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1/09/09 17:23:15
Name   Regenbogen
Subject   손님들#2 - 할매 고객님과 자존심을 건 대결
올 초 인근 딸과 아파트에 함께 사시는 노부부가 리모델링 때문에 장기 투숙 하셨을 때 이야기입니다,




1차전 - 리겐 승 (1:0)

객실 사용법을 모르겠다며 좀 알려 달라 전화가 왔어요. 직원들은 바쁘니 제가 대신 올라가 객실 리모컨 사용법이랑 조명 키고 끄는거 전반적으로 알려 드렸는데 표정을 보니 전혀 이해를 못하시는 거 같았어요. 조명 키고 끄는 건 얼추 배우셨는데 숙박업소용 통합리모컨이 글씨도 작고 좀 복잡하자나요? 그래서 즐겨 보시는 채널을 물어서 공중파 +티비조선 채널A만 남기고 전부 채널 삭제를 해드렸어요. 채널 버튼 한번 누르면 스브스 케백수2 케백수1 마봉춘 채널A 티비조선 요래 나오도록요. 전원 버튼 채널버튼 음량버튼만 사용하시라 했지요. 그러고 나오려는데 고맙다며 초코파이 두개를 주셨어요. 진짜로 초코파이 두개. 저 마흔일곱인디 초코파이...ㅋㅋㅋㅋㅋ

초코파이 두개를 손에 들고 내려오는데 웃음이 삐질삐질 나드라구요. 그래서 탕비실에서 젤리며 쿠키며 이것저것 바구니 담아 들고 올라 갔어요. 심심할 때 하나씩 드세요 하고 드리니깐 분명 아이고 아이고 사양은 하시는데 손은 이미 받아 가십디다?

2차전 - 할매 승 (1:1)

며칠 지나고 빨래가 밀려 그러는데 세탁기 좀 쓸 수 있겠나 부탁을 하시대요. 비품창고와 세탁실이 붙어 있어 평소 같으면 절대 안된다 짜르는데 사정도 그렇고 할매가 뭐 어쩌겠나 싶어 그러시라 했어요. 지하에 있는 세탁실로 안내해 사용법 알려 드렸는데... 이이 나도 이거 할 줄 알어~ 울 딸네거랑 비슷항께. 그러시대여. 잘되었다 세재는 여기 있고 건조기는 버튼 한번만 누르면 알아서 작동한다 알려 드리고 먼저 올라왔어요.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할매가 지하 세탁실에서 안 올라오시는거에요. 혹시 넘어지셨나 싶은 생각에 심장이 쿵!!! 부리나케 세탁실로 내려가보니...

아니 이 할매가 어디서 찾았는지 빗자루랑 수세미를 들고 세탁실 물 뿌려가면서 청소를 하고 계시더라구요. 세탁실이 좀 크거든여. 아이고 이러시면 안된다고 말리는데 아따 그 할매 고집이 쇠고집이여여. 옆에서 뜯어 말리는데도 기어기 청소를 끝내시대요. 뭐 깨끗해져서 좋기는 한데...

대망의 결승전 (뚜둥~)

계획했던 공사기간이 늘어나 이틀을 더 묶으시게 되었어요. 따님이 오셔서 추가 결제를 하려는데 제가 어르신들이 객실을 너무 깨끗하게 사용해주시고 청소도 본인들이 하신다고 며칠에 한번만 객실청소를 했던지라 우리가 참 편했었다. 감사하다. 그래서 추가요금 없이 서비스로 드리겠다 했어요. 그랬더니 따님은 안된다 그럴수 없다. 저는 된다 내가 사장이다. 한참 실랑이를 하다 결국 추가요금 안받았어요

마지막 날 퇴실하시며 잘 쉬다 간다 한참을 인사를 하시곤 따님과 차를 타고 떠나셨죠. 괜히 아쉽더라구요. ㅜㅜ



그란데말입니다. 퇴실 청소 들어간 이모님이 콜을 하셨어요. 손님이 돈 놓고 가셨다구요. 올라가보니 탁자위에 만원짜리 세장이 든 봉투랑 메모가 있더라구요.

[편히 쉬다 갑니다. 고맙습니다.]

힝구.... ㅜㅜ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9-21 07:33)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47
  • 훈훈하네요...
  • 훈훈한 스토리! 싸웠지만 잘 졌다!
  • 훈훈한 내용은 춫천
  • 훈훈하고 따스한 글입니다.
  • 이 글은 따땃한 글이다.
  • 잘 보았습니다 ㅎㅎ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67 일상/생각내 고향 서울엔 11 사이시옷 22/02/14 3374 22
1163 일상/생각그 식탁은 널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2 Erzenico 22/01/22 3540 29
1160 일상/생각리을 이야기 23 아침커피 22/01/10 4077 68
1157 일상/생각중년 아저씨의 베이킹 도전기 (2021년 결산) (스압주의) 24 쉬군 21/12/31 3693 32
1154 일상/생각구박이는 2021년에 무엇을 어떻게 먹었나 62 구박이 21/12/23 4438 71
1153 일상/생각도어락을 고친 것은 화성학과 치과보철학이었다 3 Merrlen 21/12/15 3789 31
1152 일상/생각헌혈하는 것의 의미 9 샨르우르파 21/12/14 3248 24
1150 일상/생각벨기에 맥주 오프모임에 참석하지 못해서 하는 벨기에 맥주 셀프시음회(어?) 10 세리엔즈 21/12/08 3496 22
1147 일상/생각둘째를 낳았습니다. 15 고양이카페 21/11/29 3780 32
1144 일상/생각어느 유서깊은 양반가문 이야기. 18 Regenbogen 21/11/16 4798 35
1137 일상/생각마치츄카町中華 6 向日葵 21/10/18 4263 39
1135 일상/생각약간의 일탈과 음주 이야기 3 머랭 21/10/11 3573 19
1130 일상/생각합리적인 약자 9 거소 21/09/19 4451 32
1125 일상/생각손님들#2 - 할매 고객님과 자존심을 건 대결 27 Regenbogen 21/09/09 4355 47
1124 일상/생각그동안 홍차넷에서 그린것들 80 흑마법사 21/09/08 4804 29
1122 일상/생각사랑하는 소년 6 아시타카 21/08/29 3259 20
1121 일상/생각손님들#1 7 Regenbogen 21/08/25 3287 31
1119 일상/생각족보 4 私律 21/08/20 3414 35
1113 일상/생각무제(無題) 2 Klopp 21/08/04 2774 16
1108 일상/생각그날은 참 더웠더랬다. 5 Regenbogen 21/07/21 3154 41
1102 일상/생각귀여운 봉남씨가 없는 세상 36 문학소녀 21/07/09 4592 83
1100 일상/생각안티테제 전문 29 순수한글닉 21/06/29 4265 34
1094 일상/생각엄마는 내 찢어진 츄리닝을 보고 우셨다 3 염깨비 21/06/04 4072 35
1092 일상/생각뒷산 새 1년 정리 43 엘에스디 21/05/25 4607 55
1087 일상/생각어느 개발자의 현타 26 거소 21/05/04 6707 35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