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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5/08 02:22:56 |
Name | 와인하우스 |
Subject | 평범함에 대한 반골의 글. (뻘글 주의) |
작성자가 본문을 삭제한 글입니다. 9
이 게시판에 등록된 와인하우스님의 최근 게시물 |
문단마다 너무 적은 근거나, 혹은 이미지에 편승한 주장들이라 이게 반박을해도 되는건지 의아한 부분들은 있습니다만, 불행회로를 돌리고있다기엔 그냥 소비하는사람들중 많은이들은 축장이나 교육비용, 재생산비용의 포기를 통해 보이는 소비를 시도하는 경우가많고 이게 최근의 가치관변화에 따른 행태변화기도하죠. 단절적 행복이 더 강조되는시대이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드러낼 창구가 늘어나서 인식편향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랑 이만큼벌어서 미래설계못한다는 논리적접점이 없어보이고요. 시장지상주의자들이 아니라면... 더 보기
문단마다 너무 적은 근거나, 혹은 이미지에 편승한 주장들이라 이게 반박을해도 되는건지 의아한 부분들은 있습니다만, 불행회로를 돌리고있다기엔 그냥 소비하는사람들중 많은이들은 축장이나 교육비용, 재생산비용의 포기를 통해 보이는 소비를 시도하는 경우가많고 이게 최근의 가치관변화에 따른 행태변화기도하죠. 단절적 행복이 더 강조되는시대이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드러낼 창구가 늘어나서 인식편향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랑 이만큼벌어서 미래설계못한다는 논리적접점이 없어보이고요. 시장지상주의자들이 아니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서 좋게 봐 줄수없다는 얘기에 어쩌면 본문에서 말하는 '니가 헬조선 소리하는게 불행회로돌리는거지'의 저격대상과 제가 어느정도 일치한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좋게 봐준다는말은 좀 열받네요ㅋㅋ.
오히려 본문으로 일관되게 불행경쟁부추기며 더 불행한사람들앞에서 그만헬조선이라고 징징대라고 한다면 당장 개도국이상의 국가들간 중위계급이하들은 제3세계 빈곤계층까지 떨어져야 하는걸까요ㅋㅋ 고통의 발화에 과연 자격이라는게 있는건가 싶기도 하고요. 여튼 서민도 아니면서 서민이네 불행이네 헬조선이네 하지말라는게 이해가 가는부분도 있지만, 이미 가계부채증가, 양극화심화, 노인빈곤, 청년취업률, 하우스푸어 증가, 중산층해체 등이 데이터로 나오는 상황인 이상 많은인구가 경제적 몰락의 과정에 있다고 봐야하고 이게 삶이 한 시점이아닌 연속성으로이해된다고 할때 그들도 몰락해가는 과정과 반등의 희망이 없다는 시점에서 충분히 헬이라고 이야기할만하다는 생각이듭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서 좋게 봐 줄수없다는 얘기에 어쩌면 본문에서 말하는 '니가 헬조선 소리하는게 불행회로돌리는거지'의 저격대상과 제가 어느정도 일치한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좋게 봐준다는말은 좀 열받네요ㅋㅋ.
오히려 본문으로 일관되게 불행경쟁부추기며 더 불행한사람들앞에서 그만헬조선이라고 징징대라고 한다면 당장 개도국이상의 국가들간 중위계급이하들은 제3세계 빈곤계층까지 떨어져야 하는걸까요ㅋㅋ 고통의 발화에 과연 자격이라는게 있는건가 싶기도 하고요. 여튼 서민도 아니면서 서민이네 불행이네 헬조선이네 하지말라는게 이해가 가는부분도 있지만, 이미 가계부채증가, 양극화심화, 노인빈곤, 청년취업률, 하우스푸어 증가, 중산층해체 등이 데이터로 나오는 상황인 이상 많은인구가 경제적 몰락의 과정에 있다고 봐야하고 이게 삶이 한 시점이아닌 연속성으로이해된다고 할때 그들도 몰락해가는 과정과 반등의 희망이 없다는 시점에서 충분히 헬이라고 이야기할만하다는 생각이듭니다.
1. 좋게 봐줄 수 없다는 말이 오만하게 보일 수 있겠군요. 이 점은 제 실수.
2. 재생산을 포기한 소비, 중산층의 몰락 등 말씀하신 게 대체로 맞아요. 그런 점에서 헬조선론이 완전히 그르다고 생각하는 건 물론 아니에요. 오히려 맞는 말이 많죠. 그걸 '헬조선'이라는 포장지에 씌우는 건 좀 별로지만.
