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1/06/01 10:27:52
Name   맥주만땅
Subject   낯선 과학자, 김우재씨의 정치 사설






누군가 옳고 그르다를 이야기 하고 싶다기 보다는 뉴게에 올리기는 뉴스가 아니고,
타임라인에 올리기에는 너무 길어서 티타임에 올립니다.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시면 삭제해 주십시오.
------------------------
한겨레 칼럼니스트를 그만둡니다. 어제 보낸 글을 게재할 수 없다는 국 차원의 결정을 내렸다는데, 목수정씨 관련 게이트키핑 이후 계속되는 칼럼 내용 및 방향에 대한 과도한 간섭에 질렸습니다. 2013년부터 시작한 한겨레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한겨레에 쓴 글들로 과학자의 시선을 한국사회에 많이 알릴 수 있었고, 그런 글들로 욕도 많이 먹고 고소도 당했습니다. 이제 한겨레와 저의 시각과 관점은 꽤 많이 갈라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저는 저의 길을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래는 한겨레 게재가 거부된 글입니다.
----
이준석 너머
김영삼은 25세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불과 15년 전, 열린우리당은 소위 탄돌이라 불리는 386세대 학생 운동권을 대대적으로 공천, 무려 108명의 국회의원을 초선으로 채웠다. 나이로만 따지면, 류호정, 장혜영, 이준석 모두 한국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세대에게 새로운 정치적 경험은 아니다. 정치의 영역에서, 새로움을 가장하기 위해 생물학적 나이를 도용하는건 낡은 우생학적 전략이다. 젊은 나이가 기존의 기득권과 구별되는 차이로 쉽게 부각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차이가 새로움으로 연결되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렇게 물으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이준석이 만들고 싶은 국가의 모습은 무엇인가. 이명박, 박근혜로 경직된 그 당에 존재하면서 얻는 반사적 이익 외에, 이준석이 정치인으로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추구해온 정치철학은 어떻게 요약할 수 있는가. 각종 방송에서 반대세력과 아군을 따끔하게 비판했던 방송인으로서의 활동 외에, 그만의 정치적 비전은 무엇인가. 상대적으로 젊다는 걸 빼면 기억나는 것이 없다. 이른 나이에 정계에 입문해서 남들보다 정치적 계산이 빠른 정치기술자가 되었다는 것 외에, 이준석을 표현할 단어를 떠올리는 일은 힘들다.
민주당은 더욱 처참하다. 탄돌이 세대에 막혀 정계 진입이 좌절된 70년대생 가운데 살아남은 몇몇 정치인들은 거의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386 막내가 됐고, 일찌감치 정치적 경험과 자산을 독차지했던 386세대가 당을 장악하고 그 어떤 혁신적 대안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선거결과와 여론조사를 쳐다보며 계산기만 두들기는 무능한 여당이 되었다. 국민이 만들어준 180석의 염원을 제대로 읽는 국회의원 한 명 없이, 민주당은 서울과 부산을 국민의힘에 어이없이 넘겨주었다. 정권교체를 위해 이준석이라도 껴앉으려는 정당과, 국회의원직 유지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정당, 그게 작금의 한국 정치다.
그나마 희망을 보여줘야 할 정의당의 전략은 구걸이다. 아무 이유 없이 청년에게 더 많은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이 구걸의 정치는 여성할당제와는 맥이 다르다. 역사적으로 청년정치가 탄압받은 적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근대 이후 세계의 대부분 국가에서, 청년 정치는 꾸준히 추구되고 실험되었으며 오히려 장려되었다. 문제는 청년 정치를 아무런 맥락 없이 기계적으로 도입하려는 정의당의 현실왜곡에 있다. 류호정과 장혜영의 영입에 얼마나 치열한 정당으로서의 고민이 있었는지 반성하지 못한다면, 청년정의당으로 청년 장사나 하는 정의당엔 희망이 없다.
