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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2/06 19:27:45
Name   키스도사
File #1   늑향_10주년_일러스트.png (623.0 KB), Download : 20
Link #1   https://namu.wiki/w/%EB%8A%91%EB%8C%80%EC%99%80%20%ED%96%A5%EC%8B%A0%EB%A3%8C
Subject   얼마전 "늑대와 향신료"를 읽었습니다.


#0
이 마을에서는 잘 익은 보리이삭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늑대가 달린다'고 말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광경이 보리밭 속을 늑대가 달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바람이 너무 강해 보리이삭이 쓰러지는 것을 '늑대에게 밟혔다'고 하고.,흉작일 때는 '늑대에게 먹혔다'고 말한다.
근사한 표현이긴 하지만, 억울한 부분도 있는 것이 옥의 티다싶다.
(중략)
가을하늘은 높다랗고 아주 맑았다.
올해도 또 추수철이 다가왔다.
보리밭을, 수많은 늑대가 달리고 있었다.
『늑대와 향신료』 1권 서장 中

#1
개인적으로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만, 라이트 노벨은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딱히 없는거 같은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일종의 선입견이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중에 친구의 추천으로 늑대와 향신료라는 책을 알게 되었고 친구에게 빌려온 1권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완결인 17권까지 읽었네요.

이 소설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 하자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연재가 된 일본의 라이트 노벨인 늑대와 향신료(狼と香辛料)는 작가 하세쿠라 이스나(支倉 凍砂)의 처녀작으로, 필력이 상당히 좋아서 전격문고에서 진행하는 전격 소설 대상에서 은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행상인 크래프트 로렌스가 수백년을 산 늑대, 현랑 호로(賢狼 ホロ)를 만나며 호로의 고향 요이츠까지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참신한 소재와 작가의 역량 덕에(정확히 말하면 호로라는 캐릭터 덕에)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으며, 애니매이션은 소설의 6권까지의 내용을 다룬 1기, 2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만화판은 현재 연재중으로 마지막 권인 14권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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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판타지 소설임에도 판타지적인 요소는 정령이라는 존재 여부 뿐이며, 이들이 보여주는 능력 또한 매우 드물게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호로도 자신의 본 모습인 거대한 늑대로써 힘을 발휘하는 건 주인공인 로렌스가 죽을 위기 혹은 정말 인간의 능력으로는 답이 없다 싶을때만 사용하고 대부분의 사건은 로렌스의 재치와, 호로의 지혜를 이용해 위기를 빠져나가거나, 사건을 해결합니다. 이중 상당수는 "돈"을 이용한 거래방식을 통해 해결하기 대문에 상업판타지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죠.

개인적으로 "장난을 잘 치는 타카기 양"의 히로인인 타카기 양의 상위 호환 버전이라고 생각하는 호로의 캐릭터는 상당히 매력적이며 두 사람간의 감정묘사와 갈등, 그리고 봉합되는 과정도 매력적으로 묘사되어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신으로 받들여 지는 것이 싫은, 그리고 혼자인게 두려워 무엇이든 로렌스와 함께 하고픈 호로와 꾀가 많고 장난을 잘 치는 호로를 어떻게든 이겨먹으려고 하는 로렌스의 모습은 참 달달하면서도 웃음 짓게 만듭니다. 물론 가끔 호로가 분위기를 잡아도 눈치를 못채거나 뭉게트리는 로렌스의 모습에서는 고구마 한개를 먹은 답답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지만요. 크크

"우리도 갈까?"
"그래야...겠지?"
하지만 호로는 정작 먼저 이야기를 꺼내 놓고는 가만있었다. 로렌스가 의아해 하자, 호로는 얼굴을 들며 말했다.
"난, 저 인형들 처럼 정열적인 것도 괜찮은데?"
불붙은 지푸라기 인형이 겹치며 하나가 된다.
그럼에도 로렌스는 웃으며 대답했다.
"취기가 돌면 어떻게든 되려나?"
호로는 양 송곳니를 내보이며 웃고는,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면서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듯이 말했다.
"당신까지 취하면 누가 날 챙겨줘? 이 멍청이!"
『늑대와 향신료』 3권 中


또한 이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하는 명분이 최종 목적지인 호로의 고향, 요이츠에 로렌스가 데려다 준다는 것이었는데, 도착후에는 어떻게 될것인가라는 것과, 정령과 인간의 수명차이(사람은 많아봐야 100살 전후이지만 정령은 수백년을 사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로 인해 이어질수 있을까라는 것도 작품 중간중간에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이런 떡밥들도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며 소설에 몰입하게 되는 것중 하나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에필로그 형식으로 나온 작품의 엔딩은 두 사람 간의 긴 여행의 끝을 깔끔하게 표현했다고 말하고 싶네요.

