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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09/20 16:10:03수정됨 |
Name | 이그나티우스 |
Subject | 학교가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요? |
작성자가 본문을 삭제한 글입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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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릴적에 학창시절 선배님들께 들은 이야기가 있죠.
실제로 세상이 그렇게 굴러간다 하더라도, 학교는 직업과 스킬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였는데
상급학교 진학과 취업이 궁극적 목표가 되어가는 것이 바뀌기는 커녕 점점 공고화 되는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꽤 슬퍼지네요. 하다못해 저 어릴적에 초등학교였나 중학교였나때 배운걸로 학교의 목적이 '가정에 더해진 사회화/재사회화 과정' 의 측면에서도 꽤 공감을 했는데 인맥형성 클럽활동까지 거슬러올라가도 학문습득과 사회화에 대한 ... 더 보기
실제로 세상이 그렇게 굴러간다 하더라도, 학교는 직업과 스킬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였는데
상급학교 진학과 취업이 궁극적 목표가 되어가는 것이 바뀌기는 커녕 점점 공고화 되는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꽤 슬퍼지네요. 하다못해 저 어릴적에 초등학교였나 중학교였나때 배운걸로 학교의 목적이 '가정에 더해진 사회화/재사회화 과정' 의 측면에서도 꽤 공감을 했는데 인맥형성 클럽활동까지 거슬러올라가도 학문습득과 사회화에 대한 ... 더 보기
예전에 어릴적에 학창시절 선배님들께 들은 이야기가 있죠.
실제로 세상이 그렇게 굴러간다 하더라도, 학교는 직업과 스킬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였는데
상급학교 진학과 취업이 궁극적 목표가 되어가는 것이 바뀌기는 커녕 점점 공고화 되는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꽤 슬퍼지네요. 하다못해 저 어릴적에 초등학교였나 중학교였나때 배운걸로 학교의 목적이 '가정에 더해진 사회화/재사회화 과정' 의 측면에서도 꽤 공감을 했는데 인맥형성 클럽활동까지 거슬러올라가도 학문습득과 사회화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는게 참 ㅠㅠ
글쓴분의 의견에 태클을 걸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그냥 읽다보니 아이 아빠가 될 예정인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학교의 의미가 이렇게까지밖에 안 됬나 싶어서 착잡해졌어요.
실제로 세상이 그렇게 굴러간다 하더라도, 학교는 직업과 스킬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뭐 이런 이야기였는데
상급학교 진학과 취업이 궁극적 목표가 되어가는 것이 바뀌기는 커녕 점점 공고화 되는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꽤 슬퍼지네요. 하다못해 저 어릴적에 초등학교였나 중학교였나때 배운걸로 학교의 목적이 '가정에 더해진 사회화/재사회화 과정' 의 측면에서도 꽤 공감을 했는데 인맥형성 클럽활동까지 거슬러올라가도 학문습득과 사회화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는게 참 ㅠㅠ
글쓴분의 의견에 태클을 걸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그냥 읽다보니 아이 아빠가 될 예정인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학교의 의미가 이렇게까지밖에 안 됬나 싶어서 착잡해졌어요.
네 저도 굳이 말하자면 학교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학교를 열심히 다니고도 정작 사회에서는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시험을 보지 않고도 꿈을 이룰 수 있는 사회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인지...
학교의 의의는 고학력자배출뿐만아니라 극도의 저학력자비율의 제거도 커요. 문맹률, 사칙연산같은..
사회의 근간인 제도들은 최저수준이상의 교육이 전제가 되기도하거든요 문맹률이 5할이상이면 계약자율의원칙이 유지되기어려울거에요.
사회의 근간인 제도들은 최저수준이상의 교육이 전제가 되기도하거든요 문맹률이 5할이상이면 계약자율의원칙이 유지되기어려울거에요.
학교가 없어지면 공교육이 없어지는 거 잖아요.
독일식으로 처음에 연구,공부할사람 걸러내고 나머지는 직업교육가면 되지 않을까요?
어쨌든 사회는 인력이 필요하고, 그걸 온전히 가정에 맡길수는 없으니까요.
독일식으로 처음에 연구,공부할사람 걸러내고 나머지는 직업교육가면 되지 않을까요?
어쨌든 사회는 인력이 필요하고, 그걸 온전히 가정에 맡길수는 없으니까요.
1. 저는 오히려 학교가 건전한 사회성 형성에 방해가 된다고 봅니다. 학교라는 곳이 또래집단 사이의 서열화가 극심해서 상위 포지션에 위치한 친구들이야 그속에서 맘껏 권력을 누리고 친구를 사귀겠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학교생활 내내 치이고 터지면서 서럽게 살아갑니다. 오히려 그렇게 억눌린 경험이 제대로 된 리더쉽을 기르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학교에서의 '사회성' 형성이 정말 바람직한 것인지 좀 따져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2. 기본교양 습득의 경우는 진학과 무관하게 그걸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을 별도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2. 기본교양 습득의 경우는 진학과 무관하게 그걸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을 별도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의무교육이라도 없으면 기본 역사, 인문/과학 상식 등등이 급격하게 저하될 것 같습니다... 하다못해 공교육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미국 시골에서 flat earth 를 믿는 인간들이 있는 걸 보면 ..
말씀하신 것은 교육열이 과한 학군이나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가정에서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자녀가 그대로 방치되는 가정이 많을 것 같습니다.. 막장 가족이 아니라 일반적인 맞벌이 가정만 생각해도 애가 혼자 집에 있는데 알아서 분야별로 지식을 쌓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가뜩이나 유투브에 자극적인 컨텐츠도 넘쳐나는 세상에.
위의 몇몇 분들도 같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 의무교육은 교육 수준을 올리는 것보다는 ‘최저’의 수준을 올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동 노동착취도 방지할 수 있구요.
말씀하신 것은 교육열이 과한 학군이나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가정에서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자녀가 그대로 방치되는 가정이 많을 것 같습니다.. 막장 가족이 아니라 일반적인 맞벌이 가정만 생각해도 애가 혼자 집에 있는데 알아서 분야별로 지식을 쌓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가뜩이나 유투브에 자극적인 컨텐츠도 넘쳐나는 세상에.
위의 몇몇 분들도 같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은데, 의무교육은 교육 수준을 올리는 것보다는 ‘최저’의 수준을 올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동 노동착취도 방지할 수 있구요.
근데 읽기/사칙연산이 이렇게 써두면 한일이년이면 될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고교 교과서 수준의 비문학 독해력이 없으면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없이 약관, 계약, 법률 이런걸 이해하기 무척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사람마다 다른데 수년이상 학교에서 읽고 쓰고 풀게해도 의외로 잘 안됩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가장 필요한것은 이런 기본 소양을 통해 '지성적인 태도'를 가지는 건데요. 이건 흔히말하는 반지성주의와 반대되는 것으로, 비판적 수용과 배움에 대한 긍정적 자세를 함양하는 것이죠. 착하고 성실함 이런것보단 새롭고 모르는... 더 보기
실제로는 고교 교과서 수준의 비문학 독해력이 없으면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없이 약관, 계약, 법률 이런걸 이해하기 무척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사람마다 다른데 수년이상 학교에서 읽고 쓰고 풀게해도 의외로 잘 안됩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가장 필요한것은 이런 기본 소양을 통해 '지성적인 태도'를 가지는 건데요. 이건 흔히말하는 반지성주의와 반대되는 것으로, 비판적 수용과 배움에 대한 긍정적 자세를 함양하는 것이죠. 착하고 성실함 이런것보단 새롭고 모르는... 더 보기
근데 읽기/사칙연산이 이렇게 써두면 한일이년이면 될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고교 교과서 수준의 비문학 독해력이 없으면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없이 약관, 계약, 법률 이런걸 이해하기 무척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사람마다 다른데 수년이상 학교에서 읽고 쓰고 풀게해도 의외로 잘 안됩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가장 필요한것은 이런 기본 소양을 통해 '지성적인 태도'를 가지는 건데요. 이건 흔히말하는 반지성주의와 반대되는 것으로, 비판적 수용과 배움에 대한 긍정적 자세를 함양하는 것이죠. 착하고 성실함 이런것보단 새롭고 모르는 것과 마주쳤을때 알아보고 익히고 배우는 것을 자연스럽게 해야한다는 삶의 태도 같은거요. 물론 학교가 그걸 잘 함양시키냐면 사실 일부는 그렇고 일부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 여튼 기초교양지식+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성적 태도를 절대 다수에게 최소한으로 갖추게 한다는 점에서 더 나은 '대형'시스템을 만드는건 쉽지 않은 일로 보입니다. 이걸 개별 주체에서 다 다루기엔 몹시 어려운 일이라고봐요.
실제로는 고교 교과서 수준의 비문학 독해력이 없으면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없이 약관, 계약, 법률 이런걸 이해하기 무척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능력은 사람마다 다른데 수년이상 학교에서 읽고 쓰고 풀게해도 의외로 잘 안됩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가장 필요한것은 이런 기본 소양을 통해 '지성적인 태도'를 가지는 건데요. 이건 흔히말하는 반지성주의와 반대되는 것으로, 비판적 수용과 배움에 대한 긍정적 자세를 함양하는 것이죠. 착하고 성실함 이런것보단 새롭고 모르는 것과 마주쳤을때 알아보고 익히고 배우는 것을 자연스럽게 해야한다는 삶의 태도 같은거요. 물론 학교가 그걸 잘 함양시키냐면 사실 일부는 그렇고 일부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텐데, 여튼 기초교양지식+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성적 태도를 절대 다수에게 최소한으로 갖추게 한다는 점에서 더 나은 '대형'시스템을 만드는건 쉽지 않은 일로 보입니다. 이걸 개별 주체에서 다 다루기엔 몹시 어려운 일이라고봐요.
