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19/01/27 15:40:37 |
Name | 메아리 |
Subject | 서평 「자살의 전설」 - 데이비드 밴 |
서평 「자살의 전설」 - 데이비드 밴 데이비드 밴. 이 낯설고 괴이한 작가는 또 누구인지. 헤밍웨이와 코맥 맥카시의 뒤를 잇는 미국 소설의 새로운 대가라고 하지만 나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다. 이 책은 그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기도 하다. 사람이 살 것이라고 생각해 본적 없는 알류샨 열도 출신의 미국 작가. 이 미국 작가는 애니 프루와 같으면서도 다르게 미국을 말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죽음’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자살을 목도하고 그것은 작가에게 중요한 의미로 남게 된다. 그리고 아마도 그 이야기를 소재로 소설을 쓰는 것이야말로 그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작업이었으리라. 그 과정을 거쳐 그는 아버지를 이해하려 했고, 더불어 그 당시 힘들었던 자신을 위로하려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작품은 「수콴섬」이다. 중편 소설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알래스카 유역의 작은 섬인 수콴으로 아버지 짐과 아들 로이가 일종의 귀촌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얼핏 보면 어쩌면 행복할 것 같기도 한 이 이야기는 두 사람의 삶이 괴멸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엄청난 비극이다.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을 여러 가지 각도로 다루면서 이해해 보려한다. 그래서 다양한 변주로 아버지의 자살, 혹은 죽음을 다루고 있다. 회복 불능의 삶.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에게 남겨진 건 사람들의 경멸과 혐오 밖에 없다. 후회하고 복구해 보려 해도 별 수 없다.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건 도피뿐이다. 먼 섬으로의 도피, 그리고 죽음으로의 도피. 작가는 그 도피의 실상을 드러냄으로서 그것이 왜 해답이 되지 못하는가를 말하려 한다. 그 도피가 남겨진 이들에게 어떻게 남는지, 남겨진 이들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 지 보여준다. 이것을 말함으로써 그는 아버지가 남긴 죽음의 그림자를 벋어나려 한다. ‘해변에 도착했을 땐 벌써 석양이 질 무렵이었다. 로이는 물에 흠뻑 젖었다.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짐은 로이를 배에 남기고 나무를 하러 갔다. 불을 피우고 싶었다. 잠시 후 나뭇가지들을 잔뜩 쌓았건만 하나같이 젖은 데다 성냥도 없었다. 그래서 또 울었다. 그는 보트로 돌아가 로이한테 양해를 구한 뒤, 밖으로 꺼내 해변에 던지고 대신 젖은 침낭에 들어가 몸을 녹였다. 다시 깨었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여전히 추웠으나 그나마 죽지는 않았다. 운이 좋았다. 짐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로이를 떠올리고 침낭에서 나가 찾아보았다. … 갑자기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웃다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오, 로이, 이제 어쩌면 좋니?’ 「수콴섬」 2부에서 이 소설의 문장은 온통 회색빛이다. 그야말로 회색빛. 냉철하거나 차가운 문장과는 또 다르게 암울함이 드러나고 있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 감정들이 무채색으로 빛나고 있다. 하지만 결코 흰색이나 검정처럼 뚜렷이 부각되지도 않는다. 그 때문에 참 불편한 문장들. 그러면서 이 작가는 그 회색빛 눈동자로 사람들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알류샨 열도 출신의 미국 소설가가 쓴 이 책은, 비록 죽음을 말하지만 죽은 자들을 위한 진혼곡이라기보다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노래다. 축제를 위한 왈츠는 되지 못하겠지만, 폐부를 찌르는 아련한 아리아처럼 가슴에 남는다. 살아남은 자들이여, 부디 슬퍼하라. 그리고 계속 살아남으라. 삶은 끊임없이 그대를 속일 것이고, 그대는 노여워하거나 슬퍼하겠지만 가장 쉬워 보이는 답이야 말로 그대를 파멸로 이끌지도 모른다는 것을 명심하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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