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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10/17 16:33:45 |
Name | 벤쟈민 |
Subject | 캐나다, '대마초' 전면 합법화..사회문제 가중 우려도 |
https://news.v.daum.net/v/20181017091202086?f=m 캐나다가 오늘부터 대마초를 전면 합법화합니다. 지난해 대마초의 법적 규제를 푼 남미 우루과이에 이어 세계 두 번째입니다.캐나다 국민들은 기호를 목적으로 대마초를 재배하고 소지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우리나라엔 대마초가 계속 불법이었으면 좋겠네요. 담배보다 약하다 그러시는 분들도 있는데 별로 그렇게까지 일관성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굳이 사회에 해가 되는 것을 추가로 도입할 필요가 없죠.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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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할만큼 해서 뭐 크게 더 문제되겠느냐... 이런 것도 있죠.
뭐 한국에서의 대마 문제야 사용자 자체가 너무 적어서 정치세력화할 수가 없으니 별 가능성이 없긴 한데, 금지 물품의 일관성 문제는 고려할 부분이긴 합니다. 결국 '금지된 것 이외에는 허용된 것이다' vs '허용된 것 이외에는 모두 금지된 것이다'의 자유의 범주에 대한 싸움이 있고 한국은 이 부분에서 후진적이랄까 과하게 권위주의적이거든요. 건강 유해성이 모든 금지의 합리화 기준으로 충분하다면 건기식이나 화장품 허가 문제에서도 사실 대마랑 똑같은 얘기가 나올 수 있는거라.
뭐 한국에서의 대마 문제야 사용자 자체가 너무 적어서 정치세력화할 수가 없으니 별 가능성이 없긴 한데, 금지 물품의 일관성 문제는 고려할 부분이긴 합니다. 결국 '금지된 것 이외에는 허용된 것이다' vs '허용된 것 이외에는 모두 금지된 것이다'의 자유의 범주에 대한 싸움이 있고 한국은 이 부분에서 후진적이랄까 과하게 권위주의적이거든요. 건강 유해성이 모든 금지의 합리화 기준으로 충분하다면 건기식이나 화장품 허가 문제에서도 사실 대마랑 똑같은 얘기가 나올 수 있는거라.
왜 유독 대마만 일관성에서 어긋나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죠. 거기에 한국의 대마금지법은 군부정권의 사회 통제 수단으로 처음 도입된, 국보법과 동일한 역사적 오류를 안고 있습니다. 대마만 일관성을 지킬 필요가 없다면, 빨갱이도 일관성을 지킬 필요가 없어요.
정신 혼란의 측면에서 본다면 관련 물질들은 어떠한 지점에서 임의의 선을 긋고, 이 선을 넘어간 것은 국가의 강력한 통제가 들어가고 넘어가지 않은 것은 개인의 자유와 책임에 맡겨집니다. 이 선이 빡빡하게 그일수록 권위주의적이고 널럴하게 그일수록 자유주의적인데, 대마가 극단적으로 한쪽... 더 보기
정신 혼란의 측면에서 본다면 관련 물질들은 어떠한 지점에서 임의의 선을 긋고, 이 선을 넘어간 것은 국가의 강력한 통제가 들어가고 넘어가지 않은 것은 개인의 자유와 책임에 맡겨집니다. 이 선이 빡빡하게 그일수록 권위주의적이고 널럴하게 그일수록 자유주의적인데, 대마가 극단적으로 한쪽... 더 보기
왜 유독 대마만 일관성에서 어긋나야 하는가의 문제가 있죠. 거기에 한국의 대마금지법은 군부정권의 사회 통제 수단으로 처음 도입된, 국보법과 동일한 역사적 오류를 안고 있습니다. 대마만 일관성을 지킬 필요가 없다면, 빨갱이도 일관성을 지킬 필요가 없어요.
정신 혼란의 측면에서 본다면 관련 물질들은 어떠한 지점에서 임의의 선을 긋고, 이 선을 넘어간 것은 국가의 강력한 통제가 들어가고 넘어가지 않은 것은 개인의 자유와 책임에 맡겨집니다. 이 선이 빡빡하게 그일수록 권위주의적이고 널럴하게 그일수록 자유주의적인데, 대마가 극단적으로 한쪽에 치우친 물질이 아니라는 것이 통설이고 그렇다면 한국의 시민들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정부에게 이런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시스템에 의해 통제받기를 원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외면되어온 질문이지요. 건강이 모든 문제를 합리화해주지 못합니다. 건강이 모든 걸 합리화해준다면, 사실 인터넷도 금지해야 해요.
정신 혼란의 측면에서 본다면 관련 물질들은 어떠한 지점에서 임의의 선을 긋고, 이 선을 넘어간 것은 국가의 강력한 통제가 들어가고 넘어가지 않은 것은 개인의 자유와 책임에 맡겨집니다. 이 선이 빡빡하게 그일수록 권위주의적이고 널럴하게 그일수록 자유주의적인데, 대마가 극단적으로 한쪽에 치우친 물질이 아니라는 것이 통설이고 그렇다면 한국의 시민들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정부에게 이런 질문을 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시스템에 의해 통제받기를 원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외면되어온 질문이지요. 건강이 모든 문제를 합리화해주지 못합니다. 건강이 모든 걸 합리화해준다면, 사실 인터넷도 금지해야 해요.
올 겨울 캐나다 연수 가서 들은 이야기 토대로 말씀드리면...
온타리오 주 쪽에서는 주정부 위원회가 운영하는 주류 판매점인 LCBO쪽에서 팔 거라고 들었습니다.
기사에도 나와있듯 주마다 정책이 달라서 연방법에 규정이 되었다 하더라도 주정부에서 도입 안하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저 재배 소지 역시 주에 따라 정책이 달라질것 같습니다.
저 정책이 아마 대마를 양지로 끌어내서 관리해보겠다는 의도가 있지 않나 싶어요.
Primary School은 모르겠으나 한국의 중-고교에 해당하는 Secondary School에서는 대... 더 보기
온타리오 주 쪽에서는 주정부 위원회가 운영하는 주류 판매점인 LCBO쪽에서 팔 거라고 들었습니다.
기사에도 나와있듯 주마다 정책이 달라서 연방법에 규정이 되었다 하더라도 주정부에서 도입 안하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저 재배 소지 역시 주에 따라 정책이 달라질것 같습니다.
저 정책이 아마 대마를 양지로 끌어내서 관리해보겠다는 의도가 있지 않나 싶어요.
Primary School은 모르겠으나 한국의 중-고교에 해당하는 Secondary School에서는 대... 더 보기
올 겨울 캐나다 연수 가서 들은 이야기 토대로 말씀드리면...
온타리오 주 쪽에서는 주정부 위원회가 운영하는 주류 판매점인 LCBO쪽에서 팔 거라고 들었습니다.
기사에도 나와있듯 주마다 정책이 달라서 연방법에 규정이 되었다 하더라도 주정부에서 도입 안하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저 재배 소지 역시 주에 따라 정책이 달라질것 같습니다.
저 정책이 아마 대마를 양지로 끌어내서 관리해보겠다는 의도가 있지 않나 싶어요.
Primary School은 모르겠으나 한국의 중-고교에 해당하는 Secondary School에서는 대마가 횡횡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연수간 곳에서도 대마로 퇴학당한 학생이 몇 있었습니다. 규모가 작은 사립학교여서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규모가 큰 공립학교 (Public school or Catholic school) 단위에서는 이미 단속 및 징계를 포기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사립학교 선생님이나, 홈스테이 주인이나 자기 자식들이 대마에 손대지 않을까 걱정하더라구요.
온타리오 주 쪽에서는 주정부 위원회가 운영하는 주류 판매점인 LCBO쪽에서 팔 거라고 들었습니다.
기사에도 나와있듯 주마다 정책이 달라서 연방법에 규정이 되었다 하더라도 주정부에서 도입 안하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저 재배 소지 역시 주에 따라 정책이 달라질것 같습니다.
저 정책이 아마 대마를 양지로 끌어내서 관리해보겠다는 의도가 있지 않나 싶어요.
Primary School은 모르겠으나 한국의 중-고교에 해당하는 Secondary School에서는 대마가 횡횡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연수간 곳에서도 대마로 퇴학당한 학생이 몇 있었습니다. 규모가 작은 사립학교여서 가능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규모가 큰 공립학교 (Public school or Catholic school) 단위에서는 이미 단속 및 징계를 포기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사립학교 선생님이나, 홈스테이 주인이나 자기 자식들이 대마에 손대지 않을까 걱정하더라구요.
근데 의료용으로 풀면 엔터테인먼트 푸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지금은 그냥 한국에서 대마가 산업적으로도 거의 쓰이지 않으니까(대체섬유같은 거 말고 약물로) 쓸 수도 없고 선택지도 아닌데, 의료용으로 풀게 되면 암시장의 형태로도 풀릴 수 밖에 없고, 또 사용되는 환자의 제한을 빡빡하게 하면 푸나 마나가 되는데다가 지금 대마가 아편계 약물에 비해서 이점을 보이는 환자군도 시한부 환자군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거동이 용이하고 외래 베이스로 진료보는 환자들이라서 실제 사용 가능할만큼 제한을 약하게 두면 가라 환자로 등록해서 피는 사람 분명히 나오고 그런 장사하는 병원이나 의사도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특수목적으로 풀거라면 엔터테인먼트 음용의 비범죄화도 같이 해야 되는 논리적인 문제가 있어서 가볍게 시작해볼 수가 없죠.
한국 마약류 감시는 굉장히 빡빡하긴 합니다. 그래서 규정 잘 지키는 사람들은 매우 피곤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이 샙니다. 그나마 진통제로 주로 쓰이는 것들은 앰플에 남은 것 빼돌리다가도 걸릴 수 있을 정도로 잡는데 향정신성의약품은 그 정도로 잡을 수가 없죠.
세상 어디건 물품 관리는 아무리 빡세게 해도 그것이 암시장에서 경제적 메리트가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빠져나갑니다. 최소화하고 사후 적발을 잘한다 정도일뿐 원천적으로 박살낼 수가 없어요. 군수물자조차도 빠져나가니까요. 여기에 대마의 경우 일단 식물 자체를 빼내서 소량으로... 더 보기
세상 어디건 물품 관리는 아무리 빡세게 해도 그것이 암시장에서 경제적 메리트가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빠져나갑니다. 최소화하고 사후 적발을 잘한다 정도일뿐 원천적으로 박살낼 수가 없어요. 군수물자조차도 빠져나가니까요. 여기에 대마의 경우 일단 식물 자체를 빼내서 소량으로... 더 보기
한국 마약류 감시는 굉장히 빡빡하긴 합니다. 그래서 규정 잘 지키는 사람들은 매우 피곤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이 샙니다. 그나마 진통제로 주로 쓰이는 것들은 앰플에 남은 것 빼돌리다가도 걸릴 수 있을 정도로 잡는데 향정신성의약품은 그 정도로 잡을 수가 없죠.
