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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9/07 15:45:44수정됨
Name   샨르우르파
Subject   이준석을 위시한 신보수는 사회 주류가 될 수 있을까?
한국 보수정당들은 박근혜 탄핵 후 의제를 잃고, 구태에 젖어 실언만 반복했습니다.
지금은 김종인과 이준석이 정리해서 어느정도 나아졌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지요.
그러다보니 한국 보수가 개혁이 필요하다, 신보수로 거듭나야 한다는 입장이 특히 청년 남성 사이에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준석을 그 개혁 기수로 보고 있고요.
단순한 구태 극복을 넘어, 신보수는 과거와 다른 어젠다를 가져야한다는 소리까지 나오지요.
신보수의 어젠다엔 대충 이런 것들이 있어 보입니다.

- 무조건적인 페미니즘/언더도그마 반대. 소외받는 남성의 이야기도 들어줘야
- 인구절벽의 시대에 여성징병도 하자
- 한국은 급격한 고령화가 예정됐으니 연금, 복지를 그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
- 경제발전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고용유연화, 호봉제 철폐가 필요하다.
- 채용 과정에서 공정이 중요하다!
- 경제/사회문화에 대한 국가개입 반대. 시민의 자유가 중요하다!
- 한국은 유교문화에 젖은 후진적 사회. 사회적 해방이 필요하다!

솔직히 말해 저도 이대남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다 동의하는 건 아닌데, 현대 한국에 필요한 의견들이 정말 많아요.
기존 보수는 어젠다를 못 잡고 있고,
진보는 어젠다는 괜찮은데 디테일이 너무 부실해서 한숨쉬면서 '잘 해봐라'하는 수준이거든요.
그런 저에게도 신보수는 희망입니다.


하지만 신보수가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을까요?
구보수가 신보수로 세대교체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저는 이 질문에는 예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단순히 기성 정치권이 완고해서가 아닙니다.
신보수의 어젠다 특성상 확장성에 한계가 있고, 잘못하면 사고쳐서 몰락할 위험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신보수 어젠다가 잘못됐다는 게 아닙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옳은 게 정말 많아요.
다만 신보수 어젠다 특성상 잘못 건드리면 큰일날 위험성이 높고,
대중의 인기를 끌고 제대로 논하려면 정말 높은 수준의 정치감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신보수라 불릴 정치인들이 그런 정치감각을 갖췄는지 매우 회의적입니다.
하다못해 이준석조차도 그 수준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어요.


신보수 어젠다의 제일 큰 문제 셋은 이겁니다.

1. 새로운 어젠다라더니, 시대 역행하는 발상 아닌가?

예를들어 무분별한 복지 반대/고용유연화/규제 완화/정부개입 감축같은 친시장 경제어젠다는
1980-2000년대엔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행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친시장 경제어젠다를 외치는 지식인들/정치 세력이 얼마나 될까요?
한국의 신보수 세력 밖에서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며, 전 세계에서 그걸 주로 밀고나가는 정치세력이 얼마나 되나요?
세계 금융위기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친시장 경제어젠다는 조롱거리 수준이 된 지 오래입니다. 
하다못해 미국조차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복지지출 등 재정지출을 급격하게 늘리는 추세입니다.

물론 보수우파도 할 말은 많을 겁니다. 
시장 경제원리가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는 유용하고,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이 EU나 미국을 따라할 수 있나하는 의문도 들 거고요.
하지만 '친시장 경제어젠다'의 이미지는 많이 나빠진 지 오래입니다.
친시장을 제1어젠다로 내세우는건 정치적 자살행위가 되기 쉽습니다.

정 내놓고 싶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시장 어젠다가 한국에 필요하다.
기존의 친시장 어젠다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안전망 강화를 병행하겠다
정도의 노력은 필요합니다. 

이준석이 예전에 고용유연화하는 대신 사회안전망 강화하겠다고 한 바가 있습니다.
친시장 어젠다를 내놓을 거면 최소한 이 정도론 다듬어야 합니다.

단순히 친시장 어젠다를 넘어 시민자유 확대, 여성징병 문제, 성해방같은 신보수의 다른 의제들도 비슷합니다.
시민자유 확대는 코로나19에서 드러난 '무책임한 자유'를 극복하려는 세계적 트렌드에, 
여성징병 문제는 세계의 모병제화라는 트렌드에,
성해방은 세계적인 성생활 빈도의 감소와 현대 페미니즘의 '반성폭력' 트렌드에 역행할 수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 신보수는 납득할 해명을 하고, 보편적으로 호응을 받을 방식으로 포장할 의무가 있습니다.


