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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3/10 05:35:20
Name   눈시
Subject   전국시대 세 자매 이야기 (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참 많은 첩을 들였습니다. 본부인이야 있었지만 두번다 정략결혼이었고, 그 때문인지 딱히 여자를 사랑하진 않은 모양입니다. 그냥 성욕 풀고 애 낳기 위해서? 첫번째 부인은 이마가와쪽이었고, 배신한 후에 멀리 하다가 노부나가의 명으로(혹은 그걸 핑계로) 죽입니다. 두번째는 히데요시의 동생이었는데, 전남편과 강제로 이혼시키고 억지로 보낸 거였죠. (이 때 히데요시는 동생을 보내고 어머니까지 인질로 보냅니다. 결국 이에야스도 굴복하죠) 인질이나 다름없었고, 우울하게 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는 정실 없이 첩만 늘려갔고, 그만큼 자식도 많았죠. 무려 11남 5녀, 62세까지 자식을 봤다고 합니다.


그 중에 특별한 사람은 있습니다. 아차노츠보네(阿茶局)였죠. 한번 유산한 후로 자식은 없었지만, 이에야스의 큰 신뢰를 얻어 동지 내지 참모 수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에야스 때부터 정치에 관여했고, 유산한 것도 임신한 몸으로 전투에 나가서 고생해서 그런 거였죠. 히데타다의 딸이 덴노에게 시집가자 그녀를 보좌하기 위해 같이 갈 정도였습니다. 이에야스가 죽은 후 다른 첩들은 다 머리 깎고 비구니가 됐지만 그녀만은 궁에서 도쿠가와를 위해 일합니다. 히데타다가 죽은 후에는 머리를 깎았다고 합니다만.

도쿠가와 히데타다는 고우바라기였습니다. 공처라가 하든 애처가라 하든 그 시대에는 참 특이한 일이었죠. 역시 전 애처가라 생각합니다. 고우가 아무리 기가 쎈들 쇼군이고 아들을 낳아야 되는 게 정치적인 이유였던 시대인데도 고우만 봤으니까요. 아 실수 한번은 넘어가 주는걸로 -_-; 공처가 이미지는 고우가 센 것도 있지만 첩을 들이지 않았다는 것 자체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조선에서도 첩을 들이지 않으면 남자가 너무 약하다고 여겨서 부인이 오히려 첩 하나는 들이게 하는 분위기였다고 하거든요. 아무튼 여자가 도구이던 시대, 그들의 사랑은 참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시대의 로맨티스트 타이틀은 아사이 나가마사같은 다른 사람이 가져갔네요. 전국시대 끝부분이라 인기가 덜한 것도 이유겠지만.

자, 그럼 그 히데타다와 고우의 아들, 이에미츠는 어땠을까요?


이에야스-히데타다-이에미츠 3대 쇼군의 이야기를 그린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


이에미츠는 어릴때부터 얼굴도 못생기고 병약했다고 합니다. 성격도 꽤 삐뚤어져서 공부보단 노는 걸 좋아했다고 하죠. 그냥 비행청소년이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밤마다 다른 사람인 척 밖으로 나가서 놀다 오고 말이죠.


부모 속깨나 썩일 상황인데, 그 부모가 제대로 키우질 못 하고 있었습니다. 젖먹이일 때부터 어머니의 품을 떠나 유모에게 맡겨졌거든요. 이에야스의 명이었죠. 이렇게 유모에게 맡기는 거야 흔하긴 했지만, 이게 참 부정적으로 흘렀죠. 특히 어미인 고우와 사이가 멀어진 것을 넘어 안 좋아진 겁니다. 멀어진 것 자체는 어쩔 수 없죠. 자기를 길러준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거야 당연한 거니까요. 그 유모가 가스가노츠보네, 후쿠라는 여인인데요. 히데타다는 그녀를 친엄마 이상으로 여깁니다. 오죽했으면 이에미츠가 이에야스와 그녀 사이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모자 사이가 험악해진 진짜 이유는 본인들만 알긴 하겠죠. 일단 둘의 성격차이가 크긴 했던 모양입니다. 유약한 이미지의 히데타다에 비해 이에미츠는 좀 막나가는 이미지입니다. 여자를 지나칠 정도로 꺼렸던 이유가 기센 엄마가 싫어서라는 말까지 있으니까요. 아래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이건 꽤 큰 문제였죠. 그 외에 볼 수 있는 건 둘째 타다나가에 대한 편애입니다. 고우 자신도 멀리 떠나보낸 자식보단 자기가 직접 키운 자식에 애정이 더 갔겠죠. 이렇게 양쪽의 사이는 멀어져만 갔습니다. 이게 나중에 비극을 낳게 되죠.

