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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6/03 23:59:00
Name   눈시
Subject   삼국통일전쟁 - 14. 고구려의 회광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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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륵(정령)은 동북아시아에 있었던 튀르크(돌궐) 계열 민족입니다. 이 쪽 얘기야 워낙에 복잡하니 -_-; 간단하게 말하죠. 5호 16국 때는 잠깐이나마 나라를 세우기도 했지만 주로 선비족이 세운 연나라에 복속됩니다. 이후엔 중국과 돌궐 사이에 끼여서 엎드리기도 하고 나름 세력을 키우기도 했죠. 1차 여당전쟁 때 당군 철수 이유 중 하나였던 설연타도 이 철륵에 속하는 부족 중 하나였습니다.

이 당시 철륵 하면 생각나는 건 바로 계필하력(글필하력), 철륵의 부족(15개 이상이네요 - -;) 중 하나였던 계필/글필의 추장이었습니다. 당에 귀순하여 쏠쏠한 활약을 보여줬죠.

661년 10월, 이 철륵에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2차 여당전쟁의 분기점 중 하나였죠.

계필하력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여러 부족으로 구성된 철륵 내에서 당나라 편을 든 이도 많았습니다. 설연타의 반란 역시 그들의 협력을 받아서 토벌할 수 있었죠. 이후 철륵은 주로 당의 편으로, 1차 여당전쟁 때도 참전했고, 돌궐과의 전쟁에도 참가했고, 2차 때도 참전했죠. 계필하력이 이끈 병력엔 당연히 포함됐을 것이고, 소사업의 부여도행군에도 회흘 등 철륵의 병력이 참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때 반란을 주도한 건 회흘이었다고 하구요.

과도한 동원에 반기를 들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고, 원래 싸울 생각이었고 당의 주력이 고구려에 있는 기회를 노린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 배후에 고구려가 있었다는, 외교전의 승리로 보는 이도 있는데 최소한 시도는 해 봤을 겁니다.

당은 남은 힘으로 이들을 상대하려 하지만 대패합니다. 이 때 철륵이 동원한 병력이 10만은 되었다고 하죠. 그렇다고 병력을 더 동원하는 건 그 당나라라 해도 불가능했습니다. 방법은 하나였죠. 고구려에 동원한 병력을 일부 돌리는 거였습니다. 그만큼 고구려에 온 전력을 쏟아부었다 생각해도 되겠죠.

철륵 방면으로 돌려진 건 계필하력과 소사업, 이들의 요동도행군, 부여도행군의 전부가 철군해서 그대로 투입된 것일 수도 있고, 일부는 남았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철륵의 반란이 작은 게 아니었고 휘하 병력에 철륵이 있으니 이이제이에 맞기도 하니 전자로 보는 편이 낫긴 하죠.

이렇게 되면서 북쪽에서 당군은 뭘 했는지도 모르겠는 정명진의 누방도행군밖에 남지 않습니다 요동방어선에 대한 압력은 크게 줄어들었고, 계필하력이 맡은 압록강 일대의 압력은 없어집니다. 요동과 평양 사이에 있던 병력은 물론 물론 요동에 전개돼 있던 병력도 평양성을 지원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상황이 이렇게 됐지만, 고구려를 포기하진 않았습니다. 여전히 평양성을 공격하고 있었으니까요. 당군은 겨울까지도 평양성 공격을 계속합니다. 혹독한 추위가 닥쳤겠지만, 오히려 대동강이 얼어서 공성에 유리해진 면도 있었겠죠. 하지만 더 이상의 대규모 보급은 어려웠는지 신라군을 다시 출동하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빠르면 7월부터 공격을 당했음에도 평양성은 겨울까지도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황은 고구려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12월 고구려가 말하기를) 12월에는 추위가 매우 심해 패수(대동강)가 얼어붙는다. 그러므로 당의 군대가 운차, 충붕(공성병기)으로 북과 징을 시끄럽게 치며 공격해 왔다. 고구려의 사졸들이 용감하고 씩씩하였으므로 다시 당의 진지 2개를 빼앗았다. 단지 2개의 요새만이 남았으므로 다시 밤에 빼앗을 계책을 마련하였다. 당의 군사들이 무릎을 끌어 안고 곡을 하였다. (고구려군의) 날카로움이 무디어지고 힘이 다하여 빼앗을 수 없었으니, 후회해도 어찌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이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일본서기

당군이 공성병기까지 동원해 공격했지만 오히려 역습을 가해 진지 2개를 빼앗은 거죠. 나머지 2개도 이어 공격했지만 아쉽게도 빼앗지 못한 거구요. 일본서기에 기록된 걸 보면 작은 전투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리고 완승을 거두지 못해 부끄러워하지만, 그래도 고구려가 우위를 점했다는 걸 알린 것이죠.

