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1/04/26 13:22:04수정됨
Name   가람
Subject   20대가 386의 글을 보고 386들에게 고함(1)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386세대이오.
나는 그들의 자식인 20대이오.

나의 어머니는 60대를 바라보는 나이시고, 골수 새누리당 지지자가 되어 문재인이 감옥갈 날을 기다리고 계시오. 내가 아무리 문재인 감옥 갈 짓은 안 했다 하여도 임기 끝나면 감옥에 가야한다고 요지부동이시오. 문재인 덕에 우리 집값이 엄청 올랐다고 하여도, 문재인이 코로나를 잡아서 우리 집 자영법이 아직까지 안 망하고 유지 되는 것이라 하여도, 문재인이 재난지원금을 줘서 그 때라도 우리 집 손님이 늘었다 하여도. 문재인 때문에 종부세가 올랐다고, 문재인이 아니라 국민들이 잘해서 코로나를 잡은 것이라고, 재난지원금은 우리 세금으로 주는거고 결국 세금낭비라고 문재인이 다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말하오. 그것도 재난지원금이 풀리니까 손님이 좀 들어온다고 하시고 매출이 50프로가 늘었다고 효과가 정말 있다고 웃으시던 그날에 말이오. 어머니는 새로 자영업을 하시면서 빚을 꽤 지셨는데 코로나 때문에 이게 몹시 불어났소. 원래대로라면 빚이 집값을 뛰어 넘을 정도였는데, 그나마 요새 집값이 많이 올라서 조금은 남는다고 다행이라 하시오. 내가 집값 문재인이 올린거니까 문재인이 잘한거 아니냐고 하는 말에는 한사코 그 놈은 절대 하나도 잘 한게 없다 하시오.

나의 어머니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니셨고 학생시위도 꽤나 나갔다고 하셨소. 내가 1987 영화를 봤다는 말에 자기도 거기 있었다고 그 때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장관도 그런 장관이 없었다고 말했소. 자기도 거기에 참여했느니 라고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소. 그런데 내가 문재인이 잘한 일이 있다고 하면 다 허튼 짓이라고 하고, 좌파는 안 된다고 고개를 저으시오? 87년 때 같이 거리에 있었다던 우리 어머니는 왜 30년이 지나서 문재인이 감옥 갈 날만을 기다리고 계시오? 대체 무엇 때문이오? 난 모르겠소. 어머니 책상에 매일마다 오는 조선일보 때문이오? 그 밑으로 따라오는 한국경제 때문이오? 대체 무엇 때문이오? 대체 누구 탓이오?

엄마 친구 중에 운동권이었던 이가 있다 하였소. 그 운동권인 친구는 남편도 운동권이었어서 아직도 가난하게 산다고 딱 하다 하였소. 남들 집 살 때 집을 못 사서 딱하게 산다고 하셨소. 그러면서 저번 모임에 문재인 욕을 하니까 막 대들더라면서 내가 좌파에게 말을 잘못 꺼내서 된통 당했다 하였소. 무리에서 좌파가 딱 한 명인데 걔가 무서워서 말도 제대로 못 꺼내겠다고 나머지가 다 그 분 눈치를 본다고 하셨소. 아마 우리 어머니가 친구 따라 학생시위에 나갔을 때 그 친구도 함께였을 거외다. 그리고 그 대학친구들도 함께였을테요. 대학생 때는 죽마고우였던 둘이 이렇게 된 거는 누구 때문이오? 대학 때는 생각하는 것도 어울리는 것도 비슷하여 여섯 명이 단짝이었다는데, 한 명이 좌파라고 구분 지어지고 나머지가 좌파 눈치를 본다고 하소연 하는 어머니는 대체 무엇 때문에 이리 되었소? 그 좌파라는 친구 분은 어머니 사업체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하셨고, 내가 갈 때마다 항상 인사하고 어린 나를 놀아주던 기억이 생생하오. 그 분 아들딸과 같이 놀이동산도 갔소. 그 분이 능력이 꽤 좋았는지 그 분이 일이 힘들다고 퇴사하고 나서 어머니도 몹시 힘들어했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사업을 접고 말았소. 어머니는 그 때 번 돈으로 서울에 아파트를 샀는데, 그 분은 그 이후로 내가 세세한 소식을 듣지 못하여 어떻게 사셨는지 모르겠소. 그런데 같이 일할 때 사이가 그렇게 좋던 두 분이, 지금도 당연히 앞에서는 사이가 좋을 두 분이 왜 정치이념은 이리 달라졌는지 나는 도무지 모를 일이오.

어머니는 대학 졸업하고 얻은 첫 직장에서 여직원들이 차별 받는 꼴이 눈꼴 시여서 대표로 여직원을 조직해서 사장한테 들이 박았다고 하였소. 여직원이 당하는 일이 있으면 나한테 다 말했다고, 내가 여직원들 해결사였다고 자랑스럽게 나한테 말하셨소. 그러다가 결혼할 때가 되어 나를 베어 회사에서 짤렸다 하오. 임신을 하면 퇴사하는게 전통이 회사였는데, 나를 베고도 3개월을 더 버티다가 사장님 압력에도 이사 압력에도 굴하지 않던 어머니가 자기를 가장 아껴준 부장님이 눈물 흘리면서 제발 한 번만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꼴에, 그 동안 자기를 그렇게 생각해준 부장이 두 손 잡고 우는 꼴에 마음이 약해져 사직서를 냈다고 하셨소. 그리고 어머니가 조직한 여직원들한테 대표가 그렇게 퇴사하면 우리는 어떻게 하냐고, 우리는 이제 어떻게 다니냐고 누구에게는 하소연을 듣고 누구에게는 욕을 들었다 하는 말을 덧붙이셨소. 사장님께 들이박았다고 할 때는 신나서 말하던 어머니는 사직서 얘기를 할 때는 참으로 어조가 처연하셨소. 가정주부로 살기 싫어 자식은 한 명밖에 계획이 없던 어머니는 퇴사하고 몇 달이 안가 임신한 몸으로 나를 뱃 속에 이고 사업을 시작하셨소. 만삭까지 일을 하시던 어머니는 나를 낳고 나서 한 달도 채 못 쉬시고 다시 회사로 출근하셨고, 나는 그 때문에 엄마 젖 한 번 제대로 못 먹게 자랐소이다.

그 때 회사 여직원 대표였다던 어머니는 지금 시위하는 것을 보면 왜 저런 짓을 하냐고 이해가 안 간다 하시오. 대체 우리 어머니는 왜 이렇게 변해버린 것이오? 80년대에는 분명 내가 듣던 386의 전형이었는데, 어찌하여 60을 바라보는 나이의 어머니는 이렇게 된 것이오? 대학 입학할 때는 내 친구 중에 우리 집이 제일 못 살았는데, 지금은 우리 집이 제일 형편이 좋다고 자랑삼아 말하는 우리 어머니 때문이오? 상이군인 아버지 밑에서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거지처럼 살다가 90년대에 서울 아파트를 샀기 때문이오? 그리고 그 때 산 그 집값이 10억이 넘게 올랐기 때문이오? 다섯 식구 단칸방에서 사는 주제에 삼남매 중에 그나마 공부를 제일 잘했다고 장남을 제치고 혼자 대학을 간, 집안에 경사 났다고 할 만한 좋은 대학을 간 어머니 때문이오? 그 책임감 때문에, 장남도 아니고 장녀도 아닌데, 막내 주제에 집안에서 밀어줬다는 책임감 때문에, 남들 다 결혼해서 분가할 때, 부모님 모시고 살면서 대학 나오자마자 돈 벌어서 부모님 생활비 해드리려 바쁘게 살았던, 평생 일밖에 모르고 사신 우리 어머니 때문이오? 단칸방 거지였다가 이제 종부세 걱정을 하는 우리 어머니의 재산 때문이오?

