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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7/29 07:17:06
Name   뤼야
Subject   너무 유창한 화자의 문제
제가 블로그를 한창 열심히 할 무렵, 한 독서가를 알게 되어 작품을 읽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책으로 번 돈은 모두 책을 사는데 써야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써줄 것이라고 믿는 분이었죠. 본업은 따로 있기에 책을 펴내 얻는 인세는 가계에 보태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유용한다나요. 부러운 일이지요. 어쨌든 그 분이 제게 소개해주어 읽게된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바로 영국작가 마크 해던의 [한밤중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입니다.



작품의 주인공인 크리스토퍼는 포토그래픽 메모리라고 불릴만한 기억력과 더불어 수학과 물리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지만 자폐증을 앓고 있습니다.  타인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하지요. 이러한 크리스토퍼에게 자그만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로 이웃집의 개가 정원 갈쿠리에 찔려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크리스토퍼가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면서 이 소설은 시작됩니다. 크리스토퍼는 의문의 사건을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결심하지만 그런 그의 결심을 달가와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크리스토퍼의 인생과 아무 연관이 없어보이는 이 사건을 해결하러 나선 와중에, 엉뚱하게도 그는 자신의 일생의 아주 중요한 사건의 실마리를 얻게 되지요.

영국의 문학상중 하나인 휘트브레드상을 받기까지한 이 작품을 저는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반면 제 이웃이었던 독서가는 '나는 이 소설이 이상하다. 아무리 크리스토퍼가 지능이 뛰어나다고 하나, 자폐증 소년이 이런 목소리를 냈을 것 같지는 않다'라고 제게 말씀하셨더랬습니다. 사건이 해결되는 것에만 집중했던 제게 화자의 문제를 다시 한번 강렬하게 환기시킨 대화였습니다. 아직도 전통적인 기법으로 작품을 쓰는 작가는 손에 꼽을 수가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들에게 '화자의 문제'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처럼 보이지요. 화자의 문제를 강렬하게 인식하며 작품을 쓰는 작가는 흔히 '난해함'과 '작품성' 이라는 한 축의 문제와 '가독성' 내지는 '인기'라는 서로 양립이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문제를 두고 도박을 해야하지요.

교과서적으로 살펴보자면 소설의 화자란 소설의 시점과 거리를 상정하게 하는, 즉, [작중 현실을 누가 어떤 각도에서 보는가]의 문제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똑같은 사건이라도 보는 각도와 입장에 따라서, 내용은 완전히 다르게 판단되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도록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지요. 또한, [모더니즘 소설에 있어서 화자는 작품의 완성도와 완전히 밀착되어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어떤 화자를 설정하여 어떻게 사건을 진행할 것인가'는 주제, 인물의 성격 뿐만이 아니라 작품에 있어 [미적효과와 작품의 완성도]의 문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화자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지난 주말에 서점에 들러 두 권의 신간을 살펴본 덕분입니다. 한 권은 도나 타트의 신작 [황금방울새]이고, 한 권은 미셸 우엘벡의 [복종]입니다. 두 작가의 전 작을 모두 재미있게 읽은 터라 신간이 반갑기는 했지만, 퓰리처상을 수상한 도나 타트의 신작은 전작에 비해 그리 나아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미셸 우엘벡의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후속작은 이 시대의 공기를 포착했다고 말할 수 있는 전작 [소립자]의 마이너버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흥미로운 사건을 만들어 내고, 치밀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가독성은 높일 수는 있겠지만 작품성을 높일 수는 없습니다. 가독성과 작품성의 문제는 쟝르문학과 순문학을 구분하는데 있어 각각 중요한 지표인 것은 이로서 당연해집니다. 도나 타트가 상정한 화자는 난처한 지경에 처해 호텔에 머무르며, 어린 시절에 사고로 죽은 어머니를 회상하는 젊은 처자입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두 작품을 동시에 떠올릴 수가 있지요. 하나는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이고, 또 하나는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입니다. 호텔방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사회적 죽음(또는 모라토리엄)을 맞이한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 처음 설정이니 말입니다.