저는 학교는 사회화라고 생각합니다. 지식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대학교도 전문지식보다는 교양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학교를 안 가면, 그냥 평준화된 지역에서 고향 사람들만 만나다가 끝나는거잖아요? 그러다가 바로 취직해서 일 관계로 사람들을 대하며 평생 사는 거고요.
그래서 대학교가 특별히 전문지식을 가르쳐주거나 취업 관련 필요한 스킬을 제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시절은 성인의 자율성과 자기책임 원리에서 자기가 뭘 하고싶은지 다양하게 탐색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다만 등록금이 너무 비싸니 파격적으로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ㅠㅠ
그래서 대학교도 전문지식보다는 교양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학교를 안 가면, 그냥 평준화된 지역에서 고향 사람들만 만나다가 끝나는거잖아요? 그러다가 바로 취직해서 일 관계로 사람들을 대하며 평생 사는 거고요.
그래서 대학교가 특별히 전문지식을 가르쳐주거나 취업 관련 필요한 스킬을 제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시절은 성인의 자율성과 자기책임 원리에서 자기가 뭘 하고싶은지 다양하게 탐색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다만 등록금이 너무 비싸니 파격적으로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ㅠㅠ
동남아의 빈민지역에서 학교 없는 곳에 학교 비슷한 것을 운영하는 일에 참여해봤는데...
그전까지 제가 알던 무언가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의미보다는 다른게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착취나 학대, 범죄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역할, 육아 기관의로서의 역할, 밥 주고 옷 주고 하는 생활보호의 역할 등등...
물론 교육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그러한 상황과 환경을 자생적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큰그림도 중요하고요.
한국은 그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이므로 1:1 비교는 어렵지만,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만한 학교의 순기능들이 분명 적지않다고 생각합니다.
그전까지 제가 알던 무언가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의미보다는 다른게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착취나 학대, 범죄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역할, 육아 기관의로서의 역할, 밥 주고 옷 주고 하는 생활보호의 역할 등등...
물론 교육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그러한 상황과 환경을 자생적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 큰그림도 중요하고요.
한국은 그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이므로 1:1 비교는 어렵지만,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만한 학교의 순기능들이 분명 적지않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의 사회화에 서열화와 같은 문제가 있음을 말씀하셨으니 그것을 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현실적으로 학교가 가장 먼저 계층화, 서열화를 경험하고 부딪히는 공간이 되고 있긴 하지요. 학교에서 생기는 이런 계층의 발생과 충돌은 대개 성인 사회의 축소판이고, 또 학교에서 생긴 관념이 이어져서 사회에서도 적용되게 마련입니다. 학교에서는 힘, 지능, 성적, 부모 세대의 금력이나 권력 등 여러 기준들을 기반으로 계층이 생겨납니다. 권력기준들에 모두 취약한 사람들은 학교에서의 '사회 생활'이 녹록치 않을 겁니다. 성장 과정에서 또래 집단 간... 더 보기
학교에서의 사회화에 서열화와 같은 문제가 있음을 말씀하셨으니 그것을 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현실적으로 학교가 가장 먼저 계층화, 서열화를 경험하고 부딪히는 공간이 되고 있긴 하지요. 학교에서 생기는 이런 계층의 발생과 충돌은 대개 성인 사회의 축소판이고, 또 학교에서 생긴 관념이 이어져서 사회에서도 적용되게 마련입니다. 학교에서는 힘, 지능, 성적, 부모 세대의 금력이나 권력 등 여러 기준들을 기반으로 계층이 생겨납니다. 권력기준들에 모두 취약한 사람들은 학교에서의 '사회 생활'이 녹록치 않을 겁니다. 성장 과정에서 또래 집단 간의 권력 투쟁, 서열화로 인한 상처는 정신적으로 힘들 것입니다. 상실감, 패배감, 자존감 저하로 이어지겠지요.
그러면 이러한 충돌을 가능한 한 막는 것이 옳을까요? 그래서 학교를 없애고, 자신의 취향과 처지에 맞는 일부 사람들과 선택적으로 얽히는 환경에서만 사교 활동을 한다면 어떨까요. 계층과 서열의 존재를 피부로 느끼기는 더 어려울 것이고, 다양한 사회 집단은 서로를 덜 이해할 것입니다. 성장 과정에서 다른 계층이나 집단에 대한 오해나 환상을 쌓은 채 성인 사회에 던져질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계급이나 집단간의 접점이 줄어들고 점점 제한된 규약에 의해서만 접촉이 이루어지는 사회로 진행할 것입니다. 그런 사회를 달리 말하면 귀족사회, 계급사회입니다.
아마 잘은 몰라도 중세 시대의 평민들이 현재의 대한민국 서민들보다 계급갈등적 측면에서의 정신 건강은 앞서 있기는 할 겁니다. 그들에게 계급이란 천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모든 사람은 각자 처지를 타고 났으며 귀족들은 날 때부터 나와는 다른 존재들임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테니까요. 여기부터는 선택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정신 건강이냐, 계급 고착의 완화냐.
성장 과정에서 학교가 아니라 다른 어떤 모임수단을 통해 사교활동을 한다고 가정할 때, 학교보다 계층적 '분리'에서 자유로운 모임수단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다양한 인구 계층을 그 정도로 강제로 포용하는 집단도 별로 없다는 거죠. 학교에서의 충돌이 계급사회의 민낯을 알게 하지만, '저자들도 인간이구나'(어느 쪽에서 어느 쪽을 보든) '인간은 다양하구나' 하는 사실을 무의식 속에 체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민주 사회에서의 중요한 사회화 과정이겠지요.
그러면 이러한 충돌을 가능한 한 막는 것이 옳을까요? 그래서 학교를 없애고, 자신의 취향과 처지에 맞는 일부 사람들과 선택적으로 얽히는 환경에서만 사교 활동을 한다면 어떨까요. 계층과 서열의 존재를 피부로 느끼기는 더 어려울 것이고, 다양한 사회 집단은 서로를 덜 이해할 것입니다. 성장 과정에서 다른 계층이나 집단에 대한 오해나 환상을 쌓은 채 성인 사회에 던져질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계급이나 집단간의 접점이 줄어들고 점점 제한된 규약에 의해서만 접촉이 이루어지는 사회로 진행할 것입니다. 그런 사회를 달리 말하면 귀족사회, 계급사회입니다.
아마 잘은 몰라도 중세 시대의 평민들이 현재의 대한민국 서민들보다 계급갈등적 측면에서의 정신 건강은 앞서 있기는 할 겁니다. 그들에게 계급이란 천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모든 사람은 각자 처지를 타고 났으며 귀족들은 날 때부터 나와는 다른 존재들임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테니까요. 여기부터는 선택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정신 건강이냐, 계급 고착의 완화냐.
성장 과정에서 학교가 아니라 다른 어떤 모임수단을 통해 사교활동을 한다고 가정할 때, 학교보다 계층적 '분리'에서 자유로운 모임수단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다양한 인구 계층을 그 정도로 강제로 포용하는 집단도 별로 없다는 거죠. 학교에서의 충돌이 계급사회의 민낯을 알게 하지만, '저자들도 인간이구나'(어느 쪽에서 어느 쪽을 보든) '인간은 다양하구나' 하는 사실을 무의식 속에 체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민주 사회에서의 중요한 사회화 과정이겠지요.
음 전 생각이 좀 다릅니다. 학교의 사회화 기능이 훼손되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재의 서열화 문화, 인싸/아싸 문화, 스쿨 카스트 이런 부분이 더 큽니다.
대학의 기능에 대한 부분은... 저도 처음에는 다람쥐님처럼 생각했는데 취업 준비를 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할 때마다 대학이 도와주는 부분이 너무 없다, 대학 졸업장 이외에는 이렇다할 평범한 스펙이 없는 학생들은 너무 불리하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게 꼭 바람직하지는 않더라도 대학으로부터 취업지원의 기능을 완전히 분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봅니다. 물론 교양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졸업 후를 대비시켜 주는 것도 중요한 기능이라 봅니다.
대학의 기능에 대한 부분은... 저도 처음에는 다람쥐님처럼 생각했는데 취업 준비를 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할 때마다 대학이 도와주는 부분이 너무 없다, 대학 졸업장 이외에는 이렇다할 평범한 스펙이 없는 학생들은 너무 불리하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게 꼭 바람직하지는 않더라도 대학으로부터 취업지원의 기능을 완전히 분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봅니다. 물론 교양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졸업 후를 대비시켜 주는 것도 중요한 기능이라 봅니다.
