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0/04/04 00:52:29수정됨
Name   하트필드
Subject   말 잘 듣던 개
어릴적 시골에 가면 하얗고 쌍커풀이 짙은 똥개가 있었다. 목줄에 묶여 있던 그 개는 매년 명절날 나와 내 동생을 볼때마다 짖곤 했다. 비단 나와 내 동생뿐 아니라 사촌 형들과 누나들이 하나 둘 시골집에 도착하면 그때마다 짖어댔다. 그러다가도 하루만 지나면 얼굴이 좀 익은건지. 아니면 집에서 나오는 사람은 괜찮은건지 짖지 않았다. 오히려 쓰다듬는 손길에도 언제 그렇게 이빨 드러내며 짖었냐는듯 얌전히 있고 배도 까고 그랬다. 저수지에 사촌들과 놀다 돌아오면 어서오라 꼬리 흔들며 반겨주기까지했다.

사촌 형제들을 상대로도 맹렬히 짖어대는 백구는 이상하게도 어른들에게는 짖지 않았다. 중학생이 되고 시골집에 내려간 추석날에도 백구는 나와 동생을 보고 짖어댔다. 나는 개가 우리만 보며 짖는다며, 아니 우리가 본지 몇년인데 얼굴도, 냄새도 못 알아보고 짖어대냐 똥개야, 이제 그만 짖어!라고 장난스레 말을 걸었다. 마당에서 그 소릴 들으신 할아버지는 발로 차면 괜찮아진다고 하셨다. 나는 손주 농담에 어르신의 짖궃은 답인줄 알았는데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뛰어와 발로 차는 시늉을 하자 짖던 개가 깨갱하며 집안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봤지? 말로 백날 짖지마 해도 뭔소린지 못알아 듣는다 이러며 웃으셨던거 같다. 할아버지께 강아지 불쌍하다고, 발로 차지말라고 하는 동생의 말에 이젠 안그런다고, 한번만 발로 찼더니 그 다음 부터는 말 잘 들어서 차지 않는다 말씀하시며 동생을 달래셨다.

며칠전 부모님께서 강형욱이 나와 강아지를 조련하는 프로그램을 재밌게 보시는 모습을 봤다. 불독이었는데 사람을 무는 놈이었다. 이 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몇시간의 훈련 끝에 엎드려에 성공한 모습이 나왔다. '자 이제 시작이에요. 이걸 몇년간 계속 반복해서 하셔야해요~'라는 말로 프로는 끝났다. 부모님은 감탄하셨다. 와 역시 전문가는 전문가야

난 백구가 생각났다. 어느 날 목줄 풀려 집을 나가 돌아 오지 않는다는 녀석. 갖고 있던거라곤 다 해져 헐거워진 빨간 목줄과 밥그릇, 흙먼지 가득한 플라스틱 기와 개집이었던 녀석. 명절마다 얼굴도 못알아보고 짖다가 다음날만 되면 배까 뒤집던 녀석. 어른들의 발만봐도 움츠러들어 짖지도 않지만 우리를 향해 참았다는 듯 짖어대던 녀석. 한번만 발로 걷어차주면 그 다음 부터는 기어오르지 않고 말 잘 듣던 녀석.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0-04-12 16:15)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4
    이 게시판에 등록된 하트필드님의 최근 게시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75 창작소수 사막은 얼마나 넓을까? 5 Jargon 24/03/06 1151 4
    1314 창작어쩌다 보니 그림을 그리게 된 건에 대하여 61 퐁퐁파타퐁 23/07/25 2809 15
    1305 창작서울에 아직도 이런데가 있네? 7 아파 23/06/01 3692 24
    1140 창작개통령 1화 47 흑마법사 21/11/02 6054 27
    1023 창작어느 과학적인 하루 5 심해냉장고 20/10/27 4548 14
    1020 창작그러면 너 때문에 내가 못 죽은 거네 (1) 8 아침커피 20/10/19 4130 12
    1016 창작사귀지도 않고 헤어진 제 친구의 연애 아닌 연애 이야기 33 아침커피 20/10/12 6111 17
    992 창작내 작은 영웅의 체크카드 4 심해냉장고 20/08/05 4706 16
    972 창작그러니까, 원래는 4 심해냉장고 20/06/18 4715 13
    946 창작기대 속에 태어나 기대 속에 살다가 기대 속에 가다 3 LemonTree 20/04/09 4446 15
    945 창작그 애 이름은 ‘엄마 어릴 때’ 14 아침 20/04/08 4325 12
    943 창작말 잘 듣던 개 6 하트필드 20/04/04 4730 4
    916 창작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테야. 5 작고 둥근 좋은 날 20/01/29 5779 24
    891 창작은밀한 통역 3 작고 둥근 좋은 날 19/11/23 5800 23
    843 창작6개월 정도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느낀 점들 15 droysen 19/08/10 6114 20
    699 창작고백합니다 44 파란아게하 18/09/09 8028 96
    432 창작5월이면 네가 생각나. 3 틸트 17/05/14 5591 9
    398 창작옆집에는 목련이며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5 틸트 17/03/27 5367 9
    389 창작홍차의 연인 (5) - 완결 29 새벽3시 17/03/16 6284 11
    371 창작생선살 발라주는 사람 64 열대어 17/02/20 7581 19
    306 창작[한단설] 손 없는 날 2 틸트 16/11/21 6252 11
    289 창작[한단설] For Sale : Baby shoes, never worn. 8 SCV 16/10/24 5997 11
    171 창작[조각글 18주차] 궁극의 질문 9 마스터충달 16/03/13 5408 4
    168 창작[SF단편] 펭귄 밀크 11 중년의 럴커 16/03/11 6346 5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