세상 어디건 물품 관리는 아무리 빡세게 해도 그것이 암시장에서 경제적 메리트가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빠져나갑니다. 최소화하고 사후 적발을 잘한다 정도일뿐 원천적으로 박살낼 수가 없어요. 군수물자조차도 빠져나가니까요. 여기에 대마의 경우 일단 식물 자체를 빼내서 소량으로 나눠서 키우면 적발도 쉽지 않은지라 산업화를 하면 암시장을 초래하는 건 거의 필연입니다. 지금도 몇몇 지역에서 보건소에서 대마밭 관리하고, 한국 야산에도 대마 자생지가 종종 발견될 정도인데 이게 큰 문제가 안되는 것은 한국에서 대마가 그리 인기있는 약물이 아니고, 한국산 대마의 약효가 그리 강한 편이 아니라서 암시장에서 덜 선택받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계속 재배량을 줄여버리고 있기도 하고요.
도덕성만으로는 뭐 어찌 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어디건 나쁜 놈은 있고, 그놈이 꼭 유별난 놈은 아니라서...
세상 어디건 물품 관리는 아무리 빡세게 해도 그것이 암시장에서 경제적 메리트가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빠져나갑니다. 최소화하고 사후 적발을 잘한다 정도일뿐 원천적으로 박살낼 수가 없어요. 군수물자조차도 빠져나가니까요. 여기에 대마의 경우 일단 식물 자체를 빼내서 소량으로 나눠서 키우면 적발도 쉽지 않은지라 산업화를 하면 암시장을 초래하는 건 거의 필연입니다. 지금도 몇몇 지역에서 보건소에서 대마밭 관리하고, 한국 야산에도 대마 자생지가 종종 발견될 정도인데 이게 큰 문제가 안되는 것은 한국에서 대마가 그리 인기있는 약물이 아니고, 한국산 대마의 약효가 그리 강한 편이 아니라서 암시장에서 덜 선택받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계속 재배량을 줄여버리고 있기도 하고요.
도덕성만으로는 뭐 어찌 하기 힘든 문제입니다. 어디건 나쁜 놈은 있고, 그놈이 꼭 유별난 놈은 아니라서...
리버테리언은 유행한지 좀 됐지요. 당장 저도 이 문제에 대해서 리버테리언들과 입장을 비슷하게 가지고 있는걸요. 내가 리버테리언이 아니라면 나만 안하면 될 일이기도 하고.
그리고 치료 옵션이라는 측면에서는 써보고 싶어하는 의사들도 꽤 있습니다. 종양쪽 보는 의사나 만성 근골격계 질환 보는 의사들은 대마가 치료옵션에 들어온다면 한 번 쯤 고려해보긴 할 겁니다. 진통제는 주관적인 감수성이 굉장히 많이 작용하는 약이고, 그 점에서 치료옵션 다각화 자체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걸 감수할 것이냐 아니냐에서 여러 판단이 얽히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위에도 말한 '우리는 얼마나 시스템에 의해 통제받기를 원하는가'라는 시민 사회의 논의가 필요한 것이죠.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하고 싶지 않으니 남도 하지 못하게 막아야겠다' 이상의 금지 근거를 좀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치료 옵션이라는 측면에서는 써보고 싶어하는 의사들도 꽤 있습니다. 종양쪽 보는 의사나 만성 근골격계 질환 보는 의사들은 대마가 치료옵션에 들어온다면 한 번 쯤 고려해보긴 할 겁니다. 진통제는 주관적인 감수성이 굉장히 많이 작용하는 약이고, 그 점에서 치료옵션 다각화 자체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걸 감수할 것이냐 아니냐에서 여러 판단이 얽히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위에도 말한 '우리는 얼마나 시스템에 의해 통제받기를 원하는가'라는 시민 사회의 논의가 필요한 것이죠.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하고 싶지 않으니 남도 하지 못하게 막아야겠다' 이상의 금지 근거를 좀 보고 싶습니다.
대마는 담배보다 중독성이 적다고 알려져있습니다..하지만 대마를 많은 양을 하면 환각 증세가 나타날수 있답니다. 대마가 하드코어 코케인 같은 마약으로 진입을 유도하는 전달자 역할을 합니다.
합법화경우는 대마에 관련된 산업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서 세금을 담배처럼 매길 수 있습니다. 다른건 의료적인면에서 통증을 잊게해준다고 알려져있어서 그런 이유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미국 고등학교에는 아에 갱이나 비행 청소년이 마약상인들 하수로 학교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대마를 판매합니다. 대마는 콜로라도산이 멕시코산보다 퀄리티가 좋다는 ㅠㅠ 믿거나 말거나..
합법화경우는 대마에 관련된 산업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와서 세금을 담배처럼 매길 수 있습니다. 다른건 의료적인면에서 통증을 잊게해준다고 알려져있어서 그런 이유로 사용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미국 고등학교에는 아에 갱이나 비행 청소년이 마약상인들 하수로 학교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대마를 판매합니다. 대마는 콜로라도산이 멕시코산보다 퀄리티가 좋다는 ㅠㅠ 믿거나 말거나..
전달자 역할을 한다는건 소위 관문 이론이라는 것인데 거의 부정되고 있습니다. 하드 드러그를 할거면 진작에 하거나, 하드 드러그로 넘어가도 대마를 병용하는 사람들이 원체 많아서요. 대마만 하고 다른 건 안하는 사람도 부지기수고.
캘리포니아 합법화 이후에 히피시절부터 40년 이상 대마를 빨아온 노인네들의 썰로는 '내 일생 최고로 깨끗하고 맛있는 대마를 지금 구할 수 있다' 드립도 친다고... 실제로 대마로 인해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는 대마 자체의 문제보다 대마에 묻어있는 제초제, 방부제, 기타 오염 물질에 의한 것이 더 크리티컬하다는 얘기도 나왔던 판이라, 이 부분이 해결된 합법 내수용 대마가 제일 안전하고 깨끗한 대마긴 할겁니다(..)
캘리포니아 합법화 이후에 히피시절부터 40년 이상 대마를 빨아온 노인네들의 썰로는 '내 일생 최고로 깨끗하고 맛있는 대마를 지금 구할 수 있다' 드립도 친다고... 실제로 대마로 인해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는 대마 자체의 문제보다 대마에 묻어있는 제초제, 방부제, 기타 오염 물질에 의한 것이 더 크리티컬하다는 얘기도 나왔던 판이라, 이 부분이 해결된 합법 내수용 대마가 제일 안전하고 깨끗한 대마긴 할겁니다(..)
담배의 주성분은 니코틴이니, 아세틸콜린성 신경전도물질입니다. 이 니코틴 수용체는 세군데 분포합니다.
1. 중추신경계
2. 신경-근 접합
3. 부교감신경계 절후신경
이중 (1)과 (2)가 중요한데, 결론적으로 중추신경계 흥분제겸 근육피로 회복제입니다.
담배 덕분에,
1. 젊어서 맑은 정신에 중노동을 견디며 생산에 참여하고
2. 동시에 막대한 세금을 내주고
3. 늙어서는 일찍 일찍 죽어줌으로써 사회 보장 재원을 절약시켜 줍니다.
국민 흡연률이 얼마로 감소하면, 국민 질병 의료비가 얼만가 감소하고, 그 대신... 더 보기
1. 중추신경계
2. 신경-근 접합
3. 부교감신경계 절후신경
이중 (1)과 (2)가 중요한데, 결론적으로 중추신경계 흥분제겸 근육피로 회복제입니다.
담배 덕분에,
1. 젊어서 맑은 정신에 중노동을 견디며 생산에 참여하고
2. 동시에 막대한 세금을 내주고
3. 늙어서는 일찍 일찍 죽어줌으로써 사회 보장 재원을 절약시켜 줍니다.
국민 흡연률이 얼마로 감소하면, 국민 질병 의료비가 얼만가 감소하고, 그 대신... 더 보기
담배의 주성분은 니코틴이니, 아세틸콜린성 신경전도물질입니다. 이 니코틴 수용체는 세군데 분포합니다.
1. 중추신경계
2. 신경-근 접합
3. 부교감신경계 절후신경
이중 (1)과 (2)가 중요한데, 결론적으로 중추신경계 흥분제겸 근육피로 회복제입니다.
담배 덕분에,
1. 젊어서 맑은 정신에 중노동을 견디며 생산에 참여하고
2. 동시에 막대한 세금을 내주고
3. 늙어서는 일찍 일찍 죽어줌으로써 사회 보장 재원을 절약시켜 줍니다.
국민 흡연률이 얼마로 감소하면, 국민 질병 의료비가 얼만가 감소하고, 그 대신 노령 복지 비용이 많이 증가한다는 시뮬레이션 연구가 있습니다.
1. 중추신경계
2. 신경-근 접합
3. 부교감신경계 절후신경
이중 (1)과 (2)가 중요한데, 결론적으로 중추신경계 흥분제겸 근육피로 회복제입니다.
담배 덕분에,
1. 젊어서 맑은 정신에 중노동을 견디며 생산에 참여하고
2. 동시에 막대한 세금을 내주고
3. 늙어서는 일찍 일찍 죽어줌으로써 사회 보장 재원을 절약시켜 줍니다.
국민 흡연률이 얼마로 감소하면, 국민 질병 의료비가 얼만가 감소하고, 그 대신 노령 복지 비용이 많이 증가한다는 시뮬레이션 연구가 있습니다.
꽤 많은 논쟁이 있고 사실상 결론나서 찾아보실만 할 겁니다. 말씀하신 부분의 경우 '대마가 약한 약물로서 강한 약물을 유도하는 성질을 가진다'가 아니라 '애초에 금지된 걸 하는 사람이 쉽게 찾는게 대마일 뿐이다'로 거의 결론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대마가 합법이면 대마가 아니라 LSD나 오르가즘이나 암페타민이 첫 마약이 될 뿐...
시니컬한 평가를 내리시긴 했지만 대강은 동의하는 바입니다.
