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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11/04 12:36:25 |
Name | Danial Plainview |
Subject | 양심적 병역 거부 무죄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찬반 양론의 뒤편에는 서로 동의하지 않는 평행선이 있습니다. 그것은 징병제의 존속에 대한 것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찬성은 징병제는 노예제의 변형된 한 형태에 불과하며 이번 판결로 인해 징병제가 존속되지 않게 된다 하더라도 정의로운 결과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반면 반대론자들에게 징병제란 현재의 대한민국을 유지하고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며, 이 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위험하다고 느끼게 합니다. 저는 안보도 하나의 서비스이며 징병제는 일종의 보험insurance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2년여간의 시간을 통해 보험료를 납부하고 대신 나머지 생애기간 동안 공동체 內에서 내 생활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을 받는 것이죠. 다만 이 보험료의 납입과정이 세대 간inter-generation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잘 드러나지 않는 것 뿐입니다. 모병제는 여기에서 보험료를 의무복무가 아닌 금전(세금)으로 대체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엔 무임승차자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군대를 가지 않은 여성들을 예로 들 수 있겠죠. 다만 공평성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을 굳이 군대로 보내기엔 추가해야 할 엄청난 비용이 있고, 무엇보다도 보험료를 납부하는 사람들(여기서는 군인)이 그들에게 느끼는 애정이 있습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가족이고, 가족이란 때때로 자신이 손해보는 일이 있더라도 굳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나는 안보 서비스의 체리피커cherrypicker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 엄마 누나 동생을 지키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굳이 언급하지 않는 무임 승차자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집이 잘 사는 사람들은 입대를 더 미루고, 그 때쯤 생기는 질병(디스크나 측만증 같은)들로 공익이나 면제를 따내기도 합니다. 반면 집이 어려운 경우 빠르게 입대하여 경제활동을 시작할 나이에는 병역을 모두 마치려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이 또한 굳이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상류층의 병역면탈은 (완벽하게 불법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그것이 의도적인가 아닌가를 따지기 매우 어려운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는 아픈 사람들은 굳이 군대로 끌고 올 필요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고, 어떻게 보면 치사하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불평등은 분명히 실존합니다. 또한 국가가 의도적으로 고급 인력을 병역에서 돌림으로써 사회 전체의 이득을 높이려고 시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공중보건의가 있을 것입니다. 국가는 병역의 의무를 근거로 남성 의사들을 강제로 싼 가격으로 도서산간 지역까지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도록 합니다. 혹은 이공계 전문연 같은 제도로 평소에 훨씬 많은 돈을 주고 고용해야 될 인력을 중소기업이 적은 돈으로 PKS 대학원생들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도 하죠. 이들은 '안보 서비스'의 무임승차자이지만 동시에 다른 고급 인력 서비스를 저가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는 기꺼이 이런 제도를 받아들입니다. 결국 징병제는 현실과 당위 사이의 적절한 타협일 뿐입니다. 국가는 병역을 이유로 청년들을 2년여 간 자기 맘대로 할 권리를 주장합니다. 그 필요성은 역사적으로 어떤 공동체든 자신을 지키지 못한 공동체는 무너진다는 것으로 뒷받침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국가는 때때로 남는 자원들은 산업체로 돌리기도 하며(대표적으로 80년대의 6개월 방위), 전문인력들은 사회에서 더 요긴하게 써먹기도 합니다. 무임승차자들이 있지만 이들은 병역 수행자들과 매우 친밀하거나 너무 많거나 혹은 애정의 대상이기도 합니다(예컨대 국위선양한 운동선수) 그런데 양심적 병역거부는 나머지와는 조금 다릅니다. 도덕적으로 정당한가와 상관없이 두 가지가 현 체제에서 문제가 됩니다. 하나는 양병거는 장기적으로 현 체제를 완전히 부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모든 남성이 양병거를 선언하는 경우가 있겠죠. 이는 비현실적인 가정처럼 보이지만 전시가 임박할수록 우리 사회가 마주할 모습입니다. 전쟁이 이제 곧 벌어질 것이라고 하면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나가지 않는 것에 비해 유의미하게 생존 확률을 낮추기 때문에 평시에 비해 압도적으로 전시의 양병거 선언 비율은 높아질 것입니다. 또한 현재의 양병거 논의는 전혀 전시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시에 양병거는 무엇을 할 것인가는 논의 대상에서 빗겨나 있죠. 예비역들은 소집되지만 양병거는 군사훈련도 받지 않기 때문에 소집도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정원이 몇 명까지인지에 대한 얘기도 없어 사실상의 제동장치도 없습니다. 즉 징병제+양병거를 선택한 국가는 평시에 비해 전시에 더 위험해질 수 있는 것이죠. 두번째로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임승차자 문제를 더 심화시킬 소지가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지금까지의 무임승차자 문제는 크게 부각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양병거는 본격적으로 무임승차자 문제를 부각시킬 것입니다. 전혀 맥락상 맞지 않는 여성징병제 논의가 양병거에 나오는 것부터 알 수 있죠. 왜냐하면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징병제를 다녀온 사람들은 어떤 애정이나 인정으로 얽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안보 서비스'의 무임승차자이지만 동시에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그만큼의 가치는 없거든요. 양병거의 대체복무안으로 일종의 징벌적 대체복무들이 나오는 것이 비슷한 맥락입니다. 하지만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전쟁이 벌어진다면 이런 무임승차자 문제는 더 크게 부각될 것입니다. 영국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에서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미필 남성들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장면들이 있죠. 실제로도 매우 흔한 사회 현상이었다고 합니다. 모병제에서는 모두가 그 보험료를 납부함으로써 그런 문제를 피해갈 수 있지만, 현재와 같은 징병제에서는 이들이 무임승차자로 인식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국가의 모든 자원을 군사에 쏟은 병영국가들이 얼마나 그 구성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기간의 일본이나 현재의 북한이 살아 있는 사례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보에 자원을 아예 분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공멸로 가는 길이라는 것은 송宋나라와 같은 여러 사례들이 잘 보여줍니다. 결국 사회는 적절한 규모의 자원을 안보에 분배하기로 합의했고 현재의 징병제는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군복무 기간을 축소하기로 결정한 것은 사회가 안보에 쏟을 자원을 더 낮춰도 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우리가 고려해야만 하는 것은 기술이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 한계대체율은 체감된다는 것입니다. 즉 병력이 60만에서 50만으로 줄 때와, 50만에서 40만으로 줄 때, 40만에서 30만으로 줄어들 때는 그 줄어든 병력은 같지만 추가해야 할 자원은 훨씬 더 늘어난다는 것이죠. 그리고 어디까지 장비로 커버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구요.* (그래서 사견이지만 현재의 군복무 기간 축소는 별로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병제의 우수한 사례라고 생각하는 많은 국가들이 한국과 놓인 상황은 현실적으로 다릅니다. 독일만 해도 장비로 인력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안보 서비스'를 외주화outsourcing시킨 것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양심적 병역 거부는 이런 흐름을 더 가속화하게 될 뿐더러 갈등을 크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현실적으로는, 지금처럼 양심적 병역 거부를 하는 인원들을 계속해서 감옥으로 보내며 징병제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출되지도 않았고, 단순히 시험에 패스했고 임명되었을 뿐인 권력이 이런 중요한 결정을 내릴 만큼의 권한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구요. 그러나 이미 결정은 내려졌고 우리는 균열이 천천히 생기는 것을 바라볼 뿐입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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