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2/24 21:21:41
Name   SCV
File #1   15538254_852867608189300_3781466499353411584_n.jpg (41.5 KB), Download : 6
Subject   누구의 인생이건, 신이 머물다 간 순간이 있다.


0. 저는 우연을 그다지 믿지 않았습니다. 인연은 필연에 의한 것이고, 기적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에 대한 착각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제 인생에서도, 신이 머물다 간 순간들이 아닐까, 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제 와이프와 연애하던 기간 동안의 세 가지 일들입니다.

1. 전여친의 친구의 남친... 과 어쩌다 보니 친구가 되었는데, 둘 다 비슷한 시기에 보기 좋게 차이고 저는 해외에 잠깐 다녀왔습니다. 그녀석은 재수한다고 휴대폰도 딱히 없어서... 이놈 어디서 뭐하나, 싶어서 알고 있는 정보인 학교와 이름만으로 다모임과 알럽스쿨에서 아이디를 알아내고(....) 세이클럽에서 검색해보니 지금 왠 여자애와 대화중인겁니다. 그것도 2인 제한에 비번을 걸어놓고서요. 아마 안되겠지만 혹시나 싶어서 그 친구가 늘 비밀번호로 지정하던 번호를 치고 들어갔는데, 들어가지는겁니다? 분명 2인 제한 걸었는데 화면을 보니 3/2 라는 어처구니 없는 숫자가 떠있더군요. 아마 버그이겠지만서도.. 친구는 자기가 좋아하던 여자애의 친구와 그 여자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는데 제가 얼떨결에 뚫고(?) 들어간겁니다. 그게 저와 제 와이프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2. 시간이 흘러, 그냥 서로 문자만 주고 받던 사이었던 시절에(사귀던건 아니고 그냥 오빠동생 하던..), 어느날 갑자기 와이프가 병원에 있다는 겁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어디 아프냐고 문자했는데, 더 놀란건 와이프였습니다. 그 문자는 친구한테 보낸 문자였던거지요. 물론 친구한테도 그 문자가 갔고, 저한테도 온겁니다. 그런데 분명 발신함에는 친구 번호만 찍혀서 문자가 보내진 걸로 되어 있었고요. 폰에 여러 사람에게 한 문자를 다중으로 보내는 기능이 있던 시절도 아니었습니다. 와이프는 아직도 그때 그 순간을 잊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저도 너무 신기하고요.

3. 더 시간이 흘러 서로에 대한 마음이 커져가던 시절, 저는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많이 좋아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귀자는 멘트를 후에 뻔뻔하게 날리긴 합니다만, 두 달 앞두고서는 그렇게 뻔뻔하진 못했거든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이제 우리 연락 그만 했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끝으로 서로 MSN 접속을 끊었습니다. 와이프는 다시는 말 걸지 않겠고 하며 나가버렸고, 와이프가 나가는걸 보고서 한참을 엉엉 울며 후회하다가...  (이땐 공부한다고 와이프가 핸드폰을 해지해서 딱히 연락 수단도 없었습니다.) 저는 다른 일 때문에 좀 있다 다시 접속을 했는데, 갑자기 와이프가 저한테 말을 거는 겁니다? 자기에게 왜 쪽지를 보냈냐면서... ??? 이게 왠???? 알고 봤더니 제가 며칠 전에 보냈던 쪽지가 와이프에게 그때서야 도착을 한겁니다. (아마 오프라인 상태로 보이기? 뭐 그런걸 했던거 같은데..) 제가 아직 무슨 할 말이 남은 줄 알고 다시 들어온 와이프에게, 저는 엉엉 울었던 이야기를 토로하며 우리 만나서 이야기 하자며 읍소했고, 예의 타임라인에서의 뻔뻔한 멘트를 던지며 지금 까지 오게 되었네요.


아마 신이 머물다 간 순간을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고, 저희처럼 극적으로 느끼게 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많은 이들, 많은 연인들에게 이처럼 놀라운 우연과 약간의 기적과도 같이, 신이 머물다 간 순간들이 있기를, 그리하여 행복하기를 바라보며 글을 맺습니다.



15
  • 춫천
  • 와 대박 !!
  • 사랑의 신이 있긴 있군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977 기타4분기에 본 애니메이션들 15 별비 17/02/23 8421 1
4978 IT/컴퓨터AMD 대란?.. 짤 하나로 설명해보기 16 Leeka 17/02/23 5875 2
4979 게임섀도우버스 초반 즐겨보기 이야기 #1 3 Leeka 17/02/24 3726 0
4981 창작[소설] 여름 날 31 새벽3시 17/02/24 3223 8
4982 창작갑오징어에 대해서 생각하다 9 열대어 17/02/24 3386 1
4983 꿀팁/강좌[사진]렌즈를 읽어봅시다. 33 사슴도치 17/02/24 5671 7
4984 기타김정남 암살에 사용된 것으로 유력한 신경가스 - VX가스 16 모모스 17/02/24 9577 6
4986 일상/생각예전에 스타 1 하던 이야기 9 기쁨평안 17/02/24 3198 0
4987 일상/생각수박이는 요새 무엇을 어떻게 먹었나 -1 30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7/02/24 3946 11
4988 IT/컴퓨터컴알못의 조립컴퓨터 견적 연대기 (4) 모니터 2 이슬먹고살죠 17/02/24 5947 2
4989 IT/컴퓨터컴알못의 조립컴퓨터 견적 연대기 (5) SSD, HDD, 파워, 케이스, 쿨러 등 4 이슬먹고살죠 17/02/24 4856 4
4990 일상/생각수돗물은 믿지만 배관은 못믿어~ 12 스타카토 17/02/24 4182 0
4992 게임[하스스톤] 2/24일 개발팀 용우 프로듀서 Q&A 정리 1 Leeka 17/02/24 3446 0
4993 일상/생각누구의 인생이건, 신이 머물다 간 순간이 있다. 22 SCV 17/02/24 5716 15
4994 IT/컴퓨터LG, G4/V10 업데이트 벌써 중단... 11 Leeka 17/02/24 4159 0
4995 일상/생각꼬마마녀 도레미 7 HD Lee 17/02/24 6529 5
4996 과학/기술외계 행성을 (진지하게) 발견하는 방법 8 곰곰이 17/02/24 5595 9
4997 사회呼朋呼友을 허하노라.. 29 tannenbaum 17/02/24 5144 8
4998 게임'2048' 후기 17 별비 17/02/24 7503 12
4999 사회텝스 논란 16 집정관 17/02/25 9792 0
5000 일상/생각통증 2 이건마치 17/02/25 4083 3
5001 창작잡채와 당신 16 열대어 17/02/25 3590 6
5002 요리/음식당면고로케를 그리며 3 시커멍 17/02/25 5965 2
5003 도서/문학홍차박스에 남긴 선물 : '밤이 선생이다(황현산)' 5 진준 17/02/25 4823 9
5004 역사일본의 다도(茶道)가 재미있는 점 5 눈시 17/02/25 5878 4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