그게 flipped learning인데 아직까진 좀 실망스럽습니다. 이런 전제는 학생들이 항상 공부를 하고 노력한다는게 수반된다는데 최상위 그룹에서도 항상 그렇진 않거든요. 개인의 창의성이 중요하긴 한데, 전반적인 지식의 백그라운드가 담보되지 않은 수준에서의 창의성이란건 백일몽으로 흐르기도 쉬워서.. 교육학하는 분들이 더 잘아시겠지민.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대로가 바람직하다(혹은 어쩔 수 없다)는 데에는 절대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자기가 또래집단 사이에서 서열이 높으면 그보다 낮은 아이들에게 무례하게 대해도 된다는 식의 왜곡된 사회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까요? 저는 중세시대처럼 모든 게토화된 사회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우리나라가 민주사회인 이상,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동질감을 형성할 수 있는 기제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데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댓댓글에서와 같이, 거듭 말씀드리지만 학교를 다 없애고 아무런 교육제도도 존재하지 않는 원시사회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인 학생의 필요에 둔감한 학교의 운영방식을 대대적으로 개혁하지 않는다면 안된다는 취지로 말씀드린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험 통과에 대한 압력이 너무나도 거세기 때문에 풀어놓는 식으로 해도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웬만큼 열심히 하지 않으면 대학도 못 가고, 취직도 못 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사실 이미 어느정도 그렇게 되어있기도 합니다. 문제풀이는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학교에서 풀어놓는 경향이 크거든요. 차라리 그럴 바에야 학교의 티칭보다는 코칭역할을 강화하는 측면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전반적인 백그라운드라는 것은 학교가 최소한의 수준에서 계속 가르치기는 해야겠죠(그래서 본문에 인터넷 강의 등으로 기본적인 지식은 여전히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언급한 것입니다.).
음...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제가 교육학을 몰라서 전문적인 부분을 모르겠다는 점이 제일 큽니다. 그렇지만 그 외에도 스스로 학교시절이 만족스럽지 않아 항상 관련된 주제가 나오면 관심을 갖고 찾아보는데 아직까지는 답을 못 찾겠습니다. 다들 그냥 나이들면 다 친구도 생기고 결혼도 하는거 아냐? 이런 식으로만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동네 애들 한 학교에 다 때려박으면 그 또래집단 안에서 서열이 높은 녀석들은 왕처럼 행동하고 그렇지 않은 녀석들은 찌그러져 바보취급이나 받는 그런 구조는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다른 사람들을 짓밟지 않고 어떻게 바람직한 사회성을 기를 수 있을까 이런 부분은 앞으로 답을 찾아나가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자꾸 학교 자체가 사라진 상황을 가정해서 반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디만, 여기서 한번에 말씀드리지만 학교라는 것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교실에 다수의 학생들을 데려다 놓고 교수/교사가 일방적으로 수업만 하고, 나머지는 학생들에게 알아서 하라는 식의 학교는 더 이상 학생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학교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것은 계속 온존시키되 그 내부의 운영방식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이론을 주입하는 교육은 최소화하ㄷ고 학교의 주된 역할을 학생이 스스로 공부한(... 더 보기
자꾸 학교 자체가 사라진 상황을 가정해서 반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디만, 여기서 한번에 말씀드리지만 학교라는 것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처럼 교실에 다수의 학생들을 데려다 놓고 교수/교사가 일방적으로 수업만 하고, 나머지는 학생들에게 알아서 하라는 식의 학교는 더 이상 학생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학교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것은 계속 온존시키되 그 내부의 운영방식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이론을 주입하는 교육은 최소화하ㄷ고 학교의 주된 역할을 학생이 스스로 공부한(문제를 푼) 부분에서 모르는 곳을 코칭받을 수 있는 형식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이 개선되지 않으면 '현재와 같은 모습'의 학교는 존재가치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자꾸 학교가 없어지면 많은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반론이 제기되네요. 제가 제목을 잘못 쓴 부분도 있습니다만, 글의 취지를 이해해주십사 제 글이지만 중간에 스스로 댓글을 달겠습니다.
저때도 이미 초등학교에서는 조별학습이다 발표학습이다 그런 수업들을 많이 하긴 했었죠. 저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쪽지시험은 봐도 전교등수 나오는 그런 시험은 본 적 없습니다. 무슨 8-90년대 기준으로 말씀드리는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대학교는 어떤가요? 아직도 커다란 강의실에 애들 불러다 놓고 교사/교수가 일방적으로 칠판에 필기하고 이론만 가르치고, 정작 시험은 다른데서 나오고... 그렇지 않습니까? 수능이라는 시험 자체가 고등학교 교과내용과는 한참 웃도는 그런 막나가는 어려운 시험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물론 안 그런데도 분명... 더 보기
저때도 이미 초등학교에서는 조별학습이다 발표학습이다 그런 수업들을 많이 하긴 했었죠. 저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쪽지시험은 봐도 전교등수 나오는 그런 시험은 본 적 없습니다. 무슨 8-90년대 기준으로 말씀드리는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고등학교, 대학교는 어떤가요? 아직도 커다란 강의실에 애들 불러다 놓고 교사/교수가 일방적으로 칠판에 필기하고 이론만 가르치고, 정작 시험은 다른데서 나오고... 그렇지 않습니까? 수능이라는 시험 자체가 고등학교 교과내용과는 한참 웃도는 그런 막나가는 어려운 시험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물론 안 그런데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을겁니다. 심지어는 수준이 떨어지는 학원에서는 비싼 돈받고 가르치면서도 학생들 질문도 제대로 안받는 곳이 허다합니다. 이런식으로 수업따로, 공부따로, 시험따로로 돌아가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그대로 가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대학은 의무교육이 아니라 가지않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방법으로 학습해도 전혀 법적으로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수능은 학력테스트가 아니라 수학능력을 테스트하여 줄을 세우는 목적인 시험입니다. 가려고하는 사람과 정원수가 차이가 나니깐요. 자기가 한 공부에대한 테스트는 필요가 없죠. 왜 하고 싶고 자신이 습득한 지식을 테스트가 필요합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고등학교 대학을 가는건 앞서 말씀드린 무섭고 무서운 사회와의 경계에 스펀지역활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대학때 인간관계에서 잘못된건 바로잡고 바뀔수 있고 바로잡아주고 신경써주는 사람이나 시스템이있지만 사회에서는 바로 바이짜이찌엔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고등학교 대학을 가는건 앞서 말씀드린 무섭고 무서운 사회와의 경계에 스펀지역활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대학때 인간관계에서 잘못된건 바로잡고 바뀔수 있고 바로잡아주고 신경써주는 사람이나 시스템이있지만 사회에서는 바로 바이짜이찌엔입니다.
음 제가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막연히 학교를 사회화기관으로 생각하고 그속에서 어떤 사회화가 얼마나 제대로 이뤄지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별로 무관심한 부분입니다. 인싸/아싸 문화는 학교에서의 사회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는 근거입니다.
만약 학교에서 사회화가 안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부분은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네요. 다만 나쁜건 미리 경험할 필요가 없다, 라기보다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나보다 못한 녀석들을 찍어누르는 쾌감에 중독된 아이들을 성장기에 양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에 대한 물음은 있습니다.
만약 학교에서 사회화가 안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부분은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네요. 다만 나쁜건 미리 경험할 필요가 없다, 라기보다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나보다 못한 녀석들을 찍어누르는 쾌감에 중독된 아이들을 성장기에 양산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에 대한 물음은 있습니다.
즐겁게/ 저는 그 대안이 수업보다는 코칭과 상담 중심으로 가는 학교라고 보고 있는 거고요, 다만 위의 다른 댓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그대로 도입하기에는 아직도 개선할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제도 자체가 교육보다는 교육 외적인 목적을 위해 끌려다니는 부분이 많다는 데에는 동감합니다.
미스터주/ 이러이러하게 개선하자라는 부분은 본문에 언급하였습니다. 강의위주의 기계적인 수업보다는 학생들의 자습을 전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식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학교의 쓸모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니 학교라는 것 자체는 여전히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미스터주/ 이러이러하게 개선하자라는 부분은 본문에 언급하였습니다. 강의위주의 기계적인 수업보다는 학생들의 자습을 전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식으로 교육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학교의 쓸모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니 학교라는 것 자체는 여전히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고요.
음... 댓글들 읽으면서 달려다 말았던 부분인데, 학교는 배우는 곳이며, 보육하는 곳도 심리치료하는 곳도 아닙니다. 다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필요해졌고 학교에 생활지도에 있어 요구합니다. 그런데 학교엔 교사와 초등중교육법만 있습니다. 학교에 필요한 기능이 없음에 문제삼고 제도적 개선을 요구한다면, 돌봄전담사와 심리상담가, 경찰관의 전면 배치와 관련 법 개정이 우선 아닐까요? 그리고 그 이전에, ( 예전에 탐라에서 나왔던 주제인 ) 학생에게 자유를 주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회풍토가 전제라 보구요.
교육방법에 다양한 방법을 도입...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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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댓글들 읽으면서 달려다 말았던 부분인데, 학교는 배우는 곳이며, 보육하는 곳도 심리치료하는 곳도 아닙니다. 다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필요해졌고 학교에 생활지도에 있어 요구합니다. 그런데 학교엔 교사와 초등중교육법만 있습니다. 학교에 필요한 기능이 없음에 문제삼고 제도적 개선을 요구한다면, 돌봄전담사와 심리상담가, 경찰관의 전면 배치와 관련 법 개정이 우선 아닐까요? 그리고 그 이전에, ( 예전에 탐라에서 나왔던 주제인 ) 학생에게 자유를 주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회풍토가 전제라 보구요.
