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2/05/16 01:34:30수정됨
Name   아침커피
Link #1   https://crmn.tistory.com/141
Subject   캘리포니아 2022 - 1. 과거라는 외국
캘리포니아 2022 - 1. 과거라는 외국

미국에 가려면 출발 하루 전에 코로나19 PCR 검사를 받아야 했다. 우리나라의 보건소 격인 홍콩의 커뮤니티 센터에 미리 예약을 하고 검사를 받았는데 직원이 다음 날 아침에나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아침 비행기였기 때문에 결과가 조금만이라도 늦게 나오면 미국에 못 가는 상황이었다. 고민하던 중 2시간 내로 결과가 나온다던 공항 내 검사소가 생각났다. 검사를 또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돈이 아까웠지만 이럴 땐 불확실성을 없애는 게 최선이다. 바로 공항으로 가서 검사를 받고 집에 오니 정말 곧 결과가 왔다. 음성이었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 가족이 홍콩에 있을 때 내가 집을 이렇게 오래 떠난 적은 처음이었기에 마음이 많이 쓸쓸했다. 출국 준비 기간 내내 슬펐고 집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도 슬펐다.

어쨌든 가야 하는 일이니 가야 했다. 한 시간 걸려 도착한 홍콩 공항은 썰렁했다. 이렇게 텅 빈 홍콩 공항은 본 적이 없었다. 새삼 코로나가 항공에 끼친 영향이 실감이 났다. 면세점 매장 대부분은 텅 비어 있었고 비싼 양주 모형에는 먼지가 가득 앉아 있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공항 내 정수기가 다 폐쇄되어 있어서 일반 가격보다 훨씬 비싼 돈을 내고 음료수를 사 마셔야 했다. 그나마도 오전 8시가 되어서야 편의점이 문을 연 바람에 한참을 갈증에 시달리며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내 비행기는 홍콩에서 도쿄의 나리타 공항을 경유하여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전일본공수(ANA) 편이었다. 오전 9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약 4시간을 날아 도쿄에 도착했다. 나리타 공항 역시 텅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텅 빈 공항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다 보니 갑자기 친구 T 생각이 났다. 일본에 살고 있는 T는 지금까지 몇 번 보지는 않았지만 약 8년 전 처음 만났던 때부터 서로 말이 너무 잘 통해서 곧바로 친해졌던 친구다. 근무시간일 것 같았지만 카톡을 보냈다. “T야 잘 지내? 지금 미국 가고 있는데 도쿄에서 환승하게 되어서 나리타 공항에 잠시 있어. 만나지는 못하지만 일본에 왔으니 연락하고 싶어서 카톡 보냈어 ㅋ”

바로 답장이 왔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T나 나나 한국을 떠나 산 지 참 오래 되었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을 하든 안 하든 사회는 우리를 교포라고 부른다. 가끔씩 가 보는 한국은 갈 때마다 참 많이 변해 있고, 우리는 점점 우리가 우리나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한국을 떠났던 때는 2011년이었다. 2011년이면 갤럭시 S2가 나왔던 때다. 나는 한국을 떠날 때 요즘 말하는 피처폰을 쓰고 있었다. 내가 아는 한국은 그 때에 멈추어 있다.

“과거는 외국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 영국의 소설가 L. P. 하틀리가 썼다는 이 말에 나는 절절히 공감한다. 지금의 한국에게 있어 나는 11년 전의 한국이라는 외국에서 온 외국인이라는 것을 수도 없이 느껴 왔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한국인인데, 내 나라는 한국인데 언제부터인가 한국이 내 모국어로 말이 통하는 외국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과거라는 외국에서 온 사람이어서 그렇다. 그리고 T도 그 점을 동일하게 느끼고 있었다. 내가 홍콩에 살고 있어서, T가 일본에 살고 있어서가 아니다. 우리가 과거의 한국이라는 외국 출신이어서 그렇다. 사람들은 교포 2세의 정체성 혼란에는 관심을 갖지만 교포 1세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교포 1세들은 정체성 혼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절대 그렇지 않다. 스스로 깨닫고 있든 그렇지 못하든 교포 1세들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끊임없는 혼란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가끔은 그 혼란이 슬픔이 되곤 한다.



11


    이 글 좋아요. 정체성이 뭘까.. 나한테 고국은? 그런 생각을
    한 번 해 볼 수 있는 계기가되었어요.

    변화하는 고국은 예전에는 언론을 통해 배웠다면 이곳에서 다른분들 이야기에서 많이 좀 더 현실적으로 배우게되어요.

