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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1/02 17:25:31
Name   nickyo
Subject   중3, 일진의 마지막 권력


교육열이 전국에서 가장 강하기로 소문난 곳에서 자랐다. 어디서는 스카이 대학 가는 사람들 다섯 열 볼때 우리는 백명씩 봤다. 동네 형들 열이있다면 서넛은 스카이, 한둘은 해외유학.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일지 부모들은 아이들을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키웠다. 우리는 외부에서 보기에 범생이 학군의 범생이들이었고, 부모들의 말 잘듣는 모범생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철 없던 중학시절에도 우리는 빈번하게 '고등학교'에 가는것을 마치 대학에 가는 것 처럼 생각했다. 이를테면, 고등학교에 간다는 것은 곧 방황의 졸업을 의미했던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랬나 하면 그렇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막연하게나마 '노는건 중학교 까지'라는 명제를 어느정도 공유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은 곧 철이 드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부모들 역시 극소수의 엘리트들을 제외하고는 중학교 시절을 나름 자유롭게 풀어주는 곳들이 많았다. 물론 '나름' 이었지만. 어쨌거나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중3을 맞이했고, 중3은 우리에게 마지막 방황의 시기라고 믿었다. 그래서 더욱 독했다.


나는 중 3 시절 일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왕따의 피해자의 지위에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방관자보다는 좀 더 나쁜 위치에 있었다. 그것은 일진들이 나를 하나의 테두리 안에 넣길 바랬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나와 내 친구 둘이였다.

나와 내 친구 둘은 좀 특이했다. 우리는 가만히 먼저 철이 든 방관자도 아니었고, 그러나 일진도, 왕따도 아니었다. 나를 제외한 두 친구는 공부를 아주 잘했고, 나는 공부를 그렇게 잘 하지는 않았지만, 단순히 실업계에 가기 무섭다는 이유로 중3 1학기를 미친듯이 공부해서 전교 330명중 310등에서 40등까지 올리는 걸 성공했다. 그래서 우리 셋은 선생님들에게 있어서 '좋은 그룹'이었다. 이렇게만 따지면 일진들에게 우리는 하나의 타겟이다. 방관자가 아닌 범생이들은 일진들에게 눈엣가시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정말 운좋게도, 우리 셋은 부모님에게 당시 학생들 중 가장 좋은 피지컬을 받았다. 키 순서대로 123, 어깨 크기로도 123, 덩치로도 123.

그 중에도 나는 힘이 가장 센 편이었다. 나는 어릴때부터 우량아-과체중의 (지금도 비만이지만) 시기를 보냈다. 태어날 때 제왕절개를 안 했더라면 엄마가 얼마나 힘드셨을지. 어쨌거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가장 체격이 컸다. 위로도, 옆으로도. 그래서 유치원때부터 아버지는 날 지인의 태권도장에 보냈고, 나는 의무적으로 하루에 최소 2타임 이상의 수련을 해야했다. 아버지가 장교를 지내던 시절 함께 장병으로 계셨던 관장님께서는 나를 과체중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고, 나는 그보다 더 잘먹어서 그 노력을 무마시켰다. 하지만 그 운동들은 상당히 좋은 효과를 남겼는데 뚱땡이가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했더니 물찬 뚱땡이로 진화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게 성격을 바꿔주진 않았다. 나는 장난기 많고 활발했지만 겁도 많았다. 그래서 누가 진짜로 싸움을 걸면 때리질 못해서 피하기 일쑤였다. 다행히 좋은 체격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맨날 중학교, 고등학교 형들과 겨루기를 해야했기 때문에 맞는건 별 감흥도 없었다. 사람을 부담없이 때릴 수 있는건 겨루기때 뿐이였다. 난 그런 핑계가 필요한 순둥이였다.