도나 타트의 작품이 항상 쟝르소설과 순문학의 교묘한 경계에 머무르며 그 이상의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것은 위에 소개한 두 작품을 읽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나 타트가 상정한 화자는 '너무 유창합니다.'  심리적으로 곤란한 지경에 있는 화자가 이토록 수다스럽게, 치밀하게  과거를 회상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으니 작품에 몰입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에 반해 폴 오스터의 작품과 크누트 함순의 작품 속 화자는 '정말 그럴 듯'합니다. 1890년에 발표된 소설인 [굶주림]의 시대적 배경이 풍요로운 현대와는 완전히 유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자의 심리에 완전히 몰입가능한 것이 바로 작가의 역량이지요.

[달의 궁전]의 결말이 좀 나이브 하다고 느끼신다면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달의 궁전]의 주인공인 포그가 심미적인 목적으로까지 고양된 허무주의자가 되어 공원의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하기까지는 무척 좋았는데 말이죠. '우'라는 중국계 미국인 여자에게 구원을 받으면서 작품은 비루해지기 시작하지요. 여자한테 구원받지 마세요. 인생을 예술로 만들기 어려워집니다? 도나 타트의 작품을 읽을 때,  어느 책에선가 이런 글귀를 읽은 기억이 났습니다. "기억하세요. 과거는 남김없이 기억에 담기지 않으며 과거에는 미래가 있을 수 밖에 없음을..."



'내게 유창하게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는 누구인가?'의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모더니즘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전통적인 소설들은 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죠. 화자의 문제가 작품성에 밀착되어 있음을 완벽하게 입증하는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은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또는 [소리와 분노]) 그리고 살만 류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입니다. 까뮈와 사르트르, 오르한 파묵등이 포크너에게 바친 찬사는 누군가 이야기하듯 '모더니즘의 충격'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포크너가 난해한 것은 전통과 완벽한 결별을 선언했음과 맞물려 있습니다. 작품성은 높으나 가독성이 떨어지기로 독자들 사이에 원성이 자자하지요. 그러나 읽다보면 재미있습니다? 오기가 생기고 한 번 읽고 나면 포크너에 중독되는 현상도 일어납니다. 제가 포크너의 작품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내가 죽어 누어있을 때]입니다. 이 작품은 포크너의 작품중 비교적 분량이 짧기도 하지만 다른 작품에 비해 가독성도 높은 편인데다, 시체가 말을 하는(?) 신기한 경험도 해 볼 수 있으니 한 번쯤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에 비해 살만 류슈디는 모더니즘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살만 류슈디는 포스트 모더니즘 작가로 분류하기도 하지요. 모더니즘이 '화자'의 문제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윌리엄 포크너나 제임스 조이스를 선구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살만 류슈디는 거기에 한 술 더떠서 작품 속에서 [소설 속의 화자를 도저 믿을 수가 없다]로 나아갑니다. 화자의 문제가 대두되어, 화자의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이것을 작품에 녹아들도록 이야기를 꾸몄는데, 이제와서 화자를 의심하라? 믿을 수없다? 독자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이 교활한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독자는 부처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손오공이나 악마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파우스트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하지요.

그러나 '화자의 문제'를 강렬하게 인식하는 작가의 작품은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부분 시간의 순서나 인과관계와 같은, 일반적으로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논리대로 서사를 진행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화자의 문제가 강력해지면, 그리고 그러한 작품에 빠져들게 되면, 일본의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가 이야기 하듯 '타인의 꿈을 꾸는 경험'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벌거벗은 형태의 읽기! 그 강렬함! 타인의 무의식과 욕망에 접속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니체도, 쇼펜하우어도, 나쓰메 소세키도, 스탕달도, 롤랑 바르트도, 헨리 밀러도 "적게 읽으라. 많이 읽을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는지 모릅니다.