    양성갈등, 집값, 취직, 결혼문제 등등... 가족 친구들과 안부 전화로는 속깊게 못들으니깐요.

    고국가면 KTX 타고 지방에 갈때 사뭇 달라지는 풍경들을 보면서 변화하는 고국 산천이 새삼스러워집니다. 한국의 문화색이 저한테서 점점 옅어지고 그냥 범아시안적인 색깔 정체성이 씌워지구나도 가끔 느껴요.
    ... 더 보기
    이 글 좋아요. 정체성이 뭘까.. 나한테 고국은? 그런 생각을
    한 번 해 볼 수 있는 계기가되었어요.

    변화하는 고국은 예전에는 언론을 통해 배웠다면 이곳에서 다른분들 이야기에서 많이 좀 더 현실적으로 배우게되어요.

    양성갈등, 집값, 취직, 결혼문제 등등... 가족 친구들과 안부 전화로는 속깊게 못들으니깐요.

    고국가면 KTX 타고 지방에 갈때 사뭇 달라지는 풍경들을 보면서 변화하는 고국 산천이 새삼스러워집니다. 한국의 문화색이 저한테서 점점 옅어지고 그냥 범아시안적인 색깔 정체성이 씌워지구나도 가끔 느껴요.

    애들이 왜곡된 한국문화(한국이 최고? 나빠?) 이런 생각을 저땜에 가지거나 렌즈때문에 굴절되듯이 저한테 받은 영향이 보일때 가끔 미안해요.
    1
    아침커피
    말씀해주신 부분에 정말 공감해요. 문득문득 '나는 어디 사람이지?' ...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2810 7
    15380 역사한국사 구조론 6 + meson 25/04/12 435 2
    15379 오프모임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5/4 난지도벙 11 + 치킨마요 25/04/11 643 3
    15378 스포츠90년대 연세대 농구 선수들이 회고한 그 시절 이야기. 16 joel 25/04/11 822 8
    15377 일상/생각와이프가 독감에걸린것 같은데 ㅎㅎ 2 큐리스 25/04/10 423 11
    15376 일상/생각지난 일들에 대한 복기(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판단) 3 셀레네 25/04/10 709 5
    15375 일상/생각우리 강아지 와이프^^;; 6 큐리스 25/04/09 675 5
    15374 기타[설문요청] 소모임 활성화를 위한 교육과정에 대해 도움을 요청드립니다. 21 오른쪽의지배자 25/04/09 540 4
    15373 과학/기술챗가놈 이녀석 좀 변한거 같지 않나요? 2 알료사 25/04/09 571 1
    15372 과학/기술전자오락과 전자제품, 그리고 미중관계? 6 열한시육분 25/04/09 424 3
    15371 꿀팁/강좌3.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감정 36 흑마법사 25/04/08 727 18
    15370 기타만우절 이벤트 회고 - #3. AI와 함께 개발하다 7 토비 25/04/08 398 12
    15369 정치깨끗시티 깜찍이 이야기 3 명동의밤 25/04/08 389 0
    15368 일상/생각우연히 폭싹 속았수다를 보다가.. 8 큐리스 25/04/08 642 0
    15367 영화지쿠악스 내용 다 있는 감상평. 2 활활태워라 25/04/08 366 1
    15366 경제[의료법인 법무실] 병원관리회사(MSO) 설립, 운영 유의사항 - 사무장 병원 판단기준 1 김비버 25/04/08 428 1
    15365 정치역적을 파면했다 - 순한 맛 버전 5 The xian 25/04/07 783 13
    15364 정치날림으로 만들어 본 탄핵 아리랑.mp4 joel 25/04/06 425 7
    15363 경제[일상을 지키는 법]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보증금 반환' 방법 2 김비버 25/04/06 534 5
    15362 일상/생각조조와 광해군: 명분조차 실리의 하나인 세상에서 4 meson 25/04/05 406 2
    15361 정치"또 영업 시작하네" 10 명동의밤 25/04/05 1218 10
    15360 일상/생각계엄 선포 당일, 아들의 이야기 6 호미밭의파스꾼 25/04/04 985 36
    15359 오프모임내란 수괴가 만든 오프모임(4) 5 노바로마 25/04/04 919 4
    15357 정치2024헌나8 대통령 윤석열 탄핵사건 선고요지 전문 15 즐거운인생 25/04/04 2989 11
    15356 정치[불판]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선고 146 T.Robin 25/04/04 5238 9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