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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06/28 23:15:26 |
Name | 뤼야 |
Subject | 2015년 퀴어 퍼레이드 후기 |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에 보면 전쟁통에 젊은 남자가 다 멸종되어버린 동부유럽의 한 외딴 마을에 고립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린 쌍동이 형제의 눈을 통해 그려집니다. 그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 입니다. 예를 들면, 마을을 지키는 중년의 신부는 지능이 약간 떨어지는 마을의 고아소녀를 성적으로 이용하고, 이 고아소녀는 가축과 수간을 하기도 합니다. 어린 쌍동이의 천진난만하기만 한 눈에 이러한 비윤리적 사건들은 그저 마을의 일상적인 일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쟁통에 엄마에게 버려져 폭력적인 할머니 밑에서 성장하는 쌍동이 형제는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마을에서 일어나는 비상식적인 사건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에게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세계 그 자체의 모습'인 것이죠. 소설의 작법을 익히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소설의 끝판왕'쯤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대상을 의식 또는 사유에 의해서 구성하는 논리적 구성주의 위에 서지 않고, 객관의 본질을 그 자체의 진실로 포착하려는 쌍동이 형제의 시선은 소설의 화자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선명한 답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철학자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현상학적 진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2015년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하기로 하고 애인과 약속을 잡아 시청으로 향하는 동안 애인은 제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뤼야, 당신은 동성애자를 혐오하지 않았나요?" 저는 잠시 대답을 주저했습니다. 제가 한때 동성애를 혐오했던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몇년전 제게 운동을 지도해주던 코치는 동성애자였습니다. 다소 중성적인 몸가짐의 그녀를, 저는 그저 그녀의 개성쯤으로 여겼습니다. 같이 운동을 배우던 사람이 여럿이었는데 유독 저게 많은 관심을 보여주어서 몸치인 저를 배려하는구나 하는 정도로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녀는 몸으로 하는 장난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녀가 살짝 불편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지만 수업의 긴장을 더는 방편삼아 하는 행동쯤으로 역시나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저를 힘으로 제압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장난이었지만 그 강도가 이전에 비해 매우 강력했고, 저는 상당히 불쾌했습니다. 그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로부터 나중에 그녀가 동성애자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불쾌감은 더욱 심해졌었죠. 세상에 모든 교인이 항상 선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모든 동성애자가 항상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를 한때 동성애 혐오에 빠지게 만든 여코치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불쾌하다는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을 멈추지 않았고, 저는 그 상황이 참기 어려웠습니다. 그때 저는 농락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곧바로 레슨을 그만두었고 불쾌한 기분을 지우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는 몇년의 시간이 더 흘렀습니다. 이제는 이성애자건 동성애자건 제가 누군가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가능성은 희박해졌고, 저는 오히려 그때의 제가 매력덩어리였겠거니 하고 너그러이 생각할 여유도 조금은 가지게 되었습니다. 비록 착각일 지언정 말입니다. 올해 퀴어퍼레이드는 제가 한때마나 짊어졌던 편견의 찌꺼기들을 털어내기 위해, 과거의 불쾌했던 경험으로 동성애자를 알게 모르게 두려워하고 있는 제 모습을 직시하고, 부딪혀보자는 심정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서론이 무지하게 길었습니다만 본론은 아주 간단합니다. 저는 매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애인의 감기기운만 아니라면 더 즐기고 오고 싶었는데, 중간에 발걸음을 돌려야해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퍼레이드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식전행사로 각 부스에서 진행하는 여러 이벤트에 참여하고 기념품들도 구입했습니다. 여러가지 것들 중에서 비교적 점잖은(?) 것들만 올려봅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도 하나 샀는데 이것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저 바람개비는 기념 현수막에 축하메세지를 적고 얻은 것인데 나중에 제 자전거에 매달 예정입니다. 예쁘죠? 종교단체에서 반대시위와 상당히 프로페셔널한(?) 공연을 하며 맞불작전을 펼쳤는데 애인은 오히려 그분들 공연이 더 볼만하다고 거기가서 구경하자고 그러더라고요. 무지개색 부채는 얼른 가방에 숨기고 깊은 신앙심으로 잠시 무장하고 뜻깊은 공연을 즐겨보자 하더군요. 크크크 가길 잘했습니다. 가야지 하면서도 꺼려지는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이 우리가 일반적이라고, 당연히 그러해야 한다고 추상한 것으로 뭉뚱그려 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의 주인공인 두 소년은 신부가 불쌍한 고아소녀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전쟁통에 신도가 줄어들어 끼니를 굶는 신부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줍니다. 휴머니티라는 것은 그런 것이죠. 소설속의 쌍동이 형제가 끈기와 치밀함을 가지고 그린 세상은 부조리가 가득합니다. 소년에게 부도덕한 신부의 모습은 그저 그들에게 닥친 세계라는 만화경 속의 일부임을 알았던 것이죠. 저또한 그러합니다. 저는 그들의 사랑을 모릅니다. 제가 모르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라, 제 애인이 제게 품는 사랑도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제가 아는 것은 그저 서로를 위한 연극적 실천(김영민)이고, 그 실천의 밑바닥이 사랑(휴머니티)이며,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한 저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들의 세상이 제 연극적 실천을 통해 어쩌면 조금은 더 빛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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