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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3/27 00:19:11
Name   레이드
Subject   동 주민센터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모 도시 주민센터에서 일하는 갓 3개월쯤 되는 신입입니다. 아직 무언가를 알았다고 보기에도 부족하고 한참 배워야 하는 햇병아리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짧게나마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과 들었던 생각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어느 날 문득 시간이 지나고 이 글을 다시 보게 된다면 스스로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있어서요. ^^;

1. 생각보다 일이 많다.

사실 저도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동 주민센터라는 곳은 난도가 높지 않은 일을 하며 일이 별로 많지 않아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서류를 떼러 가거나 무언가 신청하러 갈때 동 주민센터 직원들은 저는 신경도 안쓰고 본인 할 일 부터 하고 그 다음에야 저를 봐주곤 했으니까요. 그때마다  전 ' 뭐지? 이 느긋함은? 역시 공무원들이구나. 쯧쯧 철밥통들'.. 이렇게 생각했었죠. 그런데 들어와서 일해보니 생각보다 일의 양이 상당합니다.
물론 일의 난도 자체가 높다고 보긴 힘듭니다만.. 예를 들어 전입신고를 받는다고 했을 때도 단순히 적어주는 내용을 전산에 치고 저장을 누른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산상에 입력된 걸 서류화해서 저장하고 (오프라인으로 저장해서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서류를 정리하는 방법에도 나름의 단계가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복잡하더라고요. 그리고 내부적으로 내려오는 공문을 처리하는 일도 해야합니다. 단순하게는 수요조사부터 설문조사 같은 것부터 복잡하게는 선거나 주민자치같은 것들까지도요. 뭐랄까 은행이랑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끝인줄 알았지? 이제 시작이야. 뭐 이런 느낌이었죠. 지금도요.

2. 생각보다 덜 빡빡하다.

물론 이건 국가직에는 통용되지 않을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서울직이나 지방직 공무원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한 임용된 도시를 잘 벗어나지 않습니다. 대신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까지의 기한을 두고 순환 근무를 하지요. 예를 들면 첫 2년을 동 주민센터에서 일했으면 그다음 1년 반은 구청에서 일하고 다음 2년은 시청 그 다음은 다시 동 주민센터.. 이런식으로 돌아가며 일을 합니다. 그 말은 마주친 사람들과 또 마주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서로가 마주칠 가능성을 가지고 일하기 때문에, 최대한 (물론 사람이 있는 곳이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는 없습니다만) 서로를 존중하려고 합니다. 서로 안면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인사를 하고 전화를 하면 다들 아 안녕하세요. 네 네 하고 업무에 대해서 서로 알려주곤 합니다. 저는 이 점이 정말 좋았습니다.

3. 생각보다 더 짜다.

보수에 대해서 할 말이 참 많습니다만, 한 마디로 줄이자면 생각보다 '더 짭니다' 읽으시는 분이 상상하는 그것보다 더요. 보수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분들이 그래도 너희는 연금이 있지않냐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을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연금을 이야기 하기에는 연금 수급 권한을 가지기까지조차도 아직 보이지가 않고 그걸 타먹는 시간까지는 정말.. 안보입니다. ㅠㅠ 냉정히 말해, 남자분들에게 9급 공무원을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집에서 따로 나와서 집을 구해 출퇴근 해야 하는 처지라면 더욱 더요. ㅜㅠ

4. 생각보다 더 개인화 되어있다.

동 주민센터는 적게는 열명( 사회복무 요원포함)에서 스무명이 넘는 직원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일하는 공간입니다마는 혼자 일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합니다. 무언가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발족시키거나 공동으로 무언가를 함께 하는 일이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자의 파트가 나뉘어서 본인의 업무가 아닌 것은 서로가 잘 모르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물론 사이즈가 작은 동은 서로가 서로의 일을 대직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에, 서로 기본적인 일은 할 줄 압니다만 복잡하거나 혹은 프로그램을 돌려야 하는 일은 ??? 인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특히 직렬이 다른 쪽의 일의 경우는 특히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행정직인 직원은 사회복지 직렬이 다루는 프로그램을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니 무엇보다 아이디가 없습니다. 반대로 사회복지 직원은 행정직렬이 다루는 주민전산 프로그램을 잘 모르죠.