다만 3번 사회보장재원에 대해서는, 담배를 펴서 폐암에 걸린 환자들이(그 인과관계는 아직 법정에서 인정이 안되었다 할지라도) 요즘 연명치료가 발달하면서 재원을 고갈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더해서 폐암에 듣는 표적항암제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들이 매우 비싼 약이라는 걸 생각하면,
폐암 걸려서 일찍 죽기보다 표적항암제 먹으면서 2~3년 혹은 그 이상 살면서 1년에 약값 5천만원 + 병원비 2천만원 도합 7천만원 정도씩 건보재정을 소진하는 방식으로 폐를 끼칠 수 있지 않을지요?
다만 3번 사회보장재원에 대해서는, 담배를 펴서 폐암에 걸린 환자들이(그 인과관계는 아직 법정에서 인정이 안되었다 할지라도) 요즘 연명치료가 발달하면서 재원을 고갈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더해서 폐암에 듣는 표적항암제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들이 매우 비싼 약이라는 걸 생각하면,
폐암 걸려서 일찍 죽기보다 표적항암제 먹으면서 2~3년 혹은 그 이상 살면서 1년에 약값 5천만원 + 병원비 2천만원 도합 7천만원 정도씩 건보재정을 소진하는 방식으로 폐를 끼칠 수 있지 않을지요?
뭐 개인적으로는 술담배도 극혐하는 터라 대마도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만...
다른 사람들이 하겠다는 걸 막긴 또 그렇죠.
절 귀찮게 하거나 제 근처에서 냄새만 좀 안 풍겼으면 좋겠네요.
다른 사람들이 하겠다는 걸 막긴 또 그렇죠.
절 귀찮게 하거나 제 근처에서 냄새만 좀 안 풍겼으면 좋겠네요.
대마 금지해야지요. 흡연자들 매너도 꼴불견이 수두룩한데 대마 허용되면 두 배로 꼴불견일 거 아니에요.
사람들 있는데서 대마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뭐라하면 대마는 위험하지 않다고 끝까지 할 진상들이 눈에 훤합니다.
사람들 있는데서 대마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뭐라하면 대마는 위험하지 않다고 끝까지 할 진상들이 눈에 훤합니다.
상대적으로 싼 가격과 접근성 때문에 대마의 허용이 삶의 질을 훨씬 올려주는 환자군이 존재합니다. 주로 거동이 가능하기는 하여 자립성이있으나 지속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 중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만이라도 대마의 허용이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대마의 사용이 널리 퍼진 국가에서 대마의 합법화, 그리고 그보다 비범죄화가 중요한 이유는 대마사용 및 유통을 특정인물이나 특정 커뮤니티를 범죄자로 만들어 사법적으로 조지는데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인것도 있습니다. 이런면에서 대마의 비범죄화는 더 광범... 더 보기
대마의 사용이 널리 퍼진 국가에서 대마의 합법화, 그리고 그보다 비범죄화가 중요한 이유는 대마사용 및 유통을 특정인물이나 특정 커뮤니티를 범죄자로 만들어 사법적으로 조지는데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인것도 있습니다. 이런면에서 대마의 비범죄화는 더 광범... 더 보기
상대적으로 싼 가격과 접근성 때문에 대마의 허용이 삶의 질을 훨씬 올려주는 환자군이 존재합니다. 주로 거동이 가능하기는 하여 자립성이있으나 지속적인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 중 여기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만이라도 대마의 허용이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대마의 사용이 널리 퍼진 국가에서 대마의 합법화, 그리고 그보다 비범죄화가 중요한 이유는 대마사용 및 유통을 특정인물이나 특정 커뮤니티를 범죄자로 만들어 사법적으로 조지는데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인것도 있습니다. 이런면에서 대마의 비범죄화는 더 광범위한 인권문제로 해석할수도있기에 이런 국가들에서는 일관성의 논지가 더 힘을 얻습니다. 한국에서 대마가 별로 널리 퍼져있지 않고, 가장 대표적으로 대마로 인해 범죄군에 속하게 된 사람들이 연애인일텐데, 아무리 연애인 좋아해도 연애인의 인권을 정치적으로 보호하자는 스탠스는 인기있는 입장이 아니니 한국에서 대마의 인권디펜스 변호는 듣기 힘들겠죠.
대마를 못견딜 정도의 사람이나 사회면 애초에 대마가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다 봅니다. 그냥 대마가 만만하게 까이기 좋은 포지션에있을 뿐이죠. 카페인이랑 뭐가 다를까 생각해봐도 좋죠. 카페인은 각성제인데 대놓고 중독되어있는 사람들 많자나요.
대마의 사용이 널리 퍼진 국가에서 대마의 합법화, 그리고 그보다 비범죄화가 중요한 이유는 대마사용 및 유통을 특정인물이나 특정 커뮤니티를 범죄자로 만들어 사법적으로 조지는데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인것도 있습니다. 이런면에서 대마의 비범죄화는 더 광범위한 인권문제로 해석할수도있기에 이런 국가들에서는 일관성의 논지가 더 힘을 얻습니다. 한국에서 대마가 별로 널리 퍼져있지 않고, 가장 대표적으로 대마로 인해 범죄군에 속하게 된 사람들이 연애인일텐데, 아무리 연애인 좋아해도 연애인의 인권을 정치적으로 보호하자는 스탠스는 인기있는 입장이 아니니 한국에서 대마의 인권디펜스 변호는 듣기 힘들겠죠.
대마를 못견딜 정도의 사람이나 사회면 애초에 대마가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다 봅니다. 그냥 대마가 만만하게 까이기 좋은 포지션에있을 뿐이죠. 카페인이랑 뭐가 다를까 생각해봐도 좋죠. 카페인은 각성제인데 대놓고 중독되어있는 사람들 많자나요.
음 그냥 외부 팩터 없이 끊어볼려고 다 노력했는데 제일 힘들더라고요. 담배는 두 번 만에 15년째, 술은 한 3년 인데 카페인은 1주도 못 끊은 듯
유교의 역사가 2500년이고, "대인호변, 군자표변"하듯이 변천해왔으므로 방대하다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시작과 종말은 결국 비트포겔의 주장대로 "수력제국의 유지" 이데올로기였다고 봅니다.
거기에는 개인,자유,자율,평등의 개념이 최후까지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송학에 형이상학으로서의 역사적 존재 의의는 있을 테지요. 그 실제적 쓰임새는 '정적 탄핵'이었지만.
그러나 그 시작과 종말은 결국 비트포겔의 주장대로 "수력제국의 유지" 이데올로기였다고 봅니다.
거기에는 개인,자유,자율,평등의 개념이 최후까지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송학에 형이상학으로서의 역사적 존재 의의는 있을 테지요. 그 실제적 쓰임새는 '정적 탄핵'이었지만.
우선 지적하고 넘어가야할 사실은 비트포겔의 하이드롤릭 데스퍼티즘은 이젠 아무도 진지하게 수용하지 않는 죽은 이론이란 거예요. 일단 말도 안되는 광역 일반화고, 헤겔리안이고, 오리엔탈리스트인데다, 환경결정론이며, 무엇보다도 실증자료로 뒷받침이 안돼요.
비트포겔을 읽어보셨는지 아니면 다른이가 비트포겔을 인용하는 걸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그거 첫장부터 막장까지 찬찬히 읽어보면 여러가지 의미로(?) 무척 재밌죠. 그의 분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아즈텍도 유교국가가 되는 셈인데... 반지의 제왕에서 중간계에 대한 썰 푸는 거 본다는 느낌... 더 보기
비트포겔을 읽어보셨는지 아니면 다른이가 비트포겔을 인용하는 걸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그거 첫장부터 막장까지 찬찬히 읽어보면 여러가지 의미로(?) 무척 재밌죠. 그의 분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아즈텍도 유교국가가 되는 셈인데... 반지의 제왕에서 중간계에 대한 썰 푸는 거 본다는 느낌... 더 보기
우선 지적하고 넘어가야할 사실은 비트포겔의 하이드롤릭 데스퍼티즘은 이젠 아무도 진지하게 수용하지 않는 죽은 이론이란 거예요. 일단 말도 안되는 광역 일반화고, 헤겔리안이고, 오리엔탈리스트인데다, 환경결정론이며, 무엇보다도 실증자료로 뒷받침이 안돼요.
비트포겔을 읽어보셨는지 아니면 다른이가 비트포겔을 인용하는 걸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그거 첫장부터 막장까지 찬찬히 읽어보면 여러가지 의미로(?) 무척 재밌죠. 그의 분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아즈텍도 유교국가가 되는 셈인데... 반지의 제왕에서 중간계에 대한 썰 푸는 거 본다는 느낌으로 보면 그럭저럭 재미는 있어요. 하지만 진지한 역사서로서의 가치는 이제 많지 않아요.
플러스, [유교]는 추천할 만한 '분석틀'이 아니에요. 그 까닭은 그게 방대해서도 오래되어서도 아니고 그냥 오염된 개념이어서 그래요.
분석의 언어로서의 [사회주의]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자면, 오늘날 중국에 가면 사회주의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어요. 부국강병도 사회주의 핵심가치고, 중국 공산당 당헌 당규도 사회주의고, 시진핑사상도 사회주의고, 북경대 막시즘 학회도 사회주의고, 그 막시즘 학회가 노동자 파업을 도왔다고 학회를 강제폐쇄한 학교당국도 사회주의고, 모두가 사회주의자예요.
이런 걸 우리 바닥에선 empty symbol이라고 불러요. 속이 빈 박스라 뭘 넣어도 되거든요. 그래서 박스 까보기 전엔 껍데기만 보고 아무 판단이 안돼요. empty symbol은 그래서 분석틀로서 가치가 거의 없어요... [시진핑은 사회주의자지요]라는 말로부터 우리가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거의 없어요.
유교도 마찬가진데, 아무데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놈이라 이게 분석의 대상이 된다면 모를까 분석의 도구로서는 무가치해요. 워낙 오랫동안 유교라는 박스 안에 이것저것을 담아오다보니 누가 유교인이다 누가 유교적이다라고 할 때 그게 무슨뜻인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거든요. 모종삼이나 당군의는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 유교러라고 생각하겠지만 가장 극단적인 자율도덕론자고, 박정희도 자기는 유교러라고 생각했겠지만 가장 극단적인 국가주의자라고 할 수 있지요. 모두가 유교러라고 말하지만 아무도 유교러가 아닌 상황에서 '유교때문이지요'라는 말은 분석적 가치를 갖기 어려워요.
예컨대, 우주님께서 말씀하신바 '유교이지요'를 '국가스케일로 확장된 가부장주의 때문이지요'라고 치환하면 말이 훨씬 명료해져요. 국가스케일로 확장된 가부장주의와 [유교] 사이엔 교집합이 존재하겠지만 양자를 동치하는 건 (후자 측의 개념적 오염으로 인해) 사실과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수없이 많은 불필요한 오해와 논쟁을 불러온다는...
