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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10/10 00:20:12
Name   알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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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독서 토론을 빙자한 조그마한 친목 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책입니다.

책 선정 이유는 <페이지수가 적어서> 였습니다. (거기에다 어쨌거나 쿤데라니까ㅋ)

개인적인 감상은 '쿤데라도 늙었구나...' 였습니다.

조금은 뻔해보이는 교훈을 길게 늘어놓는 결말 때문이었던것 같은데

그래도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역시 범상치 않았던 데다가

결정적으로 쿤데라만 늙은게 아니라 저도 같이 늙어서 아무튼 좋은 이야기를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에 책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래로는 한 2년 전에 모임을 위해 만들었던 네이버 밴드에 올렸던 간단한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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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생활의 여러 동기와 그 생활을 통해 추구하는 가치들이 혹시 별 의미가 없는게 아닐까 하는 의심은 그렇게 자주 찾아오진 않는다.

학창시절 흔히 하는 불평 - '이렇게 공부한다고 뭐가 좋아지지?! 다 의미없는 일이야'는 냉정히 말해서,

의미에 대한 의심이라기보다는 공부하기 싫다는 게으른 마음의 솔직하지 못한 포장일 뿐이다.

공부 뿐 아니라 거의 모든 1차적인 '의미가 없는거 아냐?'라는 의심은

바로 그 의미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노력과 책임의 부담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에서 시작된다.

어떻게든 의미가 없다는 답을 이끌어내서 도망쳐 보려는 것이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 때문에 몸과 마음을 다해 성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언젠가 한번쯤은

'진짜로'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일이란 없다는 사실과 정면으로 마주보게 된다.

이때는 먼저 예로 든 경우와는 정 반대로, 그 답을 인정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만 하는 괴로운 상황이다.

의욕을 잃고 방황하게 될 수도 있고, 어찌어찌 견뎌 본다 해도 이미 그 의심 이전과 같은 삶은 더이상 불가능하다.

이럴때 사람은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게 쉽게 찾아질까?

여기에 대한 해답으로 몇몇의 사람들이 제시하는게, 쿨하게 의미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놔 그거 이제 알았음?ㅋ 이런 순진한 사람들!' 하면서 거창한 의미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달려나가는 사람들.

나도 한때는 그런 해결책을 유용하게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최근 몇년간 다른 해법을 찾은 느낌이다.

삶의 의미가 있었다고 믿었는데 그것이 착각임을 깨달아서 좌절했다면,

굳이 진실로 있는 의미를 찾아나서기보다는 다시 착각 속에 빠지면 안 되는 것일까?

그것은 의도적이기 때문에 착각이 아닐 수도 있다. 자기기만일 수도 있다.

흔히 하는 가슴으로 살라는 말, 아무리 가슴으로 뜨겁게 살아도 우리의 냉철한 머리는 항상 냉철한 훈계를 내린다.

그 훈계는 너무나 진실에 가까워서 애써 달구어 놓았던 가슴을 금방 식혀버리고 나의 '의도적 착각'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에 나는 순서를 바꾸어 보자는 생각을 했다.

의미 먼저, 삶을 나중에. 가 아니라,

삶을 먼저 살아 보고 의미가 따라 오나 못오나 기다려 보자는 것이었다.

진짜 의미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착각 속 의미로 대체해 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럼 대체 의미없음을 깨닫기 이전의 삶은 어찌하여 가능했던가.

과거에 여러 가지 의미로 내 삶을 채우고 있다고 믿었던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말 그 의미가 여태껏 나를 끌고왔던 전부일까?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다.

친구 중에 농구 경기를 좋아하는 놈이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특정 팀 경기를 챙겨보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티비에 나오는 아무 방송이나 다 보길래

'응원하는 팀 아니면 재미 없지 않아?' 하고 물어봤더니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쪽 응원하게 돼.'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난 아직도 스포츠 경기는 그 친구처럼 보아지지는 않더라.

하지만 삶과 삶의 의미에서는 그 친구와 비슷한 노하우가 생겼다.

살다 보면 의미는 생긴다.

아, 냉철한 머리가 훈계한댔지? 그거 착각이라고.

착각이라도 괜찮거든? 나 아까 착각해보려고 노력했는데 계속 실패했었잖아. 지금 다시 착각할 수 있다면 땡큐지.

이때 이 착각을 더 리얼하게 일으키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용기와 사랑이다. 라몽의 대사에 나오는 그거.

이것도 의지로 일으키기보다는 살다보면 생기더라.

아니 이건 원래 다 가지고 있는건데 의식하지 못하다가 살면서 필요한 때에 겉으로 솟아나오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소설 중간에는 칸트의 물자체와 쇼펜하우어의 표상을 대비시켜 이야기한다.

근데 내가 볼땐 그게 그거다.

물자체가 있는데 우리는 그걸 알지 못한다와 물자체는 아예 없고 표상뿐이다랑 결과적으로 뭐가 다른가? (물론 내가 철알못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ㅋ)

너무 진실에 다가서려 하지 말자는게 내가 터득한 삶의 요령이라면 요령이다.

그냥 한번 살아 봐라.

의미 찾기가 필요 없다는 쿨 가이의 대처와는 다른 이야기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구석에 의미는 스며든다.

어느 순간 우연히 그 현상(착각일수도. 하지만 말했지? 착각이어도 상관 없다고.)을 목격하였을 때 느껴지는 경이로움은

우리가 맨 처음 무의미의 진실을 깨달았을 때의 절망감을 훨씬 상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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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초중반 즈음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한 여자가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하는데 지나가던 남자가 그 여자를 구하려고 물속으로 헤엄쳐 들어갑니다.

죽으려는 여자와 구하려는 남자의 사투가 벌어집니다.

여자가 힘이 셌던 것인지 아니면 물속에서의 움직임에 능했던 것인지 여자가 이겼고 남자는 죽었습니다.

여자는 물 밖으로 걸어나와 살아갑니다.

어찌된 일이죠? 죽으려고 했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텐데... 저 삶의 의지는 어디에서 온걸까요?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좌절스러울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이유 때문에(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한때는 독한 의지를 가지고도 못했던 일들을 마음을 비우고 해나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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