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3/07/26 01:02:14
Name   다영이전화영어
Subject   재벌개혁 관련 법제의 문제점(1) – ‘일감몰아주기’ 증여의제 과세
상증세법에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의제 규정이 있습니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의3). 위 규정은, (1) 법인 A가 법인 B에게 물건을 납품하여 매출을 발생시켰고 (2) 법인 A의 전체 매출 중 법인 B와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매출의 비중이 30%를 초과하고 (3) 법인 A에 대한 지배주주 및 그 친족등의 지분비율이 3%를 초과하며 (4) 법인 A의 지배주주와 법인 B 사이에 ‘상증세법 시행령 제2조 제3호 내지 8호’*에 각 해당하는 ‘특수관계’가 있는 경우 적용됩니다.

* 지배주주가 법인의 이사 임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 등

과거부터 우리나라 재벌기업에서 친족이 소유하는 법인을 설립하고, 그 법인으로 하여금 핵심계열사에게 용역이나 재화를 납품하게 하여 '거래'의 형식으로 핵심계열사의 부를 친족 소유 법인으로 이전하던 증여방식이 있었는데, 위 규정은 이를 막기 위해 도입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현대차그룹이 현대글로비스를 설립하고 현대글로비스에 그룹내 물류업무를 몰아줬던 사건이 직접적인 세법개정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입법취지를 생각하면, 위 규정은 부의 이전을 받는 '수혜법인'에 대한 친족집단의 지분비율이, 부를 이전하는 법인에 대한 지분비율보다 오히려 낮은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경제적 지배력이 낮은 회사에서 더 높은 회사로 거래의 형태로 이전하는 증여의 실질이 없고, 오히려 친족집단의 부가 일반 주주에게 이전되는 경제적 실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과세당국은 이런 경우에도 위 증여의제규정을 적용하여 증여세를 과세하였습니다. 법령에 정한 요건이 만족됐으므로 경제적 실질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법원도 수혜법인과 증여법인의 지배주주가 동일하므로 경제적 실질에 비추어 ‘자기증여’로서 증여세과세대상이 아니라는 점이 다투어진 사안에서, “법령상 증여자는 어쨌든 그 배후의 지배주주가 아닌 형식상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법인’이다”는 취지로 자기증여를 부인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2022. 11. 1.자 2020두52214 결정).

위와 같은 규범상황에 의해 경영 현장에서 발생하는 난점 중 하나는 기업의 조직이 불필요하게 비대해진다는 점입니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인 존재입니다. 시장이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투명하며 거래비용이 영(0)에 가깝다면, 기업의 각 기능조직은 인력시장에 아웃소싱하고 소수의 코디네이터를 채용하여 자본만 밀어 넣는 방식의 경영이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다만 현실에서 시장은 완벽하게 효율적이지 않고 거래비용이 있으며, 인간은 원자화된 개인이 아니고 관계를 통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핵심 기능을 ‘조직’이라는 형태로 묶어두는 것입니다. 이를 다시 말하면 효율적인 형태의 기업이란, 각자의 업계에서 주어진 제반 환경에 따라 자신에게 최적인 조직-시장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행 상증세법 위 증여의제규정은 (1) 기업이 분사를 통하여 일부 기능을 외부화하는 행위 (2) 수직계열화를 통하여 일부 기능을 내부화하는 행위에 대하여 경제적 실질에 대한 고려 없이 각 기계적으로 증여의제 과세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경영효율성의 관점에서 최적화되지 않는 의사결정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합니다. 제도의 개입을 통해 효율성을 저해하는 경우, 뚜렷한 정책적 목표가 있어야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데, 현행 제도는 입법 경위나 실무상의 집행 모두에 비춰보아도 그러한 정책적 목표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 또한 아울러 문제입니다.

위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 상증세법 규정에 경제적 합리성을 고려한 실질적 요건을 추가해야 할 것입니다. 가령 유사한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 제도는 ‘부당한 이익의 귀속’, ‘사업능력, 재무상태, 신용도, 기술력, 품질, 가격 또는 거래조건 등에 대한 합리적인 고려나 다른 사업자와의 비교’ 등 실질적 기준을 요건으로 하여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는데(공정거래법 제47조 제1항 제4호; 구법 제23조의2 제1항 제4호), 상증세법 위 규정에도 참고할 여지가 있습니다.



6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16 경제그냥 쉬었다는 청년들 증가, 정말 노동시장 상황 악화 때문인가 3 카르스 23/08/22 3007 5
    14105 경제민간 기업의 평생 금융 서비스는 가능할까 11 구밀복검 23/08/15 2323 6
    14101 경제사업실패에서 배운 교훈, 매출 있는 곳에 비용 있다 9 김비버 23/08/12 2525 26
    14066 경제재벌개혁 관련 법제의 문제점(1) – ‘일감몰아주기’ 증여의제 과세 3 다영이전화영어 23/07/26 2280 6
    13866 경제심심풀이 5월 종합소득세 이야기 10 Soul-G 23/05/16 1769 3
    13613 경제사교육 군비경쟁은 분명 출산율을 낮춘다. 그런데... 10 카르스 23/03/02 2871 11
    13513 경제인구구조 변화가 세계 경제에 미칠 6가지 영향 13 카르스 23/01/27 3596 10
    13457 경제때늦은 2022년의 경제학 (+인접분야) 논문읽기 결산 8 카르스 23/01/04 2374 12
    13436 경제정규직보다 계약직 월급이 많아야하고, 전세는 집값보다 비싸야 한다. 19 cummings 22/12/29 3318 3
    13411 경제인플레이션이 뭘까요? 2 realwealth 22/12/19 2515 3
    13402 경제이 사건의 시작은 질게의 한 댓글이었습니다. 11 아비치 22/12/17 2782 25
    13353 경제위즈덤 칼리지 7강 Review 모임 특별편 (?) - 주간 수익률 게임! 16 Mariage Frères 22/11/26 2184 2
    13350 경제부동산에 대한 잡썰 15 Leeka 22/11/25 3046 0
    13087 경제중국경제에 대해서 드는 잡생각들 9 인석3 22/08/16 3227 0
    13062 경제멀리 가버리는 유럽의 전력가격 5 Folcwine 22/08/06 3017 0
    13015 경제가계부채에서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비율은? Leeka 22/07/23 2660 0
    13008 경제코인·투자 손실금까지 변제해주는 게 맞냐? 30 Wolf 22/07/20 3880 22
    13001 경제에너지 얼마나 올랐나? 4 Folcwine 22/07/16 3057 1
    12987 경제작년까지 나왔던 실거주 1채에 대한 잡설 37 Leeka 22/07/11 4476 0
    12941 경제노무사 업계 도시전설 16 당근매니아 22/06/23 3698 5
    12928 경제OECD 경제전망 - 한국 (2022. 6. 8) 소요 22/06/18 3114 16
    12918 경제천연가스 쇼크 5 Folcwine 22/06/15 2806 5
    12903 경제신세계/쓱닷컴/CGV 용으로 사용할 서브 카드 추천 22 Leeka 22/06/09 3468 4
    12896 경제누구를 위한 ESG 인가 7 Folcwine 22/06/07 3499 4
    12880 경제폭염에 러시아의 가스관은 잠길 것인가 5 Folcwine 22/06/01 3205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