우리 아버지는 고아였소. 고아인데 공부도 꽤 잘해 이름 있는 대학 법대에 들어갔고 그런 대학은 법대생이 의례 그러하듯 사법시험 준비를 하였소. 1년차에 2차에서 떨어졌고, 2년차에 2차에서 떨어졌소. 그리고 더 이상 공부만 매달릴 수 없던 아버지는 취업을 하셨소. 그렇게 회사를 다니다 IMF 때 아버지가 다녔던 대기업은 부도가 나버렸고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의 직원들은 모두 실업자가 되었소. 아버지도 역시 다른 이들처럼 실업자가 되었는데 아버지는 하나 더 있었소. 그 시절 돈이 넘쳐나던 90년대에 의례 그러듯 직장동료에게 연대보증을 서주었고 그 보증이 덫이 되어 아버지는 3억을 물어주게 되었소. 아버지는 실업자가 되고 나서 취직을 하려했지만 잘되지 않았고 2년, 3년 차츰 실업자로 보내는 기간이 길어졌소. 다행히 어머니가 하시는 자영업이 잘 되어서 돈 부족함 없이 살 수는 있었소. 하지만 그 시절에 남자가 집에서 논다는게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었고 아버지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오. 그 때 우리 가족은 어머니가 일하느냐 바빠서 할머니가 날 키운답시고 처가살이를 하였는데, 아버지가 처가 눈칫밥을 얼마나 먹으셨을지 참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생각이 들었소. 어머니는 몇 년 후 집을 사야하니 그 때 대기업을 다니며 모아둔 월급을 합치자고 하였고 아버지는 그 돈이 없다 하셨소. 어머니가 돈이 왜 없냐고 물으니 그제서야 보증을 잘못 서서 날렸다고 하셨소. 어머니는 돈이 없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걸 숨겨왔다는 사실에 더 분노하였고 이후로 몇 년을 싸움만 하시다 두 분은 결국 이혼하셨소.

아버지는 그 이후 사업을 시작했으나 잘되지 않았고 나는 아버지 집으로 따라가 아버지 밑에서 공부를 강요받으면서 자랐소. 아버지는 그 때 사법고시를 1년 더 봤어야 했다는 말을 내 귀에 딱지가 않도록 하셨고 자기가 아버지가 없어서 의지가 나약했다고 하셨소. 옆에서 아버지가 사내새끼가 거기서 포기하냐고 1년만 시험 더 해보라고 다 잡았으면 붙었을 거라고 나에게 항상 말씀하셨소. 그래서 아버지는 나를 다잡으려고 부던히 노력하셨소. 나에게 사는데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냐며 시험성적을 잘 받는게 정말 중요하다며 그리고 좋은 대학 가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나에게 수도 없이 강조하셨소. 강조가 지나쳐 말이 아니라 폭력으로 나가기도 하였고 그 강도는 갈수록 심해져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나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내 몸이 버티기 힘들 정도였지만 나는 그걸 감내하였소. 아니 감내할 수밖에 없었소. 어머니가 날 키우기를 원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오. 아버지는 중학생 때부터 비정규직이 뭔지 아냐고, 비정규직으로 살면 인생이 끝장이라고, 첫 직장이 비정규직이면 평생 비정규직 3류 인생이라고, 5대 스펙 7대 스펙이 뭔지 아냐고, 요새는 7대 스펙이 안 되면 취업도 안 된다고, 남들 다 하는 7대 스펙 대학 동안 딴 짓 하지 말 정신 똑바로 따지고 따라고, 그 스펙을 쌓아서 어떻게든 전문직이나 정규직 입사를 하라고, 차라리 이도저도 안되면 안정적인 공무원을 하라고, 정말 같은 말을 똑같은 말을 내 귀가 닳도록 수백 번 수천 번을 말하셨소. 끝까지 아버지의 사업은 잘되지 않았고 나와 아버지는 이혼하고 내가 군대 가기 전까지 거실도 없는 10평짜리 투룸 주공아파트에서 같은 방을 쓰며 살았소. 아버지는 지금 정의당에 열렬 지지자시오. 평생 내게 정치 얘기는 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지난 총선 때는 하나만 부탁하자며 비례는 꼭 정의당을 찍어 달라 하셨소. 평소에 정치 얘기는 꺼내시지도 않던 아버지가, 아니 정치 얘기 이전에 내게 부탁도 한 번 안하시던 아버지가 난생 처음 하는 부탁이 그런 부탁이라 당황스럽기도 하였지만, 나는 아버지의 부탁대로 비례 표는 정의당을 찍었소.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은 비록 패배하였지만 그래도 민주당이 이겼으니 아버지는 퍽 기뻐 하셨을거요. 그런데 나는 아버지가 왜 이렇게 되신 지도 모르겠소. 과거 잘 살던 시절의 아버지는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함께 이회창을 꽤 좋아하셨고 아무튼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야 된다고 이번에는 될 거라고 곧잘 말하고는 하셨소. 그리고 전두환 시절 때가 살기는 제일 좋았다는 말을 자주 하셨소. 가끔은 삼청교육대 같은 것이 때때로 필요하다고, 사회 부랑자나 깡패들 잡아다가 교육 좀 해야 된다고 부활시킬 필요도 있는게 아니냐는 말도 하셨소. 그런데 지금은 나한테 정의당에 비례대표 표를 찍어 달라 부탁하고 계시오. 그래도 우리 사회가 정의가 있는 사회가 되어야 되지 않겠냐는 것이 정의당을 찍어달란 이유였소.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남보다 성적이 높아야 한다고 공부를 강요하셨고 고등학교는 외고, 대학교는 서연고 중 하나를 가야한다고 과는 법대가 좋다고 로스쿨이 생기고 나서는 자전이나 상경계를 가라고 내 진학 계획을 학창시절 내내 말씀하셨소. 나는 외고 진학은 준비만 하다 시험도 보지 못하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내신도 수능 성적도 아버지가 기대하시는 성적에 턱 끝에도 미치지 못하였소. 내가 수능 성적이 나온 날, 내 대입이 자기 기대와 완전히 어긋나 버렸다는 것을, 명문대 진학은 꿈도 못 꿀 성적을 받았다는 것을 아신 아버지가 나에게 한숨 쉬며 이제 너한테 기대는 접었다. 라고 하신 말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하오.

  아버지는 그런데 지금 나한테 부탁 하나 하자며 정의당에 비례 표를 주라 하시오. 학력주의, 학벌주의에 매달린 것이 정의오? 비정규직은 절대 안 된다며 남들보다 몇 배로 열심히해서 남들을 밟고 올라서라는 것이 정의오? 나는 아버지는 또 왜 이리 되었는지 모르겠소. 아버지가 한 사업은 정부용역사업이었고 그나마 연차가 오래될수록 실적이 쌓 몇 년전부터 당시 하시던 부업보다는 벌이가 나을 정도가 되었소.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정부 하청이 없어지면서 아버지의 사업은 쫄딱 망하셨소. 그러고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다며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던 아버지인데, 아버지는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 게 잘한 거라 하시오. 그리고 다음에는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야 된다 하시오. 나는 노후자금도 못 모아 놓았을게 뻔한 아버지가 그나마 있던 사업마저 망하고 지금 하는 일도 곧 그만 두셔야 한다는데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하고 먹고 살지 모르겠소. 그리고 왜 자기 사업을 망하게 한 문재인이 대통령 된 게 잘한 거라고 하시는지 나는 도통 모르겠소. 아버지는 또 왜 이렇게 변해버린 것인지 나는 도통 모르겠소. IMF 때 실업자가 된 것 때문이오? 아니면 이혼하고 나올 때 갖고 있던 돈 몇 억을 다 집을 사라할 때 집값이 떨어질거란 정부 말만 믿고  대출해서 집을 안 사고 그 돈으로 사업을 하셔서 날린 것 때문이오? 아니면 이부망천이란 말대로 이혼하고 사업이 망해서 부천 10평대 주공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간 것 때문이오? 그리고 집값이 오를 때 내내 집을 안 사고 지금까지 계속 전세로 전전하다가 벼락거지가 되어버린 탓이오? 60살이 넘어서까지 일하면서 남들 연금도 안되는 돈을 버는 형편 때문이오?  

대체 이게 무엇 때문이오? 난 아직도 두 분이 왜 이렇게 됐는지, 한 명은 상이군인 딸에 단칸방 살이 하던 어머니와 천애고아여서 고모 집에 얹혀살던 아버지가, 그래도 없는 형편에 공부는 꽤나 하셔서 대학 물은 먹으신 두 분이서, 그래서 386 세대랍시고 운동권이랑은 전혀 관련 없어도 남들 하는 시위는 다 따라갔다는 두 분이서, 없는 환경에서 없이 자라서 서로가 성격은 착하다며 눈 맞아 결혼한 두 분이 그리고 내가 태어난 후 내 어린 시절 내내 이회창을 꽤 좋아하시던 두 분이, 서로 싸우는데는 이견이 있어도 나 대학 잘 가라고 매 들고 학원을 초등학생 때부터 10시까지 보내는데 이견이 한 번도 없으시던 두 분이 이혼하고 10년이란 세월이 좀 더 지나고 왜 이렇게도 달라졌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소. 더 모르겠는거는 두 분의 말과 행동의 불일치와 말과 행동과 두 분이 지지하는 정당의 이념과의 불일치. 그리고 그 정당이 당장 자기한테 큰 해를 끼쳐도 자기한테 큰 이익을 줘도 정치적 견해가 바뀔 생각을 안 하다는 것이오. 내가 정치에 대한 견해가 짧은 탓이오? 당연히 부자는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빈자는 정의당을 지지하는 것이오? 그냥 당연한 것이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건 어머니 집값이 몇 억을 급등하건 아무런 지지정당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거는, 이게 이상한거는 내가 아직 무지몽매한 어린애기 때문이오? 나는 모르겠소 도무지.

