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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03/06 17:04:50
Name   로냐프
Subject   삼국지를 다시 읽으면서...
정치가 중요하긴 하지만, 너무 대선에 과몰입되는거 같아서, 좀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볼까 하고,
삼국지를 오랜만에 다시 읽는데, 나이가 들어가니 새로운 모습들이 보이네요.

260년, 조모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사마소를 치려하다가, 가충이 시킨 성제 손에 죽어버리죠.
이 때, 사마소가 사태를 수습하려고 진태에게 물어봤다가 가충을 죽이라는 말에 진태를 손절해버리죠...
(조선에 킬방원이 있다면 서진에는 킬마소가...)
그 때, 진태를 달래러 온 외숙부 순의에게 "외숙부가 나만 못한 인간이다"라고 한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전에는 진태가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면 넌센스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후한이 멸망한게 220년. 평균 수명이 짧은 시대라고는 하나, 40년이면 아직 후한을 조국으로 삼았던 백성들이나 신하들이 꽤 살아있었고, 그들이 보기에는 이건 통쾌한 인과응보죠.
순의 입장에서도 조위는 아버지 순욱을 죽인 나라죠. 단순히 죽인 정도가 아니라, 후한을 어떻게든 살려보려 했던 마지막 충신의 의지를 꺽는 나라이기도 하죠. - 고려로 따지면 정몽주에 해당하겠네요 -
(사실, 진태는 자기 외할아버지가 조조 손에 죽은 거구요.)
물론, 그 당시 충/효의 개념을 지금과 같은 선상에서 놓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영천 순씨 입장에서는 위나라가 본인들이 꼭 목숨바쳐 충성할 대상이라고 생각해야할 당위성 같은 건 없죠.
필요하면 위나라의 신하가 될 수도 있지만, (정몽주 후손들도 조선에서 벼슬했으니까요.)
조조의 위나라가 순씨 일족에게 무슨 의리, 충성 이런걸 이야기하는 건 낯간지럽죠. (순욱을 그렇게 토사구팽해놓고??)

물론, 삼국지에 나오는 순의가 아버지처럼 멋진 인물은 아니고, 그냥 기회주의자이긴 합니다.
(사마염 옆에 있는 인간들 중에서 양호나 장화 정도 빼고는 멀쩡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 쉴드칠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진태가 뭐 그렇게 쌍심지를 켜고 대들 필요가 있었나 싶어요. 자기네 일가는 100년도 넘게 대대로 한나라에서 고위 관직에서 잘먹고 잘 살다가 한나라가 위나라로 넘어갈때는 아주 혁혁한 공을 세웠으면서, 갑자기 40년도 안 된 위나라에 뭐 그리 충성한다구요.
심지어 얼마전까지는 자기는 온갖 행패를 부리던 사마소 측근이었으면서 말이죠.

예전에도 읽으면서 멋있어 보이기는 한데, 뭔가 찝찝한 감동인데? 싶었었는데, 나이들어서 다시 보니 그 찝찝함의 원인이 잘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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