한 해가 끝나고 662년이 왔습니다. 당군은 악착같이 평양에 남아있었죠. 하지만 주도권은 이미 고구려에게로 가 있었죠. 2월, 연개소문은 총공세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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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빼기 시작한다."

2월 갑술일, 패강도행군의 대총관 임아상이 죽습니다. 그리고 4일 후에 옥저도행군에 고구려군의 공격이 가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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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쓰는 지도는 아니겠지만

장소는 사수, 청천강과 대동강 사이로 보이고, 보통은 평양 북쪽의 보통강으로 봅니다. 여기서 연개소문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대승했고, 총관 방효태를 포위해 버리죠. 부하가 포위망을 뚫고 유백영이나 조계숙의 진영으로 가자고 하지만 방효태는 이렇게 말하며 거절합니다.

"내가 두 황제를 섬기며 지나친 은총을 입었으니 고구려를 멸망시키지 못한다면 반드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유백영 등이 어떻게 나를 구원하겠는가? 또 내가 데리고 온 향리의 자제 5천여 명이 이제 모두 죽었는데 어찌 나 한 몸만 살아남기를 구하겠는가?"

다시 연개소문이 공격해 왔고, 수만 명이 전사했으며, 방효태 역시 많은 화살을 맞고 전사합니다. 그와 함께 온 아들 13명 역시 전사하죠. 6개의 부대 중 하나가 지휘부부터 말단까지 완전히 전멸한 겁니다.

이것이 사수 전투, 2차 여당전쟁에서 알려진 대승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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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은, 옥저도행군이 전멸하는 상황에서 평양, 패강도행군이 도와주지 못했다는 점이죠. 패강도행군은 임아상이 4일 전에 죽기도 했구요. 그저 군중에서 죽었다고만 돼 있습니다. 이 역시 고구려군의 공격을 받은 게 아닐까 할 수 있죠. 위에서 유백영, 조계숙이 나오는데 이들이 임아상 휘하일 수도 있고 소정방 휘하일 수도 있습니다. 소정방의 부하라면 임아상의 사인과는 별개로 패강도행군 역시 전멸했다고 봐야 되겠죠. 삼국지 게임도 아니고 지휘관 죽었다고 병력들이 없어지진 않을 테니까요. 임아상의 부하라 하더라도 도와줄 형편이 안 될 정도로 피해를 입은 상태로 볼 수 있겠구요.

이건 요동 쪽을 공격한 것으로 보이는 정명진의 누방도행군에도 마찬가집니다. 정명진은 고구려 공격 후 662년에 죽은 것으로 나오는데 어떻게 죽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면, 그리고 임아상의 상황을 참고해 보면 전투 중 죽었거나 최소한 고구려에서 죽었지 않았을까 하죠.

2006년에는 참모로 참전했던 양사선의 묘지명이 발견되었는데, 고구려와 싸우다 봉황새의 날개가 떨어지고 큰 고기가 길을 잃고 파도에 비늘이 떨어지는 (...) 등의 일이 벌어지다가 661년 10월 16일에 군중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패배를 은유한 게 아닌가 하는 부분이죠. 누방도행군은 부여, 요동도행군이 빠진 상황에서 요동에서 최대한 어그로를 끌어야 했습니다. 더 이상의 기록은 없지만, 이들 역시 큰 피해를 입었음을 추측할 수 있죠.

결론을 내리면 이렇습니다. 고구려에 투입된 6개의 부대 중 2개는 철륵의 반란으로 돌아갔고, 하나는 완전히 전멸했으며, 남은 둘도 대장이 죽을 정도인 만큼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주력으로 보이는 소정방의 평양도행군 역시 피해가 적지 않았을 것이고,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나마 이들에겐 우군이 도움이 있었습니다. 김유신의 쌀배달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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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묵고 살자고 하는 짓 아이가?"