나는 수도권의 4년제 대학을 나와 서른이 다 되도록 아직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백수이오.  그나마 나에게 용돈을 주던 어머니는 코로나 때문이 하시던 자영업이 일 년 넘게 적자라 너무 힘들다고 나한테 매번 하소연을 하시오. 아버지는 사업이 망해서 힘들다 하시고 어머니는 하시는 자영업이 망할 것 같다고 힘들다 하시오.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삶은 왜 이리 되었소?  과거의 남녀불평등 때문이오? 개인의 능력 탓이오? 그 시절 여느 80년대 대학생처럼 대학에 다니고 다른 이가 같이 하자면 수업거부도 학생시위도 나가시던 그런 386 학생 중 하나 였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왜 이렇게 되었소? 나는 도저히 모르겠소. 언론에서는 매일 20대들이 386탓을 한다고 하지만, 내 어머니 아버지를 보면 도저히 내가 나갈 자리를 깔고 앉아서 비키지 않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소. 나는 어느 이름 모를 나의 또래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탓하며 죽창을 들어야 한 단 말이오? 나는 누구도 탓하고 싶지 않소. 그들도 나와 다름 없는 아들딸의 아버지 어머니들이고 그들도 그들의 삶을 잘 이겨내었소.

내 친구 중에 능력 좋고 돈이 많은 아이들은 다 잘나가는 직장에 취업하였소. 서연고를 나온 아이들, 공대에 들어간 학점을 잘 딴 아이들, 아버지가 인맥이 넓은 아이들, 20살때부터 정말 치열하게 취업 공부를 해온 아이들 모두 좋은 곳에 취업하였소. 나는 수도권의 작은 학교를 나와 아직까지 백수요. 나는 386을 탓하고 싶지 않소. 내 어머니 아버지를 탓하고 싶지 않소. 물론 다 취업한 친구들만 있는 것은 아니오. 고졸이고, 전문대이고, 학점이 낮고, 전공이 취업과 상관 없는 많은 친구들은 그리고 아직 공무원시험 준비나 여러 전문직시험, 고시를 공부하는 친구들은 나와 같이 백수요. 아니 잘못 말했소. 고졸이고 전문대인 친구들은 취업을 하였소. 취업을 하였다가 그만 두었다가 하오. 일년을 일하다 6개월을 쉬었다, 다시 6개월을 일하다 정부취업프로그램을 한다고 1년을 쉬었다 하오. 그 것을 두 어번 반복하다가 정말 백수가 되어버린 친구도 있소. 다른 이들은 요식업, 물류업, 배달업, 공사업, 생산직, 텔레마케팅에 취업하였다가 그만 두고 이직하였다가를 여러 번 하거나 직종을 번갈아가며 다니기도 하오. 풀타임 잡을 그만 둘 때는 아르바이트를 하오. 내가 대학생 때이고 친구들이 아르바이트 할 때, 휴학을 하거나 졸업해서 취준을 할 때나 일을 쉬고 있을 때, 때로는 그 역할이 반대였을 때 서로 반백수라고 농담을 하고 백수라고 서로 놀려대다 보니 내가 착각을 하였소.

이 친구들 중 나보다 사회진출이 3~5년이 빠른 사회진출이 가장 빠른친구들은 아직도 봉급이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하오. 1년차가 되고 2년차가 되도 봉급이 똑같다고 같이 일하는 몇 년 일한 선배들한테 물어보니 나랑 차이가 별로 없다며 다른 업계로 가야겠다며 이직을 몇 번이나 한 사회생활을 가장 오래 한 내 가장 친한 친구도 아직도 임금이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했소. 이 친구는 성공 욕망이 강한지 매일 주말 인생역전 할거 라며 로또를 사오. 왜 당첨되지도 못할 로또를 사냐고 돈 낭비 아니냐고 내가 비웃는 투로 말하니. 이게 아니면 내 인생이 바뀔 수가 있을거 같냐고. 나에게는 이것밖에 없다 하였소. 그 말을 듣고 내 비웃음이 참으로 부끄러워 졌소이다. 가끔 내가 밥을 살 때마다 자기가 로또가 당첨되면 이것보다 몇 배는 비싼거 먹고 싶은만큼 사줄꺼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웃는 것밖에 할게 없소. 그 친구가 며칠 전에 나에게 전화를 해 옛날에 3년 전에 너 코인 했다고 하지 않았냐고, 요새 코인이 난리라는데 코인 좀 아냐고 내게 물었소. 나는 그 친구가 어떻게 될까 두려워 절대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만류하였소.

내 친구 중 하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게임 업계에 가고 싶다고 하였소. 대학의 그럴듯한 관련 학과에 진학하였고 군대에 갔다와서 부터는 동생이 벌써 돈을 벌고 있다고 자기도 돈을 빨리 벌어야 된다고 급하다 하였소. 흔한 군휴학까지 안 하고 어떻게 일정을 대학과 군대를 한 번도 안 쉬고 졸업한 그 친구는 학교에 살다시피 하고 학교 학원 집만을 왕복하며 몇 년을 보냈소. 쉬지 않고 졸업한 내 친구는 취업하는데 2년이 걸렸고, 첫 직장은 3개월 만에 회사가 망하고 말앗소. 그 3개월 만에 망한 회사도 처음의 친구의 눈높이보다 한참 아래 회사였지만, 전역 직후부터 초조해하던 친구는 닥치는대로 원서를 넣어 가장 먼저 되는 곳에 취업하였소. 그 후로 매일 일을 10시간 12시간을 한다고 야근을 너무 오래한다고 너무 힘들다고 친구들한테 몇 달간 투덜더니 몇 달이 지나고서는 단톡방에 카톡도 올라오지 않고 모임도 전혀 나오지 않게 되었소. 취업한지 꽤 시간이 지났으니 지금은 일이 줄었는지, 적응은 잘 했는지 걱정이 되지만 예전에 전화했을 때 일한다고 전화 못 받는다고, 주말이라 좀 자야 된다고 못 받는다고, 그렇게 통화를 못 했을 때가 생각나서 차마 또 방해 하는게 아닐까 싶어 전화 걸기가 망설여지오.

어느 친구는 전문대를 들어갔는데 고등학교 때 덜 한 공부 대학생 때라도 열심히 하겠다면서 매번 시험마다 과 수석을 놓치지 않았소, 어디 대회 나가서 상도 몇 번 탔다는거 보면 열심히 하긴 한 모양이오. 그렇게 전체 과 수석으로 졸업하였는데, 기계과라 졸업 직전에 필수 현장실습이 있어서 한 달인가 두 달인가 중소기업을 다녔소. 거기를 다녀오고 나서 자기는 기계 쪽에는 취업을 안하겠다 하오. 실습하는 직장에서도 일 잘한다고 들어오라 하였는데 자기는 도저히 그 일 못하겠다고 나왔다 하오. 과 교수가 소개시켜주는 일자리도 다 비슷한거라 차라리 다른 일을 알아보겠다고 과 수석이던 전공을 포기하였소. 그래서 기계과 과 수석이던 그 친구는 지금 유튜브 편집자가 되었소.