#3
늑대와 향신료는 프랑스의 중세경제사학가인 장 파비에가 쓴 금과 향신료를 차용했습니다.(중략)  자료를 읽을 때에도 판타지 소설을 쓰는 사람을 대상으로 나온 책은 결코 읽지 않고, 거의 학술서에 집중했습니다. 중세경제사도 입문서는 읽지 않고, 이해하지 못할 것을 잘 알면서도 전문서만 읽었습니다. 신에 대한 이야기도 세계의 신들에 관한 사전 같은 것은 읽지 않고, 성경과 황금가지를 읽었습니다. 어려운 책을 이릭고 있다는 허영심도 있긴 했습니다만, 저는 제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재능 있는 사람들과 같은 책을 읽었다고 그 재능 있는 사람보다 더 재밌는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첫째 이유입니다.
『늑대와 향신료』 16권 작가 후기 中
이 소설에서 주목했던 부분은 배경이 가상의 세계이긴 하지만 중세 유럽, 특히 13~14세기 독일의 시대가 모티브라고 하고 작가도 후기에 약 4~50권의 관련 서적을 읽고 썻다고 밝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밌게 읽은 책인 만큼 호기심이 생겨 중세시대와 관련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고증과 관련되어서 상당히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작품의 서장에서 언급되는 보리밭 이야기라던지, 늑대가 보리밭을 지키는 곡물의 정령이라는 설정이라던지, 환어음을 사용하는 시대적 배경, 책이 귀하다는 설정, 판타지 소설과는 다르게 길드(상업조합)의 실제 운영 방식, 윈필 왕국에 대한 이야기들, 북방 십자군의 모습등은 실제 중세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침대 매트리스로 짚단을 사용한다는 내용이나, 딱딱한 빵이 싫어서 밀가루로 만든 빵을 먹고싶다고 투정부리는 호로와 돈때문에 고민하는 로렌스의 모습, 특정 도시들마다 가진 특색, 옷을 장만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돈이 필요해 콜이 누더기 옷을 입고 있어도 옷을 사주는 대신 바느질 하라고 실을 사주는 모습등 세세한 부분에서도 당시 고증을 충실히 따르고 있더라구요.

상세한건 우리들의 친구 나무위키를 참고하는게 더 편할꺼 같아요. 내용이 만만치 않아서 다 소개하기가 힘들겠네요 크크
https://namu.wiki/w/%EB%8A%91%EB%8C%80%EC%99%80%20%ED%96%A5%EC%8B%A0%EB%A3%8C/%EA%B3%A0%EC%A6%9D

다만 종교적인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교와 정교간의 갈등에서 정교는 상대적을 부패하고 무례한 집단으로 묘사가 되기에 기독교인이 본다면 약간 거슬릴수도 있을꺼 같습니다.

판타지 세계관임에도 자료조사를 하고 고증을 쏟았다는 거에 놀랐고 이 책 덕에 요즘 중세경제 관련 서적을 찾아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4
호로의 장난에 당하는 로렌스의 반응을 보면 달달한 로맨스 물을 보는 거 같으면서도, "종(種)의 다름", "수명"이라는 명분으로 스스로를 옥죄며 자신들의 마음을 속시원하게 드러내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 답답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왜 그런 행동들을 할수 밖에 없는지 이해가 가서 찡하고, 이 두사람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라는 고민을 작품의 엔딩 시점까지 가지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혹시 안보신 분이 계시다면 추천 드리고 싶은데, 아쉽게도 완결 난지 오래되서 중고서적들 뿐이네요...전자책이라도 발매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힘들꺼 같고.

에필로그까지 모두 본후,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좀더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년에 10주년 기념으로 완결된지 4년만에 18권과, 외전인 늑대와 양피지 1권이 나왔다고 합니다. 두 책다 한국 정발 관련해서 별 말이 없는데 한국 정발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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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 나서 난생 처음 넨드로이드를 주문했습니다...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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