교육방법에 다양한 방법을 도입하는 노력은 교사들에게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으며, 말씀하신 코칭과 상담도 주요한 노력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교사의 입장에 따른 한계는 있더라구요. 어쨌든 전문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면서도, 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합니다.
다만 학생들의 자습을 전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는 식은, 음... 솔직히 말해 꿈에 부푼 초임교사가 발령 첫해 처절하게 겪는 전형적인 실패 사례라...; 일단 파레토 법칙부터가....뭐 정말 가능하면 얼마나 해피하겠습니까마는... 이점은 이그나티우스 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들어가도 말씀하신 대안은 개별화 교육과 공동체교육의 교육목표의 지향성과 관련이 되어 좀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는 분명 공동체교육 (국민보통교육)에서 시작해 개별화 교육으로 나아가고 있지요. 나아가야 하구요. 하지만 역사적으로 공동체교육의 온갖 폐단을 겪었다고 해서 그 가치가 없다고 말하기엔 어려울 겁니다.
교육방법에 다양한 방법을 도입하는 노력은 교사들에게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으며, 말씀하신 코칭과 상담도 주요한 노력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교사의 입장에 따른 한계는 있더라구요. 어쨌든 전문가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면서도, 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합니다.
다만 학생들의 자습을 전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는 식은, 음... 솔직히 말해 꿈에 부푼 초임교사가 발령 첫해 처절하게 겪는 전형적인 실패 사례라...; 일단 파레토 법칙부터가....뭐 정말 가능하면 얼마나 해피하겠습니까마는... 이점은 이그나티우스 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들어가도 말씀하신 대안은 개별화 교육과 공동체교육의 교육목표의 지향성과 관련이 되어 좀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는 분명 공동체교육 (국민보통교육)에서 시작해 개별화 교육으로 나아가고 있지요. 나아가야 하구요. 하지만 역사적으로 공동체교육의 온갖 폐단을 겪었다고 해서 그 가치가 없다고 말하기엔 어려울 겁니다.
즐겁게/ 사실 자습을 중시하는 제 입장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저는 경쟁이 심한 시험들을 계속 쳐왔기 때문에 그만큼 문제풀이에 집착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반대로 즐겁게님처럼 일선에서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라면 또 당연히 견해가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그 부분은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교육의 공동체만들기 기능은 아직은 완전히 포기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학교를 완전히 없애자는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는거구요. 단, 말씀하신 대로 개별화교육과 공동체교육에 대한 논의는 더 필요한 것 같습... 더 보기
저도 교육의 공동체만들기 기능은 아직은 완전히 포기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학교를 완전히 없애자는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는거구요. 단, 말씀하신 대로 개별화교육과 공동체교육에 대한 논의는 더 필요한 것 같습... 더 보기
즐겁게/ 사실 자습을 중시하는 제 입장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저는 경쟁이 심한 시험들을 계속 쳐왔기 때문에 그만큼 문제풀이에 집착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반대로 즐겁게님처럼 일선에서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이라면 또 당연히 견해가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그 부분은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교육의 공동체만들기 기능은 아직은 완전히 포기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학교를 완전히 없애자는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는거구요. 단, 말씀하신 대로 개별화교육과 공동체교육에 대한 논의는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서열화 문제는 이게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조심스럽지만 최근에는 사회의 서열이 학교로 투영되기보다 학교에서 독자적으로 서열관계가 형성되고 그러한 질서가 아이들의 성장을 따라 사회로 침투하는 양상을 보이지 않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어릴적부터 인기가 있고 보스기질이 있는 녀석들이 어른이 되어 상급학교아 직장에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식으로 말이죠.
이러한 서열화에 대해 교육현장에서도 고민하고 계신다니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좋은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교육의 공동체만들기 기능은 아직은 완전히 포기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학교를 완전히 없애자는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는거구요. 단, 말씀하신 대로 개별화교육과 공동체교육에 대한 논의는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서열화 문제는 이게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조심스럽지만 최근에는 사회의 서열이 학교로 투영되기보다 학교에서 독자적으로 서열관계가 형성되고 그러한 질서가 아이들의 성장을 따라 사회로 침투하는 양상을 보이지 않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어릴적부터 인기가 있고 보스기질이 있는 녀석들이 어른이 되어 상급학교아 직장에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식으로 말이죠.
이러한 서열화에 대해 교육현장에서도 고민하고 계신다니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좋은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이 공립 교육의 무용론인지 학교의 무용론인지 헷갈리고 구체적으로 잘 파악하지 못하다가 구체적으로 교육방법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남깁니다.
자습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려면은
1. 학습의 방향성이 확실히 잡혀야 한다.
2. 1과 관련하여 학생들의 학습을 지속할 수 있는 내외적 동기가 확실히 있어야 한다.
입니다.
3. 새로 배울 내용 전 단계에 대해(선행 학습 정도)가 완벽해야 한다.
방향성이 있으려면은 주로 전제되어야 하는게, 켈러, 가녜, 라이겔루스 이론을 참고하자면 학습 내용 전반에 대한 위계와 전체적 구... 더 보기
자습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려면은
1. 학습의 방향성이 확실히 잡혀야 한다.
2. 1과 관련하여 학생들의 학습을 지속할 수 있는 내외적 동기가 확실히 있어야 한다.
입니다.
3. 새로 배울 내용 전 단계에 대해(선행 학습 정도)가 완벽해야 한다.
방향성이 있으려면은 주로 전제되어야 하는게, 켈러, 가녜, 라이겔루스 이론을 참고하자면 학습 내용 전반에 대한 위계와 전체적 구... 더 보기
말씀하신 내용이 공립 교육의 무용론인지 학교의 무용론인지 헷갈리고 구체적으로 잘 파악하지 못하다가 구체적으로 교육방법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남깁니다.
자습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려면은
1. 학습의 방향성이 확실히 잡혀야 한다.
2. 1과 관련하여 학생들의 학습을 지속할 수 있는 내외적 동기가 확실히 있어야 한다.
입니다.
3. 새로 배울 내용 전 단계에 대해(선행 학습 정도)가 완벽해야 한다.
방향성이 있으려면은 주로 전제되어야 하는게, 켈러, 가녜, 라이겔루스 이론을 참고하자면 학습 내용 전반에 대한 위계와 전체적 구조에 대한 이해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내용 전체에 대한 연관성과 구조를 전문가처럼 통달해야 하죠. 이걸 통달하는 학생들이 있을까요? 방향성 없이 일반화된 지식과 전이가 높은 핵심 개념이 무엇인지도 모를겁니다. 어떤 학생은 실패하고 어떤 학생은 이걸 파악하겠죠.
기계적인 수업이 강의식 수업과 등호가 성립하는게 아닙니다. 학생의 선행지식과 경험을 연관하여 그리고 간단한 핵심 정수에서부터 복잡한 내용에 이르기까지 효율적인 절차를 제시하는게 유의미한 강의식 수업입니다.
위에도 zel님이 지적하셨듯이 플립러닝은 학습내용을 학습자가 인강으로 배우고 학교 현장에선 그 내용을 적용하는 건데 인강 매체 특성 상 궁금한 부분에 대한 즉각적 피드백이 어렵고, 시간 때우기로 인강 보낼 수도 있어요. 그러다 보면은 기초 학습이 제대로 안된 인재 양성이 될 수도 있어요.
2. 자습을 하려면은 내외적 동기가 있어야 하죠. 본인 글에서는 주로 우리나라는 시험에 대한 압박이 크다고 말씀한 부분은 외적 동기에 대한 부분입니다. 사실은 외적 동기 중에서도 압박, 즉 강제성을 동원해서 진정한 동기유발이라고도 볼 수도 없구요. 이건 직업, 돈 같은 현실적인 외적 동기가 있다 정도를 말씀하신 걸로 이해하겠습니다. 선생님의 글에서 풍기는 뉘앙스를 보건데 본인은 이 외적 동기에 의한 학습 동기가 충분한 분 같아요. 근데 모든 학생들이 그렇지는 않아요. 이해력과 동기부여가 천차만별이거든요. 만약 외적 동기가 충만하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인지적으로 달성 불가하다고 느끼는 학습 과제를 만나서 포기하고, 어렵다 또는 아 나는 안되나보다 부정적 감정을 느낄거에요. 이게 지속되다 보면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아예 공부 놔버립니다. 아마 이것과 관련해서는 일대일 지원과 상담으로 해결하자는 말씀인 것 같기도 한데, 자습을 기본으로 한 학습에서 상담과 개별지원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쭉 보면서 느낀게 인지적 영역에서만 주로 학교교육을 얘기하시는 것 같아요. 교육 내적으로만 봐도 인지적 영역에 대한 학습도 있지만은 정의적(감정 도덕성) 영역에 대한 학습도 있습니다. 학습지도뿐만 아니라 성교육, 진로지도, 인성지도 사회성 지도 등 생활지도도 있구요. 제가 보기엔 본인 경험 때문인지 교육에서 인지적 영역 외 다른 부분을 너무 간과하시는 것 같아요. 분명 생활지도 측면에서는 신문에서 나오는 상황이 현장 다가 아니듯이 일정 기능을 분명히 하고 있거든요
자습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려면은
1. 학습의 방향성이 확실히 잡혀야 한다.