그나마 사람들이 이준석 열풍에 동의하는 데에는, 그가 지난 10년간 살아온 정치인으로서의 치열한 경험이 녹아 있다. 류호정과 장혜영의 정치엔, 이준석을 비판할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 나이만 비슷할 뿐이다. 최근 방송토론에서 페미니즘 시장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정치인 신지예는, 이준석의 데이터와 치밀한 반론에 막혀 조롱만 당했다. 나이로도, 실력으로도, 진보진영의 청년정치가 이준석 한 명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이 준엄한 사실을, 지금이라도 인정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정치인과 함께 꿈을 꾸지 못했다. 김대중의 연설을 듣기 위해 여의도에 운집했던 100만의 민중과, 노무현을 위해 저금통을 털었던 그 순수한 사람들의 정치적 열망은, 어느새 모두 진영구도로 환원되어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의 진정한 실패는, 국민과 함께 만들어갈 세상에 대한 꿈을 보여주지 못했다는데서 찾아야 할지 모른다. 그 요란했던 4차산업혁명의 구호와 검찰개혁이라는 이념에 공명한 국민은, 반의 반이 채 되지 못했다. 그 어느때보다 여론을 파악할 데이터가 많은 시대인데도, 청와대는 국민의 희망과 꿈을 읽어내지 못하고 과거와 투쟁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했다.
정치는 함께 꾸는 꿈이다. 우리가 꿈꾸어야 할 한국의 모습은 무엇인가. '청년'의 정치가 아니라, 더 '젊은' 한국을 만들기 위한 철학을 보고 싶다. 거기에 답이 있을 것이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1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977 사회환경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협력 가능성에 비관적인 이유. 21 mchvp 21/08/12 3778 1
    11974 사회흑인 정체성정치의 피로함과 미국의 맑시스트 13 은머리 21/08/10 4896 17
    11957 사회상호교차성 전쟁 23 소요 21/08/03 4298 9
    11937 사회왜 공공임대는 해결책이 될 수 없는가 29 Profit(Profit) 21/07/29 4610 5
    11903 사회KT 품질 때문에 소비자원에 징징댔더니 보상받은 썰 14 매뉴물있뉴 21/07/20 5115 15
    11824 사회보편적 청년 담론의 종말? 12 샨르우르파 21/06/27 3990 6
    11803 사회[군대] 4급 (공익) 기준이 이렇게나 타이트한지 몰랐읍니다. 31 Groot 21/06/18 8477 4
    11778 사회자연선택과 단기적 이익 13 mchvp 21/06/12 5320 6
    11777 사회2-30대 남/여 자살율 비교 18 매뉴물있뉴 21/06/11 4114 1
    11772 사회‘원폭만큼 치명적인’ 미군의 부산항 세균실험 -시사인 5 요일3장18절 21/06/10 4031 4
    11771 사회누군가의 입을 막는다는 것 17 거소 21/06/09 4333 48
    11769 사회부린이들을 위한, '같은평수인데 왜 크기가 달라요' 이야기 11 Leeka 21/06/09 4189 12
    11741 사회낯선 과학자, 김우재씨의 정치 사설 5 맥주만땅 21/06/01 4027 10
    11734 사회의도하지 않은 결과 21 mchvp 21/05/30 5369 19
    11730 사회자녀약취, 자녀양육자의 체류허가 8 私律 21/05/28 3698 9
    11689 사회섹슈얼리티 시리즈 (완) - 성교육의 이상과 실제 18 소요 21/05/18 4631 24
    11658 사회섬세한 담론의 중요성 : 미국의 반인종차별주의 이념 13 은머리 21/05/09 4873 19
    11637 사회흑인리버럴과 흑인보수 14 은머리 21/05/04 5194 29
    11634 사회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할 책임 32 최우엉 21/05/02 5833 14
    11633 사회3 과다 징병문제는 해결가능할 것인가 16 매뉴물있뉴 21/05/01 4520 2
    11622 사회2 부적합자들이 군대에 많은 이유는? 18 매뉴물있뉴 21/04/28 4470 5
    11620 사회1 군대에 오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 19 매뉴물있뉴 21/04/27 4710 14
    11616 사회글은 날아갔지만 소심해지지는 않았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27 매뉴물있뉴 21/04/26 3978 1
    11591 댓글잠금 사회한국 성차별 문제의 복잡성. 88 샨르우르파 21/04/18 7522 35
    11587 사회택배업계의 딜레마 15 매뉴물있뉴 21/04/16 4132 1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