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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3/17 18:23:44
Name   캡틴아메리카
Subject   [실화] 내 첫 짝사랑은 고닥교 솩쌤.
(이 이야기는 실제 제 이야기입니다. 약간의 msg가 들어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말체인 것 양해 부탁드립니다. 당연히 그러시진 않겠지만, 다른 곳으로의 펌은 사절입니다.)



나는 어릴 때 부터 수학을 좋아했다.

사실 좋아하기는 했지만, 경시대회를 나갈 만큼, 혹은 과학고에 진학할 수 있을 만큼 아주 특출나게 잘하지는 않았다.

그저 수학 문제를 봤을 때 느끼는 호기심이 좋아서 수학 공부를 했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여전히 수학은 내 인생의 거의 전부가 될 만큼 거의 매일 수학 책과 논문을 보면서 살아왔다.

그렇다. 내 삶에서 수학은 운명과 같은 존재다.



아니... 수학이 아니라 그녀가 내 삶의 운명이었다. 그녀는 내 [고닥교 솩쌤](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었다.

나는 고1 때 그녀를 보고 첫 눈에 반했다. 그녀는 천사같은 미소와 매혹적인 눈빛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아쉽게도 내가 고1 때 그녀는 1학년 수학 담당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보기 위해서 가끔 교무실을 일부러 지나가기도 했다.

고2 이과에 올라가면서 드디어 그녀와 직접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가 나에게 처음 가르쳐 준 수학은 행렬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나를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학기 초 며칠 간을 행렬 공부만 하였다.

그리고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그녀는 [영인자 행렬은 왜 역행렬이 존재하지 않는 지]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칠판 앞에 나와서 증명해 보라고 하였다.

나는 재빨리 손을 들려고 했지만, 한 녀석이 간발의 차로 나보다 먼저 손을 들었다.

(그 녀석은 이미 우리 학교에서 수학으로 꽤 상위권으로 유명한 학생이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녀석도 그녀를 좋아했다고 한다.)

나는 무척 아쉬워하며, 그 녀석이 하는 증명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 녀석의 증명 시작을 보는 순간, 나는 혼자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아싸, 쌤통이다]를 외쳤다.

그 녀석은 증명을 한 것이 아니라  [영인자 행렬은 역행렬이 존재한다]라는 명제의 [반례]를 든 것이었다.

그 녀석은 자리로 돌아오고, 당연히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귀류법[영인자 행렬이 역행렬이 존재한다고 하자.]으로 문장을 시작하여 멋지게 증명을 마쳤다.

그리고 당연히도 그 날을 계기로 나는 그녀의 눈에 들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수업이 없는 날에는 어려운 문제를 들고 교무실로 그녀를 찾아갔다. 심지어는 아는 문제도 일부러 모르는 척하고 그녀를 찾아간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도 내가 보고 싶었는지(이건 아마도 내 뇌망상이겠지만...) 수업 끝나기 바로 직전에 칠판에 어려운 수학 문제들을 적어 주고는 푼 사람은 어떻게 풀었는지 교무실로 찾아오라고 하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주말이 싫었다. 주말에는 그녀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당시에는 한메일이 우리나라 원탑 이메일로 대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이후 한메일은 온라인우표제로 몰락한다.)

이메일로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기도 했고, 심지어는 [사랑한다]고 고백한 적도 있었다. 교실이나 교무실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해서도 안 될 말을 이메일을 통해 하였다.

(이 당시 그녀와 주고 받았던 이메일은 모두 아직도 지우지 않고 보관중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내 진로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메일을 쓰게 되었다.

당시 나는 [유리수는 덧셈에 닫혀있다]는 명제를 고찰하게 되었다.

유리수가 덧셈에 닫혀있다는 말은 [유리수 + 유리수 = 유리수]가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었다.



파이(원주율) = 3.1415926535.... 는 이렇게 쓸 수 있다.

3 + 0.1 + 0.04 + 0.001 + 0.0005 + 0.00009 + 0.000002 + ........

그런데 3은 유리수, 0.1도 유리수, 0.04도 유리수, 0.001도 유리수, 0.0005도 유리수, 0.00009도 유리수, 0.000002도 유리수, ........

[아니, 유리수는 덧셈에 닫혀있는데... 유리수를 계속 더해서 나온 파이(원주율)는 왜 무리수지?!?]



나는 이것이 궁금하여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녀는 [실수의 완비성]이라는 당시 나에게는 생소한 용어를 사용하여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수학과나 수학교육과에 가서 해석학이라는 과목을 듣게 되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이 순간 내 진로가 정해진 것이었다.

나는 이 때를 기점으로 수학 공부의 비중이 더더욱 늘어났다. 고3이 되어서도 말이다.

학교에 등교해서 야간 자율학습이 끝날 때 까지 수학 문제집만 봤다.

집에서는 어머니께, 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께 수학 공부 좀 그만하라고 크게 혼도 났었다. 다들 아무리 수학과를 가고 싶어도 수학만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해냈다. 수학만 공부해서 수학과에 진학했다.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님, 감사합니다.)

이후 해석개론을 들으며 위 의문의 답을 알게 되었고, 곧장 그녀에게 전화하여 답을 알게 되었다고 전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군대를 가게 되어서 인 것 같다.)

교육청에서 선생님 찾기로도 검색이 되질 않는 것을 보면 교사를 그만 두신 것 같다.

물론 이메일을 알고 있으니 다시 연락을 해보고 싶지만, 이미 연락이 안 된 지 10년이 넘은 지금,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게 사실이다.

