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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0/17 17:25:01
Name   王天君
File #1   movie_image.jpg (819.5 KB), Download : 2
Subject   [스포] 라이프 보고 왔습니다.


사진작가인 데니스 스톡은 눈을 찌푸리고 응시할 수 밖에 없는 피사체를 만납니다. 에덴의 동쪽에 출연한 신인 배우가 뿜는 아우라가 어딘지 남달랐던 것이죠. 한껏 세운 머리만큼 고고하고, 구겨진 미간만큼 불친절하고, 성큼 내딛는 걸음걸이만큼 자유분방한 이 배우가 프레임 안을 꽉 채워주리라는 예감은 점점 확신이 되어갑니다.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가능성을 내 필름에 담아 세상에 내보내리라는 야심으로 데니스 스톡은 열심히 일을 추진합니다. 어찌어찌 소속사의 지원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작업에 착수하려하지만 이 배우는 제대로 된 계획도 없고 딱히 협조적으로 굴지도 않습니다. 그런 그가 레드카펫 행사에서 꽁무니에 달려 따라다니는 데니스에게 말합니다. “ 날 유명하게 만들어 줄 수 있어?”

영화는 제임스 딘의 살아 생전의 일화, 그 중에서도 라이프 지에 데니스 스톡이 찍은 사진이 실리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깃을 세우고서는 얼굴을 파묻은 채 거리 위를 걷는 제임스 딘의 사진은 한 시대를 아우르고, 그 시대마저 초월한 헐리웃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죠. 너무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이 스타의 전설적인 사진은 어떻게 찍혔는지, 그리고 이 사진에서 후세의 사람들이 파악할 수 있는 진실은 무엇인지 등의 어떤 전기적 요소를 기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이 소재를 다루는 이야기의 방식은 그렇게 극적이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대단한 갈등도 없었고, 위대함을 이뤄내는 성취도 없습니다. 데니스 스탁과 제임스 딘의 만남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 역시도 크게 부각되지 않죠.

영화의 서사적인 동력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기승전결의 맥이 명확하지도 않고, 이야기의 분기점이 대단한 진폭을 가지고 있지도 않죠. 영화 속 중심인물인 제임스 딘과 데니스 스톡은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과, 이를 이루기 힘든 외부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열을 태우지 않습니다. 적당히 스트레스를 받고, 그 스트레스를 망각하려고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기도 하고, 시키는 대로 비굴한 직업인으로서 현실에 굴복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예술가로 품고 있는 고뇌는 성공하고 싶다는 속물적 욕망과 딱히 구분되지 않습니다. 인물들이 추구하는 진실은 흐릿하고, 카메라는 이들의 작은 일탈과 제 멋대로인 일상을 나른하게 쫓아다닐 뿐입니다. 때문에 영화는 뜬구름 잡는 소리 아니면 투덜거릴 뿐인 한량들을 보는 느낌이 드는데, 그 부분이야말로 감독이 담고 싶었던 시대와 인간의 멋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겉멋에 취해있는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무언가를 추구하며 그 자존심을 굽히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은 철없을진 몰라도 꿈과 삶에서 더 솔직한 인간들이니까요. 이들이 어떤 사람이고, 얼마나 위대한지는 영화 속에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뿌연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방황 그 자체가 가진 진실과 멋에 영화는 초점을 맞춥니다.

제임스 딘과 데니스 스톡은 그렇게 매력적으로 비춰지지 않습니다. 대단할 것도 없는 주제에 지나치게 솔직하고,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적당히 외면하며 사는 이들의 모습은 비루하고 치사해보이기까지 하죠.  동시에, 이는 우리가 제임스 딘을 영화 산업의 아이콘으로만 소비하는 데 익숙해졌다는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반항아로 일컬어지는 인물의 반항적인 모습을 보면서 언짢아한다면, 우리가 한 인물의 진실에는 얼마나 무관심하며, 동경의 대상으로만 착취하는지를 곱씹게 만들죠. 사람들이 의례 기대할 법한 특별한 자의 오만함 대신 영화는 제임스 딘의 약한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줍니다. 제임스 딘은 카메라 플래쉬에 움츠러들고, 워너 브라더스의 실권자에게 고분고분하게 굴어야 하고, 인터뷰 때마다 적당한 말을 찾기 위해 끙끙대죠. 영화 속 제임스 딘의 반항아 기질은 확고한 자기 주장과 굳건한 자아를 스스로 자랑스레 꺼내놓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의 팔자주름은,  약하고 순수한 인간이, 자신을 끊임없이 굴복시키려 하는 외부의 압력에 감출 수 없었던 어떤 반응에 가깝죠. 제임스 딘은 너무도 자유로운 인간이었기에 더더욱 부자유를 견디지 못합니다. 그리고 도피를 반복하지만 결국 돌아올 수 밖에 없죠.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제임스 딘의 이 본능적인 회귀본능이 그의 나약함에서 기인한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좇을 만큼 튼튼한 자기확신이 있지만,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열정과 애정 하나에 매달려 걷는 누군가에게는 위태로운 현재와 미래보다 안락했던 과거가 더 크게 다가올 수 밖에 없습니다.

