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2/12/17 17:24:37수정됨
Name   meson
Subject   성 상품화에 대한 뻘글_일반적인 입장
※얼마 전에 이 글(https://redtea.kr/free/13257)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쓴 글입니다.

제가 성상품화에 대해 생각해 본 바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만일 성 상품화에 여성이 더 적극적으로 반발하는 경향성이 있다면, 그 이유의 기저에는 여성이 임신·출산을 한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과정 중에 있는 이상에는 여성이 [ 부양 받는 ] 존재가 되기 쉽고, 남성은 부양하는 존재가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한 번 그런 역할배분을 하고 나면 경로의존성이 생기기 때문에, 임신·출산 과정에 있지 않은 상황에도 동일한 역할배분을 고수하기 쉽습니다.
이 구도에 따라, 여성에 대한 가치평가는 [ 부양을 받을 유인 ]과 연결되고, 남성에 대한 가치평가는 [ 부양을 제공할 능력 ]과 연관되어 온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만 있는 게 아니라, 현재도 기성세대의 인식에는 이러한 바탕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Z세대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문화적으로는 일정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봅니다.

이것을 고려하고 보면, 어째서 성상품화 논란이 비대칭적으로 일어나는지, 혹은 일어났는지에 대해 짐작가는 바가 있게 됩니다.
즉, 성상품화의 초점이 사회경제적 능력이 아닌 성적 매력이기 때문에, 남성의 성이 상품화되는 것과 여성의 성이 상품화되는 것은, 시쳇말로 [ 타격감 ]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상품화로 인해 본인이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상품’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공포와 성적 매력에 대한 이상적인 기준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공포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민감도가 다른 것에는 이러한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남녀 성상품화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자는 주장은 이를 간과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같은 해악이 있으므로 성 상품화를 일소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크게 두 가지의 난점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첫째는 자율성 침해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성 상품화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고 또 자발적으로 소비된다면,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이를 ‘계몽’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은 교조적이라는 지적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용인 가능하고 무엇이 과도한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사람마다 다른 이상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둘째는 이중 잣대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는 폭력도 상품화되고, 노동력도 상품화되고, 지식도 상품화되고, 하여간 인간의 일부라고 해도 상품화되지 않는 것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유독 ‘성’만 특별하게 대우할 이유는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품화가 불가피하다는 말도 되고, 성의 인격적 본질성을 논증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됩니다. 해악의 측면에서 보아도, 사회경제적 지위의 상품화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이나 연애시장에의 소외를 겪는 사람이 존재하고요.

그렇기에, 성 상품화에 일정한 폐해가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성 상품화에 반대하거나 나아가 제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난점들에 대해 복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하는 편입니다.

...써놓고 보니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소리를 길게도 늘어놓았네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6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2006 7
    15192 일상/생각대체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도달했습니다 골든햄스 25/01/07 104 0
    15191 정치탄핵심판의 범위 및 본건 탄핵심판의 쟁점 3 김비버 25/01/06 248 9
    15190 정치시민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22 + Daniel Plainview 25/01/06 871 14
    15189 일상/생각집안에 기강이 안선다고 한마디 들었어요.ㅠㅠ 13 큐리스 25/01/06 621 2
    15188 IT/컴퓨터인공지능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빨" 4 T.Robin 25/01/05 567 7
    15187 정치어떻게 내란죄가 입증되는가 10 매뉴물있뉴 25/01/04 1019 10
    15186 일상/생각공백 없는 이직을 하였읍니다. 11 Groot 25/01/04 769 21
    15185 정치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제2차 변론준비기일 방청기 8 시테 25/01/03 865 24
    15184 일상/생각요즘 느끼는 소소한 행복 5 큐리스 25/01/03 501 10
    15183 정치한국 정치에 대해 또 다른 주제로 투표하는 미국분들 1 kien 25/01/03 701 0
    15182 기타요즘 보고 있는 예능(17) 김치찌개 25/01/02 379 0
    15181 방송/연예2024 걸그룹 6/6 6 헬리제의우울 25/01/01 515 26
    15180 정치해외도박사이트의 윤석열 4월 이전 탄핵확률 추이 7 kien 25/01/01 1131 0
    15178 일상/생각2024년 취미 활동 결산 메존일각 24/12/31 362 8
    15176 생활체육2024년 내란모의 GOAT 운동 결산 4 danielbard 24/12/30 692 2
    15175 도서/문학마르크스가 본 1848년부터 1851년까지의 프랑스 정치사 3 카페인 24/12/30 577 5
    15174 일상/생각지옥길을 걷고 있다면, 7 호미밭의파스꾼 24/12/30 846 37
    15173 스포츠[MLB] 코빈 번스 6년 210M 애리조나행 김치찌개 24/12/30 128 0
    15172 스포츠[MLB] 폴 골드슈미트 1년 12.5M 양키스행 김치찌개 24/12/30 139 0
    15171 음악[팝송] 카일리 미노그 새 앨범 "Tension II" 1 김치찌개 24/12/30 127 0
    15170 여행[2024 나의 이탈리아 여행기] 1. To Rome 2 Omnic 24/12/29 258 7
    15169 방송/연예오겜2 짧은 후기 3 Leeka 24/12/29 411 0
    15168 도서/문학밀란 쿤데라가 보는 탄핵정국 sisyphus 24/12/28 652 1
    15167 정치한강과 이영도: 사랑보다 증오가 쉬운 세상에서 2 meson 24/12/28 539 7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