2. 1과 관련하여 학생들의 학습을 지속할 수 있는 내외적 동기가 확실히 있어야 한다.
입니다.
3. 새로 배울 내용 전 단계에 대해(선행 학습 정도)가 완벽해야 한다.
방향성이 있으려면은 주로 전제되어야 하는게, 켈러, 가녜, 라이겔루스 이론을 참고하자면 학습 내용 전반에 대한 위계와 전체적 구조에 대한 이해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내용 전체에 대한 연관성과 구조를 전문가처럼 통달해야 하죠. 이걸 통달하는 학생들이 있을까요? 방향성 없이 일반화된 지식과 전이가 높은 핵심 개념이 무엇인지도 모를겁니다. 어떤 학생은 실패하고 어떤 학생은 이걸 파악하겠죠.
기계적인 수업이 강의식 수업과 등호가 성립하는게 아닙니다. 학생의 선행지식과 경험을 연관하여 그리고 간단한 핵심 정수에서부터 복잡한 내용에 이르기까지 효율적인 절차를 제시하는게 유의미한 강의식 수업입니다.
위에도 zel님이 지적하셨듯이 플립러닝은 학습내용을 학습자가 인강으로 배우고 학교 현장에선 그 내용을 적용하는 건데 인강 매체 특성 상 궁금한 부분에 대한 즉각적 피드백이 어렵고, 시간 때우기로 인강 보낼 수도 있어요. 그러다 보면은 기초 학습이 제대로 안된 인재 양성이 될 수도 있어요.
2. 자습을 하려면은 내외적 동기가 있어야 하죠. 본인 글에서는 주로 우리나라는 시험에 대한 압박이 크다고 말씀한 부분은 외적 동기에 대한 부분입니다. 사실은 외적 동기 중에서도 압박, 즉 강제성을 동원해서 진정한 동기유발이라고도 볼 수도 없구요. 이건 직업, 돈 같은 현실적인 외적 동기가 있다 정도를 말씀하신 걸로 이해하겠습니다. 선생님의 글에서 풍기는 뉘앙스를 보건데 본인은 이 외적 동기에 의한 학습 동기가 충분한 분 같아요. 근데 모든 학생들이 그렇지는 않아요. 이해력과 동기부여가 천차만별이거든요. 만약 외적 동기가 충만하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인지적으로 달성 불가하다고 느끼는 학습 과제를 만나서 포기하고, 어렵다 또는 아 나는 안되나보다 부정적 감정을 느낄거에요. 이게 지속되다 보면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아예 공부 놔버립니다. 아마 이것과 관련해서는 일대일 지원과 상담으로 해결하자는 말씀인 것 같기도 한데, 자습을 기본으로 한 학습에서 상담과 개별지원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쭉 보면서 느낀게 인지적 영역에서만 주로 학교교육을 얘기하시는 것 같아요. 교육 내적으로만 봐도 인지적 영역에 대한 학습도 있지만은 정의적(감정 도덕성) 영역에 대한 학습도 있습니다. 학습지도뿐만 아니라 성교육, 진로지도, 인성지도 사회성 지도 등 생활지도도 있구요. 제가 보기엔 본인 경험 때문인지 교육에서 인지적 영역 외 다른 부분을 너무 간과하시는 것 같아요. 분명 생활지도 측면에서는 신문에서 나오는 상황이 현장 다가 아니듯이 일정 기능을 분명히 하고 있거든요
저도 서열화에 고민은 많으나 대책이 없는 사람이라 할 말이 별로 없지만 고민은 다각도로 해야한다고 생각하기에 댓글 내용에 한정하여 생각해보면,
그렇다면 학교가 아닌 홈스쿨링이나 다른 대인교육이면 다른 과정이 도출 될 수 있을 것인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상상력이 부족해서 결국 장소와 사람의 차이이지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적어도 서로에게 상처받는 일이 적을 수는 있지 않나, 의미를 찾으면 그게 생각나는데, 상처와 갈등 없는 인생 또한 말이 안되는데 그걸 피한다는 건 온실 속 화초를 키운다는 소리 아닌... 더 보기
그렇다면 학교가 아닌 홈스쿨링이나 다른 대인교육이면 다른 과정이 도출 될 수 있을 것인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상상력이 부족해서 결국 장소와 사람의 차이이지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적어도 서로에게 상처받는 일이 적을 수는 있지 않나, 의미를 찾으면 그게 생각나는데, 상처와 갈등 없는 인생 또한 말이 안되는데 그걸 피한다는 건 온실 속 화초를 키운다는 소리 아닌... 더 보기
저도 서열화에 고민은 많으나 대책이 없는 사람이라 할 말이 별로 없지만 고민은 다각도로 해야한다고 생각하기에 댓글 내용에 한정하여 생각해보면,
그렇다면 학교가 아닌 홈스쿨링이나 다른 대인교육이면 다른 과정이 도출 될 수 있을 것인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상상력이 부족해서 결국 장소와 사람의 차이이지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적어도 서로에게 상처받는 일이 적을 수는 있지 않나, 의미를 찾으면 그게 생각나는데, 상처와 갈등 없는 인생 또한 말이 안되는데 그걸 피한다는 건 온실 속 화초를 키운다는 소리 아닌가 싶구요.
결국 제가 생각하기에 본질은, 서열화가 잘못인 게 아니라( 서열화에 대한 판단이 어렵습니다) 서열화 과정과 이후에 나타나는 또래집단 내 잘못된 권력? 사용이라 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제대로 벌하기엔 자유도 없고 그래서 책임도 없는 아이를 기르는 사회라 해결이 안되네요.
여기까지로 정리가 되니 일개 1명이 무언가 할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 신세한탄마냥 댓글만 답니다. 뭔가 새로운 방향의, 더 좋은 대안과 생각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학교가 아닌 홈스쿨링이나 다른 대인교육이면 다른 과정이 도출 될 수 있을 것인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상상력이 부족해서 결국 장소와 사람의 차이이지 비슷한 일이 반복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적어도 서로에게 상처받는 일이 적을 수는 있지 않나, 의미를 찾으면 그게 생각나는데, 상처와 갈등 없는 인생 또한 말이 안되는데 그걸 피한다는 건 온실 속 화초를 키운다는 소리 아닌가 싶구요.
결국 제가 생각하기에 본질은, 서열화가 잘못인 게 아니라( 서열화에 대한 판단이 어렵습니다) 서열화 과정과 이후에 나타나는 또래집단 내 잘못된 권력? 사용이라 봅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제대로 벌하기엔 자유도 없고 그래서 책임도 없는 아이를 기르는 사회라 해결이 안되네요.
여기까지로 정리가 되니 일개 1명이 무언가 할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이렇게 신세한탄마냥 댓글만 답니다. 뭔가 새로운 방향의, 더 좋은 대안과 생각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너무 오랫동안 시험준비만 하다보니 너무 제 경험 위주로 흐른 것 같네요. 말씀하신 지적은 맞습니다. 확실히 제가 말하는 개선안은 동기부여가 잘 안되고 학업성취도 및 이해도가 떨어지는 학생들을 데려가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네요. 확실히 어떤 식으로든 세이프티 넷은 계속 존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인성교육 등 비교과영역의 교육에 대해서는 제가 다룰만한 범위를 넘는듯하여 굳이 언급하진 않았지만 제가 그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식으로든 학교에서 담당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말씀하신 인성교육 등 비교과영역의 교육에 대해서는 제가 다룰만한 범위를 넘는듯하여 굳이 언급하진 않았지만 제가 그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어떤 식으로든 학교에서 담당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네 저도 학생들에게 과도한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구조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부분까지 다루면 너무 이야기가 넓어져서 넣진 않았는데요, 저는 근본적으로 무자비한 경쟁의 시험을 쳐서 통과하지 못한 사람을 칼로 자르듯이 도태시키는 현 시스템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교육 및 입시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고 봅니다. 제가 말하는 개선안은 그러한 구조를 당장 바꿀수는 없으니 임시방편으로 당장 학생들이 겪는 시험공부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보자는 취지에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교사를 행정적인 부담없이 과목마다 1:1내지는 많아야 1:3 정도로 붙여주면 글쓴 분께서 꿈꾸시는 상황이 될 겁니다만 그럴리는 없죠 ㅎㅎ
그리고 주입식 교육 밖에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갈수록 다변화되고 학문에 대한 요구가 깊어지는 추세이고 대학에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교육 요구 수준이 높아지는 상황 속에서(물론 한국의 실제 교육과정은 점점 더 쉬워지고 있기는 하지만) 초중고를 거치며 가르쳐야할 내용은 기본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수준의 교육과정을 어디 시골 학교... 더 보기
그리고 주입식 교육 밖에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갈수록 다변화되고 학문에 대한 요구가 깊어지는 추세이고 대학에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교육 요구 수준이 높아지는 상황 속에서(물론 한국의 실제 교육과정은 점점 더 쉬워지고 있기는 하지만) 초중고를 거치며 가르쳐야할 내용은 기본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수준의 교육과정을 어디 시골 학교... 더 보기
교사를 행정적인 부담없이 과목마다 1:1내지는 많아야 1:3 정도로 붙여주면 글쓴 분께서 꿈꾸시는 상황이 될 겁니다만 그럴리는 없죠 ㅎㅎ
그리고 주입식 교육 밖에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갈수록 다변화되고 학문에 대한 요구가 깊어지는 추세이고 대학에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교육 요구 수준이 높아지는 상황 속에서(물론 한국의 실제 교육과정은 점점 더 쉬워지고 있기는 하지만) 초중고를 거치며 가르쳐야할 내용은 기본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수준의 교육과정을 어디 시골 학교가 아닌 이상 최소 한 번의 수업에 20~30명 이상 학급을 맡고 있고 행정적인 부담을 안고 있는 교사(오히려 작은 학교일수록 행정적인 부담은 더 큽니다. 학교 사이즈와 상관없이 해야할 일은 정해져 있고 교사의 수에 따라 업무과중도가 달라지니)가 가르치려면 결국 지식을 때려붓고 그 지식을 평가하는 교육 방법이 제일 효율적입니다. 이게 수업을 하다보면 이렇게 밖엔 갈 순 없습니다.