비트포겔을 읽어보셨는지 아니면 다른이가 비트포겔을 인용하는 걸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그거 첫장부터 막장까지 찬찬히 읽어보면 여러가지 의미로(?) 무척 재밌죠. 그의 분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아즈텍도 유교국가가 되는 셈인데... 반지의 제왕에서 중간계에 대한 썰 푸는 거 본다는 느낌으로 보면 그럭저럭 재미는 있어요. 하지만 진지한 역사서로서의 가치는 이제 많지 않아요.
플러스, [유교]는 추천할 만한 '분석틀'이 아니에요. 그 까닭은 그게 방대해서도 오래되어서도 아니고 그냥 오염된 개념이어서 그래요.
분석의 언어로서의 [사회주의]를 예로 들어서 설명하자면, 오늘날 중국에 가면 사회주의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어요. 부국강병도 사회주의 핵심가치고, 중국 공산당 당헌 당규도 사회주의고, 시진핑사상도 사회주의고, 북경대 막시즘 학회도 사회주의고, 그 막시즘 학회가 노동자 파업을 도왔다고 학회를 강제폐쇄한 학교당국도 사회주의고, 모두가 사회주의자예요.
이런 걸 우리 바닥에선 empty symbol이라고 불러요. 속이 빈 박스라 뭘 넣어도 되거든요. 그래서 박스 까보기 전엔 껍데기만 보고 아무 판단이 안돼요. empty symbol은 그래서 분석틀로서 가치가 거의 없어요... [시진핑은 사회주의자지요]라는 말로부터 우리가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거의 없어요.
유교도 마찬가진데, 아무데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놈이라 이게 분석의 대상이 된다면 모를까 분석의 도구로서는 무가치해요. 워낙 오랫동안 유교라는 박스 안에 이것저것을 담아오다보니 누가 유교인이다 누가 유교적이다라고 할 때 그게 무슨뜻인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거든요. 모종삼이나 당군의는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 유교러라고 생각하겠지만 가장 극단적인 자율도덕론자고, 박정희도 자기는 유교러라고 생각했겠지만 가장 극단적인 국가주의자라고 할 수 있지요. 모두가 유교러라고 말하지만 아무도 유교러가 아닌 상황에서 '유교때문이지요'라는 말은 분석적 가치를 갖기 어려워요.
예컨대, 우주님께서 말씀하신바 '유교이지요'를 '국가스케일로 확장된 가부장주의 때문이지요'라고 치환하면 말이 훨씬 명료해져요. 국가스케일로 확장된 가부장주의와 [유교] 사이엔 교집합이 존재하겠지만 양자를 동치하는 건 (후자 측의 개념적 오염으로 인해) 사실과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수없이 많은 불필요한 오해와 논쟁을 불러온다는...
지적한 사항은 일부 인정할 만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유교"가 아무리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강고한 껍데기라면 방패처럼 쓰일 수 있고, 방패로도 스마이트 공격이 가능합니다.
유교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껍데기라는 표현을 사회주의뿐 아니라 기독교나 불교에 대하여도 할 수 있을 텐데, 거기에도 핵심 슬로건(선포)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유효하지요.
유교의 시작은 '신에 대한 제사'였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왕이 죽으면 신이 되고, 인민이 죽으면 귀가 됩니다마는, 귀도 때론 신이라 불러 줍니다. 신위, 신... 더 보기
그러나 "유교"가 아무리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강고한 껍데기라면 방패처럼 쓰일 수 있고, 방패로도 스마이트 공격이 가능합니다.
유교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껍데기라는 표현을 사회주의뿐 아니라 기독교나 불교에 대하여도 할 수 있을 텐데, 거기에도 핵심 슬로건(선포)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유효하지요.
유교의 시작은 '신에 대한 제사'였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왕이 죽으면 신이 되고, 인민이 죽으면 귀가 됩니다마는, 귀도 때론 신이라 불러 줍니다. 신위, 신... 더 보기
지적한 사항은 일부 인정할 만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유교"가 아무리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강고한 껍데기라면 방패처럼 쓰일 수 있고, 방패로도 스마이트 공격이 가능합니다.
유교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껍데기라는 표현을 사회주의뿐 아니라 기독교나 불교에 대하여도 할 수 있을 텐데, 거기에도 핵심 슬로건(선포)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유효하지요.
유교의 시작은 '신에 대한 제사'였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왕이 죽으면 신이 되고, 인민이 죽으면 귀가 됩니다마는, 귀도 때론 신이라 불러 줍니다. 신위, 신주단지..) 죽은 자에게 이럴진대, 산 자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것이 국가 전체, 아니 천하로 확대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강제됩니다.
세상에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여러 종류 있겠으나, "유교표 가부장적 권위주의"라면 "유교"라고 대유법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벤츠를 타고 다닌다.", "그는 하바드 출신이다."와 유사한 것이지요.
기표와 기의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애초에 좀 더 기술적 조작적인 용어를 썼더라면 토론을 절약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유교"가 아무리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강고한 껍데기라면 방패처럼 쓰일 수 있고, 방패로도 스마이트 공격이 가능합니다.
유교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껍데기라는 표현을 사회주의뿐 아니라 기독교나 불교에 대하여도 할 수 있을 텐데, 거기에도 핵심 슬로건(선포)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유효하지요.
유교의 시작은 '신에 대한 제사'였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왕이 죽으면 신이 되고, 인민이 죽으면 귀가 됩니다마는, 귀도 때론 신이라 불러 줍니다. 신위, 신주단지..) 죽은 자에게 이럴진대, 산 자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것이 국가 전체, 아니 천하로 확대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강제됩니다.
세상에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여러 종류 있겠으나, "유교표 가부장적 권위주의"라면 "유교"라고 대유법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벤츠를 타고 다닌다.", "그는 하바드 출신이다."와 유사한 것이지요.
기표와 기의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애초에 좀 더 기술적 조작적인 용어를 썼더라면 토론을 절약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귀와 신은 그런식으로 구분되지 않아요. 귀와 신에 대한 아마도 가장 권위있는 해석은 주희의 중용장구에서 나올 텐데 (왜 권위있냐하면 그냥 대부분 그걸 인용하니까...) 신은 양이고 귀는 음이고.. 그게 다예요. 사람은 아니고 뭔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데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 중에 좀 대낮에 있을 법도 하면 신이고 밤중에 나올 법하면 귀고 그런 거지요. 귀와 신의 구분에는 계급적 성격이 없거나 희박해요.
유교의 시작이 신에 대한 제사인 것도 아니에요. 중국인의 국가건설이 망자에 대한 제사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한다면 그건 맞... 더 보기
유교의 시작이 신에 대한 제사인 것도 아니에요. 중국인의 국가건설이 망자에 대한 제사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한다면 그건 맞... 더 보기
귀와 신은 그런식으로 구분되지 않아요. 귀와 신에 대한 아마도 가장 권위있는 해석은 주희의 중용장구에서 나올 텐데 (왜 권위있냐하면 그냥 대부분 그걸 인용하니까...) 신은 양이고 귀는 음이고.. 그게 다예요. 사람은 아니고 뭔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데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 중에 좀 대낮에 있을 법도 하면 신이고 밤중에 나올 법하면 귀고 그런 거지요. 귀와 신의 구분에는 계급적 성격이 없거나 희박해요.
유교의 시작이 신에 대한 제사인 것도 아니에요. 중국인의 국가건설이 망자에 대한 제사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한다면 그건 맞는 말이에요. 고고학적 발굴성과로 보면 중국대륙 거주민의 망자추모 현상 (독립된 제단의 존재)는 BC5천년 이전까지 올라가니까요. 하지만 유학자라는 identity를 표방하는 일군의 집단이 등장한 시기는 넉넉잡아도 BC4세기 이전으로는 거슬러올라가지 않아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제사행위는 그보다 4,500년 정도 더 전부터 있어왔던 거예요. 몇몇 유교인의 주장은 (너나 나나 모두가 다 알고 또 지난 수천년 간 수행해온 바로 그) 제사행위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질문을 해보자는 것이었구요.
문제는 위의 설명조차도 이젠 학계에서 나름 과감한 해석 취급을 받는다는 거예요. 보다 더 엄밀하고 조심스런 학자들은 12세기 이전에는 유교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다고 말하거든요. 이게 왜 그런가하면, 우리가 회고적으로 (retrospectively) 유학자라고 지목하는 12세기 이전의 위정자/학자/관료들의 상당수는 자기들이 유교인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요.
'이건 A로군요'라는 말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 언명이 발화와 동시에 B, C, D와 같은 다른 가능항들을 제거해줘야만 해요. 어떤 정체불명의 음료를 마시고서 '이건 사과쥬스로군요'라는 말을 했을 때 그 발화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 말을 함으로써 다른 가능성들, 예컨대 파인애플쥬스, 우유, 물, 방사능홍차 등등이 제거되기 때문이에요. 바로 그런 연유로 12세기 이전 학자/관료/위정자에게 '너는 유교인이로구나'라고 말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게 해당 발화를 통해서 다른 가능항이 제거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한 번은 공자맹자 운운하는 거 같은데 잠시 후에 보면 불경 외고있고 그 다음 순간에 보면 도사들이랑 뭐라고 얘기하다가 단약 같은 거 받아서 먹고 명상하고있고 또 시간이 지나서 다시 살펴보면 조정에 입궐해서 당 태조 당 태종에게 바치는 국가의례를 열심히 수행하는 것 같은데 또 한 3년 지나고 보면 무슨 절도사랑 손잡고 황제가 보낸 관료 참수하고 있고 이런 상황이라서... 어딜 봐도 유교인으로서의 identity를 콕 집어서 확립하기가 어렵지요.
또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설령 백보 양보해서 유교가 'XXX로 시작했다'는 명제를 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더라도 시작점에서의 특징이란 게 과연 지금 이 순간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에 대해선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해요. 말하자면, 발생론과 본질론을 구분해서 봐야한다는 거예요. X가 Y로부터 발생했다는 사실이 반드시 X의 본질이 Y임을 말해주진 않거든요. 기독교의 신은 특정 민족의 조상신/전쟁신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지금 기독교는 그 특정 민족과도 별 상관 없고 전쟁신과도 상관 없지요. 원래 농경과는 거의 상관이 없었지만 이젠 교회가서 풍년을 기원해도 아무 상관 없지요. 당시 중근동에서 제일 유명한 농경신은 바알이었고 야훼는 목축신에 가까웠는데... 이제 시간이 지나 풍년들게해주세요 기도 듣고 있는 야훼는 무슨 심경일까요. 심지어 이집트 시절의 유대신은 남신/여신의 커플신이었다는 증거가 있지만 그게 현금의 기독교의 신성해석에 무슨 영향을 주진 못하지요.
