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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1/08 23:24:21
Name   눈시
Subject   여요전쟁 - 4. 개경 함락
1. 최선의 선택
고려와 거란은 각기 큰 문제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거란은 강동 6주의 성들을 쉽게 함락시킬 수 없었고, 고려는 방어라면 모를까 이들을 칠 수 없었습니다.

요 성종은 흥화진이 항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1차로 우회합니다. 이어 강조군을 전멸시킨 후 통주를 치지만 여의치 않아 우회하죠. 위험부담이 너무나 큰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요 성종은 감행합니다. 목표는 서경, 평양이었습니다. 숙주 등 안주방어선이 자멸하면서 서경까지 이를 막을 병력이 없게 됐구요. 한편, 현종은 지채문에게 급히 서경을 구원하게 했습니다. 강조가 출진할 때 중랑장으로 동북방을 지키러 같이 떠났었죠. 하지만 서경에 도착한 지채문은 굳게 닫혀 있는 성문을 보게 됩니다.

이미 요 성종의 사신이 서경에 도착했고, 서경은 항복을 결정한 것이었죠. 겨우 설득이 통해 성 안에 들어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서경의 분위기는 그대로였습니다. 결국 지채문은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거란의 향도가 되어 서경에 들어온 노이를 습격한 것이죠. 그는 서경의 항복을 요 성종에게 전하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_-; 이게 알려지자 지채문은 서경에서 쫓겨납니다.

한편 요 성종은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현종의 항복 문서가 도착했거든요. 내용이야 뭐 간단했죠.

"아나 항복할 텡께 싸게 군사를 물리랑께. 우덜이 이런 사이가 아니지 않은가 ㅠㅠ"

그는 이걸 진심으로 믿고 평양과 개성을 다스릴 관리를 파견합니다. (...) 만약 지채문이 일을 벌이지 않았다면 현종의 항복은 정말 항복이 됐겠죠. 다행히 이 때 동북계도순검사 탁사정이 서경에 들어오면서 방어가 한결 강화됐고, 지채문도 당시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오던 거란의 관리는 지채문과 탁사정에 의해 몰살당합니다. (...)

강화된 서경의 고려군은 거란과 다시 맞붙습니다. 임원역, 현 평남 대동군에서의 전투로 두 차례의 승리를 거두는데, 이 때 적의 수급 3천여 급을 베었다고 합니다. 다만 참전했던 중 법언이 전사했구요. 이 기세로 고려군은 진격하지만 다시 패하고 -_-; 거란군은 마침내 평양성에 도달합니다. 여기에 큰 일이 하나 더 벌어지니, 탁사정이 1차 여요전쟁에서 활약한 대도수를 데리고 적을 요격하는 척 하다가 도주한 것이었습니다. 거란군에 포위된 대도수는 거란에 항복했고, 서경은 다시 혼란에 휩싸이죠.

15일, 지채문은 급히 현종에게 이를 알리러 갔고, 서경이 다시 함락되려나 하는 순간, 강민첨, 조원 등이 결사항전을 주장하면서 겨우 다시 살아납니다. 고려로서는 참 막장으로 흘러가면서도 은근히 좋게 좋게 되는 상황이었죠. 요 성종도 서경을 함락시키기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됐구요. 무엇보다 후방인 강동 6주에서 마침내 반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군사를 물려야 되는가, 물리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해야 고려를 깨뜨릴 수 있는가... 성종은 마침내 결단을 내립니다.



서경을 포기하고 개경으로 진격, 세 번째 우회였습니다. 이렇게 좀 이상하지만 (...) 개경은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입니다.

2. 천대받는 왕
현종은 귀양 보냈던 하공진과 유종을 부릅니다. 이어 12월 27일 지채문이 도착하면서 서경에서의 상황을 알려 주죠. 서경에서는 겨우 막아내긴 했지만 중간에 요격할 병력은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여러 신하들이 항복을 논하던 상황에서 단 한 명만이 반대합니다.


서희... 가 아니라 강감찬이었죠.

"오늘날의 일은 죄가 강조에게 있으니 걱정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적은 수의 군사로 많은 군사를 대적할 수 없으니 마땅히 그 예봉을 피하여 천천히 흥복을 도모해야 합니다"

이어 지채문이 왕의 호위를 맡겠다 자처하면서 현종은 급히 피난길에 오릅니다. 고려 건국 이래 첫 수도 포기였습니다. 그를 따르던 병력은 겨우 50여명, 원래 호위를 맡아야 했던 병력과 장수들도 다 도망간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의 상황도 참 개판이었습니다. -_-; 적성현, 경기 연천에 이르니 견영이라는 자가 거란에 잘 보이려 했는지 공격해 왔습니다. 지채문이 겨우 이를 막아내자 그들은 후퇴했고, 다시 나타나자 또 물리칩니다.