화자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적게 읽으라'는 결론은 이상해 보입니다만, 하나의 서사예술로서의 소설은 아무리 작가가 먼 산 이야기를 해도 온몸을 뒤덮은 실핏줄처럼 작가의 생각이 맥동하기 마련입니다. 이 실핏줄을 따라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나'를 벗어던질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이는 주체할 수 없는 혼란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정말 좋은 작품을 읽고 나면 거의 정신적 강간을 당한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어쩌면 저는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를 마저 읽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그저 재미있게 읽으며 즐길 거리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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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커피가더좋아
    굉장히 흥미롭네요. 그런데 화자는 누구인가를 질문하는 것이 모더니즘의 시작이라는 부분이 좀 확 와닿지 않는데, 어떤 측면에서 그런지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런지요?(무식한 질문같지만, 제가 문알못이라서 어쩔 수 없습니다. ㅠㅠ)
    전통적인 소설의 경우 소설의 가장 중요한 사건을 천상유수격 또는 변사격으로 독자에게 구구절절 설명해 주는 사람이 등장하지요. 예를 들라고 하시면 챨스 디킨즈를 보시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적인 소설에 이르러서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화자\'는 촌스러운 것이 되어버립니다. 모더니즘 소설의 효시로 저는 [모비딕]의 작가인 허먼 맬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꼽습니다. 무척 짧은 이야기인데 여기서 화자로 등장하는 변호사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만... 더 보기
    전통적인 소설의 경우 소설의 가장 중요한 사건을 천상유수격 또는 변사격으로 독자에게 구구절절 설명해 주는 사람이 등장하지요. 예를 들라고 하시면 챨스 디킨즈를 보시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적인 소설에 이르러서는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는 화자\'는 촌스러운 것이 되어버립니다. 모더니즘 소설의 효시로 저는 [모비딕]의 작가인 허먼 맬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꼽습니다. 무척 짧은 이야기인데 여기서 화자로 등장하는 변호사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만 존재하는 바틀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경우에도 경험은 남에게 옮겨지는 순간 이야기로 변해버리는 사실을 작가는 아주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음이 느껴지지요. 사실의 진위를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리고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는 점이 중요하지요. 같이 일하는 동료의 이름조차 염두에 없는 주인공이 바틀비라는 기인을 만나 그를 이해(또는 오해)하는 과정 즉, 바틀비를 향한 의문과 분노, 회유가 관심과 연민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점차 고조되다가, 종적을 감추었을 때 해소되는 긴장감이야 말로 바틀비를 읽는 묘미입니다. 사실 바틀비가 어떤 이유로 면벽하게 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화자로 등장하는 변호사가 바틀비라는 기인을 만나 변화하는 과정만을 읽을 따름이라는 것이지요. 예를 드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예를 들어보았습니다만, 제대로된 답변인지 모르겠습니다.
    난커피가더좋아
    흠 조금씩 감이 오네요. 제가 스스로 좀 더 알아봐야할 부분이 많을 거 같네요.답변 감사합니다.
    전통 문학의 화자와 비교해서 근대 문학의 화자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이라면 화자가 특정되지 않는 소설이 쓰여지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쉽게 흥부전이나 춘향전 같은 판소리계 소설을 생각해보면, 판소리를 노래하는 화자가 이야기의 바깥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사건 속에 자의적인 개입이 가능한 것이고요. 하지만 근대 문학에서는 이와 달라지죠. 1인칭 화자로서 작품 속에서 숨쉬거나, 3인칭 화자로 존재할 적에도 나름의 규칙과 제약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3인칭 화자는, 마치 연극으로 비유하자면 배우들이 올라서는 무대처럼 기... 더 보기
    전통 문학의 화자와 비교해서 근대 문학의 화자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이라면 화자가 특정되지 않는 소설이 쓰여지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쉽게 흥부전이나 춘향전 같은 판소리계 소설을 생각해보면, 판소리를 노래하는 화자가 이야기의 바깥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사건 속에 자의적인 개입이 가능한 것이고요. 하지만 근대 문학에서는 이와 달라지죠. 1인칭 화자로서 작품 속에서 숨쉬거나, 3인칭 화자로 존재할 적에도 나름의 규칙과 제약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 3인칭 화자는, 마치 연극으로 비유하자면 배우들이 올라서는 무대처럼 기능합니다. 실제로는 그럴 수 없을지언정 마치 그런 것처럼 말하죠. 이때의 3인칭 화자는 작품 바깥에 존재하는 전통적 화자와 달리 스스로의 인격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세계를 투명하게 비추는 눈이나 다름없죠. 그 성격상 근대 문학은 근대적 인식론의 성격을 강하게 띌 수밖에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데카르트를 경유한 칸트의 인식론에서, 인간 인식 일반에 대응된다랄까요. 이것이 근대 문학이며, 난커피가더좋아님께서 접하셨을 거의 대부분의 소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주동 인물들이 겪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비추는(그러면서 영화 속에서 결코 설명되지 않는) 카메라의 시선/관객의 시선 역시 이와 마찬가지고요.