3. 그런데 저는 도무지 재생산이 소비(자유)에 우선되어야할 가치라고는 생각이 안 돼요. 순수한 자유주의자로서 제겐 이건 이것대로 충분히 긍정적인 현상이거든요.
4. 최저임금의 의미는 미래에 있는 게 아니라 현재... 더 보기
2. 재생산을 포기한 소비, 중산층의 몰락 등 말씀하신 게 대체로 맞아요. 그런 점에서 헬조선론이 완전히 그르다고 생각하는 건 물론 아니에요. 오히려 맞는 말이 많죠. 그걸 '헬조선'이라는 포장지에 씌우는 건 좀 별로지만.
3. 그런데 저는 도무지 재생산이 소비(자유)에 우선되어야할 가치라고는 생각이 안 돼요. 순수한 자유주의자로서 제겐 이건 이것대로 충분히 긍정적인 현상이거든요.
4. 최저임금의 의미는 미래에 있는 게 아니라 현재... 더 보기
1. 좋게 봐줄 수 없다는 말이 오만하게 보일 수 있겠군요. 이 점은 제 실수.
2. 재생산을 포기한 소비, 중산층의 몰락 등 말씀하신 게 대체로 맞아요. 그런 점에서 헬조선론이 완전히 그르다고 생각하는 건 물론 아니에요. 오히려 맞는 말이 많죠. 그걸 '헬조선'이라는 포장지에 씌우는 건 좀 별로지만.
3. 그런데 저는 도무지 재생산이 소비(자유)에 우선되어야할 가치라고는 생각이 안 돼요. 순수한 자유주의자로서 제겐 이건 이것대로 충분히 긍정적인 현상이거든요.
4. 최저임금의 의미는 미래에 있는 게 아니라 현재 최소한도로 보장되어야 할 삶(의,식,주)에 있다고 생각해요. 미래까지 따져서(그 미래란 어디까지 말하는 걸까요? 영어 학원비? 전세 자금?) 금액을 책정한다는 건 너무 현실감이 없는 소리라는 생각 밖에 안드네요.
5. 고통의 발화에 자격이 있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고양이 쥐 생각해준다는 속담이 있듯 발화를 하는 게 어울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나뉘는 것도 사실이죠. 어째 글이 헬조선론까는 식으로만 흘러갔는데, 중간에 평균소득이나 해외여행 통계에서 헛다리 짚는 사람들 얘기를 한 것은 그렇게 현실감없고 실제로는 먹고살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어디서는 헬조선 타령을 하는 게 못마땅해서였어요. 중산층은 몰락해도 어쨌든 생활의 유지가 되지만 극빈층은 그렇지 않은데, 헬조선론을 논할 때 극빈층 얘기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죠. 구체적인 문제를 떠나 '헬'이라는 접두어를 붙이기엔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6. 니쿄님 하시는 얘기 잘 보고 있고 공감하는 부분도 많지만, 저랑 니쿄님은 근본적으로 너무 다른 사람일거예요. 제게 있어 노동 문제나 경제 문제가 무시해도 되는 것들은 아니지만, 자유의 문제보다 중요하진 않아요. 그리고 그 자유란 내게 안좋은 것까지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하죠. 저는 극빈층에 가깝고 (쓸 데가 없어서 안 쓰는 것과 달리) 저축할 생각은 앞으로도 거의 없지만 그건 제 자유의 결과지 재생산을 포기해서가 아닙니다.
2. 재생산을 포기한 소비, 중산층의 몰락 등 말씀하신 게 대체로 맞아요. 그런 점에서 헬조선론이 완전히 그르다고 생각하는 건 물론 아니에요. 오히려 맞는 말이 많죠. 그걸 '헬조선'이라는 포장지에 씌우는 건 좀 별로지만.
3. 그런데 저는 도무지 재생산이 소비(자유)에 우선되어야할 가치라고는 생각이 안 돼요. 순수한 자유주의자로서 제겐 이건 이것대로 충분히 긍정적인 현상이거든요.
4. 최저임금의 의미는 미래에 있는 게 아니라 현재 최소한도로 보장되어야 할 삶(의,식,주)에 있다고 생각해요. 미래까지 따져서(그 미래란 어디까지 말하는 걸까요? 영어 학원비? 전세 자금?) 금액을 책정한다는 건 너무 현실감이 없는 소리라는 생각 밖에 안드네요.
