설을 세웠으니 검증을 해보면 될 것 아닌가. 진짜 무지막지하게 데이터를 모아 돌린다.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새로운 가설을 세웠고, 고생해서 데이터를 많이 모았다면 사실 통계적 검증 과정 자체는 엄청 복잡할 필요도 없다. 단순한 회귀분석 수준에서 매우 많은 걸 검증해볼 수 있다.

이제 다시 아래 표를 보자. (출처는 위와 같다)


만약 근대화 이론이 맞다면 권위주의(독재)가 민주주의로 갈 확률 즉, PAD가 소득이 높아질수록 커져야 한다. 그런데 부국들 중에서 독재국가가 많아 이 이론은 입증이 안된다. 상당수 국가들이 경제발전에 따라 민주화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데이터상으로 근대화 이론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럼 다시 쉐보르스키의 가설로 돌아와서 검증해보자. 어떤 이유에서든 민주주의가 들어섰을 경우,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경제발전 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독재로 회귀할 확률, 즉 PDA가 떨어지면 가설이 검증된다. 실제로 위 표에서 PDA를 보면 그렇게 수치가 일관되게 나타난다.

사실 다각도로 여러 통계분석을 돌리는 꽤나 두꺼운 책이지만 정말정말 한 눈에 알 수 있는 표 하나만 떼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근대화 이론은 틀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발전은 민주화를 반드시 가져오는 게 아니라는 거다. 또 역으로,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에 유리하게 작동한다는 근거도 없다.
확인할 수 있는 건 하나. 무엇이 민주화를 가져오는지는 이 연구의 관심사가 아니니 일단 제쳐두고, 일단 민주주의가 들어서고 나면, 그 민주정이 들어선 국가의 경제가 부유할 수록 생존확률이 높아지고 오래 버틴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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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나는 왜 이걸 쓰게 됐나?
정치, 경제, 사회. 이 세 영역은 당연하게도 따로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적인 결정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경제문제는 사회적인 갈등을 낳아 다시 정치에 영향을 미치며, 경제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만들어낸다. 서로가 물고 물릴 뿐 아니라 어디서부터 정치영역이고 어디까지 경제영역인지, 사회의 범위는 어디인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갑자기 '엄근진'하게 이런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던 이유는, 실제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가 다 뒤섞여 있고 어느 하나 따로 떨어져있지 않음에도, 수백년된 대학의 분과학문체계는 이 영역을 다 떨어뜨려놨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물론 최근 들어 이를 다시 뒤섞고 함께 연구하는 이른바 '융복합'과 '통섭'의 움직임도 적지 않으나, 아직 갈길은 멀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한 동생 교수와 간만에 만나 식사를 하면서 나눈 대화였다.  
그 동생은 미국 유수 대학에서 아주 저명한 석학을 지도교수로 삼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싱가포르에서 국제정치를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그 친구가 공부했던 학교는 전통의 '경제학 톱 스쿨'이었다. 정치학 톱 스쿨로도 유명하지만 아예 경제학에서는 독자적 학파가 있을 정도니 뭐. 어쨌든 그 동생이 박사과정을 밟을때, 거기 경제학 박사과정 학생이 자기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의 말인 즉,  

"지도교수가 당신을 만나보라고 했다. 내가 이런저런 분야를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중인데, 이게 정치학에서는 좀 연구된 게 있지 않을까 싶고, 지도교수는 정치학과의 당신이 이걸 알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동생은 그가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해 오랜시간 얘기를 들었고 곧바로 답을 알려줬다. 그 경제학 박사과정생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정치학 영역에서는 1970년대 후반 이미 논쟁이 끝나 거의 최종에 가까운 연구가 나온 상태였기에 한 권의 책과 논문 몇편을 소개해주니 그대로 끝나버렸다고 한다.  

서로 가까워야할 학문들끼리 이렇게들 모른다. 아마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를 놓고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거다. 독재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드니, 그렇지 않다느니. 여전히 다른 학문 분야에서는 각자 다른 얘기를 하고 있을 거다.

