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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9/09/18 11:51:20
Name   Moleskin
Subject   《멜로가 체질》은 왜 실패했는가
《김과장》, 《쌈 마이웨이》, 《나의 아저씨》. 그리고 《멜로가 체질》

이게 내가 20살 이후 본 한국 드라마의 전부다. 고등학교 시절 미드에 빠진 이후 한국 드라마는 촌스러워보이고 쿨하지 않은 배우들은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접한 무한긍정 똥꼬발랄한 김성룡씨가 TQ그룹에서 펼치는 대활약은 나에게 한국 드라마에 대한 편견을 깨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쌈마이 진득한 청춘 드라마, 건축설계사 아저씨가 액션을 펼치는 궁상맞은 중년의 위기 드라마 두 편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상한 자부심이 생겼다.  전혀 기대치가 없던 명품 일상 코믹 드라마들을 발굴해내는 능력이랄까. 프렌즈, HIMYM, 30ROCKS 등 시트콤 한 우물만 파다보니 내공이 생긴 것만 같았다.

그리고 《멜로가 체질》을 보기 시작했다. '본격 수다 블록버스터'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달고 영화 스물과 극한직업을 만든 이병헌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 앞서 말한 다른 드라마들과 다르게 어쩌면 이 작품은 기대작이라 봐야했다. 드라마는 내가 기대하던 바 그대로였다. 누가봐도 사랑스러운 세 주인공의 매력이 도드라졌고 조연들의 대사까지도 맛깔났다. 본격 수다 블록버스터라는 기획 그대로의 드라마였다. 초반만 하더라도 그간 내 안목으로 봤을 때 이 드라마 역시 성공가도를 달릴 것이 분명해보였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내가 틀렸다. 이 드라마는 1.8%의 시청률로 시작했으나 이후 2%를 한 번도 넘기지 못하고 있다(닐슨 코리아 기준). 물론 그 중에 내 책임도 있다. 본방을 본게 단 두 번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그건 다른 드라마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시청률 계산에 포함도 안되는데 무슨 상관인가.  이병헌 감독은 9월 6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시청률 부진의 원인으로 '포용력의 부족'을 꼽았다. 20대 초중반, 10대 사촌들이 드라마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병헌 감독은 시청률은 낮지만 작업 분위기는 충분히 밝다고 말하며 스스로 반성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글쎄, 내 생각은 다르다. 내가 본 다른 드라마들 역시 주 시청 대상은 이 드라마와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서른 전후의 여성층만 제대로 공략해도 시청률이 2%를 넘기지 못할 이유는 없다. 드라마의 실패 이유로 '포용력 부족'은 완전한 설명이 아니다.

이 드라마의 결정적 실패 원인은 무너진 성별 관계에 있다.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건 세 여성 주인공이긴 하지만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밀어줘야할 남성들이 너무 단편적으로 그려지고 있고 그 지점에서 드라마의 힘이 빠지게 된 것이다. '멜로가 체질'인 만큼 드라마의 핵심은 사랑인데 그 사랑의 대상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감독이 밝혔듯 이 드라마의 선발은 안재현과 천우희다. 안재현은 잘나가는 PD로 쿨한 매력과 섬세함이 돋보이긴하지만 멋짐이 부족하다. 안재현이 못생겼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어느 순간에는 남성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타이밍이 있어야 한다. 천우희는 12화에서 안재현이 좋은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열거하지만 그걸로 임계점을 넘어서기엔 극적인 장면이 없었다. 안재현에게는 천우희, 다른 PD들과의 관계말고 독자적인 내러티브가 존재하지 않는다.

안재현 뿐만 아니라 다른 남성 역할들 역시 마찬가지다. 손범수 PD 뿐만 아니라 김환동(이유진), 이민준(김명준) 역시 적당한 매력은 있지만 독자적 내러티브가 있다거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결정적 동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서동기PD(허준석) 역시 다미(이지민)와 케미를 보여주기엔 너무 찌질한 인물이다. 사랑은 은근히 다가올 수 있지만 등장 커플 모두 그 은근함만으로 이루어지는건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나마 성공적으로 멜로를 묘사한건 황한주(한지은)과 추재훈(공명) 커플이었다. 추재훈이 황한주를 마음에 담아내는 타이밍이 부적절할지언정 추재훈이 황한주에게 빠지는 이유를 충분히 보여주었고 황한주에게 있어서 추재훈이라는 연하남에게 마음을 주는 점진적 단계 역시 잘 드러났다.

일각에서는 이 드라마를 '남자들의 스물'에 이은 '여자들의 서른'이라 말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드라마의 실패는 포용력 부족이라기보다 서른 살 여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다. 스무 살의 남자들은 손만 닿아도 설렘을 느끼는 춘기가 가득하지만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서른의 여성들이 느끼는 사랑과 일 사이의 고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서른의 여성이 사랑을 대하는 태도는 다분히 복합적이다. '나에게 잘해준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에 빠진다는건 결국 여성의 사랑이 수동적이라는 말과도 똑같다. 은근히 옆에서 잘해주는 것만으로 사랑에 빠지는건 다분히 남성 중심적의 바램일 뿐이다. 작 중 멜로들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보다 남성들을 매력적으로 보여주거나 여성들의 갈등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 드라마의 초점은 사랑 이야기에만 있지 않다.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엮이는 주인공들의 케미가 좋고 여성 조연들의 매력 역시 훌륭하다. 그러나  이병헌 감독은 멜로가 체질은 아닌듯 하다. 서른의 사랑, 그 복잡함을 설명하기엔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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