내 친구 중 하나는 직장을 몇 년 다니고 요새 일을 쉬다가 얼마 전에 물류업체로 재취업을 하였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니 옷을 나르는 일이라고 그냥 엄청나게 힘들다 하였소. 하루 12시간을 일한다는데 봉급은 최저임금인지 300이 안 된다 하오. 12시간을 어떻게 하냐니까 하다 보면 다 된다고 그래도 일하는 시간이 늘어는 돈벌이는 더 된다고 웃소. 힘들다고 하소연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돈벌이가 좋다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오. 이 밖에도 최저임금 받는 일자리를 정규직이랍시고 집에서 4시간, 5시간 떨어진 곳으로 취업한 친구들도 있소. 그 중 하나는 처음에는 자기 직장이 너무 시골이라 주말에 심심해 죽겠다하며 매주 서울을 왔다 갔다 하였는데 그 것도 몇 개월 하더니 교통비가 없다고 올라오지 않더니 이제는 몇 달에 한 번 가족보러 올라 오는게 다여서 일 년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드오. 지방에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은 많으나 어쩌다 한 번 올라와서 금토 저녁 한 번 지내고 다시 내려가기 바쁘니, 한 번을 보지 못 하고 소식만 건너건너 전해 듣는 친구도 여럿이오. 고등학생 때는 매일 보던 사이인데 어찌 이리 되었나 참 우숩소.  내 친구들 10 중 서넛은 지방에 가 있고 둘셋은 서울 저 반대편에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거리에 사오. 일자리는 서울에 제일 많고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몰린다는데 내 친구들은 왜 집 근처에 취업을 못하고 저기 지방으로 아니면 경기도 집에서 정 반대 경기도로 취업을 하는지 그래서 부모님이랑 같이 살지 못하고 그 쥐꼬리만한 월급에서 월세를 수십 만원을 내는지 도통 모를 일이이오.

앞서 친구 중에 취업 잘한 애들도 있다면서 안 풀린 친구들만 이야기 하는 것 같아 이상하오? 안타깝게도 나는 공부를 썩 잘하지 못 했고 유유상종이라고 내 가장 친한 친구들도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 했소. 딱히 학군도 썩 좋은 편이 아니라 서연고 간 인원도 손가락 안에 꼽으니 그렇게 치면 공부 못한 친구들이 많다는게 이상하지 않을거요. 고등학교 때 나름 공부한다고 한 애들인데 수능 3, 4등급 사람마다 그것보다 조금 더 높거나 조금 더 낮게 받았소. 그리고 내신은 그것보다는 조금 더 좋았소. 하지만 우리 모두 한국에서 인간 취급을 받을 수 있는 마지노선인 인서울 대학에는 턱 없이 모자른 성적이었던거요. 그 때 인서울 끄트머리 대학 커트라인이 수능 인원수의 12%였나 아주 낮은 과가 15%였나 했으니, 그 15%에 들어서 대학을 가도 꼴통대학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공부 좀 더하지 그랬냐는 소리를 듣는데, 나나 내 친구들이나 공부를 인문계 평균은 했는데 그런 꼴통대학도 못 간 어떻게 공부를 더럽게도 안 한 잉여인간들이 된 지 모르겠소. 아무튼 세상 사람들이 다들 그렇다 하니 그런가보다 할 뿐이오. 하긴 다 같이 공부를 지지리 못한 잉여인간들 주제에 덜컥 바로 취업을 바라고 최저임금 이상을 바라는 것도 참 웃기는 짓이지도 않소? 대학교 1학년 때인가 교양 과제를 하면서 우리나라 중위 소득이 200만원이라는 자료를 보고 처음에는 잘못 된 자료인가 싶다가, 나중에 가서 맞는 자료인 것을 알고 의구심을 품었는데, 나와 내 친구들이 취업할 때가 되니 비로소 그 의구심이 풀렸소.

내가 앞서 말한 능력이나 빽이 있는 친구들은 사회진출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몇 년을 늦어도 벌써 월급이 500을 왔다 갔다하오. 걔 중에는 몇 년 지나면 세전 연봉이 1억 된다고 자랑하는 이도 있었소. 이 친구의 아버지는 꽤 훌륭한 분이지만, 이 친구의 노력도 아마 그 아버지만큼 훌륭하였을 것이오. 나는 백수이고 인간관계도 퍽 좁음에도 가만히 앉아 있어도 별 소문들이 다 들려오오. '요새도 빽이 통하나봐. 내 친구의 아는 언니가 빽으로 회사 그냥 들어갔다던데.' '우리 삼촌이 시간 좀 지나면 거기 넣어준다더라.' 하는 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오. 아니 처음 초안을 쓸 때는 남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워 쓰지 못했지만 그냥 채용과정부터 어떤 식으로 합격했는지까지 과정을 통째로 듣게 되는 경우도 있소. 나는 그냥 그런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잘 됐네 하고 허허 웃고 마오. 혹여나 피해가 가지 않을까 들었다는 얘기도 함부로 못하는데 내가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하겠소. 그네들이라도 잘 되었으니 좋다며 축하해줄 뿐이오.

그런데 그렇게 겉으로 축하하고 웃고 나면, 참 속으로는 씁쓸하오. 그 직장의 초봉이 최저임금이 훨씬 넘고 연차가 쌓이면 최저임금의 두 배가 되고 세 배가 되고 혹여나 다섯 배 열 배가 될 것을 생각하면, 속으로는 도무지 웃지를 못하겠소. 내가 나 혼자서 내가 죄 지은 것도 없는데도 죄스러워서 속으로는 웃지를 못하겠소. 나는 모르겠소. 이게 내 친한 친구들이 열심히 안 산 탓이오? 몇 년째 다른 업종에 간다고 자격증을 따고 다른 일을 한다고 이직을 하고, 정부에서 하는 교육을 듣고, 대학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학원까지 다니고 오만가지 짓을 다한 친구들이 있는데 아직도 몇 년 째 임금이 최저임금을 벗어나지를 못하오. 내가 내가 말한 모든 이들의 모든 삶을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이들의 노력이 그렇게 차이가 났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소.

그래도 내가 아는게 일부분일 것이라고 대부분은 정상적이고 소문은 거의 다 헛소문이고 과장 된 소문일거라고 있지 않냐고 생각하려 하지만 매번 잊으려 할 때마다 뉴스에서 나오는 채용비리 소식이 그 소문을 애써 부정하기 힘들게 만드오. 공기업도 저럴 지인데 내가 들은 사기업은.....이라는 다음의 문장이 머릿 속에 자동으로 완성되오. 하 그냥 또 허허 하고 웃고 말아야 하는 것이오? 솔직히 나는 정말 모르겠소. 내 친한 친구들이 다 고생을 하면서 그 돈을 받고 일하고 있는데, 정말 이게 과연 나중에 연차가 쌓이면 월급이 오르기는 하는지 아니면 옛날 아버지의 말씀처럼 처음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면 평생 비정규직인지. 그리고 평생 최저임금을 받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오. 그 최저임금을 받는 친구에서는 내가 백수지만 그래도 용돈을 받고 살아 취업준비는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으니 부럽다고 하는 친구들이 있소. 나는 그들에게서 돈이 없어 사법시험 공부를 못했다는 아버지가 겹쳐보이오.  

나는 정말 모르겠소. 내가 말한 친구들의 여태까지의 삶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지만 월급을 500 넘게 받는 좋은 아버지를 둔 내 친구와 월급을 200 넘게 받는 내 가장 친한 친구가 대체 얼마나 큰 노력의 차이를 보였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소. 아직도 티비에서는 노력이 전부라고 하고 인터넷 댓글창에는 노력하지 않았다고 비웃는 댓글들이 가득하오. 내가 아직 어려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이오? 아직 사회생활도 안해본 애송이라서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오? 내가 비록 사교성이 없어 여성 친구들이 많이 없지만 그들이라고 그들의 삶이 남성과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하오. 잘 살던 사람은 더 잘 살 것이고 능력 있는 사람은 잘 벌 것이고, 사회가 외면한 이들은 못 벌 것이오. 나는 이 세 부류의 사람의 노력 여하가 다르다고 내 눈으로 보아본 바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소.

나는 백수기 때문에 남들이 일할 시간에 인터넷 커뮤니티를 몇 시간하고 거기에 남녀 간의 갈등을 나누는 글을 자주 보오. 그런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아이디가 항상 비슷비슷한데 나랑 자주 마주치는 것을 보니 나만큼 인터넷 커뮤니티를 오래하는 것은 확실하오. 나는 이들이 나와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되오. 내가 가는 남초 커뮤니티에 여혐글이 있듯, 여자가 많이 가는 여초 커뮤니티에는 남혐글이 있을 것이오. 나는 이들이 다들 나와 같은 처지라 생각하는데 도무지 왜 편을 나눠 싸우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소. 내 작은 인간관계 속에서 내가 아는 앞서 말한 잘나가는 친구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오지도 않소. 아니 인터넷 커뮤니티란게 뭔지도 모르오. 그들이 원래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지, 내가 그들과 마음을 터놓지 못할 정도로 친하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들이 페미나 안티페미나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듣지 못했소. 아마 그들은 너무 바쁘기 때문일 것이오. 돈 벌기 바쁘고, 소개 받기 바쁘고, 결혼 준비하기 바쁘고, 돈 쓰기 바빠서 말이오. 그들에게 있어 이성은 누구에게는 현재 사랑하는 사람이고, 누구에게는 취업 다음 단계인 결혼의 동반자나 동반자 후보일 뿐이오. 다른 이들이 나와 비슷하다면 나처럼 연애도 결혼도 포기한 이들이 그 중에 대개라도 있다면, 연애도 결혼도 포기하게 하는 사회에서 왜 남녀 간의 싸움을 해야하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소.  

