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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1/29 10:30:10
Name   세인트
File #1   20200124_123730.jpg (347.2 KB), Download : 10
Subject   [단상] 인격자의 길은 멀다.


* 미리 말씀드리건데 이 글은 정말 두서없는 영양가 없는 일기 같은 글입니다.
또한 힘도 들고 글도 정리가 안되어 반말체에 정중하게 쓰지 못한 점 양해를 구합니다.

* 짤은 쓰다보니 분위기가 무거워져 자랑삼아 올린 우리아기 사진입니다.




우리집은 신정 연휴에 차례를 지내는 것이 오래된 전통이었다.
온 전국, 심지어 외국까지 흩어져 있는 이산가족 같은 상황에서
귀성길 표 구하는 전쟁 대신 내린 선택이었고, 덕분에 결혼한 뒤에도 구정에 처가에 들릴 수 있어서 아내는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올해는 조금 특수한 상황이었던 것이, 작년 11월 말에 아내가 첫 아기를 출산하였고, 아내가 건강이 매우 좋지 않고
나와 아내 둘 다 육아를 공동으로 하고
낮에는 몸이 좋지 않은 아내가 아이를 보고,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번갈아가며 쪽잠 자면서 아이를 보고 하다보니 둘 다 극도로 수면이 부족했다)
그러다가 둘 다 한번씩 쓰러지기도 하고 해서 보다 못한 부모님께서 이번 구정에는 아기를 당신들께서 맡아주시기로 하셨다.

마침 누나도 구정이라 휴가를 얻어 고향에 내려오시기로 하셔서, 아기는 생후 두 달여 만에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품에서 구정을 보내게 되었다.

아내는 아기가 눈에 밟혀서 좀 슬프긴 했지만,
우리 부모님(아내에게는 시부모님)의 '니 건강이 우선이다' 와 배려에 감사하며 출산하고 단 하루도 편히 쉬어본 적 없기에 둘이서 간만에 쉬기로 하였다.

급하게 쉬는 일정이 생기다보니, 어디 멀리 놀러가기도 어렵고, 나와 아내 둘 다 여차하면 바로 애기부터 챙겨야겠다는 생각이었던지라, 그냥 시내에 있는 호텔 하나를 예약하여 호캉스나 즐기기로 하였다.

회사 업무와 육아에 치여 세상 돌아가는 꼴도 거의 모르고 진짜 가끔 뉴스 헤드라인만 보던 나에게도
(그래도 커뮤니티는 가끔 둘러보니 참 웃기는 일이다 ㅋㅋ)
이번 코로나오는 바이러스 이야기는 무서워 보이긴 했다.

그런데 나름 시내에서 비싸다는 고급 호텔이었는데, 호텔 뷔페에서 식사하는데 중국 관광객 때문에 정말 기분이 확 상했다.
쥬스 등 음료를 받는 코너에서 -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가 두통 발열 등이 심하지 콧물 등은 상관이 없다는 걸 알지만서도 -
어떤 중국 젊은 아주머니 한 분이 입도 안 가리고 재채기를 엄청 크게 해서 사방에 콧물을 흩뿌리고도 별로 닦지도 않고 그냥 내 앞에서
태연히 쥬스를 받아가시더라.

그나마 손에는 휴지가 한 움큼 쥐어져 있었는데 코감기가 심한지 이미 휴지는 콧물범벅이었고
그 콧물범벅인 휴지를 쥔 손으로 쥬스가 나오는 배출구를 그냥 손으로 잡으시더라.

그건 코로나 바이러스랑도 상관이 없고, 그 분이 그냥 기본 에티켓이 없는 거였을 뿐이고,
그건 그 분이 중국인인 거랑 하등 상관이 없는 그냥 그 사람이 그 인간이 별로인 건데
그 순간만큼은 정말 중국인에 대한 혐오 감정과 짜증이 확 치밀어올랐다.

그리고 우리 옆 테이블에도 중국 손님이 단체로 앉았는데 시끄러운 건 둘째치고 의자를 너무 뒤로 빼놓아서 아내가 다시 먹을 걸 가지러 나가기가 너무 힘들었고, 좀 당겨달라고 말해도 째려보기만 하고 미동도 하지 않았을 때도 그냥 너무 너무 너무 너무 화가 났다.

결국 비싼 돈 내고 간 호텔 뷔페식당인데 그냥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근처 편의점과 커피숍에서 먹을 거리를 사서 객실에 들어와서 먹었다.




밖에 나가면 한국 관광객은 그런 사람이 없는 줄 아느냐, 다른 나라 사람 중에서도 무개념 관광객 많다 뭐 이런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다음날이 되서 머리 좀 식히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도 평소엔 인종차별 하지 말자. 혐오발언 하지 말자 그런 말 늘 하고 다니고 늘 그런 생각 해야 된다 생각하던 사람인데
몸 피곤하고 순간 짜증나니까 그런 평소 생각 어디 갔는지 그냥 짜증과 혐오의 생각 밖에 안 남더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제 내가 짜증내던 그 와중에도 내가 막 짜증나서 혐오발언 하려고 할 때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 하는거 아니라고 하던 아내는 새삼 인격자라는 생각이...)

어쩌면 요즘 혐오범죄니 증오범죄니 각종 갈등이 심해지고 이런 것도
결국 먹고 살기 팍팍해서 힘들어서 짜증나서 더 그런게 심해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곳간이 후해야 인심이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부터도 좀 피곤하고 짜증나니까 화부터 벌컥 났었으니까 말이다.


난 아직 멀은 것 같다.


쓰고보니 아내자랑 같지만 기분탓이겠지.



9
  • 본격 아내 자랑글. 추천입니당


CONTAXND
진짜 피곤피곤하면 세상 다 짜증나기 마련이죠.

그래도 부모님이 자상하게 도와주셔서 참 다행입니다. 가끔 애기 사진 투척해주십셔 ^^ㅎㅎㅎ
세인트
예전에 어린이집 선생님들 (아이 학대 등으로) 논란 났을 때,
그쪽 계통은 아니지만 MP쪽 병동에 오래 근무했던 아내가 그러더라구요.
보통때는 별 문제 안나는데, 정말 힘들고 피곤할 때 말 안듣는 환자, 고객, 아이들 있으면
그 때가 가장 욱 하는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고요.
확실히 내가 힘들고 피곤하고 팍팍하고 할 때 제일 날카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네 그리고 은근 저희 부모님 자랑도 있습니다 아내도 정말 좋은 시부모님 만났다고 흐흐...ㅋ
애기사진 자주 올릴게요 흐흐. 저두 힘들고 해도 아기 얼굴 보면서 힘을 얻습니다.
2
세인트

말나온김에 이건 어제 예방접종 맞고나서 그야말로 골아떨어져 자는 사진 ㅋㅋㅋ
3
사이시옷(사이시옷)
저는 인격자가 아니라서 막 욕을 하고 나중에 부끄러워했을거 같네요.
세인트
저두 사실 작게 욕을 해서 아내가 막 뭐라했습니다.
저런 거 보고도 절대 화 안내는 아내가 참 대단...

(은 근데 그래놓고 정작 호캉스 끝내고 집에 와서 그날
옷장 모서리에 발가락 찧으니 육두문자를 내뱉는 우리 아내느님 ㄷㄷ)
되짚으시면서 문제점을 인지하시는 것만으로도 이미 평균 이상이신 걸요.
건강한 아기도 있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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