5. 생각보다 완벽해야 한다.

많은 분들이 공무원에 대해서 비판을 할 때 유도리가 없고 고지식하다고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요. 이 부분은 그럴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쉴드로 보이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ㅠ) 왜 그러냐 하면 고지식하지 않으면 쉽게 말해서 쟤는 되는데 난 왜 안돼. 라고 클레임이 들어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민원인용 팩스가 비치되어 있지 않은 동 주민센터에선 민원인의 개인정보 (주민번호 핸드폰 번호 주소 등등) 이 들어가 있는 서류를 FAX로 보내줄 수 없습니다. 원칙상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에서 A동에서 담당 직원이 유도리를 발휘해서 원래는 안되지만 잘 아는 분이시기도 하고 제가 보내드릴게요. 하고 보내드렸다고 해봅시다.
그 민원인이 어느날 B동 주민센터로 가 팩스를 보내려고 했는데 B동 직원이 원칙상 불가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거절을 하면 민원인 입장에선 답답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겠죠.  여기는 왜 안되는거야 A동에선 됐는데 공무원이 내 세금 받아 밥 벌어먹고 살면서~~~ 등등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되면 일이 커지게 되고 일이 커지게 되면.. 그 일을 수습하기가 더 힘듭니다.

따라서 유도리를 발휘하는 건 상당히 힘들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더 원칙을 고수하게 되는 것이고, 편람을 찾아 보게됩니다. 공무원의 행동에는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명확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의 행동을 민원인에게 증명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셨죠? 인감편람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대리인 발급시에는 ~~~~ 이렇게 행동하라고요."  또 다른 예로는 생각보다 잘못 알고 오시는 민원인이 상당합니다. 예를 들어서 장애인 맞춤형 운동 서비스 라는 장애인을 위한 바우처 사업이 있다고 합시다. 이 바우처의 대상자로는 1~2급의 중증 장애인이 해당합니다. 하지만 민원인께서 어디서는 3급도 되고 4급도 됐다는데~ ~~~~ 이야기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경우, 민원인에게 알아듣기 쉽게 이해를 시켜드려야 하므로.. 무엇보다 본인이 그것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6. 생각보다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행정이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ㅠㅠ 모든 공무원이 일하지만 편람을 찾아보지 않는 공무원도 있고요. 어느 순간 일하다 보면 순간적으로 까먹고 해야할 도리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운 좋게 자신의 실수를 바로 발견하는 경우도 있으며 그렇지 않고 한참 후에 발견하기도 합니다. 저도.. 일하면서 참 많이 혼나고 또 계속 메모하고 하는데도 실수는 생기더라고요. 민원인께서 제가 모르는 행정 서비스에 대해서 더 잘 알고 계실 때도 많고..항상 최선을 다하고 싶고 열심히 일을 잘 하고 싶은데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참 많이 멀었다는 생각을 하고요. 여러분 민원대에 앉아 있고 그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라고 해도 그 일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ㅠㅠ 그래도 느려도 이해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7. 생각보다 준비하는 건 어렵다.

이제 곧 총선이 있습니다. 4.13.일이죠. 저는 투표가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써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큰 권한이자 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만. '투표'라는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니 이걸 준비하는 건 상당히 힘들더라고요. 동 내에 투표소 확보부터 시작해서 부재자 투표 파악 거소자 파악 주민전산 누락자 파악 투표인 명부출력 등등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선거 이외에도 생각보다 동 주민센터가 주민들을 위해 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그걸 준비하기 위한 사전작업도 참 각양각색으로 많구요. ㅠㅠ 생각보다 칼퇴가 안되는 직업이었습니다. ㅠㅠ


아직 햇병아리이고 아직 배워야 할게 참 많은 신입이지만, 나름대로 느낀점을 적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한 분 한 분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아서 두려워지고 무서워지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마음을 잡고 최선을 다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 주민센터 직원 여러분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세용. ><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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