이제는 학위까지 받았고, 어떻게 보면 그녀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기에,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 한마디라도 전하고 싶은데 말이다.

누군가 그랬다. 짝사랑은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이 좋다고... 어쩌면 용기내어 연락을 하는 것 보다 이래도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그녀는 내 첫 짝사랑이다.]



p.s.1 수능이 끝나고 그녀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단 둘이 그녀의 집 주변을 산책했던 기억도, 그녀의 집에서 함께 소파에 앉아 있었던 기억도 말이다.

p.s.2 혹시라도 지금의 여자친구가 이 글을 보고 질투를 하지 않을까 두렵다.



14
  • 일단 추천
  • 질투를 유발하는 글은 추천
  • 짝사랑은 추억일 뿐 이죠
  • "첫" 짝사랑..눈물
  • 춫천
  • "첫"짝사랑..눈물 (2)


집정관
수학은 추천
캡틴아메리카
이 글은 사실 짝사랑을 가장한 수학 이야기죠. ㅋㅋㅋ
기아트윈스
해찬이형께 감사를.
캡틴아메리카
해찬이형 찬양하라!
다람쥐
첫 짝사랑이라니 다음 짝사랑얘기도 들려주세요
캡틴아메리카
사실 다음 짝사랑도 고 2때 였습니다. ㅎㅎㅎ 같은 학원, 같은 반의 여학생이었죠.
유리소년
저는 밥이 먹고 싶어서 수학을 때려치고 개발자가 되었지요.
10년 전 고등학교 때 제가 수학 공부하면서 끄적였던 것들을 지금은 거의 읽을 수가 없네요.
캡틴아메리카
취미로 다시 한 번 공부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이전에 수학을 공부하던 추억도 되살아나지 않겠습니까 ㅎㅎ
충전기
사실 선생님 찾기는 교사가 동의 안하면 안 나오는거일수도 있습니다.
캡틴아메리카
그렇군요. 그런데 왠지 동의 안 하실 분은 아닐 것 같고, 그만 두신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ㅎㅎ
자공진
저도 고등학교 때 젊은 남자 수학선생님 좋아해서 공부 열심히 했었는데... 소질이 없었습니다. 수학 잘하시는, 좋아하시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캡틴아메리카
남자 솩쌤 꽤나 훈남이셨나봐요. ㅎㅎㅎ
Darwin4078
수학만 잘했어도...ㅠㅠ
캡틴아메리카
다윈님은 대신 날두가 있잖습니까 ㅋㅋㅋ
수학을 잘하고 싶습니다...ㅠ.ㅠ
이과인데 수학을 못하고 국어를 잘합니다.
캡틴아메리카
그럼 문과로 가셔야.. 하지 않나요?;; 진로 선택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입시용) 수학은 요즘 EBS의 [이하영] 솩쌤이 중하위권 대상으로 정말 좋으신 것 같았습니다.
문과로 가긴 늦어서...정면돌파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ㅠ.ㅠ
학과는 건축학과,기계공학과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2학기 되봐야 알 듯 합니다.
파란아게하
고등학교 때 좋아하는 쌤이 없어서 제가 공부를 포기했습니다.....
춫천
캡틴아메리카
대신 탐읽남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ㅋㅋㅋ
그림자군
좋은 학교네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교생실습도 없었던...
선생님들은 온통 남자...
선생님이자 선배님이신 남자선생님들...
선생님이자 선배님이신 고참 선생님들 등쌀에
젊은 선생님이자 선배님이신 선생님들은 기를 못폈고...
여선생님 단 한 분 계심...
정년퇴임 앞둔 양호선생님...
아흐... 뭔 그런 학교가 다 있는지 원... 요즘도 그런지... 에효;;;
캡틴아메리카
사립이시군요. 제 모교도 사립입니다. ㅎㅎㅎ

심지어 한 재단에 남고(제 모교)와 여고가 함께 붙어있는 학교였죠. ㅎㅎ

제가 다닐 때 계시던 많은 선생님들이 남고와 여고를 왔다 갔다 하시면서 아직까지 교단에 계시고,

심지어 제게 가르침을 주신 물리 선생님은 지금 모교 교감 선생님이 되셨고, 국어 선생님은 여고의 교장이 되셨네요.

그런데 제가 짝사랑한 수학 선생님은 사라지셨음;;; ㅠㅜ
캡틴아메리카
사실 이 글의 포인트는 [p.s.1]인데 아무도 주목하질 않으시네요. ㅎㅎㅎ

여선생이 남학생을 자기집으로 초대해서...(이하 생략...)
은머리
뭔일이 났나여.
캡틴아메리카
상상에 맡깁니다? ㅋㅋㅋ
Morpheus(R)
원주율에서 빙글빙글 돌줄 알았네요
은머리
어머나.......사랑한다고 하셨다니.......애틋...
캡틴아메리카
이전에 보냈던 메일 다시 읽어봤는데, 너무 오글거려 껐습니다. ㅋㅋㅋㅋ
전 수학과는 아니었는데, 우연히 해석학 수업을 듣게 되었고 그 간결함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연습 문제 중에 '이것 증명하고 상 받아라'라는 말이 있었던게 기억이 나네요.
캡틴아메리카
사실 그런 해석학도 저는 굉장히 복잡한 학문이랑 생각해요^^; 그래서 해석학을 제일 싫어했습니다. ㅎㅎㅎㅎ

저는 대수학을 제일 좋아하고 제일 자신있는데, 그 이유가 [너무 간결하고 아름다워서]거든요.
어찌 보면 지금의 캡틴아메리카 님이 되신 것은 운명이었던 거군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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