2. 언더도그마 반대를 빙자해 반사회성 언행을 일삼을 위험성

신보수 어젠다 대부분은 사실 두 어절로 요약 가능합니다.
'언더도그마 반대' 
진보좌파들의 언더도그마가 현실과 안 맞고, 나쁜 결과를 불러왔기에 시정이 필요하다는 거죠.

하지만 언더도그마가 문제가 되는 건 어디까지나 결과가 나쁠 때지, 
약자들을 보호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언더도그마 반대를 빙자해 약자들을 공격하는 언행을 일삼으면 신보수는 거기서 끝입니다.
하다못해 구보수는 적어도 '겉으로는' 공동체주의적인 국가관을 꿈꾸었고, 국가발전이 주 목표였기 때문에
언더도그마 반대가 주된 의제는 아니었고, 내놓더라도 '균형재정 문제'같은 보편적인 핑계를 댔습니다.
그런데 신보수는 공동체주의적 국가관이 없거나 심지어 반감이 있기 때문에,
보편적 핑계도 없이 언더도그마 반대를 내놓고, 더 나아가 약자들을 공격하는 발언을 하기 굉장히 쉽습니다. 

이 부분은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문제라 굉장히 민감합니다.

작년의 총선 결과 기억나시나요?
'세월호 참사를 진보좌파들이 이용해먹는다. 세월호 솔직히 지겹다'는 이야기에 동조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눈치없게 차명진이 '세월호 유가족들이 텐트에서 쓰OO를 했다(차마 원문으로 못 쓰겠네요)"고 외치자,
격분한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당에 몰표를 던졌고 그 덕분에 민주당계 180석이라는 유례없는 성과를 내놨습니다.

더 과거로 거슬러가자면 뉴라이트라는 반면교사도 있습니다..
과도한 민족주의라는 언더도그마를 비판한 건 좋았는데 무리수스러운 의견을 많이 내놓았고,
결정적으로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들을 미화하고,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선 넘는 발언을 일삼자
이미지는 순식간에 나락으로 갔고 결국 몰락했습니다.
요즘은 '반일종족주의'를 내놨던데, 학술적 평가는 굉장히 처참하더군요. 

언더도그마가 지나친 거 아니냐...는 불평불만은 조용히 나오지만
언더도그마 반대를 빙자한 약자 공격에 대한 불평불만은 격하게 나오는게 평범한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물론 신보수도 배운 게 있으니 차명진, 뉴라이트급 막말은 안 나올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말로 쌓아온 이미지 무너트릴 위험은 충분히 있습니다.
국민의힘 대변인 양준우의 발언들 보면 참... 아슬아슬한 걸 넘어 사고도 쳐서 답답합니다.

발언은 최대한 정제해서 해야 보편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3. 컬트화와 과도한 편가르기의 위험

아직까지는 신보수는 세력이 매우 미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타 소수정당처럼 컬트화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되도 않는 선민의식 가지고, 함부로 타 정치인과 정치세력을 후려치고, 
자기들끼리 물고빨아주면서 보편성을 잃고 극단화된 어젠다만 가득하고...
그러면 보편적인 인기를 얻을 수 없습니다.

특히 신보수엔 청년 남성들이 많아 인터넷 보수 커뮤니티 정서에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남녀노소를 함부로 갈라대고, 분노와 혐오를 유발해대고, 확증편향과 자기증식에 취약하죠.
가짜뉴스 수준의 정보도 종종 돌아다니고. 

한국 사회엔 청년 남성만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태도는 위험합니다. 
안 그래도 쪽수 적은게 청년인데 그것도 남녀로 갈려서 더 쪽수 적은 청년 남성이 주가 된 세력이 신보수입니다. 
내편 늘려도 모자랄 판에 편가르기까지 하면 확장 가능성이 아예 없습니다. 
정말 컬트집단이 되고 말 거에요.

진보집단은 편가르기 하는데 왜 우린 안되냐고 하실 분들을 위해 답하자면,
피장파장의 논리인 건 둘째치고
진보집단은 편가르기 해도 보수 vs 진보라는 1:1의 구도로 편을 가르는데
신보수가 편가르기 하면 구보수 vs 진보 vs 신보수나 
청년 남성 vs 그 외 모든 세대/연령 이런식이라 자살행위만 됩니다.



신보수는 분명히 잠재력이 많지만, 몰락할 위험이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한국 보수의 쇄신을 바라는 사람으로서, 신보수가 조심스럽게 인기를 얻어 구보수를 대체하는 그림이 나오길 빕니다.



7
  • 보수 담론이 더 거대해지고 더 넓은 스펙트럼을 얻길 바랍니다. 화이팅
  • 샨르우르파님의 마음에 드는 보수가 나오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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