나는 이런 커뮤니티에서 내 주장을 펼치다 계정 정지를 여러 곳 당했소. 내가 하오체를 안 써서 나도 모르게 흥분하여 말이 쌍스럽게 나오거나 비아냥이 나와서인지, 그냥 그 커뮤니티 관리자가 한 쪽을 시원하게 욕하고 스트레스 풀며 지나가기를 원할 뿐이지 골아프게 찬반논쟁 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소. 내가 머리 속에 하는 생각 중 99프로는 내 머리 속에서 나가지 않고 그 중 1프로도 나와 친한 이 한 둘을 거치고 의미 없이 사라질 뿐이오. 이 글도 몇 십명이 들어보고 스크롤을 보고 나가고 중간에 읽다 나가고 다 읽는 이는 아마 몇 명밖에 없을 것이오. 그게 이름도 없고 기자도 아닌 내가 내뱉는 외침의 사정거리이오. 나는 오늘 이 글을 쓰면서 울었소. 그냥 글을 쓰다가 보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울었소. 내 어머니 얘기를 할 때였는지, 아버지 얘기를 할 때 였는지, 내 친구들 얘기를 할 때 였는지 언제부터 울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소. 그러다 눈물이 점점 커져 초등학생 시절 달리기를 하다 넘어져 무릎이 몽땅 까졌을 때처럼 엉엉 울었소. 내가 처음에 하오체로 글을 쓴 거는 욕을 하지 않기 위한 자정작용이었지만 글을 쓰면서 분노에 차서 욕을 하지 않다 보니 슬픔이 몰려와 흐느끼며 울었소. 내 아비와 어미를 생각하며 그들에게 죄스럽지만 아직도 취업을 못하고 있는 나를 생각하며 그리고 일이 힘들다면서도 돈 버니까 좋다는 내 친구들을 생각하며 엉엉대며 울었소.

나는 연애도 결혼도 포기한지 오래 되었소. 3포세대인지 5포세대인지가 뭘 포기하는지 모르지만 새로운 친구들도 인간관계도 남들에게 뽐낼만한 취미생활도 모두 포기하였소. 이런 것을 하려 할 때마다 아버지가 귀에 따갑도록 말했던 5대 스펙이니 7대 스펙이니 비정규직이니 하는 말이 머리 속에 떠오르오. 아니 그 말이 내 머리 속에 인이 박혀서 사라지가 않소. 나는 실업자가 되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지 않았고, 취업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마다 그 모습이 생각나오. 나는 오늘 오랜만에 고시생 친구를 만났소. 벌써 만난지 1년이 넘은 친구지만 시간이 없다고 하여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에야 드디어 만났소. 내 친구는 나를 본지 3시간이 채 안 되서 어서 빨리 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며 이만 헤어지자 하였소.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차마 그를 말리지 못했소. 그는 벌써 고시생 3년차요. 아니 4학년 때부터 시작하였으니 햇수로 4년차요. 나는 그가 너무 이해가 가고 그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다칠까 두려워 커피 한잔만 먹고 가자는 얘기도 못하였소. 1년도 더 넘게 지나 만난 그의 행동은 마치 맹수에게 쫓기는 것 같았소. 그를 쫓고 있는 맹수가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하오. 아니 알 것 같지만 애써 모른 척 하려 하오. 그의 맹수를 떠올리면 내 뒤를 쫓고 있는 내가 애써 잊으려하고 있는 내 뒤의 맹수가 생각날 것 같아서요.

그 친구를 만나고 난 후 오랜만의 외출에 너무 짧은 만남에 공허감이 들어. 왕복하는 거리보다 못한 시간 동안 친구를 보면서 좀만 더 보자는 말을 차마 못하겠는 것이 좀 씁쓸해서, 거리를 배회하면서 인터넷을 보고 거기서 써 있는 기사를 보고 그 기사가 받아쓰고 있는 페이스북에 들어가서 페이스북 내용을 보고 페미니즘은 안티페미니즘과 싸워야 한다는 글을 보고, 또 20대 남성이 현재 5060 남성보다 성범죄를 더 한 다는 글을 보고, 그 페미니즘에 대한 내용을 한참 생각하다가 잠시 이 발상을 잊지 않으려고 결론 몇 문장이라도 잊지 않으려고 잠시 나에게로 보내는 카톡에 쓴다는 글이 결론을 먼저 쓰고도 울면서 한 시간을 더 쓰면서 아직도 끝이 안 나오.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오. 내가 글을 보고 처음 든 생각과 결론은 당신들 386에 대한 의문이었소. 386 당신들이 우리 아비어미이듯이 우리도 20대인 우리들도 당신들이 아들딸이오. 당신들의 삿대질에 오늘도 보잘 것 없는 20대 여남들은 피를 흘리오. 대체 우리가 무엇을 그리 잘못하였소???

같은 386년이라도 5060 여자들은 찾아 볼 수도 없고 5060 남자들은 작은 스피커가 전국을 울리는 스피커가 돼서 펑펑 나오는데 대체 그 스피커를 들고 5060시대에는 성차별인지 모르는 것을 행했지만 알고보니 성차별이었다. 성차별인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 20대 너희도 어쨌든 성차별을 한 것이고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이런 말들을 하오. 어쩌면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소. 아니 맞을거요. 어차피 당신네 기울러진 운동장이 60도 였다면 우리의 운동장은 20도이고 뭐 이런 셈일거요. 그런데 그 차별을 인정한 그 차별을 빨아먹고 성공했다는 것을 인정한 당신들은, 당신들에게 빨린 5060 여자들을 위해 무엇을 하시오? 경력단절녀를 위해야 한다고 말로 떠드는 것 말고 대체 실질적으로 무엇을 하시오? 채용할 때 경력단절녀를 우선 고려하시오? 경단녀 관련 한 정부 사업을 제안 하시오? 시민단체를 만들어 더 많은 경단녀 지원을 위하여 시위라도 하셨소? 경단녀 관련 예산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감시하여 고발을 하셨소? 아니오 당신들은 아무것도 안 했소. 참으로 부럽소. 나는 나도 모르게 5060여성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성장하였다. 그것을 이제는 인정한다. 그러니까 이제 5060 남성은 페미니즘을 응원하겠다. 여성을 응원하겠다. 너희 20대 남성이 20대 여성과 동등하다는 것은 착각일 뿐이다. 너희도 누렸으니 양보해라. 이런 말을 당당히 쓰는 그대가 참으로 부럽소. 그런 말을 하면서 팔로워 수가 수 만이 있고, 듣기 싫은 말을 하는 친구들을 모두 차단하였고 수 십명이 관심을 갖고 댓글을 달아주는, '그래서 내가 5060 여성에게 누린거 인정, 하지만 5060 여성에게 돌려주지는 않고 20대 여성을 응원할거야.' 라고 당당히 외치고 당당히 지지받는 그대가 참으로 부럽소.

나는 지금 큰 스피커로 떠들어대는 5060 남성들 말고 더 많은 5060 남성들을 아오. 그리고 또 5060 여성들을 아오. 다 정년이 되서 아니면 정년이 되기도 전에, 아니면 정년이 되기 정말 터무니 없이도 전에, 평생 직장이라 여겼던 곳에서 일자리를 잃고 직장을 못 구해서 등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자영업을 하고, 그 자영업이 몇 년 하다가 태반이 망하고, 망하면 그 동안 모아뒀돈 목돈을 잃고, 그러고 나서 그냥 일을 못 구해 집에만 있거나, 결국 집에만 있는 것을 못 참고 또 자영업을 하거나, 그러다 또 자영업이 망하면 노후자금도 잃고, 더 이상 사업은 하지 말아야겠다 싶으면 경비일 아니면 청소일, 그것도 12시간 근무에 휴게실 하나 없는 일. 거기서 근무하다가 장기가 썩고 망가지는 그런 숱한 5060들을 아오. 그렇게 자영업 해서 모아둔 돈을 날리고, 직업 못 구해서 모아둔 돈 까먹고, 뼈 빠지게 인생 내내 일하다가 어쩔 수 없이 직장에서 밀려나서 광야로 나오고 나서 주식 삐끗, 사업 삐끗, 그냥 아는 사람한테 사기 삐끗, 그냥 삐끗 한 번 아님 두 번 하니 그 동안 번 돈이 다 날라간 5060들을, 그리고 시간이 지나 7080이 되는 많은 이들을 아오.