기독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걸 조금 더 밀고나가면 유대/기독교야말로 신에 대한 제사와 절대복종으로부터 시작한 지독한 가부장적 권위주의 종교라고 할 수 있어요. 가부장제라는 말은 원래 동양 어디에도 없던 말이에요. 영어의 patriarchism을 번역하면서 처음 등장했지요. patriarch의 어원은 유대 가부장 족장이구요. 당시 유대교의 특징을 하나만 들라면 신의 절대적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고, 이 '신'은 다름아니라 당시 중근동에서 '왕'이 갖는 지위와 권위를 추상화시킨 것에 불과하구요. 그래서 기독/유대교의 신이 자꾸만 '왕'으로 불리는 것은 단순한 메타포가 아니예요. 절대권력을 가진 남성지배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경험이 역사적으로 누적되면서 그것을 추상화해낸 결과가 '신'인 거라서 신을 왕으로 부르고 왕을 신으로 불러도 다 일맥상통하는 것. 하지만 그게 그렇다고해서, 예를 들어, 프로테스턴티즘의 [본질]이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선양하는 제사공동체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그렇지 않을 수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역사학 자체에 대한 메타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한 번 들어보세요. 이건 우주님 개인이 이런 케이스에 해당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제가 우주님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이들과 이야기해본 결과를 뭉뜽그려 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니 우주님 인신에 대한 비판으로 생각하지 마시길.
역사학은, 누적된 거대한 데이터에다 특정 질문을 던져서 그 질문에 직접 걸려서 올라오는 검색결과를 살펴보고 그걸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구글과 닮았어요. 그러므로, 실제로 누적된 데이터를 사용할 뿐 데이터를 만들어내거나 창조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실증학문이지만, 어떤 검색어를 던질지는 학자의 자유재량에 달려있으며 검색어에 따라 걸려나오는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언제까지나 인문학이에요. 역사학이란 과거와 [현대]의 대화라는 말도 이런 의미에서 나온 거구요.
과거는 달라지지 않지만 현대는 달라져요. 그래서 달라진 현대가 달라진 검색어를 던지면 또 다른 결과가 나와버리지요. 이때 현대인 당사자는 자기가 던진 검색어가 얼마나 현대의 맥락에 의해 제약된, 우연한, 아주 특수한 검색어인지 자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이 획득한 검색결과를 '객관적'이라고 믿어버리려는 경향이 있어요.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1. 20세기 중-후반에 활약했던 서구의 유수한 중국사학자들은 전근대 중국이 얼마나 통제되고 폐쇄적인 국가였는지 강조하는데 열을 올렸어요. 물론 실제로, 예컨대, 명나라에 그런 폐쇄적 측면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에 반대되는 증거도 꽤 많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증거를 평가절하하거나 아예 찾아볼 생각도 안하고 폐쇄성 담론에 우호적인 증거를 적극적으로 발굴해서 발표했던 것은 그들이 비양심적이고 게으른 학자들이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그저 그들이 보고 듣고 겪은 현대 중국이 너무나도 전제적이고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 어려워서 그랬던 거예요. 그러니까, 모택동의 중국을 계속 보고있자니 주원장의 중국도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거지요. 지금은 ㅎㅎㅎㅎ 명나라가 문혁이나 대약진운동하던 근대 중공같은 나라였다고 주장하는 쪽이 오히려 드물죠. 물론 이는 현대 중국의 격변으로 인하여 학자들이 기존의 '생각의 박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구요.
2. 19세기말 20세기초 일본 최고의 지성들은 일본이 유신에 성공하고 중국이 근대화에 실패한 이유는 중국 사회의 능력주의(meritocray), 활발한 계층이동(social mobility), 사회 일반에 대한 국가의 대단히 느슨한 통제력 때문이라고 거의 일치된 의견을 내놓았어요. 저게 당시에 일반적인 견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사회가 반-능력주의(혈연주의), 엄격하게 금지된 계층이동, 사회 일반에 대한 각급 공동체의 대단히 강력한 통제로 대별되는 사회였기 때문이구요. 대표적인 비유교국가가 대표적인 유교국가한테 그 유교국가적 특징으로 능력주의와 계층이동, 약한 통제를 거론하다니 ㅎㅎ 신기하지 않나요?
3. 위와 같은 일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역사 지식의 생산과정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반대여서 그래요. 우리는 먼저 말끔하게 백지상태로 마음을 리셋시킨 후 객관적으로 사료를 읽은 뒤 그로부터 이런저런 결론을 추출해낸다고 생각하지만 (혹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먼저 주변으로부터 보고들은 바로부터 원관념(primal image)을 생성시키고, 이 원관념을 가설(hypothesis)로 삼은 뒤 사료들을 동원해 이 가설을 검증하는 식으로 역사학 연구가 이루어지거든요. 모택동시기 중국의 이미지가 당시 서구 학자들의 원관념이었던 셈이고, 에도막부의 대척점으로 상정된 청나라의 이미지가 당시 일본학자들의 원관념이었던 셈이지요.
4. 국내에서 70~80년대 사이에 대학을 다니며 훈련받은 인문학자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유교의 원관념은 방학 때 시골에 내려가서 본 아빠, 추석과 설날에 차려진 제삿상 및 이어지는 술상에 둘러 앉은 백부 숙부 당숙들, 학생들을 쥐어팬 고등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경험의 총화이자 본원으로 상상된 국부 박정희와 그의 후계자 전두환이에요. 이것이 대학 및 미디어 등지에서 접한 미국의 이미지와 뚜렷하게 대조되면서 자유구미/부자유동양이라는 이분된 구조를 만들고, 이 구조를 설명해주는 헤겔주의 역사관을 접하면서 원관념이 되지요. 이 시기에 지적 훈련을 받은 학자들의 아주 많은 수가 '유교'라는 키워드로 역사라는 데이터베이스에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이와 같은 강력한 원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상황이 이렇다보니 검색결과가 이 원관념을 보강하는 쪽으로 나타나거나, 최소한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던 건 당연지사였어요.
이들의 논문과 저서에 나타난 조선의 전제왕권은 5공이고, 조선조가 탄압한 역모사건은 광주고, 조선조의 정당화수단으로서의 주자학은 메카시즘/민족적 민주주의고... 후자를 전자로 직역한 거지요. 더불어 이런 논문과 저서를 쓴 저자들의 유교를 향한 타오르는 적개심은 박정희와 전두환과 고등학교 선생님과 아빠와 백부와 숙부와 당숙을 향한 적개심이 번역된 것인 경우가 많구요.
이들이 생각하는 유교란, 그래서, 대개의 경우 삼강오륜&남아선호&군사부일체로 요약돼요. 그건 유교라기보단 권위주의고, 유교라기보단 가부장적 가족주의고, 유교라기보단 근세기의 한국이고, 공자라기보단 박정희인데 말이죠.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사]는 게 아니라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사는 건데, 박정희라는 이름을 쓰기 싫었는지 어쨌는지 그냥 박정희를 공자라는 빈 상자에 넣었던 거지요.
유교의 시작이 신에 대한 제사인 것도 아니에요. 중국인의 국가건설이 망자에 대한 제사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한다면 그건 맞는 말이에요. 고고학적 발굴성과로 보면 중국대륙 거주민의 망자추모 현상 (독립된 제단의 존재)는 BC5천년 이전까지 올라가니까요. 하지만 유학자라는 identity를 표방하는 일군의 집단이 등장한 시기는 넉넉잡아도 BC4세기 이전으로는 거슬러올라가지 않아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제사행위는 그보다 4,500년 정도 더 전부터 있어왔던 거예요. 몇몇 유교인의 주장은 (너나 나나 모두가 다 알고 또 지난 수천년 간 수행해온 바로 그) 제사행위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질문을 해보자는 것이었구요.
문제는 위의 설명조차도 이젠 학계에서 나름 과감한 해석 취급을 받는다는 거예요. 보다 더 엄밀하고 조심스런 학자들은 12세기 이전에는 유교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다고 말하거든요. 이게 왜 그런가하면, 우리가 회고적으로 (retrospectively) 유학자라고 지목하는 12세기 이전의 위정자/학자/관료들의 상당수는 자기들이 유교인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그래요.
'이건 A로군요'라는 말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 언명이 발화와 동시에 B, C, D와 같은 다른 가능항들을 제거해줘야만 해요. 어떤 정체불명의 음료를 마시고서 '이건 사과쥬스로군요'라는 말을 했을 때 그 발화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 말을 함으로써 다른 가능성들, 예컨대 파인애플쥬스, 우유, 물, 방사능홍차 등등이 제거되기 때문이에요. 바로 그런 연유로 12세기 이전 학자/관료/위정자에게 '너는 유교인이로구나'라고 말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는게 해당 발화를 통해서 다른 가능항이 제거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한 번은 공자맹자 운운하는 거 같은데 잠시 후에 보면 불경 외고있고 그 다음 순간에 보면 도사들이랑 뭐라고 얘기하다가 단약 같은 거 받아서 먹고 명상하고있고 또 시간이 지나서 다시 살펴보면 조정에 입궐해서 당 태조 당 태종에게 바치는 국가의례를 열심히 수행하는 것 같은데 또 한 3년 지나고 보면 무슨 절도사랑 손잡고 황제가 보낸 관료 참수하고 있고 이런 상황이라서... 어딜 봐도 유교인으로서의 identity를 콕 집어서 확립하기가 어렵지요.
또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설령 백보 양보해서 유교가 'XXX로 시작했다'는 명제를 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더라도 시작점에서의 특징이란 게 과연 지금 이 순간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에 대해선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해요. 말하자면, 발생론과 본질론을 구분해서 봐야한다는 거예요. X가 Y로부터 발생했다는 사실이 반드시 X의 본질이 Y임을 말해주진 않거든요. 기독교의 신은 특정 민족의 조상신/전쟁신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지금 기독교는 그 특정 민족과도 별 상관 없고 전쟁신과도 상관 없지요. 원래 농경과는 거의 상관이 없었지만 이젠 교회가서 풍년을 기원해도 아무 상관 없지요. 당시 중근동에서 제일 유명한 농경신은 바알이었고 야훼는 목축신에 가까웠는데... 이제 시간이 지나 풍년들게해주세요 기도 듣고 있는 야훼는 무슨 심경일까요. 심지어 이집트 시절의 유대신은 남신/여신의 커플신이었다는 증거가 있지만 그게 현금의 기독교의 신성해석에 무슨 영향을 주진 못하지요.