이 두 차례에 걸쳐 이론정리 글을 쓰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서로 학문의 접경지역(이런 표현도 웃기지만)에서 최대한 자주 만나 서로 무슨 연구를 하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나눌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타 학문, 특히 왠지 좀 친숙해보일거 같은 개념이 보이는 학문으로 상대 학문에 대한 이해없이 훌쩍 넘어가버리면 진짜 그건 '이불킥 각'이다. 평생 수치다. 대표적인게 경제학자 에스모글루 교수 등이 쓴 [Economic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다. [Social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라는, 즉 배링턴 무어의 정치사회학/역사사회학 고전을 paraphrase 하면서 '이게 바로 독재와 민주주의의 경제적 기원'이라고 질러버린 책이다. 연역적 논리구조만을 따라가면 나름 그럴싸하다.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합리적 선택 이론에 바탕을 둔 이 저자들은 "엘리트는 재분배를 최대한 하고 싶어 하지 않고, 시민은 재분배를 선호하며, 이것이 정치적 선호를 가른다"고 전제한다. 따라서 엘리트는 독재, 즉 비민주주의 체제를 더 선호하고(시민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지 않아도 되니까 재분배를 줄일 수 있음) 시민은 민주주의를 선호(자신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시킬 수 있는 제도여서 재분배 정책을 이끌어낼 수 있기에)한다는 가정을 한다. 그리고 나서 이런 저련 독재와 민주주의 이행과 회귀 등의 메커니즘에 대한 얘기를 연역적으로 풀어나가다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게 된다.

"불평등과 민주화의 상관관계는 역 U자형 그래프로 나타난다"는 거다. 풀어 설명하면, 엘리트와 시민 간에 불평등이 거의 없을 때에는 굳이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할 유인이 없다. 이를 너무도 확고하게 받쳐주는 케이스, critical case가 있는데 그게 바로 싱가폴이다. 이 경우 다른말로 하면 시민들이 민주화를 해서 얻을게 없는 상태다. 민주화의 driving force는 재분배이기 때문에(사실 이 가정도 큰 문제가 있지만 이건 빼더라도) 이 상황에서는 얻을게 없고 민주화 되는 가능성이 낮다는 거다. 반대로 불평등이 극심하다면, 이건 엘리트층이 불균형적으로 강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엘리트는 잃을 게 많고 권력도 세기 때문에 저항의지 강한 시민도 쉽게 억압할 수 있다. 그래서 기존 체제에서 잃을게 많은 엘리트들이 체제를 사수하고 저항을 억압한다. 중간 단계에서는 시민들이 요구하면 엘리트도 받아줄 수 있다는 거다. 민주화가 일어나는 공간이 중간 수준의 불평등이라는 결론이다.
그럴싸 한가? 이 책을 쓴 에스모글루 등은 경제학회에서 주는 상을 받고 어쩌고 돌아다녔는데, 지금 아무도 이 책 얘기 안한다. 싱가폴 지역학 연구자 한 사람(벤 스미스)이 정식 논문도 아닌 그냥 기고글 하나로 그냥 싹 다 반박해버리고 끝났기 때문이다.

일단 아래 그림을 또 보자.(출처: "Rethinking the Economic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 The Continuing Value of Cases and Comparisons")


불평등을 보여주는 지표인 지니계수로 보면,  33과 62에서는 일어나면 안 되는데. 결국 모든 불평등 정도에서도 민주화는 일어나고 있다. 또 불평등 수치가 낮은 아르헨티나는 민주화가 일어났고, 불평등 수치가 가장 높은 남아공도 민주화가 이뤄진다. 불평등 지수와 재분배가 민주화의 주 동력은 아니라는 거다.

그 다음 에스모글루 교수가 자신의 연역적 이론의 튼튼한 지지 케이스로 삼은 싱가폴 사례를 보자. (출처: 바로 위와 동일)


위 그림이 바로 에스모글루가 생각한 싱가폴의 경로다. 그러나 실제 싱가폴, 동남아 지역학 연구자인 스미스가 알고 있는 진실은 아래 그림이다.(출처는 역시 위와 같다)


독립과정에서 평등성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때 사실은 굉장한 저항이 일어났고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혁명적 요구가 있었다. 그리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지금의 지속가능한 권위주의 체제를 만들었다는 거다.

뭐, 후기 쓰다가 뜬금없이 에스모글루를 까긴 했지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닥치라는 게 아니라 함께 손을 내밀어 같이 얘기하고 논의하자는 거다. 서로 이미 연구 다 끝난 거를 모르고 시간낭비하는 것도 막고, 위 사례처럼 엉뚱한 얘기하는 것도 방지하자는 얘기다.



28
  • 어려운 논문은 추천
  • 여윽시 하편이 더 어려워요 ㅠ
  • 이런건 무조건 추천
  •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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