그렇게 5060이 7080이 되어 돈을 못 벌고 돈도 없어서, 챙겨줄 자식도 없고 자식들도 자기 살기 급급해서, 그냥 빈곤하게 사는 노인들이 많은 나라, 노인빈곤율이 50%대에 육박하는 OECD 노인빈곤율 1위인 국가, 그리고 또 노인빈곤율 상승도 OECD 1위국가 심지어 고령화도 거의 세계1위인 국가. 그러다 돈이 없어서 자살하는 OECD 노인자살율 1위 국가, 그리고 그 노인자살 자살 중 40프로 이상이 경제적 이유로 자살하는 국가. 그런 국가에 사는 5060, 7080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소. 어떤 사람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면서 화려하게 직장을 때려치는데, 돈도 없고 가오도 없어서. 아니, 돈이 없어서 가오가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많은 5060들을 아오. 그래서 그 많은 5060을 위해 무엇을 하였소? 같은 386 같은 운동권이이어도 어떤 이는 집을 못사 아직까지 돈이 없고 어떤 이는 직장을 못 구해 나이 50줄이 되도록 논술 교사를 전전하고, 어떤 이는 정치인이 되고 사회 유력자가 되고, 사회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었소. 그래서 그렇게 크게 되어서 무엇을 하였소?

우리한테 무엇을 하였냐 묻는게 아니오. 본인들의 동지들 같은 386들 본인들의 친구들, 5060 남성들 여성들. 그리고 본인들이 인정하는 피해자들 5060 여성들,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였나 묻는 것이오. 이제 386은 686이 되어가고 있고 곧 있으면 786 886이 되오. 그 절반이 빈곤하다는 노인기초연금으로 겨우 먹고 산다는 그 나이가 되오. 고령화 속도도 빨라 오히려 예전 노인들보다 더 많은 복지가 필요한 786, 886 세대가 되오. 20대의 엉덩이를 걷어차기 보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오? 그래도 한 때의 동지 아니오? 나는 도움을 바라지도 않소. 내게 도움 주는 386은 우리 집에 있소. 그 386의 엉덩이 걷어차면 나도 배를 곪소.

생각해보면 내가 보잘 것 없어서 나의 아비와 어미가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대단한 당신들의 아들 딸들도 당신들이 대단한 만큼 대단한가 보오. 그렇게 똑똑하고 그렇게 성공한 분들이니 아들, 딸은 얼마나 잘 크셨겠소. 어련히 잘 도와 주셨겠소. 나는 돈도 없고 가오도 없어서 그냥 이러고 빌빌거리며 살지만 그 좋은 5060 아버지를 둔 아들, 딸들은 무언가가 자기를 위해 희생 당했다는 것을 말하면서 남들에게 그 희생을 갚으라 말할 만큼 그런 말을 해도 누가 감히 뭐라 하지 못 할 만큼의 위치의 아들, 딸들은 돈도 가오도 있어서 무언가 대단한 담론을 이끌며 사시겠지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바이오. 아니 이제야 이해하였소. 이 문장 쓰는 이 때 알았소. 방금 전의 당신들의 삿대질에 우리 20대 여남이 피를 흘린다는 말은 잘못 되었소. 당신들의 삿대질의 당신들의 아들, 딸을 제외한 나머지 우리 남겨진 20대 여남들을 피를 흘리오. 당신들은 우리 아비도 어미도 아니오. 그리하여 그리 자유롭게 거대담론을 이끌며 20대에게 손가락질 하고 있을 수가 있는 것이오.

나는 글을 잘 쓰거나 마음을 움직이게 쓰거나 하는 법은 모르겠소. 논리적이고 빈틈 없게 쓰는 법도 모르겠소. 그래서 내가 아직도 취업을 못하는지도 모르오. 명색이 문과인데 글 쓰는 법도 모른다니 얼마나 우스운 일이오. 거리의 건물 사이 골목에 서서 질질 짜면서 나에게로 보내는 카톡에 이 글을 쓰는데 벌써 한 시간이 지났소. 그 동안 여럿이 내 꼴을 이상하게 보면서 지나갔소. 평소 같았으면 남 눈치에 부끄러워 자리를 떴겠지만, 이제는 남 눈치를 보는게 왜 인지도 모르겠소. 이민을 가면 나을지 저승에 가면 나을지 나는 모르겠소. 내 친구들과 내 부모를 보고 뉴스기사를 보면, 그리고 그 뉴스기사를 보고 내 주위의 현실을 보면, 내 머릿속이 붕괴되오. 얼마나 내가 아직 어려서 그렇다고 아직 뭘 몰라서 그렇다고 얼마나 더 날 설득할 수 있을 지 모르겠소. 내 뒤에는 맹수가 있는데 이를 잊으려 들어가는 커뮤니티는 항상 남녀싸움 중이오. 뉴스는 이제 아예 거기에 더해 20대와 386을 싸움 붙이고 있소. 그 386 중 내가 그나마 좋아했던 사람의 글이 내 심장을 칼로 찔렀고 그 칼이 심장에 박혔소. 나는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소. 부모님이 이혼하고 눈물이 마른 줄 알았던 나인데, 오늘 그 동안 못 운 것까지 모아 한 번에 울었소.

“프란츠 파농이 말한 수평폭력입니다. 식민지 국가에서 피지배자가 지배자에게 당한 폭력의 스트레스를 자신과 같은 동료, 혹은 자신보다 약한 여자나 아동에 대한 폭력을 통해 해소하는 것. 식민지배자는 너무 강해서 저항을 할 수가 없거든요.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을 억압한 구조를 만들어 그들을 좌절하게 만든 것은 기성세대인데, 그들은 이 사회에서 권력을 갖고 있어 감히 공격을 못하죠. 그래서 애먼 동년배 여성들이 "페미", "페미나치", "래디컬 페미"라는 브랜드로 묶여 공격의 타깃이 되는 거죠.”

내가 좋아했던 아니 지금도 꽤 좋아하는 그의 페이스북에 쓰여 있는 글이오. 그는 페이스북에서 수평폭력이 일어나고 있다 하였소. 나는 그가 처음에 말한 시절은 모르지만 관심을 가질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 예전부터 얼마나 작은 마이크를 가지고 끊임없이 말했는지 보았소. 그가 정치권을 향해, 귀를 기우리려는 의도조차 없는 그 곳에 얼마나 논설을 하고 주장을 했는지 보았소. 그리고 그가 얼마나 어이없는 일로 조롱받고 비난 받았는지 보았소. 디워를 보았고, 홍대 조형물도 보았고, 조국 사태도 보았고. 언론이 그 어이없는 일을 어떻게 조롱 당하고 비난 받을 일로 만들었지, 그가 말한 것이 얼마나 곡해되어 대중에게 전달되는지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소. 그리고 그런 논란을 겪을수록 그가 뉴스에 오르락내리락 할 수록 그의 마이크가 점점 커감을 나는 보았소.

나는 그가, 아니 당신이 동양대에 첫 교수 임용이 되며 SNS에 처음으로 직장을 얻었다는 투로 농담하던 것도 잊지 않았소. 그리고 동양대를 때리치면서 돈이 없이 가오가 없냐고 쓰던 그 모습도 기억하오. 당신은 얼마나 기성세대이오? 당신은 얼마나 억압할 구조를 만들어서 다른 이를 좌절시켰소? 당신은 얼마나 이 사회에서 권력을 갖고 있소? 당신은 얼마나 대단하여 감히 공격받지 못하오? 단언컨대, 내가 지켜 본 당신은 이 어느 하나에도 해당되지 못하오. 내가 군인 시절에 우리 부대 부조리가 너무 많다고 없애야 된다고 했을 때, 이병 때 상병장 되면 없애자던 이들이 그 때 되니 뭘 그런 것을 이제와 얘기하냐고 했을 때, 나 혼자 선임동기후임을 미친놈처럼 붙잡고 늘어지던 때가 있었소.