데니스 스탁은 제임스 딘의 진실을 알아차린 사람입니다. 개츠비 옆의 닉 캐러웨이처럼, 아직 가리워진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전달자의 역할을 하죠. 사진 촬영을 내키지 않아하는 제임스 딘 때문에 일상의 몇 부분을 훔쳐 담지만 라이프 지에서 대차게 퇴짜를 맞고 상사로부터는 더 돈이 되는 일의 제안을 받습니다. 딱히 관심도 없어 보이는 모델, 생활의 위협, 자신을 돕지 않는 이런 여건들에 예술적 야심을 접기로 하고 데니스 스탁은 타임 스퀘어에서 본심을 털어놓습니다. “난 한 배우 안에 있는 열망과 고독함을 봤어. 어떤 희미한 희망 같은 걸 말이지.” 제임스 딘이 이 말에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삐딱선을 타던 것과는 다르게, 비를 맞아가면서도 타임 스퀘어 옆의 거리를 걸으며 모델로서 순순히 촬영에 협조해주죠. 그렇게 우리가 익히 아는 사진은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데니스 스탁이 제임스 딘에게서 봤던 음울함과 쓸쓸함, 희망을 다른 사람들 역시도 찾아내는 그 사진이죠.

  그 사진은 데니스 스탁이 예술가로서 가장 솔직하고, 가장 초탈한 상태로 찍었던 결과물입니다. 동시에, 제임스 딘이 데니스 스탁에게 가장 영합적으로 다가갔던 순간이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제임스 딘은 데니스 스탁의 촬영 제안을 유명해질 기회로 바라봤으니까요. 타임 스퀘어로 나오기 전날, 제임스 딘은 기자 회견장에서 자신의 애인이었던 피어 안젤리가 다른 가수와 약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습니다. 아직 성공하지 못한 배우로서, 자신의 진실된 부분들이 심각하게 흔들렸기에 어떻게든 성공이 절실했으니까요. 사진을 찍으면서 주체는 피사체 앞에서 가장 순수했지만 피사체는 주체 앞에서 가장 세속적이던 순간이 그렇게 하나의 진실로 태어난 것이죠.

데니스 스탁이 제임스 딘의 고향인 인디애나를 따라가면서 이 구도는 역전됩니다. 이 여정에서 데니스 스탁은 제임스 딘의 내면 밑바닥의 이야기를 엿봅니다. 인디애나로 가는 기차에서는 죽은 어머니에 대한 상실감을 다 떨치지 못한 제임스 딘을 마주합니다. 마침내 도착한 제임스 딘의 조부의 집에서는 도회지 속의 방탕한 모습과 달리 가족과 함께 생일을 보내고, 사촌동생과 어울려 놀며 농장 일을 돕는 시골 청년의 모습을 보죠. 그러나 데니스 스탁은 점점 초조해집니다. 자기가 찍고 싶은 뉴요커로서의 컨셉도 없고 도회적인 우울함과 욕망을 찾지도 못하니까요.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사진작가로서의 현실적 압박감도 점점 무거워집니다. 그렇게 초조해하던 와중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그저 자기 뒤만 쫓아다닌다”는 제임스 딘의 뒷말을 듣게 됩니다. 다음날 아침 제임스 딘에게 분노를 터트리며 자기가 하는 일의 목적을 설명하려 하죠. 그러나 데니스가 꺼내는 말들은 사진작가로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개인의 출세욕과 경제적, 가정적으로 궁지에 몰린 자신의 상황에 대한 투정뿐입니다. 예술가로서의 이상 대신 현실적인 욕망과 압박을 늘어놓는 자체가 이미 사진작가로서의 순수한 열정이 희미해졌다는 반증이 되는거죠. 그리고 눈 앞에서도 제임스 딘의 진실을 진실로서 인식하지 못합니다.