    모든 예술이 그럴테지만, 소설은 작가가 느낀 세상의 진실에 대한 재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각기 방향은 다르지만 모든 작품들은 나름의 리얼리티와 리얼리즘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문학이 발전하고 세상이 달라지며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즈음이 되자... 기존의 소설 양식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작가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작품 속에서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신적 3인칭의 시선을 견딜 수 없어진 거죠. 그 시선이 제아무리 세상을 그럴싸하게 설명하면 뭐합니까. 정작 그 시선을 설명할 수 없는데요. 이 시기 활동했던 제임스 조이스나 마르셀 프루스트, 윌리엄 포크너 등의 작가들은 난해하기로 이름 높은데,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문학을 전개해나갔기 때문이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특정한 인물의 사색에만 몰두하는 건, 소설이라는 양식이 오직 그 안에서만 철저하게 리얼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야말로 의식화/언어화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을 일단 언어화하고 보자는 거죠.

    그리고 해당 시점 이후로 문학계는 \'화자\'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독자로 하여금 그 서술에 대해 의구심을 품게 만드는 1인칭 화자를 쓰거나, 귀신을 쓰거나, 전통 소설처럼 자의적인 화자를 등장시키기 시작하는 것도 이 즈음부터의 일인데요. 차라리 그러한 화자가 세계를 \'객관적\'으로 꿰뚫어보는 3인칭 화자보다 구체적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그들은 이러한 구체성으로 말미암아 소설 속 세계 내에서 설명이 가능하거든요.

    뤼야님께서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는 건, \'마치 자기 삶을 소설을 쓰는 것처럼 정갈하게 재구성\'하는 도나 타트의 글쓰기가 아무래도 고루하다는 겁니다. 토마스 쿤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학계의 패러다임은 이미 그 영역을 지나친지 오래인데 말이죠. 이러한 양식을 장르 소설적이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장르적인 재미에만 온전히 충실한 추리 소설, 법정 소설, 판타지 소설에서처럼 문학적인 문제의식이 가장 우선순위에 놓여있지 않다는 거지요. 비유하자면... 영화로도 유명한 이언 매큐언의 \'어톤먼트\'를 볼까요? 골든 핀치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을 재구성합니다만, 작중 주동 인물의 삶을 따라가는 시선이 작품의 결말에서 설명되지요. 이러한 재구성이 없는 \'암스테르담\'의 경우, 그러나 소설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작품 전체를 임의적으로 조율하는 화자의 존재를 의식할 수밖에 없게 만들기도 하고요. 이런 방식은 그 형식적인 면에서 도전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오늘날에도 충분히 유통될 정도로 세련되지요.
    난커피가더좋아
    후덜덜한 답변 감사합니다.
    팟저님께서 말씀해주신 1인칭 화자와 3인칭 화자를 동시에 분열시켜 등장시킨 작가가 [양철북]의 귄터 그라스와 [열세걸음]의 모옌입니다. 한 사람이 1인칭과 3인칭의 시점으로 동시에 이야기 하다니, 후덜덜한 명성의 작가들이 이러한 \'화자의 문제\'에 얼마나 민감한지 알 수 있죠. 모옌 이전에 중국작가 가오싱젠의 [영혼의 산]의 화자도 인칭분열을 일으켰죠. 세 작품 모두 후덜덜 자체입니다...
    팟저님 덕분에 양질의 정보를 얻어갑니다
    본문의 문제의식에서 반보 정도 나아간 지점에서 우리는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한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죠. 거의 대부분의 영화에서 영화를 찍는 시선에 대한 자기 인식은 발견하기 어려운데, 당연하다면 당연할 것이 자기 인식의 수단으로 영상 매체를 상정하는 개인을 상정하는 건 너무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시선을 영화의 세계 내에서 설명하는 방식도 있습니다만, 그조차 영화의 러닝타임 내에서 충분히 다루기엔 어렵고요. 따라서... 이 부분에 있어 이전 영화들과 확실히 구획된 지점을 건드린 버드맨이 위대한 영화인 것이겠지요.

