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12/06 01:27:06
Name   눈시
Subject   이순신에게 원균이 없었다면
조선 수군의 가장 강력한 전력은 최소 73척, 최대 100척의 판옥선을 보유한 경상우수영이었습니다. 전라도 좌우수영을 합쳐도 강했죠.

당시 경상우수사가 명장이었다면 전라수군은 출동도 못 했을 겁니다. 애초에 합칠 정도의 적이 없어서(+ 한 놈한테 몰아주면 반란 일으킬까봐) 각기 따로 놀게 했거든요. 삼도수군통제사? 임진왜란 없었으면 없었습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더라도 100척을 다 자침시키는 짓을 안 했으면 충분히 싸울 수 있었을 겁니다. 이억기를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듯, 같이 싸웠더라도 경상우수사를 도운 사람 중 한 명 정도로 기억됐을 겁니다. 겨우 3척 정도로 싸웠음(진짜 싸우긴 했나-_-)에도 나중에 "원균이 불렀으니 원균 공이 더 큰 거 아님?" 이라는 말이 나왔는데요.

만약 이순신이 경상우수사였다면 애초에 부산으로 출동해서 다 쓸어버렸을 겁니다. 한번에 쓸진 못해도 25척+a로 여러번 출동한 거랑 100척+전라수군으로 출동한 것과는 격이 다르죠.

고려말 왜구의 침입에서 활약한 수군 장수들의 이름이 기억나시나요? 나름대로 고려의 모든 힘을 쏟았고, 신무기인 화포를 최초로 써서 겨우겨우 이겼습니다. 만약 바다에서 못 막았다면 더 심하게 시달렸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최무선 정도밖에 모르죠. 전쟁 초기에 잡았다면, 다 잡지 못 해도 후속부대의 상륙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육군이 더 강조됐겠죠. 아마 이름을 떨쳐도 최무선이나 대마도 정벌했던 장수들 정도밖에 안 됐을 겁니다.

원균과 그의 부하들이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술쳐먹고 난리치고 선조한테 "이순신이 출동 못 하게 해염 ㅠㅠ 겁쟁이예염"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명장이긴 하지만 최소한 부하들은 좋았다고 기억할 겁니다. 이억기는 이순신을 잘 따랐으니 내부 트롤은 없었을테니까요. 거기에 선조부터 대신들에게 뇌물을 뿌리며 이순신을 욕하는 것도 없었을테니 그들의 질투부터 방해는 실제 역사보단 덜 했을 겁니다.

뭐 실제로 그랬다면 이순신이 마실 술의 양도 일기에 적힐 욕의 양도 기껏 고생해서 모아놓으니 없어지는 물자의 양도 훨 적어서 역사보단 편하긴 했겠네요.

이순신을 모함해서 파직한 후 지가 잘 했으면 그 명량해전도 없었을 겁니다. 아니 최소한의 인간다운 짓만 했으면 없었을 거죠. 아주 제대로 비교체험 극과 극을 보여주었고, 이순신을 욕했던 이유 중 하나인 부산으로 안 간다는 걸 지는 선조한테 제대로 욕 먹을 정도로 안 가서 진실이 뭔지를 제대로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100척이 훨씬 넘는, 이순신은 단 한번도 이끌어본 적 없는 대함대를 아주 제대로 꼴아박아 주었죠. 그렇게 해서 단 13척으로, 아니 단 한 척으로 이긴다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배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정말 이순신이 이걸 할 수 거라고 진심으로 믿지 않았다면 절대 할 수 없는 것이었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순신이 그렇게 피땀흘려 일궈낸 배와 물자를 모두 없애버렸기에 이순신이 노량해전 전까지 그걸 최대한 복구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업적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역사책의 한켠에 이름 석자라도 남을수 있을까 싶었던 사람을, 우리 역사, 우리 민족 최고의 성웅으로 만들어주었죠.

이런 사람을 가장 큰 도움을 줬다고 하지 않으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배트맨에게 조커가 없었다면 다크나이트가 될 수 있었을까요? 모든 히어로에겐 시련을 줄 빌런이 필요합니다. 그 빌런이 있기에 히어로가 더욱 빛나는 것이죠.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자랑스러운 일도 정말 최악의 최악을 보여준 그들이 없었다면 일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원균은 이순신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입니다.