중학교를 들어가 이사를 하고 태권도를 관뒀을 때, 내게 남은건 쎈 힘과 순둥이라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중1, 2 내내 권력을 잡고싶어하는 아이들의 타겟이었다. 나는 심지어 검은색 색종이 뒷면에 까만 네임펜으로 '뒷뜰로 나와'같은 결투장도 받아본 적이 있다. 물론 그 결투장에 가지 않아서 한동안 놀림도 많이 받았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민첩하게 권력관계를 파악하고, 사람의 경계를 파악한다. 나는 위협적인 몸뚱이를 가진 위협적이지 않은 머저리였고, 그래서 중1, 2에 한 두번의 시비를 피하고 나면 금세 관심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물론 가끔 깝치지 말라는 경고성 시비가 있긴 했지만 내 성격이 그걸 다 받아칠 정도였다면 이미 순둥이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3때는 달랐다. 나는 중1 말부터 동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이는 역시 아버지께서 태권도를 안 하니 이거라도 하며 살 찌지말라고 보낸것이다. 하지만 뚱땡이들이 으레 그러하듯 유산소는 귀찮고 싫다. 게다가 당시에는 러닝머신에 티비가 달려있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맨날 보디빌더 형들 사이에서 어리광이나 피우며 근육운동만 했다. 그리고 근육운동때문에 배고프면 또 먹었다. 이젠 물찬 돼지가 물찬 근육돼지로 또 진화하고 있던 것이다. 한창 2차성징과 성장기를 지나면서 나는 체중도, 그리고 내가 벤치에 다는 무게도 쑥쑥 늘어났다. 당시에는 WWF가 유행이었는데 친구들과 집에서(학교에서는 그랬다간 또 깝친다는 소릴 들었을테니) 레슬링 놀이를 하는게 가장 재밌었고, 근육운동은 내게 레슬링 놀이를 훨씬 더 쉽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헬스장 만큼은 유독 꾸준히 다녔다. 근데 이게 중3때 일진들에게 소문이 돌았는지, 중3 2학기에 나는 '찍혔다.' 나는 왕따도 아니었고, 방관자도 아니었지만, 일진들에게 나는 한번쯤 확실히 구겨놔야할 놈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힘만 센 순둥이었다. 그 나이때의 투쟁이란 '힘'도 '피지컬'도 아닌 '깡다구'가 가장 중요하다는걸 생각했을때, 가장 먹이사슬의 약자에 위치해있던 것이다.


우리 셋이 타겟이되자, 이제 일진들은 경계를 부수었다. 교실의 경계는 사실 교칙과 도덕, 그리고 선생님의 권력으로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그 명문적인 경계, 말하자면 우리들을 지켜줄 법률이 주먹보다 먼 이유는 주먹을 쥔 일진의 권력이 법률 앞에서 선행될 수 있고, 그것을 가릴 수 있으며, 심지어 학교 내의 법률이 그들을 처벌한다 해도 그걸 감수할 깡다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왕따 피해자들이 겪었던 육체적 수모나 정신적 비아냥을 마주해야했고, 그건 우리 셋에게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어떤 사람도 겪어본 적 없는 일 앞에서는 무능한 대처를 하기 마련이다. 그것도 중3에게는 더욱.


경계를 부순다는건 이런 것이다. 일단 한번 맞아. 질문은 나중에 하구. 그러나 일진이 공격하는 상대는 자신을 공격할 총이나 칼 정도를 들고있다. 하지만 그 무기는 꺼내어 사용하지 않는 이상 없는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경계를 확인한다. 일진중에 두번째 정도 되는 권력자, 내지는 세번째 쯤 되는 전투요원이 강력한 공격을 실행한다. 그 때 반응을 면밀하게 관찰한다. 이건 실험이다. 여기까지 했을때 무기를 꺼내니? 꺼내지 않니? 만약 꺼냈다면 일진은 다수의 권력을 이용해 진압에 나설 것이다. 그것은 교실의 법률 위에 있다. 그러나 물러선다면, 여기까지는 이제 허용된 폭력이다. 우리는 그 처음에 부순 경계가 갖는 의미를 몰랐고, 그래서 우리는 선공을 헌납한 셈이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 순간에 일진의 관심속으로, 그리고 일진의 피해자로, 그리고 일진 권력의 증거라는 정체성을 획득해야했다. 일진 권력은, 자기보다 10센티쯤 크고 자기를 들어서 던질수도 있는 사람들을 부술 수 있는 힘임을 교실에 공포하였다.