5. 고통의 발화에 자격이 있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고양이 쥐 생각해준다는 속담이 있듯 발화를 하는 게 어울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나뉘는 것도 사실이죠. 어째 글이 헬조선론까는 식으로만 흘러갔는데, 중간에 평균소득이나 해외여행 통계에서 헛다리 짚는 사람들 얘기를 한 것은 그렇게 현실감없고 실제로는 먹고살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어디서는 헬조선 타령을 하는 게 못마땅해서였어요. 중산층은 몰락해도 어쨌든 생활의 유지가 되지만 극빈층은 그렇지 않은데, 헬조선론을 논할 때 극빈층 얘기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죠. 구체적인 문제를 떠나 '헬'이라는 접두어를 붙이기엔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6. 니쿄님 하시는 얘기 잘 보고 있고 공감하는 부분도 많지만, 저랑 니쿄님은 근본적으로 너무 다른 사람일거예요. 제게 있어 노동 문제나 경제 문제가 무시해도 되는 것들은 아니지만, 자유의 문제보다 중요하진 않아요. 그리고 그 자유란 내게 안좋은 것까지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하죠. 저는 극빈층에 가깝고 (쓸 데가 없어서 안 쓰는 것과 달리) 저축할 생각은 앞으로도 거의 없지만 그건 제 자유의 결과지 재생산을 포기해서가 아닙니다.
반골적인 태도는 언제나 필요한 것이겠지만
역설적으로 선민의식이나 귀족적 오만함까지 치닫아버리게 되면
생산적일 가능성은 낮아지고 말하는 이 듣는 이 대상인 이들에게 상처만 남기지 않을까요.
본문의 부분 부분에서 어림하는 가정들이면 어떤 주장이라도 성립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범위만 보고 살아요. 매체의 발전이 그 한계를 많이 넓혀 주었겠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기술도 사람의 한계를 완벽하게 메워줄 수는 없어요. 지금의 기술이 제공하는 것마저도 완벽하게 받아들이지 못하지요. 진화라도 이루어진다면 모를까.
역설적으로 선민의식이나 귀족적 오만함까지 치닫아버리게 되면
생산적일 가능성은 낮아지고 말하는 이 듣는 이 대상인 이들에게 상처만 남기지 않을까요.
본문의 부분 부분에서 어림하는 가정들이면 어떤 주장이라도 성립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범위만 보고 살아요. 매체의 발전이 그 한계를 많이 넓혀 주었겠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 기술도 사람의 한계를 완벽하게 메워줄 수는 없어요. 지금의 기술이 제공하는 것마저도 완벽하게 받아들이지 못하지요. 진화라도 이루어진다면 모를까.
모든 개인들은 글을 쓸때에 자신의 경험세계를 근거해서 쓰잖아요. 타인을 염려하고 타인의 눈높이에 맞춰서 대화를 나눌수 있는 이는 현자라고 우리들은 이야기하는것 같아요. 그러니.... 모든글들에서 그들이 어떤 경제점 관점에서 사회를 인식하고 공유하는지는 우리가 관찰할수 있으나 우리는 관찰자의 수준에 머무르게 되는것 같아요.
가끔 그러다가 우리와 비슷한.의식체계 기호 성향 혹은 경제적 혹은 사회적 가치가 맞는 글을 발견하게 되면 댓글도 달고 혹은 반대라면 거부감에 키배라도 하게 되겠지요.
현상에 대해서 분노할 필요는 없는것... 더 보기
가끔 그러다가 우리와 비슷한.의식체계 기호 성향 혹은 경제적 혹은 사회적 가치가 맞는 글을 발견하게 되면 댓글도 달고 혹은 반대라면 거부감에 키배라도 하게 되겠지요.
현상에 대해서 분노할 필요는 없는것... 더 보기
모든 개인들은 글을 쓸때에 자신의 경험세계를 근거해서 쓰잖아요. 타인을 염려하고 타인의 눈높이에 맞춰서 대화를 나눌수 있는 이는 현자라고 우리들은 이야기하는것 같아요. 그러니.... 모든글들에서 그들이 어떤 경제점 관점에서 사회를 인식하고 공유하는지는 우리가 관찰할수 있으나 우리는 관찰자의 수준에 머무르게 되는것 같아요.
가끔 그러다가 우리와 비슷한.의식체계 기호 성향 혹은 경제적 혹은 사회적 가치가 맞는 글을 발견하게 되면 댓글도 달고 혹은 반대라면 거부감에 키배라도 하게 되겠지요.
현상에 대해서 분노할 필요는 없는것 같아요.