그 과정은 학생들에게 공부방법을 찾을 것을 강요하며 또한 냉정하게 말하자면 학업 수준을 채로 거르듯이 나눠주어 이후 사회에서도 맡을 역할을 어느정도 정해줍니다. 왜냐하면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지식이 실제 사회에서는 살아가는데 대부분 필요 없는 것이긴 하지만 어디에든 써먹을 수 있는 학업능력을 길러주는 겁니다. 실제로 업무능력이 학업 능력에 영향을 받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학업 능력 중 가장 핵심적인 게 분석과 구조화인데 이건 평생 일하면서 써먹을 수 있는거라.
하지만 걸러지는 것은 학업 수준일 뿐 학급~학년~학교 내에서 다양한 성격을 만나며 사회화를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도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사회에선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하며 자신의 문제를 처리해 나가는 게 인생인데, 이게 개인의 성격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타고난 사람이 아니면 여러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길러지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회 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사회화를 거쳤느냐 거치지 않았느냐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밖엔 없거든요. 그러한 사회화 환경을 비교적 안정적이고 통제적으로 제공해줄 수 있는 수단은 학교외엔 별로 없어요. 개인에게 맡기면 결국 부모의 재력과 인맥에 따라가는 거라, 사회를 완전히 역할과 재산으로 구분하고, 자신이 속한 작은 사회 말고는 교류를 없앨 수 있다면 지금의 학교는 필요없겠지만 그게 되는 사회가 오긴할까요?
게다가 교육은 대부분의 학부모가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보육의 기능을 일부 분담하고 있습니다. 가장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주어야만 하는 부모가 근무시간을 아무리 작게 잡아도 8시 반부터 5시까지는 보육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학생이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는 수단은 학교 외엔 없습니다. 그게 그렇게까지 필요 없었다고 생각하면 본인이 굉장히 독립적인 성격이거나 혹은 본인의 부모님이 돈이든 시간이든 투자할 수 있는 굉장히 부유한 상황이라는 거니 제가 드리는 말씀이 이해가 되지는 않을 겁니만 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은 학교를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결국 현재의 한국의 학교라는 현장은 나름 학문이 요구하는 것과 사회의 요구와 효율성, 그리고 필요와의 타협 사이에서 적당히 자리잡은 상황이고, 이 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현재의 사회 제도를 부정하는 것일 수 밖엔 없습니다.
물론 교육이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오롯이 학문적인 요구만을 충당할 수 없으며, 반대로 사회화와 사회의 요구만을 들어줄 수 없기도 하기에 지금의 상황이 되었을 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현재의 학교를 개혁하려면 사회 제도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며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반드시 따라와야 합니다. 모든 사회구조가 그렇듯 필요성의 대지 위에 세워진 것이 학교입니다.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주입식 교육 밖에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갈수록 다변화되고 학문에 대한 요구가 깊어지는 추세이고 대학에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교육 요구 수준이 높아지는 상황 속에서(물론 한국의 실제 교육과정은 점점 더 쉬워지고 있기는 하지만) 초중고를 거치며 가르쳐야할 내용은 기본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수준의 교육과정을 어디 시골 학교가 아닌 이상 최소 한 번의 수업에 20~30명 이상 학급을 맡고 있고 행정적인 부담을 안고 있는 교사(오히려 작은 학교일수록 행정적인 부담은 더 큽니다. 학교 사이즈와 상관없이 해야할 일은 정해져 있고 교사의 수에 따라 업무과중도가 달라지니)가 가르치려면 결국 지식을 때려붓고 그 지식을 평가하는 교육 방법이 제일 효율적입니다. 이게 수업을 하다보면 이렇게 밖엔 갈 순 없습니다.
그 과정은 학생들에게 공부방법을 찾을 것을 강요하며 또한 냉정하게 말하자면 학업 수준을 채로 거르듯이 나눠주어 이후 사회에서도 맡을 역할을 어느정도 정해줍니다. 왜냐하면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지식이 실제 사회에서는 살아가는데 대부분 필요 없는 것이긴 하지만 어디에든 써먹을 수 있는 학업능력을 길러주는 겁니다. 실제로 업무능력이 학업 능력에 영향을 받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학업 능력 중 가장 핵심적인 게 분석과 구조화인데 이건 평생 일하면서 써먹을 수 있는거라.
하지만 걸러지는 것은 학업 수준일 뿐 학급~학년~학교 내에서 다양한 성격을 만나며 사회화를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주는 것도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사회에선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하며 자신의 문제를 처리해 나가는 게 인생인데, 이게 개인의 성격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타고난 사람이 아니면 여러 다른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길러지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회 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사회화를 거쳤느냐 거치지 않았느냐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밖엔 없거든요. 그러한 사회화 환경을 비교적 안정적이고 통제적으로 제공해줄 수 있는 수단은 학교외엔 별로 없어요. 개인에게 맡기면 결국 부모의 재력과 인맥에 따라가는 거라, 사회를 완전히 역할과 재산으로 구분하고, 자신이 속한 작은 사회 말고는 교류를 없앨 수 있다면 지금의 학교는 필요없겠지만 그게 되는 사회가 오긴할까요?
게다가 교육은 대부분의 학부모가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보육의 기능을 일부 분담하고 있습니다. 가장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주어야만 하는 부모가 근무시간을 아무리 작게 잡아도 8시 반부터 5시까지는 보육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학생이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는 수단은 학교 외엔 없습니다. 그게 그렇게까지 필요 없었다고 생각하면 본인이 굉장히 독립적인 성격이거나 혹은 본인의 부모님이 돈이든 시간이든 투자할 수 있는 굉장히 부유한 상황이라는 거니 제가 드리는 말씀이 이해가 되지는 않을 겁니만 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은 학교를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결국 현재의 한국의 학교라는 현장은 나름 학문이 요구하는 것과 사회의 요구와 효율성, 그리고 필요와의 타협 사이에서 적당히 자리잡은 상황이고, 이 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현재의 사회 제도를 부정하는 것일 수 밖엔 없습니다.
물론 교육이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오롯이 학문적인 요구만을 충당할 수 없으며, 반대로 사회화와 사회의 요구만을 들어줄 수 없기도 하기에 지금의 상황이 되었을 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현재의 학교를 개혁하려면 사회 제도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며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반드시 따라와야 합니다. 모든 사회구조가 그렇듯 필요성의 대지 위에 세워진 것이 학교입니다.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도 말씀해주신 부분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학생 입장에서 엄청난 돈(물론 부모님이 주시는 것이긴 하지만)과 시간을 때려박아서 학교를 다녔는데, 상급학교 진학과 취업을 위한 공부는 따로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그렇지만 학생 입장에서 엄청난 돈(물론 부모님이 주시는 것이긴 하지만)과 시간을 때려박아서 학교를 다녔는데, 상급학교 진학과 취업을 위한 공부는 따로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말씀하신 그 부분을 공교육이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있고 사교육이 건드려주고 있다는 것은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학생 개인의 학문적인 요구를 전부 들어주기 위해선 충당해야 될 사회적인 비용이 지나치게 많기에 타협하는 과정에 자리잡은 게 현재의 학교라는 게 제가 드린 댓글의 요지입니다.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선 서로가 서로의 일정 부분을 희생할 수 밖엔 없다는 것은 한국을 떠나 어느 나라에서도 거부할 수 없는 사회 구성의 원리이고, 이에도 만족드리지 못한다면 더 이상 드릴 말씀은 없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그나티우스님도 그렇게 구성된 사회를 살아가며 일정 부분 이득을 보셨음을 부정하실 순 없을 거라고 봅니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시면서 본인의 요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셨으면 합니다.
다만 학생 개인의 학문적인 요구를 전부 들어주기 위해선 충당해야 될 사회적인 비용이 지나치게 많기에 타협하는 과정에 자리잡은 게 현재의 학교라는 게 제가 드린 댓글의 요지입니다.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선 서로가 서로의 일정 부분을 희생할 수 밖엔 없다는 것은 한국을 떠나 어느 나라에서도 거부할 수 없는 사회 구성의 원리이고, 이에도 만족드리지 못한다면 더 이상 드릴 말씀은 없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그나티우스님도 그렇게 구성된 사회를 살아가며 일정 부분 이득을 보셨음을 부정하실 순 없을 거라고 봅니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시면서 본인의 요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셨으면 합니다.
학교는 전인교육을 시키는곳이지요. 취업전 사회로 나가는 관문 역할을 하구요. 졸업하고 직장 생활하면 왕따 없을까요? 줄세우기 없을까요? 아니요. 학교의 확대된 또 다른 사회가 기다리지요.