싸움은 경계를 확인하는 일이다. 발을 들이민다. 여기까지. 다음은 저기까지. 그래, 송곳의 이야기이다. 회사는 노동관계법들이나 형사법, 혹은 민법들 앞에 선 일진과 같다. 그들이 평화로울때 우리는 피해자이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를 억누르거나 짓이기거나, 혹은 우리를 자신들의 권력을 통해 없애야 할때, 그들은 정해진 룰보다 더 가혹한 지점에 전선을 긋는다. 그것이 경계다. 그리고 그 경계를 확장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노조를 깨고, 어용노조를 만들고, 회유하고, 까고, 압박하고. 때로는 악마가 되어, 때로는 천사가 되어. 나는 노동조합과 회사의 투쟁이 벌어지는 그 순간들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그 역사를 보며 그런생각을 했다. 이건 교실이다. 이건, 중 3 때 나의 교실이다.


송곳에서 이수인은 보통의 노조와는 좀 다르다. 그는 엘리트 노조다. 그는 정규직이고, 관리직이며, 자신의 상사보다 유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본의 편에 서 준다면 언제든지 써먹을 능력을 출중하게 지니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셋은 저항할 줄 몰랐지만, 화와 억울함은 있었다. 그리고 그걸 표현할 능력도 있었다. 우리가 이겨내야할 것은 두려움과, 착함이었다. 폭력은 폭력으로 해결하는게 아니야. 이건 내가 참을만해. 이정도는 웃으며 넘어갈 수 있지. 만화 원피스의 샹크스가 떠올랐다. 술 뒤집어 쓴 정도로 뭘 화를 내고 그래. 그러나 우린 술을 뒤집어 쓰는게 어디까지였는지를 알지 못했다. 우리는 루피를 때리고 죽이려 하는게 어디까지인지를 알지 못했다. 회사는 사람을 자르고, 노조를 탄압하고, 겁박하고, 못하게 막는다. 그것은 거의 대부분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며 그것은 교실이 그러했듯이 보장된 룰을 무시한 채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우리를 쥐고 있는 '룰'은 도덕도 선생님의 권력도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했지만 실존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해야했던 것은 저항이었고, 내 목 질기다는 것이었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권력관계와 대등해지는 것이었다. 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룰 앞의 전선을 룰 까지 밀어낼 수 있는 실질적인 실력. 그게 이수인에게 필요했고, 중 3때 내게 필요했던 것이다. 노조는 함께 싸울 사람이 필요했고, 나는 착함을 버리는 것이 필요했다. 내가 싸우면 부모님이 슬퍼하실거야. 내가 쟤들을 때리면 난 한심해 지는거야. 내가 싸워서 치료비라도 물게 되면 어떡하지. 엄마 아빠는 맨날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시는데.



거의 한달이 넘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새벽까지 잠 못 이루고 3시간쯤 자고 학교에 갔다. 그러다보니 낮에는 졸고, 때로는 엎드려 자는 척을했다. 그러나 밤이되면, 나는 내일은 저자식들을 죽여버릴꺼라고 하루하루 나의 착함을 해체해나갔다. 이건 정말 놀라운 성과였다. 나는 길거리에 죽은 노루였고, 나는 그 시체를 내가 알아서 치우는 착한사람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착한 호구였고, 나는 그것을 긍정할 줄 아는 '어른'이었다. 사회화된 인간. 나는 철저하게 사회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걸 매일 죽였다. 15년동안 배우고, 믿어왔던 도덕률을 해체하는 밤들은 내게 잠을 뺏아갔지만 동시에 해방감을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기말고사가 끝난 날, 나와 내 친구 둘은 복싱글러브를 가져와 야 야 덤벼 하며 머리를 툭툭 치다 세게 팡 하고 들어오는 스트레이트를 맞았고, 우리는 한 놈을 던져 칠판에 박고 두 놈의 머리를 헤드락 해서 사물함에 꽂았고, 의자를 잡고 대걸레를 잡고 휘둘렀다. 사람을 맞추지 못해 기물이 파손되었고, 그 순간. 착함이 걷어내고 해방된 그 순간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글러브를 낀 놈도, 우리반의 일진 열명가량도, 그리고 착하고 야캤던 노루의 반란을 보고 '제압'을 떠올린 일진의 정보통에 의해 쏟아져 나온 전교의 실세들이 우리 교실로 들이닥쳤다. 선생님은 출동하지 않았고, 소동은 시작되었다. 우리 셋은 그 많은 발길질과 그 많은 주먹들이 이렇게 별 것 아니었다는 것이 나중에 얼마나 웃겼는지 모른다. 우리는 세대를 맞고 한대를 때렸지만, 우리가 때린놈은 코뼈가 나갔다면 우리는 흙먼지만 묻었다. 중 3, 180센티의 키 세명과, 백키로와 팔십키로 둘의 휠윈드가 시작된다. 그리고 저 일진들 역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중3, 처음을 대처하기에는 아직 어린나이.