대신에 헬조선인것은 맞지만 나의 포지션이 어디에 있든지 스스로가 나와 다른이 모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늘 노력을 하는것은 꼭 필요하다고 보아요.
숨쉬기 힘든 상황에 살아도 개개인들의 리질리언스 그릿 강한 원천적으로 내재된 긍정적 동기들은 개인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지켜주는 보호역할을 해요.
그래서 사회에서 사회의 룰안에서 도움을 받는 개인들은 시스템내에서 공익의 고마움을 알고 나 뿐만이 아닌 타인의 권익을 위해 그냥 모른체하면 안되는것겠지요. 선거가 가장 큰 권익 행사일터이구요. 그런 역할을 많이하면 경제적 갭이 줄어들겠지요.
평범함 조차 평범이 안된 사회라는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책임감에 노력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랄뿐이며 나 또한 그 책임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것에 가끔 딜레마가 생기고 글쓰기가 무거워지는것 같아요.
가끔 그러다가 우리와 비슷한.의식체계 기호 성향 혹은 경제적 혹은 사회적 가치가 맞는 글을 발견하게 되면 댓글도 달고 혹은 반대라면 거부감에 키배라도 하게 되겠지요.
현상에 대해서 분노할 필요는 없는것 같아요.
대신에 헬조선인것은 맞지만 나의 포지션이 어디에 있든지 스스로가 나와 다른이 모두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늘 노력을 하는것은 꼭 필요하다고 보아요.
숨쉬기 힘든 상황에 살아도 개개인들의 리질리언스 그릿 강한 원천적으로 내재된 긍정적 동기들은 개인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지켜주는 보호역할을 해요.
그래서 사회에서 사회의 룰안에서 도움을 받는 개인들은 시스템내에서 공익의 고마움을 알고 나 뿐만이 아닌 타인의 권익을 위해 그냥 모른체하면 안되는것겠지요. 선거가 가장 큰 권익 행사일터이구요. 그런 역할을 많이하면 경제적 갭이 줄어들겠지요.
평범함 조차 평범이 안된 사회라는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책임감에 노력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랄뿐이며 나 또한 그 책임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것에 가끔 딜레마가 생기고 글쓰기가 무거워지는것 같아요.
중부담 중복지에서 그런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서민들이 과연 그 중부담을 직접 맞게 되면 어떤 표정일지가 솔직히 궁금해요.
제가 알바하는 학원은 학원비가 한과목당 한달에 100만원 정도 되는데, 여기 다니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자기가 평범한 서민인줄 알거든요 ㅋ 알고보면 70만원짜리 월세방 살고 부모님들 죄다 교수, 변호사, 의사, 기업임원 이렇는데도 말이죠 ㅋㅋㅋ
얼마전에 본 자료에서 인서울 대학교 대학생중 평균적으로 30~40%가 부모의 소득이 10분위라더군요. 거의 1/3의 인서울 대학생의 가정이 상위 10%라는 ... 더 보기
제가 알바하는 학원은 학원비가 한과목당 한달에 100만원 정도 되는데, 여기 다니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자기가 평범한 서민인줄 알거든요 ㅋ 알고보면 70만원짜리 월세방 살고 부모님들 죄다 교수, 변호사, 의사, 기업임원 이렇는데도 말이죠 ㅋㅋㅋ
얼마전에 본 자료에서 인서울 대학교 대학생중 평균적으로 30~40%가 부모의 소득이 10분위라더군요. 거의 1/3의 인서울 대학생의 가정이 상위 10%라는 ... 더 보기
중부담 중복지에서 그런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서민들이 과연 그 중부담을 직접 맞게 되면 어떤 표정일지가 솔직히 궁금해요.
제가 알바하는 학원은 학원비가 한과목당 한달에 100만원 정도 되는데, 여기 다니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자기가 평범한 서민인줄 알거든요 ㅋ 알고보면 70만원짜리 월세방 살고 부모님들 죄다 교수, 변호사, 의사, 기업임원 이렇는데도 말이죠 ㅋㅋㅋ
얼마전에 본 자료에서 인서울 대학교 대학생중 평균적으로 30~40%가 부모의 소득이 10분위라더군요. 거의 1/3의 인서울 대학생의 가정이 상위 10%라는 거죠.
