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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4/12/30 19:46:38수정됨
Name   카페인
Subject   마르크스가 본 1848년부터 1851년까지의 프랑스 정치사
원래 타임라인에 가벼운 마음으로 올릴 예정이었던 글이 어쩌다보니 길어져 티타임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티타임은 각 분야의 전문가 선생님들이 양질의 글을 올리는 공간이다 보니 마치 살인의 추억과 올드 보이가 나란히 진열된 곳에서 클레멘타인을 공개하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마르크스 또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시는 선생님들의 반응에 대한 염려도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보잘것없는 글을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국내에서는 '프랑스 혁명사 3부작'이라고도 알려진 마르크스의 저서들이 있습니다. 1848년 2월 혁명부터 1850년까지의 프랑스 정치를 다루는 '1848년부터 1850년까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이 가장 먼저 쓰여졌고, 이후 1848년부터 1850년까지 이루어진 정치적 투쟁의 원인들을 자신의 이론에 기초해 좀 더 상세히 설명한 다음 1851년 12월 2일 훗날 나폴레옹 3세가 되는 대통령 루이 나폴레옹의 친위 쿠데타까지의 역사를 다루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 쓰여졌습니다. 마지막 저서인 '프랑스 내전'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나폴레옹 3세를 몰락시킨 보불전쟁의 폐허에서 피어난 파리 코뮌의 짧은 생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1848년부터 1850년까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과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의 내용만을 간략히 적을 예정입니다.

첫 번째 저서는 1848년 2월 혁명의 성공 이후 권력을 독점하고자 했던 공화파 부르주아지가 최종적으로 몰락하는 이야기입니다.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으로 말미암아 마르크스가 금융귀족이라고 명명한 특정 부르주아지 분파의 이익만을 대변하던 루이 필립의 7월 왕정은 무너졌으나, 새로운 임시정부의 주축이었던 공화파 부르주아지는 혁명을 특정 부르주아 분파만이 독점하던 권력을 모든 부르주아들이 골고루 나누어가지는 선에서 멈추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사회주의적 구호를 외치던 노동자들이 첫 번째 타도 대상이 됩니다.

정부가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에 방해되는 노동자들의 여러 사회주의적 요구를 지속적으로 묵살하자, 자신들이 혁명의 주역 중 하나라고 믿었던 노동자들의 분노는 점점 커지기 시작합니다. 자신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현 상황에 강한 불만을 품은 사회주의자들은 1848년 5월 15일 블랑키, 라스파이유 등의 주도하에 의회를 점거하나 빠르게 진압되고, 결국 다음 달에 노동자들의 여러 요구 중 유일하게 실현된 정책이었던 국민작업장이 폐쇄됨과 동시에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파리에서 쫓겨나는 일이 발생하고 맙니다. 최후통첩을 받은 노동자들은 2월 혁명 당시 그들이 품었던 순진한 환상, 부르주아 질서 아래에서도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6월 봉기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노동계급은 다른 모든 계급으로부터 고립된 상태였기에 6월 봉기는 실패합니다. 계엄 상태에서 죽지 않은 봉기 가담자들은 재판을 생략하고 투옥되거나 추방됐으며, 봉기 진압에 앞장선 카베냐크 장군은 공화파 부르주아지를 대표하는 인물이 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노동계급은 가정 먼저 정치의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그다음 타도의 대상이 된 이들은 소상공인들과 그들을 대변하던 민주파 프티부르주아지로, 6월 봉기 당시 노동계급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온 그들을 맞이한 건 대규모의 파산 선고였습니다. 이후 프티부르주아지가 자신의 채권자들을 상대로 정치적 투쟁을 벌이지만 죽은 노동계급이 부활해 체제를 전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따위가 그들의 적극적인 투쟁을 막았습니다. 혁명 기간 발생한 막대한 채무를 조정하는 협상 테이블에 부르주아지의 대표와 프티부르주아지의 대표가 나란히 앉았을 때, 6월 봉기에 가담한 노동자들의 유가족들이 몰려와 항의하는 것을 본 프티부르주아지는 지레 겁을 먹고 중요 요구 사항들을 포기했습니다. 이후 6월 봉기가 일어난 지 1년 후 궁지에 몰린 그들은 최후의 저항 수단으로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으나, 시위대는 군대의 대포 소리에 놀라 뿔뿔이 흩어지고 주동자들은 잠적해 버립니다.

자신들의 정적들을 모두 성공적으로 격퇴했다고 판단한 공화파 부르주아지는 본격적으로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때 공화파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적들에게 보통선거권이라는 최후의 저항 수단이 주어져있다는 것을 망각합니다. 자신들의 패배에 분노한 노동자들과 소상공인들, 그리고 공화파 부르주아지가 낭비한 국고를 자신들의 세금으로 메꿔야 할 처지에 놓인 농민들은 공화파 부르주아지가 내세운 후보 카베냐크 대신 루이 나폴레옹을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한편, 의회에서는 부르봉 왕가를 지지하는 지주와 오를레앙 왕가를 지지하는 금융귀족이 연합해 '질서당'을 만들어 공화파 부르주아지와 대치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공공의 적이 된 공화파 부르주아지는 새로운 공화국 헌법을 작성하는 역할을 맡았던 제헌의회의 임기가 끝나자마자 권좌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의회에 다수당으로서 입성한 질서당은 루이 나폴레옹을 대통령으로 만든 보통선거권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수정합니다.

