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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9/04 07:58:35
Name   뤼야
Subject   맥심코리아 9월 표지사진에 대하여


남자가 주로 소비하는 한 잡지의 표지사진에 때문에 판매중지를 요청하는 온라인 청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이 글은 제 개인적인 생각이며, 맥심의 표지사진으로 심기가 불편한 여자들의 목소리를 대표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사실, 저는 대부분의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말을 않는 편입니다.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고 오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심이 거의 없을 뿐더러, 관심이 없는 만큼 식견도 풍부하지 못합니다.

1. 나쁜남자와 범죄자 사이

자동차를 세워두고 담배를 피고 있는 남자, 그는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입니다. 자뻑하고 있는 것이 보이네요. 자동차 트렁크 밖으로는 옷이 벗겨진 여성의 다리가 청테이프로 묶인 채 생기없이 늘어져 있습니다. 표지에는 [The Real Bad Guy]라는 카피가 있네요. 이 표지사진은 영 맥락없이 쓰여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표지인물은 영화배우 김병옥으로 주로 범죄자 역할을 맞는 연기파배우라고 하더군요. 그럼 분명 그가 표지사진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은 범죄자의 모습입니다. 범죄자도 '나쁘고', 나를 사랑하지만 표현이 곰살맞지 못해서 무뚝뚝한 남자도 '나쁘'지요. 요새 나쁜 남자가 대세라던데 이 정도는 되야 나쁜 남자라고 하는 표지사진의 주장대로라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bad와 criminal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bad는 내가 사랑하지만 곰살맞은 구석이 없어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같은 남자, criminal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힘으로 제압하여 청테이프로 발을 묶어 트렁크에 쳐넣고 다니는 남자입니다.

2. 아는 만큼 보인다

Maxim이라는 잡지가 있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아름다운 여체를 소비하고자하는 남성의 심리를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습니다. 여성들도 젊고 아름다운 남자의 몸을 좋아합니다. 제가 알지는 못하지만 Maxim처럼 아름다운 남자의 사진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잡지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Maxim이 무슨 대단한 잡지라고, 그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정치적 올바름 따위에 신경을 쓰거나, 여성의 성상품화나 여성인권,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성추행이나 성폭력에 대해 관심이나 있겠습니까? 아름다운 여자를 섭외해서 좋은 사진 찍기도 바쁠텐데요. 그리하여 그들이 'bad'와 'criminal'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들 딱히 이상스럽지도 않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만고의 진리니까요. 폭력(범죄)를 미화한다고 비판하지도 못할 것 같습니다. 저 사진은 폭력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가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진이니까요.

3. 표현은 자유입니다.

저 사진을 두고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여자들에게 '사진은 사진일뿐 오해하지 말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에 있어서 표현은 자유고, 예술이라는 것은 반드시 어떤 매체를 통해 이루어지기 마련이지요. 예술을 한답시고 "나는 나쁜남자라 너를 힘으로 제압한다음 발목을 청테이프로 묶어 트렁크에 넣고 다니고 싶어."라고 지껄이고 다니는 사람은 없을테지요. 저 사진의 예술성에 대해서 저는 아는바가 없습니다만, Maxim은 사진, 그리고 주로 영화에서 범죄자의 역할을 맡은 배우를 통해 마음껏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저 사진에서 딱히 어떤 예술성을 찾을 수 없다해도 누군가에게는 골이 띵해지도록 멋있는 '예술'일 수도 있지요. 한 달 후에는 폐지수집상에게나 관심있을 잡지라고 해서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습니까? 그저 담백하게 표현의 자유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저 사진이 불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Maxim이 bad와 criminal의 교묘한 줄타기를 하면서 '예술에 있어서(!)' 표현의 자유를 누리듯, 저 따위 사진이 무슨 예술이냐며 불쾌할 수 있는 사람도 마음껏 불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 성적 긴장감의 주도권을 빼앗기

사실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나쁜 남자'의 맥락을 자세히 보자면, 두 남녀의 성적긴장감을 여자의 입장에서 표현한 것입니다. 이미 두 남녀는 호감으로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하는 상태인 것이지요. '내게 사랑받는 너란 남자, 그러나 왠지 시크한 듯 해. 조금 더 표현해 주면 안될까?'라는 맥락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Maxim의 표지는 이러한 맥락을 완전히 제게해 버렸습니다. 표지사진에 실린 배우는 정말 연기파인것 같은게, 배운데 없이 야만적이고 폭력만 쓰는, 그리고 '전혀 사랑받을 만한 구석이 없는' 남자로 보입니다. 여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니 어쩌겠습니까. 힘으로라도 빼앗아야지요. 만약 저런 남자를 만난다면, 젖먹던 힘까지 다 해서 멀리 도망을 갈테지만, 문제는 그런 남자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운 데다가,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남자인 경우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지요. 청테이프로 발목을 묶는 정도가 아니라도 자신에게 끊임없이 성적인 불쾌감을 주는 사람이 직장 상사라면? 선배라면? 동기라면? 이웃이라면? 여자들이 저 사진을 보며 불러 일으키는 공포란 아마도 이런 것이겠지요. 그런 남자들은 제발 저렇게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머리를 올빽으로 넘긴 다음, 담배를 꼬나물고 상스러운 말을 내뱉으며 다니면 좋겠습니다. 그럼 구분이 쉬울 테니까요.

어제 애인과 이 문제를 두고 이런 저런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애인은 '표현의 자유이며, 문제가 없다'는 쪽이었고, 저도 역시 기본적으로는 그러합니다. 그러나 영 뒷맛이 개운하지 않네요. 며칠 전 제가 당했던 불쾌한 경험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여자가 사랑하기에 '나쁜 남자'일 뿐이지, '나쁜남자'이기 때문에 여자가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bad와 criminal을 구분할 수 없다면 그건 말할 가치조차 없지요. 홍차넷에는 남성회원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알고 있고, 게시판에 나타난 깊은 아량은 충분히 이러한 맥락을 이해해달라는 제 졸글을 불쾌함없이 받아들여주실 것이라 이해하고 두서없는 글을 끄적여보았습니다. 비판은 달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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