그들은 내 미친놈 같은 성화에 못 이겨 그 동안 자기들은 기억도 못하던 내가 기억에서 끄집어낸 부조리들을 내가 없애자는대로 없앴지만, 그들은 나를 엄청 비웃었소. 거의 병장이 다 돼서 이등병 걱정을 하는 내가 그들에게는 아마 광인으로 보였을거요. 그 중에 하도 내가 논쟁하고 설득하려 하니까 누군가 그랬소 얘 나중에 티비 나와서 떠들 것 같지 않냐고, 그러면서 웃었고 그리고 또 누가 아 진중권인가 걔처럼? 했고 따라 웃었소. 나는 나를 비웃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소. 그런데 당신이 무슨 권력이 있었다고 감히 공격 받지 못하는 대상을 참칭하는거요? 불과 몇 년 전에 까까머리 군바리들한테도 비웃음 당하던게 당신이었소.

나는 당신이 수평폭력을 저지르는 것으로 보이오. 당신을 억압하던 기성 권력에 대항할 수 없자, 그에 수십 년간 당한 스트레스를 자신보다 약한 권력 없는 20대 남자를 통해 푸는 것 같소. 그 취업도 못해서 빌빌거리고 있는 애새끼들을 상대로 말이오. 내가 여성이 아니고 아동이 아니어서 수평폭력의 대상이 되지도 못하는거요? 철학을 배운 그대가 그런 말을 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오. 그대는 그 말이 지금의 상황에 딱 맞다고 느껴져서 인용했겠지만, 나도 멍하니 그대의 페이스북을 보다 당신들이 행하는 짓들과 그것이 무언가 부조리하다가 생각되는 것, 그리고 당신의 행동이 왜 부조리하게 느껴졌는가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글을 내가 위에 인용한 당신 그 페이스북 글에 발견하였소. 당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 수평폭력이오.

조선일보에서 당신 말을 받아 써서 온갖 기사를 낼 때도, 방송에서 국민의 힘 쪽 패널로 나올 때도, 국민의 힘이 선거에서 이겨야 된다고 말할 때도, 나는 당신이 정말 진보주의자여서, 정파에 상관없는 진보주의자여서, 조국 사태는 확실히 당신 입장이 맞으니까. 그 이후에도 국민의 힘에 가서 어떻게 하면 더 권력을 잡을지에 대해 조언할 때도 뭐 민주당이나 국민의 힘이나 보수인거는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뭔가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그렇게 믿었소. 당신은 나한테 칼을 꼽았소. 당신이 생각하는 저항하지 못하는 식민지배자는 무엇이오? 민주당이오? 청와대요? 조중동이오? 사회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386이오? 아니면 1년 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문빠들이오? 이제 당신이 저항해야 할 곳은 어디오? 1년 뒤에 대통령이 바뀌면 인터넛 까페에나 있을 문빠들을 찾아가서 저항할테요? 아니면 그 때는 그 때 대통령 빠돌이들한테 저항하겠소? 당신이 저항해야 할 곳이 20대 남자들이 말하는 안티페미니즘이오? 아니면 그냥 이 곳도 저 곳도 까면 까고 불러주면 가서 조언하고, 정처없이 그냥 마음에 내키지 않는 모두를 깔테오?  당신의 국민의 힘 옹호 말 한마디가 뉴스 기사 20개를 양산하고, 그 뉴스기사 20개가 또 다른 뉴스기사 100개를 양산하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대중이 그 뉴스에 어떻게 인식을 바꾸는지를 알면서?

나는 당신 페이스북에 매우 오랜만에 들어가 보았고, 당신의 달라진 모습이 몹시 낯설었지만, 참아가며 당신의 페북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내릴 수 있을 때까지 내려보았소. 거기서 유일하게 건질 것이라고는 당신이 링크한 한국일보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기사였소. 이 글을 쓰면서 제목이 기억이 안나. 네이버에 장애인 이동권이나 진중권 장애인 이동권이라니 치니 뉴스에는 장애인 가지고 자치단체랑 기업에서 홍보하는 뉴스밖에 없었소. 참으로 우숩지 않소? 당신의 페이스북의 말 한마디는 기사 100개 200개를 쏟아내며 인용 되는데, 이 좋은 기사는 나한테 처음으로 저상버스에 대해 생각하게 한 이 기사는 네이버에 장애인 이동권이라고 검색하도 나오지가 않소. 당신 그러면서 페이스북 글을 쓰고 그게 언론사 서른 곳에 뉴스 백 여개에 인용 되는 것이 즐거우시오? 정작 포털에는 당신의 페북 인용밖에 없고, 장애인 이동권을 검색하면 아무 기사 하나 아니 흔한 블로그 글 하나 안 나오는 현실을 보면서? 나는 당신의 페이스북에 다시 들어가서 그 링크 를 클릭해서야 그 뉴스를 볼 수 있었소. 그 뉴스의 조회수는 당신이 김어준 까는거를 받아쓰는 조선일보 기사의 1/100? 당신이 이준석이랑 싸우는 거를 받아쓰는 조선일보 기사의 1/1000? 아니 그 마저 안될거요. 김어준의 천분의 일이고 이준석의 만분의 일일 수도 있소. 조선일보 독자마당에서 그 조선일보를 상대로 스트레이트를 꼽던 당신이 어찌 이리 되셨소? 그 은혜를 못 잊어 지금이라도 조선일보에 보은이라도 하려고 하시오? 조선일보의 독자논객에서 조선일보의 취재원라도 된거요? 취재소스를 줄테니 알아서 받아적으라고, 문빠도 까고, 민주당도 까고, 국민의 힘도 까고, 이준석도 까고, 이준석 까는 김에 20대 남성도 같이 까는 것이오? 우리는 왜 까는 김에 같이 까이게 되었소? 당신이 저지르는게 수평폭력이오.

노회찬이 죽었을 때 나는 방학이어서 태국에 놀러 갔었소. 해외여행이라 친구랑 들떠서 놀던 와중에 잠깐 네이버를 보았소. 노회찬이 죽었다는거요. 와 진짜 방금 전까지 썰전하던 양반이 왜 죽어. 난 믿기지가 않았소. 근데 기사를 보니 정말 죽었었소. 정말로. 그 때 이후로 3일 동안 대가리 속에 그 생각밖에 없었소. 같이 가던 친구가 왤케 기분이 축 쳐지나며 놀러와 놓고 이게 뭐냐며 짜증을 내었고. 나는 친구를 혼자 놀라고 보내고, 방콕에 돌아와서 출국일까지 밤에 술을 먹고 낮에 호텔에 박혀있었소. 내가 노회찬을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고 표를 준 적도 없는데 왜 그랬는지 나도 의문이오. 그냥 절대 죽어서는 안되는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만 들었소. 나는 유시민이 검사장 사건을 일으켰을 때 별로 놀랍지 않았소. 이걸 나중에 놀라는 사람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소. 유시민은 97대선 게임의 법칙을 쓴 사람이오. 놀란 사람은 그 책을 몰랐는지 몰라도 나는 그 책을 봤기 때문에 당연히 유시민을 그럴 수 있다 생각했소. 그리고 그 이후로 정치평론을 그만 둔 것도 뒷다리 잡혀 여권에서 욕을 먹은 것도 뭐 적당하고 적절하게 역할을 하고 마무리 되었다 생각했소.

나는 당신은 이해할 수가 없소. 내가 당신의 저서를 미학 오디세이만 읽고 정치쪽 저서는 안 읽어봐서 그런지도 모르겠소.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당신이 이해 안 가오. 정말 당신이 수평폭력을 저지르는 것 같소. 0선 의원 이준석과 그 똘마니로 보이는 20대 백수 일베충들 상대로 그 동안 저항 못한거 스트레스 왕창 담아서 신나게 두들겨 패고 있는 것 같소. 근데 이준석은 기득권이라 쳐도 우리는 뭐요? 이준석이 20대편 든다니까 20대도 다 기득권이오? 당신은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소. '나는 기득권 문빠한테도 저항하고 집권층한테도 저항한다. 그리고 마초 국민의 힘도 저항한다. 그러니 수평폭력이 아니다. 권력에 대한 저항이다.' 이렇게 말이오. 그건 20대 남자도 마찬가지 아니오? 문빠, 집권층, 마초 국민의 힘 다 싫다고 뽑은게 이번 지선 아니오? 뭐가 다르오? 당신이 수평폭력을 한다는 20대 남자와 지금 당신의 모습과 뭐가 다르오? 잠깐 보기에는 비슷한 구조로 보일지 몰라도 자세히 보면 다른 것이오? 내 뇌는 아무리 생각을 되집고 다시 한 번을 더 보아도 똑같은 것으로 보이오.