학교는 안전한 울타리역할을 하지요. 직장은 바로 잘리지만 학교는 몇번 실수해도 다른 학교로 전학도 보내주고 근신도 가능해요. 여러모로 아카데믹한면도 중요하지만 사회성을 길러주는, 험한 세상으로부터 내성을 기르는 연습을 하게해주는곳이라고 보아요. 선생님들이 중재도 해주시구요.
전인교육의 장.. 청소, 정리, 시간관리, 학습준비 사회성 기... 더 보기
학교는 안전한 울타리역할을 하지요. 직장은 바로 잘리지만 학교는 몇번 실수해도 다른 학교로 전학도 보내주고 근신도 가능해요. 여러모로 아카데믹한면도 중요하지만 사회성을 길러주는, 험한 세상으로부터 내성을 기르는 연습을 하게해주는곳이라고 보아요. 선생님들이 중재도 해주시구요.
전인교육의 장.. 청소, 정리, 시간관리, 학습준비 사회성 기... 더 보기
학교는 전인교육을 시키는곳이지요. 취업전 사회로 나가는 관문 역할을 하구요. 졸업하고 직장 생활하면 왕따 없을까요? 줄세우기 없을까요? 아니요. 학교의 확대된 또 다른 사회가 기다리지요.
학교는 안전한 울타리역할을 하지요. 직장은 바로 잘리지만 학교는 몇번 실수해도 다른 학교로 전학도 보내주고 근신도 가능해요. 여러모로 아카데믹한면도 중요하지만 사회성을 길러주는, 험한 세상으로부터 내성을 기르는 연습을 하게해주는곳이라고 보아요. 선생님들이 중재도 해주시구요.
전인교육의 장.. 청소, 정리, 시간관리, 학습준비 사회성 기르기 모든 기초적인것들을 배우는곳이기에 온라인 학습이 제공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우리가 배울 수 있어요. 하지만 말씀하신 부작용도 있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다른 대안보다 가장 효율적으로 사회가 필요한 기능을 익히도록 인재를 배출해내는 역할을 하지요.
학교는 안전한 울타리역할을 하지요. 직장은 바로 잘리지만 학교는 몇번 실수해도 다른 학교로 전학도 보내주고 근신도 가능해요. 여러모로 아카데믹한면도 중요하지만 사회성을 길러주는, 험한 세상으로부터 내성을 기르는 연습을 하게해주는곳이라고 보아요. 선생님들이 중재도 해주시구요.
전인교육의 장.. 청소, 정리, 시간관리, 학습준비 사회성 기르기 모든 기초적인것들을 배우는곳이기에 온라인 학습이 제공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우리가 배울 수 있어요. 하지만 말씀하신 부작용도 있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다른 대안보다 가장 효율적으로 사회가 필요한 기능을 익히도록 인재를 배출해내는 역할을 하지요.
저도 대학다니면서 그런 느낌 참 많이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실제로 원하는 교육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사이의 차이가 너무 큽니다.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마치 대학원이라도 갈 것처럼 열심히 아카데믹한 지식을 가르치는데, 정작 사회에서는 시험점수나 기타 실용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잖아요? 그러다보니 학교는 그냥 출석만 하고 자격시험이나 공무원시험에 올인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또 이런 괴리 탓인지 대학 졸업한 동기들 만나봐도 하나같이 "학교에서 해주는게 너무 없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물론 대학이 취직용으로 다니... 더 보기
저도 대학다니면서 그런 느낌 참 많이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실제로 원하는 교육과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사이의 차이가 너무 큽니다.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마치 대학원이라도 갈 것처럼 열심히 아카데믹한 지식을 가르치는데, 정작 사회에서는 시험점수나 기타 실용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잖아요? 그러다보니 학교는 그냥 출석만 하고 자격시험이나 공무원시험에 올인하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또 이런 괴리 탓인지 대학 졸업한 동기들 만나봐도 하나같이 "학교에서 해주는게 너무 없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물론 대학이 취직용으로 다니는건 아니지만, 당장 졸업하고 취업이 눈앞에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너무 무관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대학원 가는 친구들을 위한 연구코스는 계속 남아 있어야겠지만. 실용적인 지식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무작정 아카데믹한 지식을 주입하는데 대해 개선할 부분은 없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대학교에 그정도 거금을 등록금으로
꼬박꼬박 내는거에 비하면 취업에는 큰 호용이 없죠. 사실 그정도 돈 받는거라면 졸업생 하나 하나 케어 해주면서 취업이나 진로방향
잡아줘도 시원찮을판에 그냥 알아서들 찾아보라
식인 대학이 전부일 정도니 학교의 가치에 의구심이 드는건 당연한거고요.
뭐 사실은 중학교 까지만 다녀도 또래 집단과의 인간관계 대처법 등등 집단생활은 왠만큼 터득하는게 대부분이고 대한민국 아래의 고등학교에서 배울만한거는 글쎄요. 저도 솔직히 학교 안다니고 집에서 독학으로 인터넷 강의 들으면 성적 오르는건 분명히 인... 더 보기
꼬박꼬박 내는거에 비하면 취업에는 큰 호용이 없죠. 사실 그정도 돈 받는거라면 졸업생 하나 하나 케어 해주면서 취업이나 진로방향
잡아줘도 시원찮을판에 그냥 알아서들 찾아보라
식인 대학이 전부일 정도니 학교의 가치에 의구심이 드는건 당연한거고요.
뭐 사실은 중학교 까지만 다녀도 또래 집단과의 인간관계 대처법 등등 집단생활은 왠만큼 터득하는게 대부분이고 대한민국 아래의 고등학교에서 배울만한거는 글쎄요. 저도 솔직히 학교 안다니고 집에서 독학으로 인터넷 강의 들으면 성적 오르는건 분명히 인... 더 보기
대학교에 그정도 거금을 등록금으로
꼬박꼬박 내는거에 비하면 취업에는 큰 호용이 없죠. 사실 그정도 돈 받는거라면 졸업생 하나 하나 케어 해주면서 취업이나 진로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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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 대학이 전부일 정도니 학교의 가치에 의구심이 드는건 당연한거고요.
뭐 사실은 중학교 까지만 다녀도 또래 집단과의 인간관계 대처법 등등 집단생활은 왠만큼 터득하는게 대부분이고 대한민국 아래의 고등학교에서 배울만한거는 글쎄요. 저도 솔직히 학교 안다니고 집에서 독학으로 인터넷 강의 들으면 성적 오르는건 분명히 인지 했었지만 막상 고등학교를 안다니면 뒷감당 때문에 국어시간에 수학풀고 미술시간에 영어 암기하고 참 귀찮은 방식으로 공부를 해왔었네요. 근데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절반 넘게 다른 과목책 피면서 공부했던거 보면은 그들도 고등학교 시스템의 부족한 점을 인지하고 있었던거 같네요.
꼬박꼬박 내는거에 비하면 취업에는 큰 호용이 없죠. 사실 그정도 돈 받는거라면 졸업생 하나 하나 케어 해주면서 취업이나 진로방향
잡아줘도 시원찮을판에 그냥 알아서들 찾아보라
식인 대학이 전부일 정도니 학교의 가치에 의구심이 드는건 당연한거고요.
뭐 사실은 중학교 까지만 다녀도 또래 집단과의 인간관계 대처법 등등 집단생활은 왠만큼 터득하는게 대부분이고 대한민국 아래의 고등학교에서 배울만한거는 글쎄요. 저도 솔직히 학교 안다니고 집에서 독학으로 인터넷 강의 들으면 성적 오르는건 분명히 인지 했었지만 막상 고등학교를 안다니면 뒷감당 때문에 국어시간에 수학풀고 미술시간에 영어 암기하고 참 귀찮은 방식으로 공부를 해왔었네요. 근데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절반 넘게 다른 과목책 피면서 공부했던거 보면은 그들도 고등학교 시스템의 부족한 점을 인지하고 있었던거 같네요.
'강압적 교육'마저도 쓸모가 있습니다.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은 강연문 "essential tension"에서 "성공한 과학자는 전통주의자이자 우상파괴자이다"고 했는데, 저는 이 말이 참 옳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지적행위는 존재하는 지식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지식의 진보는 현존하는 지식에 대한 비판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현존하는 지식을 비판하려면, 그 '문제 많은 낡은 지식'에 흠뻑 젖어들어야 합니다. 기존 지식의 오류를 정확하게 꿰뚫고 의미 있는 진보를 일궈내는 것은 낡은 지식을 철저히 익힌 사... 더 보기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은 강연문 "essential tension"에서 "성공한 과학자는 전통주의자이자 우상파괴자이다"고 했는데, 저는 이 말이 참 옳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지적행위는 존재하는 지식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지식의 진보는 현존하는 지식에 대한 비판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현존하는 지식을 비판하려면, 그 '문제 많은 낡은 지식'에 흠뻑 젖어들어야 합니다. 기존 지식의 오류를 정확하게 꿰뚫고 의미 있는 진보를 일궈내는 것은 낡은 지식을 철저히 익힌 사... 더 보기
'강압적 교육'마저도 쓸모가 있습니다.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은 강연문 "essential tension"에서 "성공한 과학자는 전통주의자이자 우상파괴자이다"고 했는데, 저는 이 말이 참 옳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지적행위는 존재하는 지식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지식의 진보는 현존하는 지식에 대한 비판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현존하는 지식을 비판하려면, 그 '문제 많은 낡은 지식'에 흠뻑 젖어들어야 합니다. 기존 지식의 오류를 정확하게 꿰뚫고 의미 있는 진보를 일궈내는 것은 낡은 지식을 철저히 익힌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뉴튼이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을 공부하지 않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것이 아니죠.