사실 우리나라에선 서민의 정의조차 제대로 내려지지 않았어요. 나까지만 서민인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0이하 받는 사람이 어딨냐는 글에서 솔직히 어이가 나갔어요. 그리고 그들은 평범한 직장인이 아니다라는 더 어이없는 말까지 나오더군요. ㅋㅋㅋㅋ 그럼 치킨집, 마트에서 일하고 식당,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생계유지로 일 하는 게 아니고 취미로 일하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과연 서민을 위해야 한다는 사람들중 서민의 생활이 어떻는지조차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긴 해요. 서민이 뭔지 모르는 건 정치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제가 알바하는 학원은 학원비가 한과목당 한달에 100만원 정도 되는데, 여기 다니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자기가 평범한 서민인줄 알거든요 ㅋ 알고보면 70만원짜리 월세방 살고 부모님들 죄다 교수, 변호사, 의사, 기업임원 이렇는데도 말이죠 ㅋㅋㅋ
얼마전에 본 자료에서 인서울 대학교 대학생중 평균적으로 30~40%가 부모의 소득이 10분위라더군요. 거의 1/3의 인서울 대학생의 가정이 상위 10%라는 거죠.
사실 우리나라에선 서민의 정의조차 제대로 내려지지 않았어요. 나까지만 서민인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0이하 받는 사람이 어딨냐는 글에서 솔직히 어이가 나갔어요. 그리고 그들은 평범한 직장인이 아니다라는 더 어이없는 말까지 나오더군요. ㅋㅋㅋㅋ 그럼 치킨집, 마트에서 일하고 식당,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생계유지로 일 하는 게 아니고 취미로 일하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과연 서민을 위해야 한다는 사람들중 서민의 생활이 어떻는지조차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궁금하긴 해요. 서민이 뭔지 모르는 건 정치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저도 잘 읽었습니다. 추천드립니다.
저도 헬조선 얘기 들으면서 항상 생각하는게
이게 무얼 위한 헬조선이냐는 겁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라면 이해하겠는데
현실은 자기 비하를 위한 테제가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는 논리 전개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헬조선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 마다 드는 생각은
아직도 범 지구적으로 봤을 때
굶어 죽을 걱정, 오늘 잘 곳을 찾아야 할 걱정, 내일 뜨는 해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수십억이고
멀리 갈 ... 더 보기
저도 헬조선 얘기 들으면서 항상 생각하는게
이게 무얼 위한 헬조선이냐는 겁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라면 이해하겠는데
현실은 자기 비하를 위한 테제가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는 논리 전개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헬조선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 마다 드는 생각은
아직도 범 지구적으로 봤을 때
굶어 죽을 걱정, 오늘 잘 곳을 찾아야 할 걱정, 내일 뜨는 해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수십억이고
멀리 갈 ... 더 보기
저도 잘 읽었습니다. 추천드립니다.
저도 헬조선 얘기 들으면서 항상 생각하는게
이게 무얼 위한 헬조선이냐는 겁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라면 이해하겠는데
현실은 자기 비하를 위한 테제가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는 논리 전개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헬조선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 마다 드는 생각은
아직도 범 지구적으로 봤을 때
굶어 죽을 걱정, 오늘 잘 곳을 찾아야 할 걱정, 내일 뜨는 해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수십억이고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에 준하는 걱정을 하며 살았던 세대들이 우리 부모님 세대(40~50년대 생들, 더 넓게 보면 60년대 생 까지만 해도 그 시대의 편린은 봤다고 할 수 있죠)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나라는 사람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집이 있어야 해', '나라는 사람은 1년에 해외여행 한번은 해야해' 라는 식의 발언에
대체 무슨 반응을 해주는게 맞는가라는 고민이 생깁니다.
그걸 지향점으로 삼겠다는 자세는 좋은데
우리는 진짜 굶어죽을 걱정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과 경쟁하고 있거든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굶어 죽는 사람들도 천지삐까린데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같은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당위와 지향을 구분해야 한다는 말이죠.
우리가 지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가 하는 담론에 대해서는 백번 찬성합니다만
헬조선 담론이 헬조선 담론에서 끝나는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진짜 헬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저도 헬조선 얘기 들으면서 항상 생각하는게
이게 무얼 위한 헬조선이냐는 겁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현실에 대한 비판이라면 이해하겠는데
현실은 자기 비하를 위한 테제가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는 논리 전개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헬조선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 마다 드는 생각은
아직도 범 지구적으로 봤을 때
굶어 죽을 걱정, 오늘 잘 곳을 찾아야 할 걱정, 내일 뜨는 해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수십억이고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에 준하는 걱정을 하며 살았던 세대들이 우리 부모님 세대(40~50년대 생들, 더 넓게 보면 60년대 생 까지만 해도 그 시대의 편린은 봤다고 할 수 있죠)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나라는 사람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집이 있어야 해', '나라는 사람은 1년에 해외여행 한번은 해야해' 라는 식의 발언에
대체 무슨 반응을 해주는게 맞는가라는 고민이 생깁니다.
