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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2/20 21:31:25
Name   얼그레이
Subject   [조각글 9주차] 불행한 고등어
[조각글 9주차 주제]

조건
다음 조건을 만족하는 글을 써주세요.
1. 음식을 먹는 장면이 들어가야 합니다.
2. 다음에서 제시하는 상황 중 하나 이상을 골라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아 주세요.
 -1. 떠날 준비를 하는 상황
 -2. 신체적 문제로 불편해하는 상황
 -3. 길을 잃고 헤매는 상황

합평 방식
분량은 자유고 합평방식은 자유롭게 댓글에 달아주시면 좋겠습니다.

합평 받고 싶은 부분
주제엔 적절했는지, 분량은 적절했는지, 긴장감은 유지되었는지가 궁금합니다.
구성에 허술했거나 아쉬웠던 점은 없었는지도요..!
그리고 다 보시고 나서 고등어가 드시고 싶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ㅠ^

하고 싶은 말
청하에 고등어가 먹고 싶어졌어요.
연어라도 좋습니다.

본문
불행한 고등어

“혹시 어렸을 때 바다 쪽에 산 적 있어요?”

현수씨가 문을 열어주며 물었다.

“아, 고마워요. 그럼 저 닭 좋아하니까 우리 집은 치킨집 했게요?”

“아니, 그게 아니라…. 의외의 메뉴여서 그랬어요. 보통 생선은 집에서 먹지 밖에서 굳이 찾아서 먹진 않잖아요.”

그건 그랬다. 재치 있게 받아친다고 대답했는데 현수씨는 조금 무안했던 모양이다. 머리를 긁적인다. 원래 생선 좋아해요. 목도리에 얼굴을 묻었다. 목도리는 막 훈기가 돌기 시작한 볼보다 차가웠다. 가게 안은 생선 전내로 진동하고 있었다. 나는 냄새만으로도 벌써 배부른 기분이 들었다. 타코와사비랑 고등어 버터구이 하나 주세요. 따듯한 사케 잔술로 하나 주시구요.

중학교 시절 전학 갔던 학교에서는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웠다. 이전 학교에서는 한자를 배웠기 때문에 엄마는 나더러 일본어를 배우라고 했다. 예고에 진학하기 위해선 내신 관리도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피아노는 내게 늘 지옥이었고, 가끔 기타를 치긴 했지만, 음악이 아닌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 낯설던 때였다. 의외로 수업 자체는 재밌었지만.

“겨울 동안에 잠깐 다니게 됐었는데, 수강생이 저랑 어떤 언니랑 오빠밖에 없었거든요.”

테이블에 술잔과 삶은 완두가 먼저 나왔다. 생선 얘기에서 갑자기 일본어 얘기로 넘어갔지만 현수씨는 묵묵히 완두콩을 벗기고 있었다. 술잔을 채우고 잔이 조심스레 부딪쳤다. 적당하게 데워진 사케가 목 안으로 넘어가자 짜릿한 훈기가 돌기 시작한다. 청주 특유의 향이 귀를 붉힌 것 같다. 나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기초 일본어 수업이었어요. 조사랑 같이 배우는 단원이었어요. 그날 배우는 단어는 좋다, 싫다였어요. ‘すき(스키) : 좋다.’, ‘きらい(키라이) 싫다’, ‘にく(니쿠) : 고기’ ‘さかな(사카나) : 생선’.”

나는 몇 번 반복해서 현수씨를 따라하게 했다. 현수씨는 열심히 따라했다. 조금 귀여웠다.

“선생님이 고기가 좋은지 아니면 생선이 좋은지 일본어로 질문을 했거든요. 바로 전에 선생님이 예문을 풀어줬는데 너무 긴장해서 생각이 안 나는 거에요. 다시 물어보면 되는데 바보같이 그걸 못 물어 보겠더라구요. 그래서 언니 오빠의 대답을 똑같이 따라 했어요. 제가 대답하고 나니까 선생님은 굉장히 놀란 표정으로 ‘아 너희는 다 생선을 싫어하는구나.’ 하시는 거에요. 언니는 비린내 때문에 못 먹는다구. 다른 오빠도 그렇대요. 나도 얼결에 얼버무렸는데. 사실 나는 생선을 좋아했단 말이죠.”