피사체인 제임스 딘은 인디애나에서 가장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피사체를 담을려는 데니스 스탁은 가장 계산적이면서 현실에 붙들려 있습니다. 타임 스퀘어의 사진과 반대로, 가장 순수한 상태의 피사체가 가장 세속적인 주체에 의해 프레임에 담깁니다.   이 역설은 두 사람이 장난스레 참석한 제임스 딘의 모교 졸업식에도 드러납니다. 같은 공간 안에서도 서로 다른 체험을 하며, 진실이 담기는 과정의 역설과 이들이 결코 극복할 수 없던 위치의 부조리가 드러나죠. 세계를 늘 피사체로, 자신의 수단으로 써먹어왔던 데니스 스탁은 자기 자신이 사진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생전 못 췄던 춤을 같이 춰보기도 하면서 보다 현재에 충실하고 순수하게 순간을 즐기는 법을 배웁니다. 제임스 딘은 콩고를 가져와 졸업식의 연주에 어울러지기도 하지만 결국 순수한 자신의 본질이 있는 고향에서조차 선망의 대상으로서 남들에게 비춰지는 부담에 당황스러워하기도 하죠.  피사체이자 하나의 수단으로서밖에 존재하지 못하는 제임스 딘의 고통을 가장 부각시키는 것은 데니스 스탁의 사진입니다. 영화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유난히 부각되는데, 이는 곧 진실을 담으려는 행위가 진실된 순간 자체를 흐트러트리고 마는 한계를 보여주죠. 자신의 가장 내밀한 공간을 공유하고 싶었음에도, 제임스 딘은 매 순간 피사체로 남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 뜻없이 충실하게 보내는 순간들은 카메라 셔터 소리에 계속 훼방을 받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제임스 딘의 가장 진실된 순간, 가장 원초적이고 투명한 순간들을 담은 사진조차도 결국 순간을 깨트리고, 진실을 침범하면서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는 부조리를 보여줍니다.

인디애나에서 돌아온 이들은 배우와 사진작가로서 그들이 속한 곳에 돌아갑니다. 데니스 스탁은 두 역설이 교차하는 순간의 사진들을 인정받아 사진작가로서 추구하는 진실에 조금 더 가까워지죠. 그러나 제임스 딘에게는 더욱 더 거세진 억압과 화려해진 허위허식만이 남습니다. 주연배우로서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 프리미엄 행사를 과감히 제끼고서 제임스 딘은 데니스 스탁을 부릅니다. 그러나 잘 나가는 사진작가로서 바쁜 일정이 기다리는 데니스 스탁은 이 제멋대로의 초대에 이끌려다니기 어려워졌습니다. 제임스 딘에게는 떠나간 어머니의 빈 자리가 과거로서 있지만, 데니스 스탁에게는 자신이 곁에 머물러야 할 아들이 미래로서 존재합니다. 잠깐 쓴 미소를 짓고 제임스 딘은 혼자서 그렇게 떠납니다. 그리고 영화는 비행기에 탄 제임스 딘을 보여줍니다. 그의 시선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어린 승객에게 머무릅니다.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제임스 딘을 태우고서 비행기는 하늘 높이 멀어집니다.

영화는 인물들보다 사진 자체를 주인공으로 여기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사진이 찍히기 전, 사진이 찍히는 순간, 사진이 찍히고 난 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사진들이 가지는 의미를 이야기하며, 사진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길다고 할 수 없는 24년 인생 중에서도, 사진이 찍히던 며칠간의 이야기를 통해 제임스 딘과 인생을 담으려하는 영화의 방식은, 셔터가 눌리는 순간에 모든 것을 혹은 단 하나의 진실을 담으려 하는 사진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문득문득 스쳐갔던 제임스 딘의 미소와 표정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지만, 수많은 시간이 응축되고 깊이 숨겨진 본질이 슬쩍 튀어나오는 순간이기도 하죠. 그렇게 건진 제임스 딘의 사진을 올려놓으면 데니스 스톡이 던진 “Life?”란 질문은 라이프 잡지에 통과하기에 충분하냐는 질문이 다가 아닐 겁니다. 우리가 잃어버리는 진실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진실을 꽁꽁 감쳐두고 걷는 순간들,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겠냐는 질문으로도 읽혀요. 그리고 데니스 스톡처럼 쫓아다니던 우리가 스크린 너머로 보는 제임스 딘의 마지막은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 한 남자가 과거 속으로 영영 떠나버리는 모습입니다.

@ 데인 드한의 싱크로율에 대해 말할 수 있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제임스 딘은 데인 드한밖에 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하게 됩니다. 혼란을 이겨내는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는 많지만, 혼란을 불안하게 버텨내는 연기를 이렇게 할 수 있는 배우는 데인 드한 말고는 없을 겁니다.

@ 영화와 달리, 제임스 딘은 피어 안젤리의 약혼 사실은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그 상대가 누구인지 몰랐다고 하네요.

@ 사진 작가의 감독 작품티가 매 프레임에서 납니다.

@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 영화를 좋아할 확률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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