그걸 지향점으로 삼겠다는 자세는 좋은데
우리는 진짜 굶어죽을 걱정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과 경쟁하고 있거든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굶어 죽는 사람들도 천지삐까린데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같은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당위와 지향을 구분해야 한다는 말이죠.
우리가 지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가 하는 담론에 대해서는 백번 찬성합니다만
헬조선 담론이 헬조선 담론에서 끝나는 현재 상황이 지속되면
진짜 헬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논의를 조금만 확장시켜보자면 과거에는 안 그랬는데 굳이 이제 와서 불행회로를 돌리는 이유가 무엇인가도 한 번 생각해 봐야죠. 비합리적인 발상이더라도 그게 지배적인 관념이 된 것에는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하니까요. 개인들은 그 세대가 경험한 현실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역사적으로는 커다란 개선일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그게 본인 세대에서 체감할 수 없다면 감정적으로 크게 이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본인의 삶과 큰 관련성을 상정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엄마가 어렸을 때 음식 남길 때마다 북한 애들은 이것도 없어 ... 더 보기
논의를 조금만 확장시켜보자면 과거에는 안 그랬는데 굳이 이제 와서 불행회로를 돌리는 이유가 무엇인가도 한 번 생각해 봐야죠. 비합리적인 발상이더라도 그게 지배적인 관념이 된 것에는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하니까요. 개인들은 그 세대가 경험한 현실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죠. 그래서 역사적으로는 커다란 개선일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그게 본인 세대에서 체감할 수 없다면 감정적으로 크게 이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본인의 삶과 큰 관련성을 상정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엄마가 어렸을 때 음식 남길 때마다 북한 애들은 이것도 없어 굶어 죽는다고 했던게 씨알도 안 먹혔던 이유도 이 때문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반대로 본인 세대 내에서의 개선과 퇴행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합니다. 특히 퇴행에 관해서는요. 퇴행에 대해서 더 민감하다는 것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톱니효과로도 확인할 수 있죠. 소득이 늘어날 수록 소비는 증가하는데 반대로 감소할 경우는 증가한 소비만큼 소비가 덜 감소하는 것과 같이 경제적 퇴행에 대해서 심리적으로 사람들이 더 받아들이기 힘들어 합니다. 물론 한국 경제는 꾸준히 소득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성장해왔죠. 문제는 국지적 퇴행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압박이 이 전반적 개선을 압도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좋은 대학과 전문직 자격증이 성공의 프리패스 였고 이거만 있으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애도 낳고 모든게 가능했죠. 거기에 저런 프리패스를 획득에 따르는 경쟁의 강도 역시 약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좋은 대학 나와봐야 별거 없고 예전보다 사교육비와 대학 학비 내는 것도 빡세고 그 결과 결혼과 출산 같은 삶에 있어 코어한 이벤트를 감당하기 힘들게 되었죠. 그래서 비록 실업 적체의 시작은 imf지만 사람들이 불행회로를 돌리기 시작한건 집값, 학비 동반 상승과 학력의 유명무실화 때부터 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실패한 서울대생이 선배 서울대생을 보고 헬조선을 떠올릴 개연성이 고졸에 원룸 사는 저소득층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죠. 만족감이란 본디 절대적인 것이 이니라 기대치와 현실의 괴리정도에서 오는 것이니까요.(이 개념을 차용한 것이 서비스운영 관리의 서브퀄 개념이고요.) 한마디로 나는 과거 기준으로 성공의 팩터를 모두 갖춰서 세상이 내게 조아려야 하는데 내가 역으로 조아리고 있더라 이거죠. 이런 심리적 기제가 잘못되었는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뛰어넘어 세상을 더 넓게 보라는 비판은 인간 사회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게 설정한 결과일 수도 있다고 보거든요. 그리고 원인은 경제적 상황의 변화이지만 한국의 다른 적폐도 도매급으로 다 까면서 경각심을 심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보아 그렇게 부정적인 요소만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이것이 해소가 되려면 한 세대 이상 장기 불황이 유지되서 무감각해지거나 국지적 퇴행을 압도하는 전반적 개선이 필요한데 이는 좀 다른 주제죠.
다른건 의견의 차이라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3번만 말씀드리자면..