가게는 오픈 키친이었다. 노련한 주방장이 고등어의 여린 살을 잘 달궈진 불판 위에 올렸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노릇한 냄새 때문인지 빈속에 마신 사케 때문인지 몽롱해졌다. 볼에도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볼이 발그레해지면서 따끔거렸다. 귀는 이미 훈훈한 열기에 뜨겁기까지 하다. 차가운 손으로 귀를 살짝 잡았다. 시원했다.

그때 나는 많이 지쳐있다. 엄마는 내가 재능이 있으니 피아노를 계속 치라고 했지만 싫었다. 나는 전학 오기 전의 학교에선 또래의 철없는 시샘에 지쳐있었다. 얼마나 잘 치는지 보자는 으름장부터, 선생님이 나만 편애한다는 둥. 어쩌다 인기 있는 남자애가 말을 건다 치면 바로 보복이 들어오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날 괴롭히던 그 애는 그 남자앨 좋아했던 거다. 유치한 시절이었다. 그 유치함이 나는 지독하게 싫었다. 피아노도 싫고 엄마도 싫고, 모두가 싫을 때마다 책에 몰두했다. 때론 글을 쓰기도 했다. 집에서는 엄마 눈치가 보이니까 학교에서만 읽고 썼지만.

콩쿨을 앞두고 있던 여름이었다. 점심시간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왔더니 나를 괴롭히던 애가 내 노트를 들고선 의기양양하게 서 있었다. ‘야, 너 예고 준비하던 게 피아노가 아니라 문창과였니? 글 잘 쓰네.’ 그 애의 패거리들은 나를 둘러싸고 꺄르르 비웃기 시작했다. 글을 큰 소리로 읽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 내용도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는 내 속마음을 들키는 것 같아 수치스러웠다. 반 애들은 우리를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얼굴이 달아오른 채로 그만하라고 소리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 애는 나보다 키가 한참 컸다. 발돋움하며 악을 쓰는 터라 창가로 가까워지는 것도 몰랐다. 잘못 디딘 발에 내가 걸리게 되었고, 나는 창가 쪽으로 몸이 쏠리기 시작했다.

내 손!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세상이 슬로우 모션으로 흘렀다. 반사적으로 내 손은 유리창을 집었고, 나는 멀쩡했다. 그렇다. 세상은 꼭 그렇게 드라마틱하진 않는다. 큰 통증도 없었다. 아프지도 않았다. 근육이 놀라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내 생각에 놀라 있었다. 순간적으로 유리창에 손을 다쳐서 피아노를 안 쳤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순간이었다. 생각이 찰나에 스쳐 갔으므로 나는 그것이 아직 내 생각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 애들도 별일이 일어나지 않아 안도하는 눈치였다. 다행이란 생각이 한 발 더 늦었다. 무안해진 그 애들은 괜히 조심 안 하느냐고 화를 냈다. 어이가 없어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때 나는 빨리 창가에서 떨어졌어야 했다.

아무리 여름이 막 시작했다지만 남자애들은 더위도 안 탔다. 밖에서 축구를 하다가 잘못 찬 공이 ‘그때 마침’ 유리창을 뚫었다. ‘하필이면’ 깨진 유리가 손등을 스쳤다. 하지만 콩쿨에 나가지 못 할만 큼도 아니었다. 신경을 다친 것도 아니었고, 가벼운 긁힘이었다. 피가 조금 나긴 했지만, 그냥 ‘긁혔을 뿐’이다. 며칠 있으면 괜찮아질 거였다.