"12월에 이르러 웅진의 군량이 떨어졌으나 먼저 웅진으로 군량을 보내면 칙령을 어기게 되어 걱정이고, 평양으로 군량을 보낸다면 웅진의 군량이 끊길 것이 걱정이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노약자를 시켜 웅진으로 운반하게 하고, 강건한 병사들은 평양으로 향하도록 하였는데 웅진으로 수송하던 도중에 눈을 만나서 사람과 말이 모두 죽어 백에 하나도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 답설인귀서 중

신라가 북진을 하진 않았지만, 그 이유가 웅진도독부 때문이었으니 당도 넘어간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평양의 상황이 악화되니 다시 신라를 움직이려 했죠. 당군의 계획이나 반년을 버틴 걸 보면 해상보급도 이뤄지긴
했겠지만 이 때는 여의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겨울이라 힘들었던 부분도 있겠고, 존재감이 없었던 고구려 수군의 게릴라전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죠.

이 칙명이 온 것이 10월 29일, 겨울일 때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라가 가 보지 못한 곳, 평양까지 가야 했죠. 그것도 많은 군량을 가지고요.

662년 1월, 문무왕은 당에 의해 정식으로 신라왕에 책봉됩니다. 준비기간일 수도 있지만, 이 직후 출발한 걸 보면 책봉을 가지고 밀당한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급하다는데 두 달 이상을 끈 거니까요. 최대한 자기 몫을 얻어내려 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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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살배달 가는 기다."

여기 동원된 것이 70에 가까운 넘은 김유신, 문무왕의 동생 김법민, 김양도 등 10명이었습니다. 쌀 4천 섬과 벼 2만2천섬을 준비했고, 이것을 최대한 빨리 당군에 보급해야 했죠.

"당시에 궂은비가 한 달 이상 계속 내리고 눈과 바람까지 불어 몹시 추웠기 때문에 사람과 말이 얼어 죽어서 가져간 군량을 모두 다 전할 수는 없었습니다. 평양의 황제군은 돌아가기를 원했고, 신라 병사도 양식이 떨어져 역시 회군하였는데, 군사들은 굶주리고 추위에 떨었으며 손발에 동상이 걸려 도중에 죽은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 답설인귀서 중

날씨는 영 좋지 않았고, 북으로 올라갈수록 더 힘들어졌죠. 싸우면서 올라갈 상황도 아니라서 고구려의 성들을 피해 가야 했습니다. 수레를 2천여 대나 준비했지만, 끌고 갈 수 없엇 소와 말에 싣고 갔다고 합니다. 가다가 고구려군에 들켜서 전투도 벌어졌고 성천과 술천이 승리했다고 하죠.

그렇게 2월 1일, 장새(황해북도 수안군)에 도착, 열기에게 정예병 15명을 딸려보내 당군에 보내 연락을 시도합니다. 곧 소정방과 연락이 닿았고 6일에 군량을 보급할 수 있게 됩니다. 추위와 눈에 시달리고 있던 상황에서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겠어요. 끝판에 나타나는 아군의 역할은 충실하게 해 낸 거죠.

삼국사기에서는 이러고 당군이 곧바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앞뒤 상황을 보면 그런 건 아닙니다.

임아상이 죽은 날짜는 2월 14일로 추정하고, 방효태가 죽은 사수 전투는 18일로 봅니다. 쌀배달 이후고, 사수 전투가 끝난 후에야 눈을 핑계로 소정방군이 철수하니 10일 이상은 계속 고구려 내에서 머문 거죠. 신라군이 그 이후 철수하니 신라군도 더 있었구요.

참 궁금한 부분이지만 다 따로 얘기하니 그 사이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죠. 그저 시나리오 몇 개를 생각해 볼 밖에요.

사수 전투 후에 쌀배달, 나당군의 합류가 이루어진 거라면 얘기는 쉽습니다. 진짜 고립무원이 된 상태에서 보급을 받고 철수한 거죠. 신라군이 이 상황에서 단순히 쌀배달만 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엄호 역할을 했을 겁니다.

반대로 쌀배달 후 사수 전투가 이뤄졌다면 당군이 신라군의 보급 및 합류에 맞춰 뭔가를 하려 했고, 고구려가 이에 반응한 것으로 볼 수 있죠. 임아상, 방효태도 군량이 부족했을 테니 소정방에게 합류하려 했거나, 당군 전체가 다시 공격을 시도했을 수 있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고구려는 이걸 끊어야 했겠죠.

날이 풀리기 전에 고구려가 공격을 해야 할 상황이긴 했습니다. 661년 농사는 망했으니 662년이라도 어떻게든 하려면 당군을 물리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신라군이 합류한다면? 상황은 더 악화되는 거죠.

