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3/02/20 14:13:59
Name   양라곱
Subject   모두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정직하게 너를 마주하는 것
첫 연애가 있습니다. 5년 남짓 만났고, 이제는 연인이었던 날보다 아닌 날이 더 길어졌고, 제 삶에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람입니다. 처음으로 나보다 누군가를 더 사랑하는 경험이었고, 식을대로 식어버리고 헤어졌기에 큰 반발 없이 잘 지나갔습니다. 나와 헤어진 후, 다툼의 원인이었던 그 사람과 만나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분노와 배신감에 모든 흔적을 다 지웠습니다. 손이 외워버렸던 그녀의 번호도, 몇 년 만에 잊혀졌습니다.

주말에 친구를 만나서 담소를 나눴습니다. 자연스레 예전 인연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정말 뭐에 홀린듯, 카톡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해봤습니다. 그런데 카톡 깊숙한 곳에, 7년 전의 대화가 남아있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연인인 시절에는 다른 메신저 앱을 썼지만, 그 앱이 잘 작동하지 않을 때 나누었던 대화의 편린이 남아있었습니다.

첫 연애 이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저를 힘들게 했던 사람도, 제가 나쁜 놈이었던 연애도, 그리고 그냥 스쳐 지나갔던 인연도 있었습니다. 각각의 연애를 지나오면서, 그리고 혼자인 시간을 길게 가지면서, 조금은 성숙해지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조각은, 아니 그 시절의 부스러기는 나를 첫 사랑, 첫 연애, 첫 이별의 그때로 돌려보냅니다. 재단하지 않고 사랑했던 그 시간의 나를, 내 안에 데려옵니다.

하루동안 그 감정을 다시 매만져봤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다고 친구에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런 감정은 아닙니다. 그리움과 감사함이 뒤섞인, 조금 더 복잡한 감정입니다. 그 사람을 그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시절, 뜨겁게 사랑했던 나의 모습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그 사람에게 감사하는 것은 맞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이 지나서도, 내가 잊고 있던 나의 모습을 상기시켜주었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가수가 부른 좋아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이미 우리의 관계는 다 닳아지고 빛을 바랬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걱정 없이 내가 살고 있어도 좋아 보이지 않는 건 도대체 왜일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 년이 지나서 다시 이 노래를 들으니, 이렇게 이야기해주네요.


모두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정직하게 너를 마주하는 순간.


사실 뻔한 연애 이야기입니다. 특별 것이 없는, 그저그런 보편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왜 이 글을 굳이 쓰고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냥 지금의 감정을 기록해두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만나고 사랑할 다음 인연에게 뜨겁고 정직하게 사랑하고 싶어서입니다.

https://youtu.be/ch-a4immeg8



10
  • 지금 이 말이 우리가 다시 시작하자는건 아니야 그저 너의 남아있던 기억들이 떠올랐을 뿐이야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5018 1
15878 창작또 다른 2025년 (3) 3 트린 25/12/04 264 2
15877 스포츠[MLB] 코디 폰세 토론토와 3년 30M 계약 김치찌개 25/12/04 199 0
15876 창작또 다른 2025년 (1), (2) 8 트린 25/12/03 441 7
15875 기타유럽 영화/시리즈를 시청하는 한국 관객에 관한 연구(CRESCINE 프로젝트) 19 기아트윈스 25/12/03 544 2
15874 일상/생각큰일이네요 와이프랑 자꾸 정들어서 ㅋㅋㅋ 14 큐리스 25/12/02 931 5
15873 오프모임12월 3일 수요일, 빛고을 광주에서 대충 <점봐드립니다> 15 T.Robin 25/12/01 540 4
15872 경제뚜벅이투자 이야기 19 기아트윈스 25/11/30 1499 14
15871 스포츠런린이 첫 하프 대회 후기 8 kaestro 25/11/30 425 12
15870 도서/문학듣지 못 하는 아이들의 야구, 만화 '머나먼 갑자원'. 15 joel 25/11/27 1035 27
15869 일상/생각상남자의 러닝 3 반대칭고양이 25/11/27 692 5
15868 정치 트럼프를 조종하기 위한 계획은 믿을 수 없이 멍청하지만 성공했다 - 트럼프 행정부 위트코프 스캔들 6 코리몬테아스 25/11/26 893 8
15867 일상/생각사장이 보직해임(과 삐뚫어진 마음) 2 Picard 25/11/26 681 5
15866 일상/생각기계가 모르는 순간 - 하루키 느낌으로 써봤어요 ㅋㅋㅋ(와이프 전전전전전 여친을 기억하며) 5 큐리스 25/11/25 617 0
15865 경제주거 입지 선택의 함수 4 오르카 25/11/25 643 3
15864 철학/종교진화와 창조, 근데 이게 왜 떡밥임? 97 매뉴물있뉴 25/11/25 1863 4
15863 일상/생각창조론 교과서는 허용될 수 있을까 12 구밀복검 25/11/25 1048 17
15862 기타★결과★ 메가커피 카페라떼 당첨자 ★발표★ 11 Groot 25/11/23 609 4
15861 기타[나눔] 메가커피 아이스 카페라떼 깊콘 1 EA (모집마감) 31 Groot 25/11/21 670 3
15860 일상/생각식생활의 스트레스 3 이이일공이구 25/11/20 707 1
15859 일상/생각누구나 원하는 것을 얻는다. moqq 25/11/20 638 7
15858 오프모임[취소] 11월 29일 토요일 수도권 거주 회원 등산 모임 13 트린 25/11/19 764 3
15857 경제투자 포트폴리오와 축구 포메이션2 2 육회한분석가 25/11/19 469 3
15855 의료/건강성분명 처방에 대해 반대하는 의료인들이 들어줬으면 하는 넋두리 46 Merrlen 25/11/17 2006 2
15854 경제투자 포트폴리오와 축구 포메이션 육회한분석가 25/11/17 556 6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