계속 말을 하고 있자니 자꾸 허기가 돌았다. 때마침 타코와사비가 먼저 나왔다. 인생은 역시 타이밍이다. 주방장에게 샤브샤브 양념장을 따로 부탁했더니 금방 내주었다. 반숙을 터뜨리자 쯔유에 노른자가 터져 나왔다. 자꾸 입에 침이 고여 입술을 혀로 핥으며 양념장을 섞기 시작했다. 빨리 섞여라. 섞인 양념장을 숟가락에 덜어 적셔서 먹는 것이 편하다. 사케와 함께 입 안으로 넘기니 아, 천국이 여기다.

불판 위에서 고등어는 육수를 뿜어내고 있었다. 제 몸의 기름으로 스스로를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것도 모르고 고등어는 입을 멍청하게 벌리고 있다. 주방장이 뒤집개로 고등어를 들어 올렸다. 고등어가 뒤집개를 따라 허공에서 뒤집힌다. 다시 치익, 고등어가 불판 위에 올랐다.

엄마도 그렇게 학교를 완전히 뒤집어 놨다. 엄마는 남의 속을 뒤집다 못해 들쑤셔 놓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엄마 입에서 튀어나오는 단어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피아노, 손, 왕따, 예고, 음대와 같은 단어들이 학교를 무작위로 떠다녔다. 신기한 일이었다. 단어는 실체가 없는데 우리 학교를 완전히 뒤흔들고 장악해버렸다. 엄마의 말이 지금 저 고등어에 뿌려지는 소금처럼 나를 절여놓았다.

우리 애가 이쪽에서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시죠? 왜 별것도 아닌 거로 유난이냐고요. 하, 이봐요, 그쪽이 무식해서 모르나 본 데, 피아노 치는 손이에요. 피아노! 피아니스트들이 손 보호해야 하는 거 몰라요? 사시사철 장갑 끼고 잘 때도 장갑을 끼고 자요. 혹시라도 귀한 손 다칠까 봐. 피아니스트는 손이 생명이거든. 근데 지금 내 딸 손을 다치게 한 거야. 그쪽 네 아들딸이. 그것도 애 괴롭혀 가면서. 진짜 이렇게 무식하고 격 떨어지는 동네는 처음 봤어. 무거운 짐 들면 손에 무리 갈까 내가 아침저녁으로 가방 들고 와. 체육 시간에 운동하다 다칠까 봐 체육도 안 시켜. 왠 줄 알아? 늦은 시간까지 애 하도 연습하느라 기진맥진하느라 손가락 놀릴 힘도 없거든.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아침 저녁밥도 제 손으로 못 떠먹을 만큼 연습해. 그래서 내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밥 떠먹여 준다는 얘기야. 체육 시간에 공 하나 못 들게 하는 것도 혹시라도 다칠까 봐야! 근데 그 집 딸이 그거가지고 왕따 시켰다면서? 그 부모에 그 자식 아니랄까 봐, 상식도 없고 멍청해. 잘못한 것도 모르고 어디서 적반하장이야? 우리 성진이, 내가 이렇게 독하게 키워. 이 좁은 땅덩이에서 이렇게까지 하는 건 대한민국에서 우리 성진이 피아노로 따라 올 사람도 없어서야. 그렇다면 클래스가 다르다는 걸 보여줘야지. 세계갈 애는 이렇게 다르다고. 그런 차원이 다른 피아노를 보여주려고 내가 내 인생 바쳐가면서 이렇게 하고 있는데 당신이 내 인생 망칠 작정했어? 우리 이번 콩쿨 못 나가면 그쪽이 책임질 거야? 보상? 내가 보상을 바라서 이러는 거 같아?

경우도 없고 예의도 없었다. 그렇지만 엄마는 의기양양했다. 엄마가 의기양양할수록 나는 아찔해졌다. 당장에라도 죽고 싶게 만든 건 팔까지 벌게지게 만든 수치심이 아니라 엄마의 확신이었다. 엄마는 도대체 내 어디서 저런 실력을 확신하는 거지. 저건 확신이 아니라 확언이다. 넌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엄마가 당장에라도 내 숨통을 끊어 놓을 것만 같았다. 제발 그만해! 소리치려는 찰나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손등 긁힌 거로 왜 저 난리래. 진짜 쟤네 엄마도 진상이다. 아서라, 쟤도 창피할걸. 남자애들 몇은 손에 장갑을 끼는 척하고선 나를 흉내 냈다. 고상한 척 머리를 넘기면서 표정을 우스꽝스럽게 일그러뜨렸다. 애들이 눈치를 보면서 웃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웃음소리가 자꾸 시선을 붙잡았다. 그 남자애는 피 흘리는 나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손목을 과장되게 꺾고는 호들갑 떠는 제스쳐를 취했다. 옆에서 다른 애가 허리에 손을 얹고 삿대질을 하다가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우리 엄마였다.