최저임금의 유지로 현재 최소한도로 보장되어야 할 삶이라는것에 동의할 수 없는게요. 최저임금의 고용상태가 죽을때까지 이어지진 않잖아요? 최저임금으로 고용상태에 놓일 수 있는건 길어야 40댑니다. 50대 이후에 '능력도 경력도 뚜렷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일자리 수는 청년실업과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더 가혹해요. 그러나 대체로 50대 이후에도 현대인간의 삶은 30년쯤 남아있죠. 미래라는게 당장 뭐 미래에 자본소득을 올릴만해야한다는게 '최저임금'이라는 말과 다... 더 보기
최저임금의 유지로 현재 최소한도로 보장되어야 할 삶이라는것에 동의할 수 없는게요. 최저임금의 고용상태가 죽을때까지 이어지진 않잖아요? 최저임금으로 고용상태에 놓일 수 있는건 길어야 40댑니다. 50대 이후에 '능력도 경력도 뚜렷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일자리 수는 청년실업과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더 가혹해요. 그러나 대체로 50대 이후에도 현대인간의 삶은 30년쯤 남아있죠. 미래라는게 당장 뭐 미래에 자본소득을 올릴만해야한다는게 '최저임금'이라는 말과 다... 더 보기
다른건 의견의 차이라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3번만 말씀드리자면..
최저임금의 유지로 현재 최소한도로 보장되어야 할 삶이라는것에 동의할 수 없는게요. 최저임금의 고용상태가 죽을때까지 이어지진 않잖아요? 최저임금으로 고용상태에 놓일 수 있는건 길어야 40댑니다. 50대 이후에 '능력도 경력도 뚜렷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일자리 수는 청년실업과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더 가혹해요. 그러나 대체로 50대 이후에도 현대인간의 삶은 30년쯤 남아있죠. 미래라는게 당장 뭐 미래에 자본소득을 올릴만해야한다는게 '최저임금'이라는 말과 다르게 들리지만, 사회가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에 입각해서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고 한다면, 전제로 '누구나 일 할수 있어야 한다' 거나 '일 할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그게 사회적으로 비효율적이라면, 일하는 동안의 잉여가치가 전부 고르게 분배되게 하는게 맞겠죠. 아귀가 안맞잖아요. 일정 세대가 되면 일 할 수 없는데, 일 하는 동안의 임금만으로는 그 순간만 생존할 수 있다면 자유주의는 일 할 수 없는 세대의 사람들에게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런의미에서 최저임금의 인상이 결국 경력, 능력을 쌓아 미래소득까지 현재노동으로 부담할 수 없는 사람들 전반에게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시켜줄 혹은 그럴 수 있는 교육이나 자본을 습득할 기회를 만들어 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현실감이 없는건 지금의 최저임금같아요. 현실을 '무시'하니까 나올 수 있는 임금이죠. 그 무시는 누군가들의 외면 위에 세워졌고요.
최저임금의 유지로 현재 최소한도로 보장되어야 할 삶이라는것에 동의할 수 없는게요. 최저임금의 고용상태가 죽을때까지 이어지진 않잖아요? 최저임금으로 고용상태에 놓일 수 있는건 길어야 40댑니다. 50대 이후에 '능력도 경력도 뚜렷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일자리 수는 청년실업과는 비교가 안될정도로 더 가혹해요. 그러나 대체로 50대 이후에도 현대인간의 삶은 30년쯤 남아있죠. 미래라는게 당장 뭐 미래에 자본소득을 올릴만해야한다는게 '최저임금'이라는 말과 다르게 들리지만, 사회가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에 입각해서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고 한다면, 전제로 '누구나 일 할수 있어야 한다' 거나 '일 할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그게 사회적으로 비효율적이라면, 일하는 동안의 잉여가치가 전부 고르게 분배되게 하는게 맞겠죠. 아귀가 안맞잖아요. 일정 세대가 되면 일 할 수 없는데, 일 하는 동안의 임금만으로는 그 순간만 생존할 수 있다면 자유주의는 일 할 수 없는 세대의 사람들에게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런의미에서 최저임금의 인상이 결국 경력, 능력을 쌓아 미래소득까지 현재노동으로 부담할 수 없는 사람들 전반에게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시켜줄 혹은 그럴 수 있는 교육이나 자본을 습득할 기회를 만들어 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현실감이 없는건 지금의 최저임금같아요. 현실을 '무시'하니까 나올 수 있는 임금이죠. 그 무시는 누군가들의 외면 위에 세워졌고요.
저는 철학이나 사상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에요. 그래서 다른분들에게 남기신 댓댓글을 봐도 와인하우스님이 스스로 나타내시고자 하는 바를 잘 파악하지 못했어요.