두 번째 저서는 입법부를 장악한 왕당파 동맹 질서당과 행정부를 장악한 루이 나폴레옹이 왕위를 두고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2월 혁명 이후 폐지될 예정이었던 주세의 부활이 예고되자 루이 나폴레옹의 지지자 중 일부가 이탈하기 시작합니다. 주세는 포도를 재배하는 농민들과 술을 만드는 양조업자들, 술을 판매하는 술집이나 레스토랑의 주인들, 그 주인들에게 고용된 노동자들 모두에게 손해니까요. 주세 부활에 대한 반발로 노동계급과 프티부르주아의 연합이 1850년 파리와 그 외 몇몇 지역에서 이루어진 작은 선거에서 승리합니다. 이 결과를 지켜보고 있던 루이 나폴레옹은 체제의 안정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하며, 질서당과의 투쟁을 중단하고 그들에게 질서의 안정을 위해 힘써달라는 비굴한 부탁을 합니다. 하지만 질서를 위협하는 작은 승리들은 승리자들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활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지방의 일부 농민들은 주세 부활의 원인을 대통령을 방해하는 의회로 지목합니다.

의회의 중심인 질서당은 서로의 물질적 기반도 다르며 다른 왕가에게 충성을 바치는 상이한 두 집단의 집합체였기에, 공화국이 멸망하고 왕정복고가 이루어진다면 분열할 수밖에 없다는 모순에 계속 발목을 잡혔습니다. 공화국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어야만 동맹이 존속될 수 있기에 적극적인 공세를 펼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것입니다. 의회의 휴회 기간에 질서당의 어떤 이들은 자신이 충성을 바치는 왕가를 위해 몰래 음모를 꾸몄으며 어떤 이들은 두 왕가의 화합을 시도해 보았지만, 별다른 진척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1851년부터 불황(또는 공황)이 도래하자 질서당을 지지하던 부르주아들이 지지를 거두기 시작하며 질서당은 더 큰 위기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돌아선 지지자들은 불황의 원인이 반복되는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라고 생각했기에 안정된 질서를 원했고, 행정부와의 갈등으로 질서를 어지럽히는 부르주아 의회를 원망했습니다.

자신의 정적들이 혼란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상황에서 루이 나폴레옹은 군인들의 복지를 향상해 병사들과 하급 지휘관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자신에게 충성하지 않는 장군들은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내쫓은 다음 자신에게 충성하는 장군들을 파리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친위대인 정치깡패화된 룸펜프롤레타리아트를 동원해 그들에게 자신의 지방 순회나 연설에서는 열광적인 지지자를 연기하게 하고, 그들이 몇몇 의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눈감아주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정국의 주도권은 완전히 루이 나폴레옹에게 넘어오게 됩니다.

대통령의 연임을 금지하는 조항에 대한 개헌을 앞에 두고 질서당은 상이한 입장을 가진 여러 분파로 분열됐습니다. 다수당으로서의 입지를 상실한 질서당은 1851년 11월 보통선거권의 부활을 요구하는 보나파르트 각료들의 긴급 동의안을 근소한 차이로 부결시킴으로써 자신들이 인민의 대표기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재차 입증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회가 군대를 직접 징발할 권리를 담은 법안마저 의회의 손으로 부결되고, 질서당과 의회가 마침내 모두로부터 버림받자 루이 나폴레옹은 드디어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의회의 주요 인사들은 신속히 체포되고 의사당은 군대에 점령당하게 됩니다. 의회의 잔당들이 모여 루이 나폴레옹의 해임안을 가결하나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군인들과 감옥이었습니다. 혁명은 한 계급의 독재를 거쳐 한 개인의 독재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두 저서들은 임지현 선생님이 번역하신 번역본을 기준으로 360페이지 미만의 다소 짧은 분량이지만, 마르크스 이후에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혁명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변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 구조 바깥에 존재하는 농민과 프티부르주아지를 설득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준 것이죠. 그들에게 자신이 소유한 소규모의 경작지나 건물 따위의 소유권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노동계급과 연대하여 그들의 채권자를 타도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지임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20세기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나 자본주의가 미발달하여 노동자보다 농민의 수가 많은 지역일수록 이 문제는 더 크게 작용하였고요. 레닌이 당시 러시아의 농민 문제에 관해서 서술한 저서들, 중국 헌법에서 노동자와 농민의 동맹을 강조하는 것들 따위는 모두 마르크스가 했던 고민의 연장선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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