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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5/13 07:01:54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시간을 달리는 소녀

야채와 해산물에 튀김옷을 적절히 입혀서 기름에 쫘라라라랏 튀겨내어 단순고소한 간장양념에 쏙 찍어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지요. 바로 템뿌라(天ぷら)입니다. 지금은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지만 원래는 사쓰마 등 일본 남부에서 유행하던 음식이라고 해요. 17세기 에도시대 때 이미 가판에서 템뿌라를 팔았으며 서민들에게 인기가 만점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재료를 이런 방법으로 조리해 먹으면 맛이있다는 아이디어는 포르투갈에서 온 거였어요. 

당시 유럽의 동양무역을 책임지던(?) 포르투갈은 상인 뿐 아니라 선교사들을 파견하는 기점 역할도 했어요. 많은 포르투갈 카톨릭 선교사들이 아시아 전역을 누볐는데 그 중 극동의 종착점이 바로 일본이었지요. 당시 그들이 열심히 지키던 카톨릭 관습 중에 사계대재(四季大齋)이란 게 있어요. 일 년에 4주, 계절당 1주씩 정해서 7일 중 3일은 고기를 먹지 않고 야채와 해산물만 먹었대요. 이 때 먹던 음식이 바로 야채/해산물 튀김이었으니 그것이 바로 템뿌라의 원형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지금도 포르투칼에서는 템뿌라와 비슷한 음식이 있을 뿐더러 포르투칼인의 손이 닿았던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에서도 유사한 요리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하긴, 기름에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는데... 그 누구라도 템뿌라의 마력에 저항하지 못했을 거에요.

그런데 이름이 왜 하필 템뿌라였을까요? 여기에는 여러가지 썰이 있는데 게중 근소하게 가장 유력한 설이 바로 위에서 이야기한 사계재 가설이에요. 이 금육(禁肉)기간을 라틴어로 꽈또르 안니 템포라 (quattuor anni tempora)라고 했대요. 꽈또르는 넷, 안니는 년(年), 템포라는 계절을 뜻해요. 문자 그대로 [1년에 4주]인 셈이지요. 여기서 템포라가 그 템뿌라가 됐다는 거에요.

템포라 (tempora)를 더 뜯어보면 이게 a로 끝나니까 복수형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라틴어 명사는 복수형이 a로 끝나거든요. 그래서 단수형으로 다시 바꾸면 템푸스 (tempus)가 되지요. 템푸스는 계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광범위하게 [시간]을 지칭하기도 해요. 옛날 사람들이 느끼기에 시간의 변화가 가장 광범위한 스케일로 느껴졌던게 계절의 변화여서 그랬나봐요. 한자 시(時) 역시 계절/시간 이라는 두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사시(四時)가 네 시간이 아니라 네 계절인 거지요.

영어에서 시간과 관련된 고급어휘가 죄다 temp-로 시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임시(臨時)적인 상태를 지시하는 형용사 템포러리(temporary)라든가, 박자의 장단값, 즉 시간(時間)값 을 나타내는 음악용어 템포 (tempo)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지요. 그러니까 라틴어 템푸스 (tempus)의 가장 적절한 우리말 번역어는 [시간]일 거에요.



템뿌라를 달리는 소녀. 많이 배고픈 듯.



템뿌라 법사

... 같은 드립을 쳐보고 싶어서 한 2시간 정도 조사해봤어요 ㅎㅎㅎㅎㅎㅎ

유게에 올릴까 고민하다 그냥 티타임에 올려봅니다.



5
  • 자 이제 덴뿌라를 내놓으시죠 ㅎㅎ
  • 재밌어요.
  • 이분 철학자였는데 미식가로 전직함
  • 춫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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