게다가 실용적 지식을 원한다면 그런 사람들을 위한 교육기관은 무수히 많습니다. 전문대학이 그런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문제는 전문대에 가는 것이 자신의 지적 욕구나 커리어에 더 도움 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University로 내몰린 것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지, 그러한 문제 때문에 대학교가 해야 할 역할을 수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애초에 그 '실용적 지식'이라는 것 자체가 이론연구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학교는 취업학원이 아닙니다. 글쓴분께서 비판하시는 그 '교수들'마저도 자신의 커리어는 자신이 도전하고 개척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은 강연문 "essential tension"에서 "성공한 과학자는 전통주의자이자 우상파괴자이다"고 했는데, 저는 이 말이 참 옳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지적행위는 존재하는 지식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지식의 진보는 현존하는 지식에 대한 비판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현존하는 지식을 비판하려면, 그 '문제 많은 낡은 지식'에 흠뻑 젖어들어야 합니다. 기존 지식의 오류를 정확하게 꿰뚫고 의미 있는 진보를 일궈내는 것은 낡은 지식을 철저히 익힌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뉴튼이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을 공부하지 않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것이 아니죠.
게다가 실용적 지식을 원한다면 그런 사람들을 위한 교육기관은 무수히 많습니다. 전문대학이 그런 사람들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문제는 전문대에 가는 것이 자신의 지적 욕구나 커리어에 더 도움 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University로 내몰린 것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지, 그러한 문제 때문에 대학교가 해야 할 역할을 수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게다가 애초에 그 '실용적 지식'이라는 것 자체가 이론연구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학교는 취업학원이 아닙니다. 글쓴분께서 비판하시는 그 '교수들'마저도 자신의 커리어는 자신이 도전하고 개척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말씀해 주신 부분은 이상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학문적 지식 참 좋아하고, 그런 깊이있는 지식을 젊은 사람들이 배울 수 있는 여유가 지금보다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진학, 시험, 취업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고, 이러한 벽을 넘지 않으면 사회에 제대로 안착할 수 없는데 이런 현실을 교육기관인 학교에서 외면하는게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이런 학생들이 Blackmore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가치있는 지식을 배우기를 원한다면 학생들이 진학, 시험, 취업을 걱정하지 않고 학생시절에는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먼저일 것이라 봅니다.
이외의 논점은 본문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서 별도로 코멘트하지 않겠습니다.
이외의 논점은 본문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서 별도로 코멘트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첨단의 아카데믹한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은 그대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부분은 학자양성 코스를 타지 않는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취업교육은 학원이나 전문대나 가라고 말씀하시는데 대부분의 물론 정론이시지만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현실적으로는 결국 회사원이나 공무원 등 직업인의 길을 택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대학이 변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다가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어떻습니까? 한가로이 학부시절에는 학문연구에 힘쓰다 졸업하면 적당히 취업이 되는 그런 상황이 아니에요.... 더 보기
취업교육은 학원이나 전문대나 가라고 말씀하시는데 대부분의 물론 정론이시지만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현실적으로는 결국 회사원이나 공무원 등 직업인의 길을 택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대학이 변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다가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어떻습니까? 한가로이 학부시절에는 학문연구에 힘쓰다 졸업하면 적당히 취업이 되는 그런 상황이 아니에요.... 더 보기
그래서 저도 첨단의 아카데믹한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은 그대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부분은 학자양성 코스를 타지 않는 일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취업교육은 학원이나 전문대나 가라고 말씀하시는데 대부분의 물론 정론이시지만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현실적으로는 결국 회사원이나 공무원 등 직업인의 길을 택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대학이 변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다가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어떻습니까? 한가로이 학부시절에는 학문연구에 힘쓰다 졸업하면 적당히 취업이 되는 그런 상황이 아니에요. 4년 내내 취업을 신경쓰지 않으면 졸업후 생계가 막막해지는게 현실입니다. 이런 심각한 현실을 정론만을 내세워 외면하는게 과연 대학생들에 대한 대학의 책임감 있는 태도인지는 의문이군요. 중국집애서도 손님이 찾으면 돈가스와 제육볶음을 파는게 일반 세상의 상식입니다.
취업교육은 학원이나 전문대나 가라고 말씀하시는데 대부분의 물론 정론이시지만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현실적으로는 결국 회사원이나 공무원 등 직업인의 길을 택한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대학이 변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다가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어떻습니까? 한가로이 학부시절에는 학문연구에 힘쓰다 졸업하면 적당히 취업이 되는 그런 상황이 아니에요. 4년 내내 취업을 신경쓰지 않으면 졸업후 생계가 막막해지는게 현실입니다. 이런 심각한 현실을 정론만을 내세워 외면하는게 과연 대학생들에 대한 대학의 책임감 있는 태도인지는 의문이군요. 중국집애서도 손님이 찾으면 돈가스와 제육볶음을 파는게 일반 세상의 상식입니다.
취업은 구직자 본인 책임이지 왜 그걸 대학 책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기소개서학 개론이라도 열어서 강의할까요? 구직자가 스스로를 어떻게 포장해서 팔아먹을지 알려주는 수업을 만들면 될까요? 업계별로 취업전략 세워서 준비하는 수업을 만들면 됩니까? 아예 금융계취업학과 / 제조업취업학과 이런식으로 학과를 만들면 님께서 말씀하시는 대학의 '책임'을 하는걸까요? 누가보면 대학에서 취업하는 법을 안가르쳐줘서 취업안되는 줄 알겠네요. 취업 안챙겨주는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불만족 스러우면 대학에 안오시면 됩니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대학들이 알아서 문 닫겠죠. 문 닫을 대학은 닫고 대학으로서 역할 할 곳은 대학의 역할을 하면 됩니다. 제발 대학을 망치려하지 말아주세요. 대학을 중국집 수준으로 보고 계시니 계속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시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그렇죠. 대학은 취업학원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학이 취업과 완전히 무관하냐? 이것도 너무 고정관념이라고 봅니다. 교육이란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취업을 위한 인재양성의 기능이 없다고 잘라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학문연구, 교육은 대학의 여러 기능 중 하나일 뿐이지 그것만이 유일한 기능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애시당초 대학이 순수히 학문만 연구하는 곳이었다는 지금처럼 고등교육이 보편화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거기다가 대학은 취업학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의 진로문제를 외면하기에는 지금 ... 더 보기
거기다가 대학은 취업학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의 진로문제를 외면하기에는 지금 ... 더 보기
말씀하시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그렇죠. 대학은 취업학원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학이 취업과 완전히 무관하냐? 이것도 너무 고정관념이라고 봅니다. 교육이란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취업을 위한 인재양성의 기능이 없다고 잘라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학문연구, 교육은 대학의 여러 기능 중 하나일 뿐이지 그것만이 유일한 기능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애시당초 대학이 순수히 학문만 연구하는 곳이었다는 지금처럼 고등교육이 보편화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거기다가 대학은 취업학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의 진로문제를 외면하기에는 지금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상황이 너무 안좋습니다. 대학에서 그런 학생들을 외면하는 것은 너무 냉정한 것이 아닐까요? 실제로 그런 고민이 있으니 대학에서는 고시반이나 자격시험반을 운영하는 곳이 많고, 학과 자체도 취업에 유리하도록 커리큘럼을 재조정하는 작업이 각 대학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대학에는 취업지원하는 부서가 있어서 학생들을 서포트하는 사업들을 합니다. 다만 그게 그렇게 크게 도움이 안될 뿐이지... 이런 변화가 모두 대학의 기능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변화와 맞물려있다고 봅니다. 바꿔서 말하면 Blackmore님의 말씀대로라면 대학들의 그러한 자구노력은 전부 대학의 본령에서 벗어나는 일이 될까요?
마지막으로 중국집의 예를 든 것은 공급하는 쪽에서 수요자의 요망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취지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여기서 중국집과 대학의 수준을 논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대학은 취업학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의 진로문제를 외면하기에는 지금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상황이 너무 안좋습니다. 대학에서 그런 학생들을 외면하는 것은 너무 냉정한 것이 아닐까요? 실제로 그런 고민이 있으니 대학에서는 고시반이나 자격시험반을 운영하는 곳이 많고, 학과 자체도 취업에 유리하도록 커리큘럼을 재조정하는 작업이 각 대학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대학에는 취업지원하는 부서가 있어서 학생들을 서포트하는 사업들을 합니다. 다만 그게 그렇게 크게 도움이 안될 뿐이지... 이런 변화가 모두 대학의 기능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변화와 맞물려있다고 봅니다. 바꿔서 말하면 Blackmore님의 말씀대로라면 대학들의 그러한 자구노력은 전부 대학의 본령에서 벗어나는 일이 될까요?
마지막으로 중국집의 예를 든 것은 공급하는 쪽에서 수요자의 요망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취지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여기서 중국집과 대학의 수준을 논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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