    잘 읽고 갑니다.
    사실 자기고백적 자기인식을 영화화한다면 그 영화는 흥행못할 것이 너무 뻔하지 않습니까? 크크크크크
    [버드맨]을 본 이후로 모든 영화가 시시해지니 이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한밤의 아이들]을 읽고 난후, 모든 소설이 시시해지는 현상과도 맞물려있구요.
    약간 슬퍼지네요. 감사합니다.
    할머니
    개인적으로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시대적으로 훌륭한 작품이라는 점은 동의하지만,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을 획득한 작품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해당 작품은 가독성을 포기하면서 열댓명의 화자를 등장시킵니다. \'화자의 문제\'에 대한 답으로 모든 화자를 보여주는 선택을 한 것이겠죠. 그런데 본문에 나온 것처럼 화자를 의심하는 지경에 이른 시점에, 다양한 화자를 선택한 작품이 어떤 미덕이 있는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화자를 신뢰할 수 없다면 한명의 사람의 이야기이건 수 많은 사람의 이야기이건 진실과의 거리는 같을 수 밖에 없다고 봐요. 미덕은 없는데 가독성만 잃어버린 선택이 아니었나.. 싶어요.
    여러 화자를 등장시키는 것은 포크너의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지요. [음향과 분노]도 마찬가지구요. 저는 음향과 분노를 매우 어렵게 읽었는데,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는 비교적 쉽게 단숨에 읽었습니다. 그 쾌감이 이 소설을 좋아하게된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살만 류슈디가 처음 [한밤의 아이들]을 출판사에 들고 갔을때, 너무 난해하다는 이유로 출판이 거부되었고, 그 이후 다시 다른 출판사의 편집자의 손에서 화자 ... 더 보기
    여러 화자를 등장시키는 것은 포크너의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지요. [음향과 분노]도 마찬가지구요. 저는 음향과 분노를 매우 어렵게 읽었는데,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는 비교적 쉽게 단숨에 읽었습니다. 그 쾌감이 이 소설을 좋아하게된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살만 류슈디가 처음 [한밤의 아이들]을 출판사에 들고 갔을때, 너무 난해하다는 이유로 출판이 거부되었고, 그 이후 다시 다른 출판사의 편집자의 손에서 화자 하나가 사라지는(?) 과정을 겪은 것을 책 앞부분에서 읽었는데, 화자를 강렬하게 의식하는 일은 독자는 물론이고, 작가에게조차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포크너의 작품은, 화자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복수의 화자가 등장함으로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하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더 고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나름의 세계 속에서 성립 가능한 제 나름의 리얼리티를 획득했지요. 어쨌든 열댓명의 화자 속에서 나름의 일관성을 지켜내고요.
    음... 혹시 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께 도움이 될까 싶어 예전에 써놓은 글 하나 남겨둡니다. \'간접적 해설\'이 함의하고 있는 근대 문학적 의의에 대한 제 나름의 해석입니다. 이때 간접적 해설이라함은, 고교 문학 시간에 배우셨을 직접적 서술, 간접적 서술의 그 간접이 맞습니다.


    -간접적 해설
    작가가 채택한 임의의 제한 하에서 인물의 행동 및 전체적인 상황 묘사를 통해 사건을 제시하는 방법을 뜻한다. 이 ‘임의의 제한’을 무엇으로, 어디까지 상정하느냐에 따라 근대 소설의 형식이 구획되는데, 극단적으로 표현할 경우 이 간접... 더 보기
    음... 혹시 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께 도움이 될까 싶어 예전에 써놓은 글 하나 남겨둡니다. \'간접적 해설\'이 함의하고 있는 근대 문학적 의의에 대한 제 나름의 해석입니다. 이때 간접적 해설이라함은, 고교 문학 시간에 배우셨을 직접적 서술, 간접적 서술의 그 간접이 맞습니다.


    -간접적 해설
    작가가 채택한 임의의 제한 하에서 인물의 행동 및 전체적인 상황 묘사를 통해 사건을 제시하는 방법을 뜻한다. 이 ‘임의의 제한’을 무엇으로, 어디까지 상정하느냐에 따라 근대 소설의 형식이 구획되는데, 극단적으로 표현할 경우 이 간접적인 해설에 대한 합의와 분열이 근대 소설 전체의 스펙트럼을 포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근대가 상정한 개인의 기반이 데카르트적 자아정의에 입각한 인식론에 연유하기 때문인데, 코기토적 자아로 재구성된 세계는 칸트를 경유하며 보편의 인식 일반으로 특정되었다(물론 칸트가 등장하기 이전에 근대 문학의 개별 양상은 그 모습을 일부 드러냈기에 위와 같은 설명은 적절치 못하다고 할 수 있으나, 다시 당대 문학 또한 현실로 인식하여 일관된 형이상학적 체계로 엮어낸 것이 칸트라는 맥락에서 최소한의 적실성은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 소설에서 상정하는 화자와 세계 사이의 관계는 칸트적 인식론에서 그 보편적 양상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이성을 통해 인간의 의식 속에서 상정된 세계로 말미암아 세계 자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을 뜻한다.