고우는 타다나가로 후계를 바꾸려고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후쿠가 이에야스에게 직접 달려가서 장유유서를 이유로 장남이 물려받아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일본에서 장자계승이 절대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죠. (오고쇼에게 직접 말할 수 있었다니 그녀의 지위를 알만하죠) 이에야스 역시 그걸 받아들였고, 이에미츠를 철저히 밀어줍니다. 손자 둘을 같이 볼 때도 둘 사이의 순서를 중시하면서 말이죠. 그리고 시스템 자체를 타다나가가 물려받지 못하게 만듭니다. 후계자를 바꿀 때 둘째를 배제한거죠. 이른바 고산케라 불리는, 에도 밖에서 도쿠가와를 지키는 세 가문에서 후계자를 정하게 한 겁니다. 상당히 특이한 시스템이긴 합니다. 후대에 형제상속이 된 적도 있었구요. 하지만 이 때는 그걸 정한 이에야스가 멀쩡히 살아있을 때였죠.


1616년 이에야스가 죽고 히데타다가 확실히 일본의 주인이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랬듯 23년 쇼군자리를 물려주고 오고쇼가 되었죠. 여전히 큰 권력을 쥐고 있긴 했지만 이에야스보다는 덜 휘둘렀다고 합니다. 이에미츠는 20대의 젊은 나이로 천천히 힘을 키워가기 시작했죠. 그리고 후쿠는 이에미츠의 깊은 신뢰를 받으며 오오쿠를 총괄했고, 정치에도 깊은 영향력을 미칩니다. 이에미츠와 함께 자라온 측근들을 그녀가 골랐고, 그가 감싸고 있는 한 중신들도 그녀를 건드리지 못 했죠.

+) 오오쿠는 쇼군의 여인들을 모아놓은 곳입니다. 일본판 하렘이라고 하는데, 조선에도 내명부라고 비슷한 게 있죠

나이를 먹으면서 여자에 관심 없는 게 꽤나 문제가 돘습니다. 히데타다가 그랬듯 후계자가 없는 건 꽤나 큰 결격사유니까요. 후계자가 있어야 했으니까요. 후쿠는 온갖 여자들을 들여보내며 -_-; 여자에 관심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녀만 나선 건 아니었죠. 사방에서 그에게 여자랑 좀 놀라고 닦달했습니다. 하지만 이에미츠는 요지부동이었으니... 드라마에 보면 그 고우가 히데타다에게 측실을 들이라고 합니다. 당신이 본을 보여야 아들이 여자에 관심을 가지지 않겠냐면서요. 창작인지 몰라도 참... 아내와 어머니는 다르구나 했어요.

특히 문제가 됐던 건 쇼군이 되면서 결혼했던 부인이었습니다. 공가(귀족)의 딸과 정략결혼한 것인데, 이에미츠는 철저히 그녀를 멀리합니다.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녀가 고우편이었기에 멀리했다, 공가(는 물론 천황)의 기를 죽이려 했던 생각 때문이었다 등으로 말이죠. 마지막까지 하긴 했나 모르겠습니다. 둘 사이엔 결국 자식이 없었고, 이에미츠가 그녀에게 남긴 것도 오십냥 정도였습니다. 쇼군이 자기 아내에게 말이죠. 첩의 자식이 본부인의 자식이 되는 건 당연하다시피했는데, 이조차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이정도면 정말 다른 이유를 떠나 그녀 자체를 싫어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교토에서 멀리 에도까지 와서 그렇게 살아야 했으니 참 불행한 삶이었죠.

+) 공가는 막부가 생긴 이후 교토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문화부터 말투 등 온갖 부분들이 말이죠. 그러면서 귀족은 귀족이니 자존심은 엄청나게 셌구요. 일단은 대우해주고 그걸 따라하고 싶었던 무가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양측의 사이가 좋을 순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으니, 타다나가를 홀대한 거였죠. 아들을 낳지 못하면서 교체는 몰라도 후계 얘기가 나올수밖에 없었습니다. 위에 고산케 얘기를 했는데, 저 고산케 중에도 후계가 될만한 아들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거든요. 이에미츠도 그를 꽤나 견제했는지 쇼군의 동생치고는 영지가 작은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가만히 있진 않았는지 쇼군이 둘이 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고 하구요. 그를 숙청하기 위한 명분일수도 있겠지만요.