나는 멍청하게 입을 벌리고 울고만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더니 당장에 전학을 부르짖었다. 예중이라면 이런 수준 낮을 일도 없지. 엄마는 나를 데리고 학교를 나오면서 학교에다 대고 소리쳤다. 아이들이 우리의 비참한 승리를 비웃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인 그들의 눈빛에 엄마는 개의치도 않았다. 야, 쟤 집 간다. 어째서 그런 눈빛은 운동장 너머로도 꽂힐까. 나는 그때 뒤돌아본 것을 후회했다. 늦은 오후 햇살을 받아 수백 개의 하얀 손이 나를 향해 흔들고 있었다. 야유하는 목소리보다 그 손이 더 끔찍했다. 개중 몇은 가운뎃 손가락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나는 차라리 엄마의 그런 담력을 닮고 싶었다. 뻔뻔함이라면 그 뻔뻔함이라도 좋았다. 아무렇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는 영혼이라도 팔 기세였다. 하지만 엄마는 나보다도 더 빨랐다. 엄마는 나를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예중에 나를 욱여넣고 놔서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깟 학교 같은 건 나한텐 아무 도움도 안 된다며. 빚을 내서 과외를 더 늘렸으면 늘렸지. 나는 엄마에게 악마였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 엄마한테 웃었을 때, 처음으로 피아노를 쳤을 때 엄마의 영혼을 팔았던 것이 분명했다. 그게 엄마가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때에 임신으로 모든 것을 포기한 대가였다.

엄마는 악마와 거래한 증표로 무쇠 뿔을 얻었다. 앞만 보고 달린다. 거슬리면 들이받는 거다. 그게 누구던 상관 없었다. 엄마는 엄마가 만든 쑥대밭은 다신 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그 폐허 속에서 손가락질받는 것도 알지 못했다. 알고 싶지도 않아 했다. ‘대한민국 제일의 피아니스트가 될 사람’은 그런 것에 신경 써서도 안 됐다. 내 담력을 단련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며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양궁 코치를 찾아가기도 했다. 엄마는 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나도 엄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엄마 나 피아노 그만두고 싶어. 피아노가 너무 싫어. 내겐 피아노가 지옥이야. 엄마, 그만 좀 해. 차라리 책이나 읽게 해줘. 그냥 나 공부 열심히 해서 어디 그냥 평범하게 취직하면 안 될까? 엄마도 힘들잖아. 나도 힘들어-와 같은 말들은 건반 위에서 묵묵히 띵동 거릴 뿐이었다.

아까부터 나는 고등어가 자글거리는 소리에 귀가 다 짜릿해질 지경이었다. 노릿한 냄새가 풍겨와 침이 저절로 고인다. 구워진 고등어에서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콧속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고등어는 무와 함께 조린 것도 좋고, 훈제도 좋지만, 오늘은 구이를 선택하길 잘한 것 같다. 파슬리와 후추, 파채가 알맞게 올라와 있었고 레몬도 곁들여 나왔다.

“그래서인지, 그때 수업을 듣다가 계속 생각이 나는 거에요. 나는 생선이 좋은데, 생선이 좋은데. 왜 좋은 걸 싫다고 그랬을까. 그게 자꾸 마음에 걸리고 속상한 거예요. ‘와티사와 사카나가 스키데스.’ 나는 생선을 좋아해요, 그걸 말하면 됐는데 말이에요.”