사수 전투는 당군의 상황도 안 좋긴 했지만, 고구려 역시 몰린 상황에서 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더 유리했다면 그 전에 이미 승부를 보려 했겠죠. 무리수를 써서라도 당군에 제대로 피해를 줘야 전쟁이 더 길어지는 걸 막을 수 있었으니까요. 다행히 성공했고, 연개소문의 능력으로 봐도 될 부분이겠습니다.

소정방이 임아상, 방효태를 구원하지 못 했고, 철수한 것을 보면 그의 상황도 최악이긴 했을 겁니다. 자신을 도와 준 신라군의 뒤도 제대로 책임져 주지 못 했죠. 고구려군도 그런 소정방까지 공격하진 못 한 것 같습니다.

2차 여당전쟁은 정말 양군이 할 수 있는 걸 모두 다 하고, 양군 모두 큰 피해를 입은, 그런 전쟁이었던 것이죠.

신라군은 소정방이 철수한 것을 보고 따라서 철수합니다. 고구려에서 그들을 뒤쫓았고, 역습을 가해 1만이 넘는 전과를 올렸다 하죠. 하지만 이 정도로 큰 피해를 줬을까 하는 의심은 확실히 들고, 진짜라 하더라도 신라군의 피해 역시 적을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고구려가 당에 집중하고 큰 피해를 입은 상태였으니 신라군에 온전히 힘을 쓸 수도 없었을 때구요.

쌀배달만을 얘기하자면 간단합니다. 한겨울에 보급품을 가지고 최대한 전투를 피하며 적의 수도까지 간 작전입니다. 거기에 보름 이상을 거기에서 버티고 있다가 후퇴했구요. 결코 쉬운 작전은 아니었고, 충분히 자랑할 만한 작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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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의 전쟁에서 매번 큰 성과 없이 물러갔다."

"12월 무신에 조서를 내려, 고구려와 백제를 토벌하려다가 하북 백성들이 전쟁에 시달렸다는 이유로 정지하였으며, 태산에서 봉선하는 것과 동도(낙양)에 행차하는 것도 아울러 정지하였다. - 자치통감

고종의 충격은 작지 않았을 겁니다. 겨울을 다 보내도록 평양성을 공격했지만 거기까지였을 뿐, 병력의 피해도 컸고 장수의 피해도 컸습니다. 거기다 많은 배를 동원한 만큼 경제적으로도 큰 피해를 입었겠죠. 다시 공격하려다가, 라고 했지만 그냥 핑계인 것 같고, 당분간은 다시 힘을 회복할 시간이었다고 봤겠죠. 그리고 아래를 보면 아예 고구려 공격을 포기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평양의 군사가 되돌아왔는바, 한 성을 혼자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신라로 옮겨 가 신라의 군사와 함께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 만약 김법민(문무왕)이 원한다면(=허락한다면) 그대로 머물러 있어도 좋지만, 만약 원하지 않거든 바로 바다를 건너 돌아오라."

옛 백제 땅, 웅진도독부를 포기하라는 거였죠. 백제부흥군의 능력에 따라 상황이 660년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신라에게 그대로 먹힐 수도 있었겠지만요.

만약 이게 받아들여졌고, 백제가 다시 일어났으며, 연개소문의 뒤가 안정적으로 이어졌다면? 삼국시대가 더 길게 이어질 수도 있었겠죠. 아마 다른 IF들보다 더 현실성이 높을 겁니다. 어느 쪽도 이뤄지지 않았지만요.

고구려의 상황이 어땠을지는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안 좋았을 거라는 걸 충분히 생각할 수 있죠. 반년 동안 수도가 포위당했는데요. 그래도 어떻게든 복구를 해야 했고, 했을 겁니다. 큰 피해를 입었지만, 그래도 당도 한 발 물러선 지금이 상처를 달랠 시간이었죠. 666년 어느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양국 사이엔 흔했던 국지전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을지, 당이 고구려 공격을 정말 포기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고구려는 너무도 허무하게, 그 시간을 없애 버렸으니까요.

바로 그 때로 달려가고 싶지만, 장소를 다시 남쪽으로 옮겨보겠습니다. 격동의 7세기답게, 남쪽에서도 보기 드문 전투가 다가오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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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랜만이군요. 일이 좀 많았습니다. (__);;; 다음 편은 어느 정도 써 놨으니 빨리 올릴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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