그런 가운데 1626년, 고우는 세상을 뜹니다. 아사이 세자매의 막내로 자식이 일본의 주인이 되는, 큰언니도 못 이룬 꿈을 이룬 그녀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낳은 자식과 사이가 멀어졌고, 그 자식을 갈아치울 생각까지 했죠. 어느정도까지 사실인지는 몰라도 사람 일은 참 모르겠습니다. 세자매 중에 가장 나은 삶을 산 것 같긴 한데, 그 말년이 꼭 행복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뭐 그래도 평생 사랑한 남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거죠.

그녀가 죽은 후 이에미츠는 타다나가를 본격적으로 밀어내게 됩니다. 31년에 사람을 마구 죽인다는 이유로 칩거(가택연금?)를 명령합니다. 이 다음 해에 히데타다가 병에 걸렸고 결국 죽게 됐는데, 이 때 오지도 못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히데타다도 이에미츠를 위함이었는지 타다나가를 멀리했구요. 부자의 정을 떠나서 마지막 자리도 지키지 못하게 했다는 것, 의미가 꽤 크죠. 대신 고우가 죽은 후 배다른 동생을 정식으로 불렀고, 중임을 맡깁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고 살다가 형 밑에서 잘 살게 되었으니 참 재미있는 운명입니다.

이후 다른 명분을 잡아서 아예 영지를 몰수했고, 아예 유배 보냅니다. 타다나가는 이 현실을 버티지 못하고 자결했죠. 사람을 마구 죽이고 쇼군이 둘이라 할 정도로 거만하게 살았다고 하는데, 이게 명분인지 진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자결 소식을 듣고 이에미츠가 충격 먹고 앓아 누웠다고 하는데, 이 역시 진심일지는 알 수 없죠. 정말이라면 어머니의 사랑을 뺏어간 것과 형제사이에도 권력다툼을 해야 했던 것 등에서 나온 애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이조차도 악어의 눈물일 수 있구요.

나름대로 중앙집권을 이루긴 했지만 이에미츠의 입지는 그리 탄탄하지 않았습니다.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약한 걸 봐도 그랬구요. 하지만 그는 명군으로 인정받고, 250년이나 가는 에도 막부의 토대를 잘 쌓았다고 평가됩니다. 나이 들어서는 여자에 관심도 가져서 자식도 봤고 말이죠 (...) 나름대로 대기만성의 그릇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뭐 이런 가운데서도 후쿠에 대한 신뢰는 계속됐죠. 심지어 그녀를 황궁에 사자로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워낙에 격이 맞지 않아서 거부했는데도 밀어붙였구요. 그래서 그녀가 예전에 모셨던 주인의 양녀로 들어가는 형식으로 나름의 지위를 얻어냅니다. 나중에는 무려 종2품까지 오르구요. 오죽했으면 당시 덴노가 자리를 물려주고 은거하는 - 막부에 이런 굴욕을 당했다 - 원인 중 하나로 꼽힐 정도였죠. 일개 유모 출신으로 배후에서 정국을 주무르는 사람... 만약 이에미츠가 정치를 제대로 못 했다면 그녀도 악녀로 이름 높았겠죠. 충분히 그럴상황이니까요.


그런 가운데인 1633년, 하츠는 조카 이에미츠 등 막부의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눈을 감습니다. 고우도 죽고 히데타다도 죽고 그녀까지 갔네요. 아사이 비극의 세자매로 마지막까지 오래 살았습니다. 남편도 잃고 자식도 없었지만, 언니와 동생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게 나았을지도요. 세자매는 불행하면서도 전국시대에 나름 큰 발자국을 남긴 여인들의 이야기로 남았죠. 이렇게 전국시대를 거친 이들이 세상을 뜨면서 에도 막부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구요


세자매의 이야기를 다룬 고우-공주들의 전국. 평가는 좋지 않고 저도 보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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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런저런 이야기 다 하려니 중구난방이 됐군요. ' -'a 이해해 주세요~



5
  • 끝났군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항상 지켜보고 있습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잘봤어용 개추야!
  • 늘 지켜보고 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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