다음에 창화현, 경기 양주에 이르자 거기 아전이 감히 이런 말을 하죠.

"왕께서는 나의 이름과 얼굴을 아시겠습니까?"

현종이 이를 무시하자, 그는 뿔이 나서 (사실 얘도 반란군에 가담돼 있겠죠) "하공진이 공격하러 온다!"고 하고 다녔습니다. 지채문이 이를 붙잡아 이유를 묻자 "채충순, 김응인을 붙잡으러 온다"고 대답했습니다. 둘 다 현종을 호종하고 있었죠. 그는 강조의 최측근이었고, 정말 그가 역심을 품고 오는 거라면 뭔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문인지 김응인과 (그래도 계속 호종한 모양이긴 한데) 이정충 등이 도망갑니다. 밤에 또 적이 이르자 여러 신하, 환관, 궁녀들이 모두 도망쳤습니다. =_=... 이쯤되면 망국의 분위기입니다. 훗날 선조도, 인조도 이런 꼴은 겪지 않았죠. 거란이 이에 이르진 않았고 모두가 반란군이라는 얘기인데... 에휴... 뭐 이들은 거의 향리로 고려의 중앙집권이 아직 부족했다는, 즉 왕에 대한 충성이 그리 깊게 퍼지지 않았다는 반증이겠습니다만.

지채문은 대체 이들이 누구인지, 정말 하공진이 반란을 일으킨 건지 확인하겠다고 합니다. 이 때 현종이 지채문마저 도망갈까 두려워 말릴 정도였죠. -_-; 지채문은 맹세를 하고 떠났고, 2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오던 하공진, 유종과 만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도망가거나 흩어진 사람들을 어느 정도 다시 모으구요. 다행히 하공진이 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현종을 구해주는 일등공신이 되죠. 전쟁의 원인을 만든 것도 그였지만요 ㅡㅡa

소수긴 하지만 병력도 충원됐겠다, 지채문과 하공진은 적들이 있는 창화현을 공격해 빼앗긴 말과 물자들을 되찾습니다. 겨우 한 숨 돌린 거죠.

3. 구사일생
12월 30일, 하공진은 결단을 내립니다.

"거란이 본디 역적(강조)을 토벌한다는 것으로 명분을 삼았는데 이제 이미 강조를 잡아갔으니,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한다면 저들이 반드시 군사를 돌이킬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점을 치니 나온 결과는 吉, 현종은 하공진과 고영기를 보내 시간을 끌게 하고 본격적인 피난을 시작합니다. 하공진이 거란군을 찾아가기 전에 이미 거란군 선봉이 창화현에 도착한 상황이었죠. 그의 결단이 조금이라도 늦었거나, 현종의 출발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혹은 거란군이 그걸 무시하고 왕을 잡으러 계속 진격했다면 그 후의 일은 어찌 됐을지 알 수 없습니다.

뭐 항복 표문의 내용이야 간단했죠.

"아 진짜 말로 해 말로." (...)

하공진을 만난 요 성종은 묻습니다. 왕이 지금 어딨냐구요. 이에 하공진은 이렇게 말 합니다.

"강 남쪽의 땅이 수만리라 당최 어딨는지를 나도 알 수가 없구먼유"

....... 한국사 최고의 뻥카가 나오는 순간이었죠. 요 성종은 크게 당황했고, 더 이상 남진할 의지를 잃게 됩니다. 어차피 고려왕의 항복도 받았겠다, 분풀이로 약탈이나 하면서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되죠. 개성의 궁궐이 이 때 불 탑니다.

한편 현종은 경기도 광주 - 직산 - 공주 - 전주 - 광주 - 나주로 기나긴 피난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하다못해 왕후들까지, 그것도 임신한 왕후까지 포기하려다 지채문의 만류로 그만두고, 전주에서는 절도사 조용겸의 반란으로 또 위험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제 목숨은 구한 거죠.

11일, 하공진이 다시 군사를 물릴 것을 청하니 마침내 요 성종은 퇴각을 시작합니다. 드디어 위험 상황이 다 끝난 것이죠. 하지만, 그냥 돌아갈 거라 기대할 순 없었죠.

작전명



가 시작됐거든요.

찰진 거란군의 퇴각과 이 전쟁에 대한 평가는 다음 편에 하겠습니다.



4
  •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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