    이것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로 ‘초점 화자’를 들 수 있다. 초점 화자란 소설의 세계와 특정한 연결고리 하에서만 세계를 관찰할 수 있는 제한된 시각을 뜻한다. 이 제한이란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제약이되, 독해 과정에서는 (근대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이들 사이에서)보편적인 인식 지평으로 기능한다. 초점 화자의 양상은 그 제한 자체가 인물로서 직접 등장하는 1인칭과 이를 감추는 3인칭으로 나뉜다. 이때 3인칭 초점 화자의 ‘초점’이란 특정한 인물일수도, 특정한 장소일수도, 특정한 시간대일수도, 심지어 특정한 지면(紙面)일수도 있다.

    초점 화자를 통한 정보 제시 중 외적 지각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데, 작중 인물간의 대화, 인물의 행동 및 배경 묘사 등이다. 앞서 말한 인식론을 끌어온다면, 세계에 대한 특정 자아의 제한적 이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제한된 시각을 통해 엿보이는 파편적인 정보는 부차적인 것이든 핵심적인 것이든 작가의 필연적인 의도 속에 있다. 화자를 통해 재구성된 세계 속에서 독자는 인물과 상황, 사건을 비롯한 세계 자체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외적 지각에 철저히 의존하는 대표적인 장르라면 하드보일드가 될 것이다. 반대로 보자면 형식적으로 하드보일드는 근대 소설적 발화 양식에 대한 성찰이라기보다, 그 역할과 기능을 긍정하며 이를 충실히 수행하는 쪽이라 말할 수 있다.

    1인칭 화자와 특정 인물을 경유하는 3인칭 초점 화자에서 곧잘 쓰이는 국면의 제시 방법으로 ‘내적 독백’, 혹은 ‘의식의 흐름’이 있다. 둘 가운데 전자는 소설 속 특정 국면의 제시 기법으로, 후자는 통일된 형식 하의 하나의 장르로 여겨지나 실상 뚜렷이 구분되고 있지는 않다. 앞서 언급했듯 세계에 대한 이해가 인간의 보편적 인식 주로를 경유하면서, 보다 엄밀하고 명확한 현실 인식을 위해 인간의 인식 구조, 심리를 파고드는 경향이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문학적 인상주의라는 표현을 쓰는데, 인간의 심리적 영향이 반영된 시지각의 양상을 그려낸 것이 인상파라는 맥락을 고려한다면 가당한 비교일 수 있다.