생선뼈가 아주 잘 발렸다. 고등어가 고소하게 입안으로 넘어가자 따끈한 쌀밥 생각이 났다. 장국이나 계란말이가 곁들여지면 술이 없어도 반찬으로도 좋을 텐데. 언제 그런 밥을 먹어 봤더라. 집을 나와 살면서 가장 그리운 것이 집밥이었다. 직장 생활을 한다는 것은 행복한 날보다 불행한 날들이 더 많은 일이었다. 웃을 일보다 화나는 날이 많은 평범한 나날들. 그러나 나는 그 적당한 불행에 적당히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예전엔 아주 작은 불행에도 절망을 느꼈노라면, 이제는 작은 불행쯤이야 오라고 두 팔 벌려 환영할 수 있는 것이다. 고등어를 사케와 삼키며 나는 기도했다. 아, 오늘도 불행하여 감사합니다.

“수업은 계속 나가고, 선생님은 또 다른 예문을 들어주고 질문하는데, 고개를 들 수가 없는 거예요. 눈물이 나가지구요. 어이없죠? 진짜 창피한 거야 순간. 왜 나 눈물이 나는 거지? 당황한 상태로 내 차례가 왔고, 저는 정말 꺼이꺼이 울어버렸어요. 다들 당황해버렸지 뭐. 얼마나 놀랐겠어. 갑자기 애가 울어. 선생님은 왜 우냐 그러고, 같이 수업 듣던 언니 오빠도 놀라서 보고. 그래서. 생선 좋아한다고 일본어로 소리 지르면서 엉엉 울었죠, 뭐.”

웃음과 함께 잔을 넘겼다. 현수씨도 웃고 주방장도 웃는다. 귀가 자꾸 빨개진다.

“고등어 먹을 때마다 늘 생각나는 옛날얘기에요. 말해보는 건 처음이지만요. 오늘 흑역사 방출했네요. 현수씨도 공평하게 흑역사 하나 내주시죠!”

“고민해 볼게요.”

현수씨가 웃음기를 지우지 못하며 대답한다. 그만 웃지, 민망하게.

“안 말해주면 안주 더 시킬 거에요.”

“고등어는 먹였으니 다른 생선 먹여야겠네요. 성진씨 또 울라.”

“아이, 놀리지 마요.”

“왜요. 여기서 제일 비싼 거 사줄게요.”

진짜죠? 하고 눈을 흘기니 그럼요 하고 조용히 웃는다. 진짜로, 하고 덧붙이는 그의 눈이 꽤 진지해 보인다. 술기운이 갑자기 올라온다. 나는 괜히 멋쩍어졌다. 이 남자는 잘 되어가는 것 같으면서도 좀처럼 속내를 말하지 않는다. 편집장님 원래 과묵한 사람이에요, 하고 경고처럼 말했던 주 대리의 말이 스쳐 지나간다. 아무리 과묵해도 그렇지. 내가 이렇게 들이대는데도 먼저 티 내는 법이 없다. 말없이 생선만 깨작거리다 입을 열었는데 톤이 한 톤 높아졌다. 젠장.

“그래도 이제는 좋아한다고 잘 말할 수 있어요. 내 표현 하는데 더 당당해졌죠. 남들한텐 어려운 게 아니었을지 몰랐지만 그게 저한텐 많이 어려웠거든요.”

현수씨가 웃는다. 왜 자꾸 웃지. 나도 자꾸 웃음이 나온다. 술 때문에 그렇다, 이게.

“그만 웃어요. 봐봐요. 얼마나 잘하나. 와타시와 사카나또, 아나타오 스키데스!”

“일본어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무슨 뜻이에요?”

현수씨가 놀리는 표정으로 자꾸 본다. 놀리는 건지 진짜 모르겠는 건지. 야속해서 괜히 애꿎은 고등어만 보면서 말했다.

“‘저는 생선과 당신을 좋아합니다.’라는 뜻이에요.”

야속하지만 어쩌나. 나는 용기를 내 붉어진 얼굴을 들었다. 웃음이 남아있는 약간은 놀란 얼굴과 마주했다.

“김현수씨, 좋아해요. 나랑 사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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