기독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걸 조금 더 밀고나가면 유대/기독교야말로 신에 대한 제사와 절대복종으로부터 시작한 지독한 가부장적 권위주의 종교라고 할 수 있어요. 가부장제라는 말은 원래 동양 어디에도 없던 말이에요. 영어의 patriarchism을 번역하면서 처음 등장했지요. patriarch의 어원은 유대 가부장 족장이구요. 당시 유대교의 특징을 하나만 들라면 신의 절대적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고, 이 '신'은 다름아니라 당시 중근동에서 '왕'이 갖는 지위와 권위를 추상화시킨 것에 불과하구요. 그래서 기독/유대교의 신이 자꾸만 '왕'으로 불리는 것은 단순한 메타포가 아니예요. 절대권력을 가진 남성지배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경험이 역사적으로 누적되면서 그것을 추상화해낸 결과가 '신'인 거라서 신을 왕으로 부르고 왕을 신으로 불러도 다 일맥상통하는 것. 하지만 그게 그렇다고해서, 예를 들어, 프로테스턴티즘의 [본질]이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선양하는 제사공동체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그렇지 않을 수 있거든요.
마지막으로, 역사학 자체에 대한 메타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한 번 들어보세요. 이건 우주님 개인이 이런 케이스에 해당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제가 우주님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이들과 이야기해본 결과를 뭉뜽그려 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니 우주님 인신에 대한 비판으로 생각하지 마시길.
역사학은, 누적된 거대한 데이터에다 특정 질문을 던져서 그 질문에 직접 걸려서 올라오는 검색결과를 살펴보고 그걸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구글과 닮았어요. 그러므로, 실제로 누적된 데이터를 사용할 뿐 데이터를 만들어내거나 창조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실증학문이지만, 어떤 검색어를 던질지는 학자의 자유재량에 달려있으며 검색어에 따라 걸려나오는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언제까지나 인문학이에요. 역사학이란 과거와 [현대]의 대화라는 말도 이런 의미에서 나온 거구요.
과거는 달라지지 않지만 현대는 달라져요. 그래서 달라진 현대가 달라진 검색어를 던지면 또 다른 결과가 나와버리지요. 이때 현대인 당사자는 자기가 던진 검색어가 얼마나 현대의 맥락에 의해 제약된, 우연한, 아주 특수한 검색어인지 자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신이 획득한 검색결과를 '객관적'이라고 믿어버리려는 경향이 있어요.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1. 20세기 중-후반에 활약했던 서구의 유수한 중국사학자들은 전근대 중국이 얼마나 통제되고 폐쇄적인 국가였는지 강조하는데 열을 올렸어요. 물론 실제로, 예컨대, 명나라에 그런 폐쇄적 측면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에 반대되는 증거도 꽤 많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증거를 평가절하하거나 아예 찾아볼 생각도 안하고 폐쇄성 담론에 우호적인 증거를 적극적으로 발굴해서 발표했던 것은 그들이 비양심적이고 게으른 학자들이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그저 그들이 보고 듣고 겪은 현대 중국이 너무나도 전제적이고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 어려워서 그랬던 거예요. 그러니까, 모택동의 중국을 계속 보고있자니 주원장의 중국도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거지요. 지금은 ㅎㅎㅎㅎ 명나라가 문혁이나 대약진운동하던 근대 중공같은 나라였다고 주장하는 쪽이 오히려 드물죠. 물론 이는 현대 중국의 격변으로 인하여 학자들이 기존의 '생각의 박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구요.
2. 19세기말 20세기초 일본 최고의 지성들은 일본이 유신에 성공하고 중국이 근대화에 실패한 이유는 중국 사회의 능력주의(meritocray), 활발한 계층이동(social mobility), 사회 일반에 대한 국가의 대단히 느슨한 통제력 때문이라고 거의 일치된 의견을 내놓았어요. 저게 당시에 일반적인 견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사회가 반-능력주의(혈연주의), 엄격하게 금지된 계층이동, 사회 일반에 대한 각급 공동체의 대단히 강력한 통제로 대별되는 사회였기 때문이구요. 대표적인 비유교국가가 대표적인 유교국가한테 그 유교국가적 특징으로 능력주의와 계층이동, 약한 통제를 거론하다니 ㅎㅎ 신기하지 않나요?
3. 위와 같은 일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역사 지식의 생산과정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반대여서 그래요. 우리는 먼저 말끔하게 백지상태로 마음을 리셋시킨 후 객관적으로 사료를 읽은 뒤 그로부터 이런저런 결론을 추출해낸다고 생각하지만 (혹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먼저 주변으로부터 보고들은 바로부터 원관념(primal image)을 생성시키고, 이 원관념을 가설(hypothesis)로 삼은 뒤 사료들을 동원해 이 가설을 검증하는 식으로 역사학 연구가 이루어지거든요. 모택동시기 중국의 이미지가 당시 서구 학자들의 원관념이었던 셈이고, 에도막부의 대척점으로 상정된 청나라의 이미지가 당시 일본학자들의 원관념이었던 셈이지요.
4. 국내에서 70~80년대 사이에 대학을 다니며 훈련받은 인문학자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유교의 원관념은 방학 때 시골에 내려가서 본 아빠, 추석과 설날에 차려진 제삿상 및 이어지는 술상에 둘러 앉은 백부 숙부 당숙들, 학생들을 쥐어팬 고등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경험의 총화이자 본원으로 상상된 국부 박정희와 그의 후계자 전두환이에요. 이것이 대학 및 미디어 등지에서 접한 미국의 이미지와 뚜렷하게 대조되면서 자유구미/부자유동양이라는 이분된 구조를 만들고, 이 구조를 설명해주는 헤겔주의 역사관을 접하면서 원관념이 되지요. 이 시기에 지적 훈련을 받은 학자들의 아주 많은 수가 '유교'라는 키워드로 역사라는 데이터베이스에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이와 같은 강력한 원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상황이 이렇다보니 검색결과가 이 원관념을 보강하는 쪽으로 나타나거나, 최소한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던 건 당연지사였어요.
이들의 논문과 저서에 나타난 조선의 전제왕권은 5공이고, 조선조가 탄압한 역모사건은 광주고, 조선조의 정당화수단으로서의 주자학은 메카시즘/민족적 민주주의고... 후자를 전자로 직역한 거지요. 더불어 이런 논문과 저서를 쓴 저자들의 유교를 향한 타오르는 적개심은 박정희와 전두환과 고등학교 선생님과 아빠와 백부와 숙부와 당숙을 향한 적개심이 번역된 것인 경우가 많구요.
이들이 생각하는 유교란, 그래서, 대개의 경우 삼강오륜&남아선호&군사부일체로 요약돼요. 그건 유교라기보단 권위주의고, 유교라기보단 가부장적 가족주의고, 유교라기보단 근세기의 한국이고, 공자라기보단 박정희인데 말이죠.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사]는 게 아니라 박정희가 죽어야 나라가 사는 건데, 박정희라는 이름을 쓰기 싫었는지 어쨌는지 그냥 박정희를 공자라는 빈 상자에 넣었던 거지요.
인문학 학도답게 길게 답변하셨는데, 짧게 답변함을 해량해 주십시오. 긴 글 쓰기 훈련도 안 되어 있고, 적성도 아닙니다.
주희를 인용하셨는데, 솔직히 말해서 좀 황당합니다.
지나 지성사상, 공자전에 공자만한 이가 없었고, 공자후에 공자만한 이가 없었다고 봅니다. 공자로부터 유가가 시작되고, 거기서 제자백가가 유래함이니, 나중 사람 주희의 말이 무어 그리 중요할지 모르겠습니다.
공자후에 동중서가 등장하여 오륜대신 삼강을 내세웁니다. 부자지간보다 군신지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박정희는 그냥 군인 출신 파시스트... 더 보기
주희를 인용하셨는데, 솔직히 말해서 좀 황당합니다.
지나 지성사상, 공자전에 공자만한 이가 없었고, 공자후에 공자만한 이가 없었다고 봅니다. 공자로부터 유가가 시작되고, 거기서 제자백가가 유래함이니, 나중 사람 주희의 말이 무어 그리 중요할지 모르겠습니다.
공자후에 동중서가 등장하여 오륜대신 삼강을 내세웁니다. 부자지간보다 군신지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박정희는 그냥 군인 출신 파시스트... 더 보기
인문학 학도답게 길게 답변하셨는데, 짧게 답변함을 해량해 주십시오. 긴 글 쓰기 훈련도 안 되어 있고, 적성도 아닙니다.
주희를 인용하셨는데, 솔직히 말해서 좀 황당합니다.
지나 지성사상, 공자전에 공자만한 이가 없었고, 공자후에 공자만한 이가 없었다고 봅니다. 공자로부터 유가가 시작되고, 거기서 제자백가가 유래함이니, 나중 사람 주희의 말이 무어 그리 중요할지 모르겠습니다.
공자후에 동중서가 등장하여 오륜대신 삼강을 내세웁니다. 부자지간보다 군신지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박정희는 그냥 군인 출신 파시스트입니다. 주워 들은 건 좀 있어서 "주수구방 기명유신"에서 유신이라는 이름은 빌어왔지만, 본질은 플라톤의 철인 정치[라고 쓰고 독재라고 읽음]와 다를 바 없었다고 봅니다. 유교의 씨앗은 마치 곰팡이 포자처럼 이미 편만해 있었고요.
주희를 인용하셨는데, 솔직히 말해서 좀 황당합니다.
지나 지성사상, 공자전에 공자만한 이가 없었고, 공자후에 공자만한 이가 없었다고 봅니다. 공자로부터 유가가 시작되고, 거기서 제자백가가 유래함이니, 나중 사람 주희의 말이 무어 그리 중요할지 모르겠습니다.
공자후에 동중서가 등장하여 오륜대신 삼강을 내세웁니다. 부자지간보다 군신지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박정희는 그냥 군인 출신 파시스트입니다. 주워 들은 건 좀 있어서 "주수구방 기명유신"에서 유신이라는 이름은 빌어왔지만, 본질은 플라톤의 철인 정치[라고 쓰고 독재라고 읽음]와 다를 바 없었다고 봅니다. 유교의 씨앗은 마치 곰팡이 포자처럼 이미 편만해 있었고요.