    이후 근대 소설의 기저에 흐르는 보편적 인식론으로 말미암는 세계 이해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졌는데, 그 양상은 메타 픽션과 같은 보다 직접적인 장르에서부터, 아방가르드와 같은 전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허접한 제 글보다 후덜덜한 팟저님 덧글 감사합니다. 2
    과공은 비례입니다. 이 덧글이 누군가에게 유익하다면, 그건 판을 깔아주신 뤼야님 덕이죠. 맥락없이 써둘 적에 얼마나 와 닿겠습니까.
    yangjyess
    만족스러운 소설읽기의 쾌감은 섹스에 비견될 만하죠 킄 하지만 나 자신도 원하고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강간과는 좀 다른거 같습니다. 좋은 작가는 부드럽게 애무해 주면서 오르가즘과 절정을 향해 이끌어 주거든요 킄 반대로 불친절한 작가(라기보다는 뭔가 익숙치 않은 형태의 문체나 구조일 경우겠죠)를 독자가 적극적으로 파고들어 쾌감을 얻어낼 때도 있는데 이것도 역시 독서라는 정신활동이 수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걸 의미하는듯요
    사실 독서가 타인의 꿈을 꾸는 행위라고 말했던 사사키 아타루, 그리고 도끼로 머리를 얻어맞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표현했던 카프카와 저는 좀 차별을 둔 표현을 고민했습니다? 흐흐흐 독서가 능동적 행위라는 것은 두 말이 필요없지만, 제가 서있던 상식의 베이스를 깨부서 버리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저는 그런식으로 표현해보았습니다. 언젠가 그런 섹시한 작가들 이야기 좀 게시판에 부탁드릴께요. 저도 물론 한 섹시하는 작가목록이 누구보다 기~~~~입니다.
    구밀복검
    소설 창작을 섹스와 자위, 가학과 피학, 강간과 화간, 살인과 자살에 비유한 작품으로 [살인자의 건강법]이 있지요.
    삼공파일
    재밌게 읽었는데 뭔가 어렵네요...ㅠㅠ 이번 방학 때는 책 좀 읽어야...
    감사합니다. 삼공파일님 방학동안 읽으신 책 이야기도 게시판에서 기대해보지요.
    darwin4078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 글을 보니 중2병을 앓던 시기에 소설가가 되어볼까 깝쳤던 과거가 생각나네요. 그때 가장 저를 괴롭혔던 생각이 내가 상상하고 만들어낸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가...였습니다.
    당시 가장 써보고 싶었던 스토리가 D&D 환타지 배경으로 우주비행을 꿈꾸던 하프엘프의 이야기... 뭐 이런 유치한 거였는데, 1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쓰려고 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이 얘기를 말하는 사람이 고2 남고생인가, 하프엘프인가. 하프엘프라면... 나는 사람인데 어떻게 하프엘프 얘기를 할 수 있지? 아니지. 어차피 ... 더 보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 글을 보니 중2병을 앓던 시기에 소설가가 되어볼까 깝쳤던 과거가 생각나네요. 그때 가장 저를 괴롭혔던 생각이 내가 상상하고 만들어낸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가...였습니다.
    당시 가장 써보고 싶었던 스토리가 D&D 환타지 배경으로 우주비행을 꿈꾸던 하프엘프의 이야기... 뭐 이런 유치한 거였는데, 1인칭 시점으로 소설을 쓰려고 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이 얘기를 말하는 사람이 고2 남고생인가, 하프엘프인가. 하프엘프라면... 나는 사람인데 어떻게 하프엘프 얘기를 할 수 있지? 아니지. 어차피 내가 다 만들어낼 세계인데 그런건 상관없잖아? 그런데 만일 내가 만들어낸 세계라면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가야 맞잖아. 그런데 3인칭 전지적 시점은 재미가 없어. 현장감이 떨어지고 고리타분해. 근데 내가 하프엘프가 아닌데??

    막 이런 생각이 맴돌다가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만둬버렸습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이 첫번째는 소설가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둘째는 소설가들이 정신분열증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겠다. 마지막은 나같은 병신은 소설 같은거 쓴다고 깝치면 안되겠다...였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지루하다고 느끼게 할 용기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예술가든 학자든 일류는 아니다.\"라고 니체는 말했지요. 사실 읽는다는 것도 제대로(!) 쓴다는 것도 일종의 광기를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분열증자의 책을 읽고 분열증자가 되지 못한다면 그건 제대로 읽는 것이 아니겠지요. 저는 쓰는 것은 커녕 제대로된 독자가 되기 위해 바친 시간만도 엄청나기 때문에...ㅠㅠ
    darwin4078
    개업 이후로는 몸도 마음도 지쳐서 그런지 그냥... 생각 자체를 안하게 되는데,
    그래도 홍차넷 자게에서 뤼야님이나 다른 분들 좋은 글 읽으면서 생각이란걸 눈꼽만큼은 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마르코폴로
    하이엘프라면 응원합니다. 지금이라도 써주세요.
    darwin4078
    하이엘프가 아니고 하프엘프...입니다. ;;;

    스팀펑크를 배경으로 인간과 엘프 둘다에게 배척당하는 주인공이 신세계를 위해 우주로 나아가는 이야기... 뭐 이런거였는데,
    위에 쓴 이유도 있었지만, 이런저런 설정을 하면서 SF나 환타지 관련 자료들을 찾다 보니 이게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와 너무 비슷한 겁니다.
    역시 이런 생각을 내가 맨 먼저 할리가 없지,하면서 그냥 때려치웠습니다. ㅠㅠ
    마르코폴로
    하프엿군요. 사실 하프든 하이든 \'엘프\'인게 중요한 것같습니다.그리고 인간에겐 배척당해도 상관없지만 엘프에게 배척당하다니... 인간이든 하프엘프든 엘프든 엘프에게 배척당하는 순간 소설의 인기는 끝난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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