몇 놈을 팼을까, 소요가 잦아든다. 일진의 최고 권력자들, 이를테면 해군의 삼대장같은 놈들이나 혹은 뭐 회사의 인사부장 같은 사람들, 지점의 점장과 부장과 관리직들은 당황한다. 세다. 뭐지, 이건 내가 상상하던게 아닌데. 이미 나는, 노동자들은 심연을 바라보던 것에서 해방을 바라본다. 우리는 우리가 가져야 할 것들을 바라본다. 우리는 그들이 요구했던 언어들 바깥의, 더 절대적인 민주적 언어인 법률의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법률을 어기고 전선을 밀어낸다. 이제 가해자들이 가능한 것은 두가지다. 목숨을 걸거나, 타협을 하거나.


노조는 타협을 해야한다. 회사가 있어야 노조가 있다. 그리고 만약 서로 목숨을 걸게 된다면, 십중 팔구 이쪽의 목숨이 더 많이 날아간다. 그리고 얻은 승리는, 역사에는 영광있으나 사람에게는 비참함과 슬픔을 남길 것이다. 그래서 노조는 싸움의 경계를 확인하고, 그 경계의 전선을 밀어낸다면 때로는 화가나도 속이 뒤집혀도 어느 순간 우리의 '삶'을 위해 타협하는 시점 역시 필요하다. 구정물을 넘기더라도 조합원의 인생을 더 많이 지킬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게 모든 조합원들이 원한다면. 그건 또 하나의 승리이다. 이것은 비판받을 소지가 많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또 하나의 희망이다. 이제 그들은 다음 싸움의 전선을 조금 더 앞으로 밀어낸 채 싸울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지는 건 무섭지 않다. 깨지는 것도 무섭지 않다. 하지만 혼자 있는건 무섭다. 그러니 행여라도 약간의 승리가 있다면, 그리고 그게 혼자가 아니라면 우리는 희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중학생들은 아니었다. 아니 우리 셋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선을 넘었고, 우리는 폭력이 가져다 주는 해방감을 처음으로 맞이했다. 첫 경험의 짜릿함, 중독이 될 것 같은 쾌감. 나는 그 많은 도덕들이 이야기했던, 사람을 때리는 것은 나쁘고 슬픈일이에요. 같은게 머리속에 단 한줌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까지 대체 왜 맞고 있었는지 이해를 못 할 정도였다. 나는 제일 잘 싸운다는 놈들에게 또 맞고, 빗자루로 맞고, 대걸레로 맞고, 의자로 맞았지만. 그래봐야 그건 피멍정도였다. 조그만 생채기 정도였다. 코피정도였다. 대신 내가 그들에게서 뺏은건 광대뼈였고, 건치였고, 코뼈였고, 손가락이었고, 살점이었고, 권력이었고, 경계였다.