------------------------------------------------

자 뭐 진지를 좀 먹자면... 예전에 글 썼듯이 이순신을 욕하고 무시했던 왕, 신하, 양반, 일반 백성들까지 칠천량 패전 후에 이순신만 찾았죠. 진짜 원균 없었으면 당대나 지금이나 이순신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달랐을 겁니다.

그래도... 차라리 그게 낫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고생한 것과 바꿀 순 없겠죠. 이 죽음과 고생엔 그분이 그리도 사랑하던 가족들의 죽음도 포함됐고, 그분 자신의 극심한 고통이 포함돼 있었으니까요. 역시 영웅은 없는 게 좋습니다. 그래도 있다면... 무한히 존경해야죠.

왜 이 글을 썼냐 하면... http://pgr21.com/?b=10&n=296930 요거요 _-)/~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1705 7
    15061 스포츠[MLB] 2024 AL,NL MVP 수상자.jpg 김치찌개 24/11/22 33 0
    15060 스포츠[MLB] 2024 AL,NL 사이영 수상자.jpg 김치찌개 24/11/22 39 0
    15059 음악[팝송] 션 멘데스 새 앨범 "Shawn" 김치찌개 24/11/22 56 0
    15058 방송/연예예능적으로 2025년 한국프로야구 순위 및 상황 예언해보기 10 문샤넬남편(허윤진남편) 24/11/21 396 0
    15057 일상/생각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3 SKT Faker 24/11/21 544 1
    15056 오프모임23일 토요일 14시 잠실 보드게임, 한잔 모임 오실 분? 4 트린 24/11/20 316 0
    15055 방송/연예페미니스트 vs 변호사 유튜브 토론 - 동덕여대 시위 관련 24 알료사 24/11/20 2985 31
    15054 생활체육[홍.스.골] 10,11월 대회 상품공지 켈로그김 24/11/19 249 1
    15053 여행여자친구와 부산여행 계획중인데 어디를 가면 좋을까요?! 29 포도송이 24/11/19 682 0
    15052 일상/생각오늘도 새벽 운동 다녀왔습니다. 5 큐리스 24/11/19 453 9
    15051 일상/생각의식의 고백: 인류를 통한 확장의 기록 11 알료사 24/11/19 493 6
    15050 게임[1부 : 황제를 도발하다] 님 임요환 긁어봄?? ㅋㅋ 6 Groot 24/11/18 448 0
    15049 꿀팁/강좌한달 1만원으로 시작하는 전화영어, 다영이 영어회화&커뮤니티 19 김비버 24/11/18 918 10
    15048 의료/건강고혈압 치료제가 발기부전을 치료제가 된 계기 19 허락해주세요 24/11/18 710 1
    15047 일상/생각탐라에 쓰려니 길다고 쫓겨난 이야기 4 밀크티 24/11/16 896 0
    15046 정치이재명 1심 판결 - 법원에서 배포한 설명자료 (11page) 33 매뉴물있뉴 24/11/15 1789 1
    15045 일상/생각'우크라' 표기에 대한 생각. 32 arch 24/11/15 1004 5
    15044 일상/생각부여성 사람들은 만나면 인사를 합니다. 6 nothing 24/11/14 900 20
    15043 일상/생각수다를 떨자 2 골든햄스 24/11/13 458 10
    15042 역사역사적으로 사용됐던 금화 11종의 현재 가치 추산 2 허락해주세요 24/11/13 558 7
    15041 영화미국이 말아먹지만 멋있는 영화 vs 말아먹으면서 멋도 없는 영화 8 열한시육분 24/11/13 688 3
    15040 오프모임11/27(수) 성북 벙개 33 dolmusa 24/11/13 748 3
    15039 요리/음식칵테일 덕후 사이트 홍보합니다~ 2탄 8 Iowa 24/11/12 407 7
    15022 기타[긴급이벤트] 티타임 따봉 대작전 (종료) 19 dolmusa 24/11/05 1074 3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