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12/22 03:00:04
Name   OPTIK
Subject   잡화점 직원이 만난 어느 엄마와 아들
술 취한 김에, 그냥 써봅니다.

저는 잡화점에서 일합니다. 사람이 오고가는 곳이니 당연히 서비스이며, 다양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진상도 있고 정말이지 고맙고 감사한 손님도 있습니다. 그런데 10여년의 서버 생활동안 저를 울린 손님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좋든 싫든 서버는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는 아닙니다. 표현을 삼가도록 길들여지는 것이 서버입니다. 고객이 편하기 위해 기쁘든 슬프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것이 결국 서버 아닐까요. 사장님, 언니 오빠들이나 동료나 동생들이 가르쳐 준 적은 없지만 저는 나름의 기준이 있고 원칙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손님들을 겪으며 체득했던 것이라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오늘 오후에 있던 일입니다. 엄마와 아들이 들어옵니다. 아들은 한 다섯 살 되었을까요. 엄마는 엄마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화가 나 있습니다. 엄마는 들어오자마자 파스든 연고든 다 내놓으라며 악을 쓰고, 아이는 아프다고 악을 쓰는데, 당연히 아이에게 눈길이 갑니다. 어리고, 듣자하니 다쳤으니까요.

그런데 눈빛이 다친 사람의 그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다친 아들을 둔 엄마는 어미의 측은함 또한 없습니다. 엄마는 단지 아이가 다친 상황 자체가 너무도 불편하고 짜증내지 말고 '닥치길' 원하는 눈치입니다.

그런 엄마를 향해 아이는 악을 쓰고 있습니다. 아프다고요. 근데 아무리 봐도 어디가 아픈지를 모르겠습니다. 직원들도 점장님도 순식간에 '멘붕'이 오고 앙칼진 소리에 놀란 손님 한 두 분은 물건을 내려놓고 나가시기도 했습니다. 유행가가 흘러나오는 매장에 순식간에 찬물이 끼얹어집니다.


제가 가장 가까이 있었습니다. "손님, 어디가 아프세요?" 순간 아이가 펑펑 울기 시작합니다. 발이 아프다니 발을 붙잡고 신발을, 양말을 벗겨봅니다. 아무리 봐도 다친 곳이 없습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눈길도 주지 않습니다. 외면받은 아들은 계속 엄마를 향해 아프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엄마가 봐주지 않자, 기어이 엄마를 때리기 시작합니다. "아니 이 큰 매장에 약 하나가 없어요?" 약품은 약국이나 특정 몇 곳을 제외하고 판매가 불가합니다(라고 압니다). 이것을 설명합니다. 설명을 듣자마자 엄마는 등을 돌립니다. 아픈 아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요.

아들이 폭발합니다. 매장에 있는 물건을 다 집어던지고, 마대자루로 엄마를 때리기 시작합니다. 별수없이 제가 완력으로 아이를 붙잡습니다.

말 안 듣는 자식을 두고 엄마 간다고 일부러 떨어지는 엄마도 있고, 떼를 쓰는 아이를 한동안 무시하는 엄마도 있지만 이건 뭔가 좀 아니다 싶습니다.

순간 저도 눈이 돌아갑니다.

자기 얼굴을 할퀴려고 했으니까요.

맞습니다. 자해를 하려고 했어요.

저도 가만히 달랠 상황이 아니니 있는대로 힘을 줘서 말립니다.

아이는 이제 제게 분노를 퍼붓습니다. 니가 뭔데! 그것도 모자라 저 어릴 적엔 알지도 못했던 욕도 튀어나옵니다. 제 팔뚝을 할퀴기 시작합니다. "손님, 잠깐만......" 팔뚝에 순식간에 뻘건 줄이 그어집니다. 엄마는 아이를 노려봅니다. 그것도 똑바로 노려보지 않고 곁눈질입니다.


"엄마! 엄마!" 악을 쓰며 웁니다. 결국 팔뚝에 피가 철철 흐릅니다. 아이의 손톱이 새까매집니다. 제 살점과 피와 아이의 손톱에 있던 때가 다 모여서 엉망이 됩니다. 저는 아픔을 느낄 새도 없습니다. 아이를 놓으면 아수라장이 되니까요. 아이를 안았습니다. 안아서 번쩍 들어올렸어요. "왜 그러지? 왜?" 아무렇지 않다고 제 자신을 다독이고 아이를 다독입니다. 사정을 모르는 서버는, 설령 사정을 아는 서버일지라도 좀처럼 개입할 수 없습니다. 일단 아이가 울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합니다. 토닥여줍니다. 결국 아이는 제 어깨에 얼굴을 묻고 웁니다. 무슨 심정인지 아이의 서러움이 느껴져 저도 울어버렸습니다. 물류 박스에 찍혀서 너댓군데 피멍이 들어도 알지도 못할 정도로 둔한데 그거 좀 할퀸다고 얼마나 아팠겠어요. 그냥 아이의 악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길게 적었습니다만 정말 찰나였습니다.


들어올 때부터 엄마와 아이의 거리는 멀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이를 달래지도 않고, 직원들에게 사정을 설명하지도 않고, 죄없는 직원을 자식이 할퀴고 있는데 말리지도 않았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한 번도 보지 않았는데, 아이는 엄마에게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어요. 처음 본 이 손님들을 마땅히 설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두 사람의 사이가 소원하다는 사실 정도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위에도 적었지만, 투닥거리는 부모 자식은 흔히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냉기가 흐르는 부모 자식이 흔하진 않습니다.

그냥 한 번만 봐줬으면 아이는 이해했을지 모르겠어요. 자신을 좀 이해해주지 않았어도, 몰라봤어도 말이에요.

아이가 쓸 수 있는 욕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피범벅이 된 제 팔뚝을 보고도 당황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았어요. 엄마도 마찬가지였지요.

많은 경우의 수가 그려졌습니다.

저를 안고 우는 아이가 안쓰러웠어요. 사실, 엄마를 붙들고 그랬어야 했을 텐데. 아마 한 두번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엄마를 붙잡고 매달리더라고요. 없는 잘못도 잘못했다고 하면서 자기를 버리지 말아달라고요. 왜 놓고 가냐고 난리를 치지요. 근데 아이에겐 마치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았습니다.

이 아이가 커서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제가 일하는 곳은 주상복합단지입니다. 그 둘을 가끔씩 본 경비 아저씨가 그러시더군요. 엄마가 계모 아닐까 싶다고요. 애는 엄마라고 부르는데, 어딜 봐도 엄마의 꼬락서니가 아니랍니다.


아이에게 오늘이 지워질 정도로 많은 사랑과 축복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머릿속으로 소설을 썼길 바랍니다. 너무 어두운 이야기를 많이 접하다보니 뭔가 단단히 착각을 했노라고.


아이가 다음엔 밝은 얼굴로 엄마의 손을 붙잡고 오길 바랍니다. 아이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싶고, 다른 꼬마 손님한테 하듯이 사탕도 주고 싶어요.


팔뚝에 상처가 난들 외면받은 아이의 상처보다 깊을까요.


다음에 오면 더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어요. 해주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데, 퇴근할 때까지 마음이 복잡했는데, 아이가 알아듣기엔 너무 어리겠죠.





p.s. 누나는 니 편이야. 정말이야. 엄마 닮아서 팔다리도 길고, 정말 예쁘게 생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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