우리는 성실한 학생들이었고, 누가 봐도 집단 폭행의 흔적은 저들의 것이었다. 수많은 학부모가(심지어 자기 아들이 그렇게 성실하다고 믿는) 학교에서 난리를 쳤고, 우리들의 부모님께서는 사과하기 바쁘셨다. 그러나 나는 이미 해방의 쾌락을 느꼈고, 나는 사과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악행을 이야기했고, 그것에 의해 부모님 역시 또 한번 싸워줄 거라 생각했으며, 선생들 역시 그래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아무도 싸우지 않았고, 사과는 이어졌다. 나는 그 때 부모님께 처음으로 환멸을 느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그 지리한 사과와 고개숙임 이후에 단 한 번도 나를 혼내지않았다. 잘했다고도 하지 않고, 혼내지도 않은 채 다만 그러하였다.


분쟁이 어떻게 종식되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서로 별 문제 없이 졸업했다. 그래서 나의 졸업사진은 매우 초라하다. 우리는 셋이서 사진을 찍었고, 다른 친구들은 아무도 함께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서 나중에 들었을 때, 아버지께서 그 심한 욕설과 화냄, 그리고 그 돈 잘번다는 부모들 앞에서. 차분하고도 내정하게, 그럼 뭐 때려칠까요? 하며. 마치 구고신 소장처럼, 당신네 자식새끼들이 집단으로 애들 패고, 일년 내내 괴롭히고, 그걸 방조했던 선생, 교육청, 그리고 공부 좀 한다고 지 자식새끼가 다 옳은줄 아는 부모! 학교 이름 까고 선생 이름 까고 당신들 이름 까고 신문사에 제보하고 경찰에 전화하고 판검사 앞에서 재판받아봐? 어! 당신들 집값한번 떨어지게 이 동네 개망신 한번 시켜줘! 하고. 누구 자식에 누구 아버지 아니랄까봐. 사관학교 나와 장교하면서 남은거라곤 목숨걸고 유언장 쓰고 비무장지대 들어가서 작전수행하면서도, 미운털 하나 없이 장병들 위해 자기 몸 안 아꼈던 것 하나 자부심으로 전역한 아버지는, 그렇게 돈 많고 자식새끼 소중한 부모들 앞에서 또 한번 코끼리가 되어야 했다. 그 시절, 부모님이 초라하다고 느꼈던 것이 얼마나 한심한 일이었을지. 나는 다만 웃으며, 그 뒤로 제가 언제 사고친적있어요~ 하고 얼버무렸다.



이번주 드라마 송곳 4화를 보며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도 동창회에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 때의 경험이 아마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버렸다는 생각도 한다. 나중에서야 그 폭력이 가져다 주는 해방감이 얼마나 위험하고 얼마나 무서우며 얼마나 나쁜 것인지를 알게 되고, 그럼에도 그 전선에서 폭력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순순히, 고분고분, 웃으며 받아들이는 것 역시 어느 지점까지 넘어갈 수 있는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고. 모든 정당해 보이는 것들 안에서 벌어지는 가려진 투쟁들이 존재하며, 외부에서 바라보는 평화가 단순히 사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모두가 착하고 성실한 범생이라고 믿었던 그 모범적이고 평화로운 교실에도, 지독한 구정물이 있었고 전선이 있었으며 우리에게 싸움의 경계가 있었음을. 어쩌면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왼 편에 서 있는게 아닐까 싶음을 떠올렸다. 남들보다 조금 더 덜 사회화가 된 셈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그때 그 애들에게 고마워 해야하나 하는 마음도 든다. 물론 노조의 쟁의행위가 이렇게 교실의 권력관계처럼 명백하고 단순하지는 않지만, 우리 역시 시시했던 인간들이었고, 운 좋게도 시시했지만 실력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시시하고 실력없는 사람들이 훨씬 더 일반적이고, 나의 사회에서 나는 여전히 시시했으며 이젠 실력도 없는 약자가 되어있다. 그래서 시시한 약자를 위한 싸움을 지지하고, 시시한 '개인'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의 '룰'을 , 그 경계를 얻는 싸움을 옹호한다. 내게는 그게 중립이고, 그 경계를 얻는 곳이 정의로움이다. 그것이 유일하게 약자들을 강자들과 동등하거나, 혹은 그 비슷한 위치에서라도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발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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