공자가 누구인지 그가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는 해석에 달린 문제예요. 마치 예수가 누구인지 그가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가 해석에 달린 것과 같아요. 바울의 예수는 누가의 예수가 아니고 누가의 예수는 요한의 예수가 아니고 이 예수들은 또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수와 다르고 아퀴나스의 예수와 다르고 루터의 예수와 달라요. 답답한 마음에 A라는 현대인이 등장하여 '우리 그냥 예수 본래의 그것으로 돌아갑시다.'라고 말한다 해도 그건 A의 예수가 되는 거지요. 모든 해석자들은 각자 자기가 예수 본래의 그것을 알아냈다고 설파하지만 기실 그 누구도 실제... 더 보기
공자가 누구인지 그가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는 해석에 달린 문제예요. 마치 예수가 누구인지 그가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가 해석에 달린 것과 같아요. 바울의 예수는 누가의 예수가 아니고 누가의 예수는 요한의 예수가 아니고 이 예수들은 또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수와 다르고 아퀴나스의 예수와 다르고 루터의 예수와 달라요. 답답한 마음에 A라는 현대인이 등장하여 '우리 그냥 예수 본래의 그것으로 돌아갑시다.'라고 말한다 해도 그건 A의 예수가 되는 거지요. 모든 해석자들은 각자 자기가 예수 본래의 그것을 알아냈다고 설파하지만 기실 그 누구도 실제로 그것을 달성하지 못했거든요.
해석에 달렸다고해서 맘대로 해석하고 맘대로 주장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해석자들은 [설득력]을 두고 경쟁해요. 성경을 읽고, 스스로 크리스쳔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상정하고,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각자의 해석을 개진하지요. 설득력이 높은 해석이 설득력이 낮은 해석을 제압하고 일대를 풍미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재판관 구성이 바뀌면서 기존의 해석이 설득력을 잃으면 새 해석이 등장해서 자리바꿈하구요.
좀 더 나아가 비유하자면 공자는 강시요 해석자들은 강시 부리는 도사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도사들끼리 머리채잡고 안싸우죠. 각자 더 강력하고 더 효과적인 부적을 써서 강시 이마에 딱 붙이면 이 강시가 A도사 편에 서서 B도사를 공격하기도 하고 C도사 편에 서서 D도사를 공격하기도 하니까요.
공자라는 강시의 경우는 지나지성사상 주희도사보다 더 강력한 부적을 개발했던 이가 없어요. 정현이나 왕수인 같은 걸출한 경쟁도사들이 있지만 결국 끝내 '재판관'들을 주희도사 이상으로 확실하게 설득하진 못했지요.
제 지난 댓글을 면밀히 읽어보세요. [(왜 권위있냐하면 그냥 대부분 그걸 인용하니까...)] 라고 했지요? 유교귀신론에 있어서 모두 주희만 인용하면 그냥 주희의 해석이 곧 원본이 되는 거예요.
아쉽습니다. 저도 시간 많이 내서 쓴 댓글인데 슥 읽고 넘기지 마시고 한 번 찬찬히 다시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해석에 달렸다고해서 맘대로 해석하고 맘대로 주장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해석자들은 [설득력]을 두고 경쟁해요. 성경을 읽고, 스스로 크리스쳔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상정하고,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각자의 해석을 개진하지요. 설득력이 높은 해석이 설득력이 낮은 해석을 제압하고 일대를 풍미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재판관 구성이 바뀌면서 기존의 해석이 설득력을 잃으면 새 해석이 등장해서 자리바꿈하구요.
좀 더 나아가 비유하자면 공자는 강시요 해석자들은 강시 부리는 도사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도사들끼리 머리채잡고 안싸우죠. 각자 더 강력하고 더 효과적인 부적을 써서 강시 이마에 딱 붙이면 이 강시가 A도사 편에 서서 B도사를 공격하기도 하고 C도사 편에 서서 D도사를 공격하기도 하니까요.
공자라는 강시의 경우는 지나지성사상 주희도사보다 더 강력한 부적을 개발했던 이가 없어요. 정현이나 왕수인 같은 걸출한 경쟁도사들이 있지만 결국 끝내 '재판관'들을 주희도사 이상으로 확실하게 설득하진 못했지요.
제 지난 댓글을 면밀히 읽어보세요. [(왜 권위있냐하면 그냥 대부분 그걸 인용하니까...)] 라고 했지요? 유교귀신론에 있어서 모두 주희만 인용하면 그냥 주희의 해석이 곧 원본이 되는 거예요.
아쉽습니다. 저도 시간 많이 내서 쓴 댓글인데 슥 읽고 넘기지 마시고 한 번 찬찬히 다시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공들여 쓰신 댓글임은 이미 짐작하는 바이고, 상응하는 댓글로 쓰지 못함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공자를 강시로 여긴다면, 주희 또한 강시일 테지요. 아닌가요? 둘 다 강시인데, 주희만 활강시라도 되나요?
바로 그래서 원전 이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훈고학이지요. 그것이 고증학과 통합니다.
데카르트를 서양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까닭이 뭡니까?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였고,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누었기때문입니다. 바로 "요소환원주의"입니다.
유교를 요소환원해 보면 남는 것은 "군군신신 부부자자"아닙니까? 집... 더 보기
공자를 강시로 여긴다면, 주희 또한 강시일 테지요. 아닌가요? 둘 다 강시인데, 주희만 활강시라도 되나요?
바로 그래서 원전 이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훈고학이지요. 그것이 고증학과 통합니다.
데카르트를 서양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까닭이 뭡니까?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였고,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누었기때문입니다. 바로 "요소환원주의"입니다.
유교를 요소환원해 보면 남는 것은 "군군신신 부부자자"아닙니까? 집...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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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강시로 여긴다면, 주희 또한 강시일 테지요. 아닌가요? 둘 다 강시인데, 주희만 활강시라도 되나요?
바로 그래서 원전 이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훈고학이지요. 그것이 고증학과 통합니다.
데카르트를 서양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까닭이 뭡니까?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였고,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누었기때문입니다. 바로 "요소환원주의"입니다.
유교를 요소환원해 보면 남는 것은 "군군신신 부부자자"아닙니까? 집 다스리던 방식으로 나라도 다스려 보겠다는... 그점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나머지는 곁가지이니 줄입니다.
공자를 강시로 여긴다면, 주희 또한 강시일 테지요. 아닌가요? 둘 다 강시인데, 주희만 활강시라도 되나요?
바로 그래서 원전 이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훈고학이지요. 그것이 고증학과 통합니다.
데카르트를 서양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까닭이 뭡니까?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였고,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누었기때문입니다. 바로 "요소환원주의"입니다.
유교를 요소환원해 보면 남는 것은 "군군신신 부부자자"아닙니까? 집 다스리던 방식으로 나라도 다스려 보겠다는... 그점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나머지는 곁가지이니 줄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강시화되는데, 가능한 강시화의 폭은 사람/상황마다 달라요. 예컨대 본인이 직접 남긴 저작의 수량, 특히 자서전의 존재유무, 고인을 생전에 직접 보고겪었던 경험이 있는 1차증언자들의 존재여부 (그리그 그들이 남긴 기록의 수량) 등등이 모두 해당 인물에 대한 후대의 해석의 폭을 제한하지요.
조선성리학사를 통크게 요약하면 주희강시에 부적을 붙여서 해석싸움을 벌여온 역사라고 할 수 있고, 세계유학사를 통크게 요약하면 공자강시에 부적을 붙여서 해석싸움을 벌여온 역사라고 할 수 있지요.
다만, 앞서 말했듯, 기록의 문... 더 보기
조선성리학사를 통크게 요약하면 주희강시에 부적을 붙여서 해석싸움을 벌여온 역사라고 할 수 있고, 세계유학사를 통크게 요약하면 공자강시에 부적을 붙여서 해석싸움을 벌여온 역사라고 할 수 있지요.
다만, 앞서 말했듯, 기록의 문... 더 보기
사람이 죽으면 강시화되는데, 가능한 강시화의 폭은 사람/상황마다 달라요. 예컨대 본인이 직접 남긴 저작의 수량, 특히 자서전의 존재유무, 고인을 생전에 직접 보고겪었던 경험이 있는 1차증언자들의 존재여부 (그리그 그들이 남긴 기록의 수량) 등등이 모두 해당 인물에 대한 후대의 해석의 폭을 제한하지요.
조선성리학사를 통크게 요약하면 주희강시에 부적을 붙여서 해석싸움을 벌여온 역사라고 할 수 있고, 세계유학사를 통크게 요약하면 공자강시에 부적을 붙여서 해석싸움을 벌여온 역사라고 할 수 있지요.
다만, 앞서 말했듯, 기록의 문제로 인하여 최근의 인물들로 올수록 '강시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어요. 주희의 경우는 그 중에서도 특별한데, 글을 어지간히도 많이 썼지요. 주희전공자조차도 주희 글 및 주희를 생전에 보고겪은 사람들의 기록을 첫장부터 막장까지 자신있게 다 읽어봤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공자와 주희를 놓고 어느 쪽이 더 강시스럽냐고 사계의 전문가들에게 물으신다면 열이면 열 공자라고 할 거예요.
그리고 공자가 강시든 주희가 강시든 그 사실로부터 '그래서 원전이해가 중요한 겁니다' 라는 주장은 따라나올 수 없어요. 죽은 사상가들이 산 사상가들의 해석의 대상이며 해석과 해석은 설득력을 기준으로 싸움을 벌인다고 했지요? [해석]은 당연히 원전해석을 말하는 거예요. 공자강시를 부리려고 분투하며 명멸한 무수한 사상가들 중 논어 한질 못 왼 사람이 없고 주희강시를 부리려고 분투하며 명멸한 무수한 학인들 중 논어 한질 못 왼 사람이 없어요. 제가 분명 이 분야 전공한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기아트윈스는 논어 한 질을 욀까요 못 욀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여기서 우주님이 원전이해를 운운하고 훈고학 고증학 운운하면서 뭔가 '니가 모르는 걸 내가 가르쳐주겠다'는 듯이 말씀하시는데 좀 당혹스럽네요. 여기서 논어 인용해가며 '고증싸움'을 걸기로서니 설마 기아트윈스도사가 우주도사에게 패배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논어 전체에서 군군신신부부자자가 몇 차례나 등장하는 구문일까요? 제가 알기로 1회인데 내기해볼까요? 그 구절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건지 고증해보신 적 있나요? 군군신신부부자자가 (논어의 맥락에서) 쿠데타-군사정권 물러나라는 구호였던 건 알고 계신가요? 논어에서 인(仁)은 몇 번 등장할까요? 의(義)는 몇 번 등장할까요? 유교가 강상윤리로 환원되고 말 사상전통이면 왜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수천차례 이상 발생한 중국 제국의 반란군들이 인의를 기치로 내세우고 왕과 황제를 공격했을까요? 군신부자가 유교의 핵심이면 왕을 죽여서라도 지켜내야 하는 가치들은 어디서 나온 가치인가요? 9족이 도륙나는 일이 있어도 아닌건 아니라고 해야한다는 정신은 무슨 노장사상이라도 되나요? 손문은 젊어서 무슨 책을 읽었길래 삼민주의 같은 걸 만들었을까요? 맹자의 역성혁명론은 그럼 불교사상인가요? 주원장은 왜 맹자를 금서로 지정했나요?