당신이 그렇게 까대는 김어준이나 유시민도, 기타 다른 인물들도 왜 지금 와서 그렇게 까대는지 이해가 안 가오. 그 사람들 이제나 저제나 다 똑같은 인간들 아니오? 조국 사태 이전에는 눈에 들보가 덮여있다가 조국이 당신 눈에 들보를 빼내 주었소? 김어준은 부정 선거, 선거 조작도 주장한 사람이오. 그거는 눈에 들보에 가려 미처 보지 못하였소? 그 때는 당신도 문빠여서 다음 정권을 위해서 참은거시오? 왜 새누리당과 조선일보에 달려가서 김어준의 부정선거 주장에 대해 낱낱이 논설하지 않았는지 참 의아하오. 당신 능력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텐데 말이오. 당신 행동에는 단 한 가지 패턴만 보이오.

"석사 학력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정교수로 임용해준 최성해 총장이 너무 고마웠다. 교수가 되려면 박사학위는 당연한 것인데 석사학위임에도 교수를 임명시켜 주다니, 고정적인 수입이 얼마만지 정말 감사하다. 하 너무 감사하다. 고정수입 몇 년 째라 너무 감사한데 내가 갚을 길이 없다. 조국 사태가 터지니 이상하게 총장님이 공격받는다 내가 자주 친하고 자주 뵙는 분인데 아주 훌륭한 분인데. 조민 표창장 의혹이 터지자 마자 문빠놈들이 최성해 총장님을 극우적 인물이라고 헤드라인을 써서 보도하더라. 이런 주홍글씨를 찍고 보는 반상식적인 짓을 어떻게 정당에서 한 단 말인가. 민주당이 그러고도 정당이란 말인가. 문빠가 그러고도 정상인들이란 말인가. 시간이 지나도 조국을 지키려고 우리 최성해 총장님을 비방하고 있다. 문빠놈들 가만 안 둔다. 내가 총장님을 지켜드리겠다. 동양대 교수가 동양대 총장 비호하는 가오 상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 가오 안 빠지게 동양대 교수직부터 벗어던지고 총장님을 지켜드리겠다. 총장님이 나를 위해주셨으니 나도 총장님을 위해야겠다. 총장님을 지키지 못했다...총장님을 지키지 못해도 총장을 해친 문빠들은 내 손으로 끝장낸다"

유치하오? 나한테 보이는 당신의 모습이오. 아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똑같은 짓을 하던 사람들을 상대로 조국사태 이전에는 웃으면서 같이 방송하던 사람이 조국사태 이후에는 위선자고 사기꾼이라고 날을 세우는 이유가 나는 머리를 아무리 굴려고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소.  조국사태에 휘말려 가지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억울하게 최성해 총장이 당하는 것을 참지 못했는데 자신이 나서고도 최성해 총장이 퇴임당하니 내 은인인 총장님을 해한 자들이 도무지 참을 수 없어서, 그 동안 어깨동무 했던 유시민, 김어준, 공지영, 누구, 누구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 모두 까고 있는 것으로 밖에 도무지 보이지 않소. 십년을 넘게 같이 일했는데 어떻게 이제야 그들의 흠결이 보인단 말이오. 최성해 총장을 위한 불꽃이 눈에 들보를 태워 버렸소?

나는 처음의 당신이 교수직을 집어던질 때 총장을 지키기 위해 퇴임했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소. 하지만 나도 당신과 정경심을 채용했다던 총장이 골수 우파고 무슨 수구적 사고라는게 믿겨지지 않았고, 그 때는 당신이 싸우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였소. 그냥 내 어미가 자기도 자기를 위해 준 사람 때문에 다른 이들을 뒤로 하고 떠났다고 했기에.  당신 모습을 내 멋대로 내 어미와 겹쳐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소. 그런데 당신이 말 한 마디가 조선일보 기사 몇 개가 돼서 나오고 그게 또 다른 언론사 몇 십개의 기사가 돼서 나오고, 당신의 페이스북 말이 조선일보 조회수를 몇 만개를 혹은 몇 십만개를 올려주어 수익을 주고, 그 수익보다 더 큰 대중이 조선일보 입맛대로 움직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당신이 참으로 이해가 안 가오.

본인이 김어준을 까고, 이준석과 페미 설전을 벌이는 페이스북 글이가 수 백개의 기사가 되어서 포털을 장식 할 때, 왜 당신 페이스북에 있던 유일한 가치 있던 글인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기사는 그런 기사에 묻혀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하는지 모르겠소. 당신은 당신이 이 쪽도 까고 저 쪽도 깐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쪽을 까는 문장은 기사 수 십개, 수 백개의 기사가 되어 날라져서 수 십만명 수 백만명이 보고,  저 쪽을 까는 문장은 그저 구글으로도 찾기 힘든 그대의 페이스북 공간에 머무르며, 수많은 인터넷 이용자 중 페이스북 이용자만이, 그 수고를 감수하고 당신의 페이스북에 찾아 들어들오거나 당신의 글 하나하나를 모두 보는 열의를 가진 그 몇몇들만이 보는 그 작은 울타리 속의 글로서 남는 것을 아는지, 알면서도 그러는 것인지 참으로 모르겠소.



25
  • 글에 힘이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 애쓰셨습니다
  • 계속 써주시길 바라겠습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686 일상/생각홍차넷 회원님들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21 거위너구리 21/05/17 4340 0
11680 일상/생각조선시대에서 환생(?) 한다면 한량이 되고 싶습니다. 12 평범한날이젤힘듦 21/05/16 4537 0
11678 일상/생각깜짝깜짝 놀랄수밖에 없는 도그 포비아의 현실... 3 알겠슘돠 21/05/15 4025 0
11674 일상/생각어쩌다 음악-2 한달살이 21/05/14 3883 4
11670 일상/생각어쩌다 음악-1 8 한달살이 21/05/13 3587 9
11664 일상/생각무거운 동영상을 하나 공유합니다. 2 귀차니스트 21/05/12 3695 2
11662 일상/생각자전거 자물쇠 절단기 19 주식하는 제로스 21/05/11 5414 6
11660 일상/생각무엇이 나를 위로하는가.. 8 켈로그김 21/05/10 3630 11
11656 일상/생각그냥 쓰는 이야기 1 私律 21/05/08 3338 6
11649 일상/생각우리 (전)회장님의 비자금 빼먹기 14 Picard 21/05/06 4299 5
11642 일상/생각어느 개발자의 현타(2) 3 멜로 21/05/05 4231 13
11638 일상/생각어느 개발자의 현타 22 거소 21/05/04 7442 30
11621 일상/생각간편하게 분노하는 시대 30 BriskDay 21/04/27 4713 25
11617 일상/생각20대가 386의 글을 보고 386들에게 고함(2) 27 가람 21/04/26 6158 15
11614 일상/생각20대가 386의 글을 보고 386들에게 고함(1) 21 가람 21/04/26 4754 25
11610 일상/생각출발일 72시간 이내 -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사태 23 소요 21/04/25 3928 12
11607 일상/생각오늘 정말 날씨가 좋네요 2 필교 21/04/24 3487 1
11604 일상/생각채식에 대한 단상 16 일상생활가능 21/04/22 5342 20
11590 일상/생각연결감에 대하여 6 오쇼 라즈니쉬 21/04/18 4089 5
11581 일상/생각1년간 펜을 놓은 이유, 지금 펜을 다시 잡은 이유. 9 Jaceyoung 21/04/14 3731 28
11576 일상/생각힘든 청춘들, 서로 사랑하기를 응원합니다. 28 귀차니스트 21/04/13 5712 3
11564 일상/생각홍차넷의 한 분께 감사드립니다. 3 순수한글닉 21/04/08 5136 23
11561 일상/생각☆★ 제 1회 홍차넷배 몬생긴 고양이 사진전 ★☆ 41 사이시옷 21/04/08 5083 23
11558 일상/생각XXX여도 괜찮아. 8 moqq 21/04/07 3622 5
11547 일상/생각공짜 드립 커피 3 아침커피 21/04/04 3863 13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