유교는 강시화의 여지가 엄청나게 큰, 다시 제 첫 댓글로 돌아가자면, empty symbol이고, 그 텅 빈 정도(emptiness)는 우주님이 상상하시는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어요. 인류학자들의 비유를 빌자면 a pool of repertoire라고 할 수 있어요. 큰 주머니에 서로 다른 색의 작은 공들이 들어있어서 이 공놀이에 능숙한 이라면 누구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원하는 색의 공을 꺼내서 자기 마음에 맞게 쓸 수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근왕론자들도 유교의 깃발 아래서 근왕하고 반란군도 유교의 깃발 아래서 반란할 수 있는 거구요.
참고로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데카르트를 근대철학의 시발점으로 보는 이유는 그양반이 분석적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회의적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게 고작 그런 이유 때문이었으면 스콜라티시즘이 데카르트보다 덜 분석적이지도 않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데카르트보다 덜 회의적인 것도 아닌 걸요. 데카르트가 데카르트가 된 건 그가 사유주체인 '나'의 존재를 증명 (이라기보단 사실은 선언)을 할 적에 신을 빼놓고 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해요. 신이 없어도 인간이 인간이 되는데 별 문제가 없어진 건데, 데카르트는 결코 그런 걸 의도하지 않았지만 (실은 코기토 에르고 줌은 그의 신존재증명의 한 부분에 불과해요) 결과적으론 신으로부터 독립해서 개인이 설 자리를 만들어버린 셈.
조선성리학사를 통크게 요약하면 주희강시에 부적을 붙여서 해석싸움을 벌여온 역사라고 할 수 있고, 세계유학사를 통크게 요약하면 공자강시에 부적을 붙여서 해석싸움을 벌여온 역사라고 할 수 있지요.
다만, 앞서 말했듯, 기록의 문제로 인하여 최근의 인물들로 올수록 '강시성'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어요. 주희의 경우는 그 중에서도 특별한데, 글을 어지간히도 많이 썼지요. 주희전공자조차도 주희 글 및 주희를 생전에 보고겪은 사람들의 기록을 첫장부터 막장까지 자신있게 다 읽어봤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공자와 주희를 놓고 어느 쪽이 더 강시스럽냐고 사계의 전문가들에게 물으신다면 열이면 열 공자라고 할 거예요.
그리고 공자가 강시든 주희가 강시든 그 사실로부터 '그래서 원전이해가 중요한 겁니다' 라는 주장은 따라나올 수 없어요. 죽은 사상가들이 산 사상가들의 해석의 대상이며 해석과 해석은 설득력을 기준으로 싸움을 벌인다고 했지요? [해석]은 당연히 원전해석을 말하는 거예요. 공자강시를 부리려고 분투하며 명멸한 무수한 사상가들 중 논어 한질 못 왼 사람이 없고 주희강시를 부리려고 분투하며 명멸한 무수한 학인들 중 논어 한질 못 왼 사람이 없어요. 제가 분명 이 분야 전공한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기아트윈스는 논어 한 질을 욀까요 못 욀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여기서 우주님이 원전이해를 운운하고 훈고학 고증학 운운하면서 뭔가 '니가 모르는 걸 내가 가르쳐주겠다'는 듯이 말씀하시는데 좀 당혹스럽네요. 여기서 논어 인용해가며 '고증싸움'을 걸기로서니 설마 기아트윈스도사가 우주도사에게 패배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논어 전체에서 군군신신부부자자가 몇 차례나 등장하는 구문일까요? 제가 알기로 1회인데 내기해볼까요? 그 구절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건지 고증해보신 적 있나요? 군군신신부부자자가 (논어의 맥락에서) 쿠데타-군사정권 물러나라는 구호였던 건 알고 계신가요? 논어에서 인(仁)은 몇 번 등장할까요? 의(義)는 몇 번 등장할까요? 유교가 강상윤리로 환원되고 말 사상전통이면 왜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수천차례 이상 발생한 중국 제국의 반란군들이 인의를 기치로 내세우고 왕과 황제를 공격했을까요? 군신부자가 유교의 핵심이면 왕을 죽여서라도 지켜내야 하는 가치들은 어디서 나온 가치인가요? 9족이 도륙나는 일이 있어도 아닌건 아니라고 해야한다는 정신은 무슨 노장사상이라도 되나요? 손문은 젊어서 무슨 책을 읽었길래 삼민주의 같은 걸 만들었을까요? 맹자의 역성혁명론은 그럼 불교사상인가요? 주원장은 왜 맹자를 금서로 지정했나요?
유교는 강시화의 여지가 엄청나게 큰, 다시 제 첫 댓글로 돌아가자면, empty symbol이고, 그 텅 빈 정도(emptiness)는 우주님이 상상하시는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어요. 인류학자들의 비유를 빌자면 a pool of repertoire라고 할 수 있어요. 큰 주머니에 서로 다른 색의 작은 공들이 들어있어서 이 공놀이에 능숙한 이라면 누구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원하는 색의 공을 꺼내서 자기 마음에 맞게 쓸 수 있다는 거지요. 그래서 근왕론자들도 유교의 깃발 아래서 근왕하고 반란군도 유교의 깃발 아래서 반란할 수 있는 거구요.
참고로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데카르트를 근대철학의 시발점으로 보는 이유는 그양반이 분석적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회의적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게 고작 그런 이유 때문이었으면 스콜라티시즘이 데카르트보다 덜 분석적이지도 않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데카르트보다 덜 회의적인 것도 아닌 걸요. 데카르트가 데카르트가 된 건 그가 사유주체인 '나'의 존재를 증명 (이라기보단 사실은 선언)을 할 적에 신을 빼놓고 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해요. 신이 없어도 인간이 인간이 되는데 별 문제가 없어진 건데, 데카르트는 결코 그런 걸 의도하지 않았지만 (실은 코기토 에르고 줌은 그의 신존재증명의 한 부분에 불과해요) 결과적으론 신으로부터 독립해서 개인이 설 자리를 만들어버린 셈.
자세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유교라는 껍데기 속을 지금 주희가 남긴 쓰레기가 거의 독보적으로 채우고 있으니, 주희가 원 탑이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일리 있다고 봅니다마는, 그렇다고 주희가 절대 반지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유리병에 물을 채우면 물병이고,술을 채우면 술병이고, 오줌을 채우면 오줌병입니다마는, 병 모양은 남을 테지요.
병 모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어차피 99%의 사람에게는 병 모양만이 의미 있을 테니까요.
공자의 중심 개념은 인이요 예였습니다. (주희의 중심 개념은 성과 이가 ... 더 보기
유교라는 껍데기 속을 지금 주희가 남긴 쓰레기가 거의 독보적으로 채우고 있으니, 주희가 원 탑이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일리 있다고 봅니다마는, 그렇다고 주희가 절대 반지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유리병에 물을 채우면 물병이고,술을 채우면 술병이고, 오줌을 채우면 오줌병입니다마는, 병 모양은 남을 테지요.
병 모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어차피 99%의 사람에게는 병 모양만이 의미 있을 테니까요.
공자의 중심 개념은 인이요 예였습니다. (주희의 중심 개념은 성과 이가 ... 더 보기
자세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유교라는 껍데기 속을 지금 주희가 남긴 쓰레기가 거의 독보적으로 채우고 있으니, 주희가 원 탑이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일리 있다고 봅니다마는, 그렇다고 주희가 절대 반지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유리병에 물을 채우면 물병이고,술을 채우면 술병이고, 오줌을 채우면 오줌병입니다마는, 병 모양은 남을 테지요.
병 모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어차피 99%의 사람에게는 병 모양만이 의미 있을 테니까요.
공자의 중심 개념은 인이요 예였습니다. (주희의 중심 개념은 성과 이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인과 예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기존 지배층들 대신 내가 다스리고 싶다. 그 방법은 내가 '집'을 다스리는 방식을 원용하겠다."
유교에는 개인이 없습니다. 당연히 개인의 자유도 없습니다. 그것이 이 논의의 출발점이요, 귀결점 아닙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하고 싶지 않으니 남도 하지 못하게 막아야겠다' 이상의 금지 근거를 보고 싶습니다.]
이 논의에서 데카르트를 거론한 까닭은 신 이야기가 아니라 "요소환원주의"이었습니다.
별론으로, 데카르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직교좌표계의 창안이라고 봅니다. 데카르트를 소크라테스의 전인이었다고 보는데, 소크라테스는 신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었을 테니, 데카르트에게도 신이란 관심사 바깥이었을 겁니다.
추가: 제 경공이면 강태공 후손으로 정통성 있는 군주였을 텐데, 쿠데타 운운은 생소한 이야기입니다. 최자의 시역이야 공자의 회견에서는 한참전 과거지사일 텐데요.
유교라는 껍데기 속을 지금 주희가 남긴 쓰레기가 거의 독보적으로 채우고 있으니, 주희가 원 탑이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일리 있다고 봅니다마는, 그렇다고 주희가 절대 반지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유리병에 물을 채우면 물병이고,술을 채우면 술병이고, 오줌을 채우면 오줌병입니다마는, 병 모양은 남을 테지요.
병 모양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어차피 99%의 사람에게는 병 모양만이 의미 있을 테니까요.
공자의 중심 개념은 인이요 예였습니다. (주희의 중심 개념은 성과 이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 인과 예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기존 지배층들 대신 내가 다스리고 싶다. 그 방법은 내가 '집'을 다스리는 방식을 원용하겠다."
유교에는 개인이 없습니다. 당연히 개인의 자유도 없습니다. 그것이 이 논의의 출발점이요, 귀결점 아닙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하고 싶지 않으니 남도 하지 못하게 막아야겠다' 이상의 금지 근거를 보고 싶습니다.]
이 논의에서 데카르트를 거론한 까닭은 신 이야기가 아니라 "요소환원주의"이었습니다.
별론으로, 데카르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직교좌표계의 창안이라고 봅니다. 데카르트를 소크라테스의 전인이었다고 보는데, 소크라테스는 신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었을 테니, 데카르트에게도 신이란 관심사 바깥이었을 겁니다.
추가: 제 경공이면 강태공 후손으로 정통성 있는 군주였을 텐데, 쿠데타 운운은 생소한 이야기입니다. 최자의 시역이야 공자의 회견에서는 한참전 과거지사일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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