다만 이 글을 읽고 불퉁한 마음이 들어 위의 댓글을 남긴 건, [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피상적으로 비판 / 스스로를 추상적으로 설명 ] 하시는 모습이라 인식했기 때문이고
조악하게 비유하자면 '깨시민'을 비판하는 '깨깨시민'인 와인하우스님에게 '깨깨깨시민'인 제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생겼기 때문일거에요.
물고 무는 비판의 굴레 어딘가에서 멈춰서서 생산적인 걸 건져내야 할 것 같은데, 어디쯤에서 멈춰야 할 지 잘 모르겠네요.
다만 이 글을 읽고 불퉁한 마음이 들어 위의 댓글을 남긴 건, [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피상적으로 비판 / 스스로를 추상적으로 설명 ] 하시는 모습이라 인식했기 때문이고
조악하게 비유하자면 '깨시민'을 비판하는 '깨깨시민'인 와인하우스님에게 '깨깨깨시민'인 제 모습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생겼기 때문일거에요.
물고 무는 비판의 굴레 어딘가에서 멈춰서서 생산적인 걸 건져내야 할 것 같은데, 어디쯤에서 멈춰야 할 지 잘 모르겠네요.
그건 나중에 좀 더 제대로된 글을 쓸 생각인데요,
일단 이 글에서 에릭 호퍼를 연상하기는 힘들수도 있지만 (그걸 의도하고 쓰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이 글의 내용을 '배부른 소리 하네'나 '노오력을 하세요' 등과 것과 같은식으로 취급하는 건 솔직히 심각한 오독이자 매도로 받아들여지네요.
한국의 현실과 미래가 암담한 게 사실인 것을 떠나, 그것을 포장하는 '헬조선'이 과연 (기득권을 대상으로 하는) 분배주의적 키워드가 맞긴 한지부터 입증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네요. '헬조선'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양상을 보면 너무 중구난방식이라 저는 그 안에서 단순한 분노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거든요.
일... 더 보기
일단 이 글에서 에릭 호퍼를 연상하기는 힘들수도 있지만 (그걸 의도하고 쓰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이 글의 내용을 '배부른 소리 하네'나 '노오력을 하세요' 등과 것과 같은식으로 취급하는 건 솔직히 심각한 오독이자 매도로 받아들여지네요.
한국의 현실과 미래가 암담한 게 사실인 것을 떠나, 그것을 포장하는 '헬조선'이 과연 (기득권을 대상으로 하는) 분배주의적 키워드가 맞긴 한지부터 입증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네요. '헬조선'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양상을 보면 너무 중구난방식이라 저는 그 안에서 단순한 분노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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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나중에 좀 더 제대로된 글을 쓸 생각인데요,
일단 이 글에서 에릭 호퍼를 연상하기는 힘들수도 있지만 (그걸 의도하고 쓰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이 글의 내용을 '배부른 소리 하네'나 '노오력을 하세요' 등과 것과 같은식으로 취급하는 건 솔직히 심각한 오독이자 매도로 받아들여지네요.
한국의 현실과 미래가 암담한 게 사실인 것을 떠나, 그것을 포장하는 '헬조선'이 과연 (기득권을 대상으로 하는) 분배주의적 키워드가 맞긴 한지부터 입증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네요. '헬조선'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양상을 보면 너무 중구난방식이라 저는 그 안에서 단순한 분노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거든요.
일단 지금은 여력이 없으니까 글귀 두개만 첨부하겠습니다.
http://redtea.kr/pb/view.php?id=timeline&no=27285
http://redtea.kr/pb/view.php?id=timeline&no=28941
일단 이 글에서 에릭 호퍼를 연상하기는 힘들수도 있지만 (그걸 의도하고 쓰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이 글의 내용을 '배부른 소리 하네'나 '노오력을 하세요' 등과 것과 같은식으로 취급하는 건 솔직히 심각한 오독이자 매도로 받아들여지네요.
한국의 현실과 미래가 암담한 게 사실인 것을 떠나, 그것을 포장하는 '헬조선'이 과연 (기득권을 대상으로 하는) 분배주의적 키워드가 맞긴 한지부터 입증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싶네요. '헬조선'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양상을 보면 너무 중구난방식이라 저는 그 안에서 단순한 분노 이상의 의미를 찾지 못하겠거든요.
일단 지금은 여력이 없으니까 글귀 두개만 첨부하겠습니다.
http://redtea.kr/pb/view.php?id=timeline&no=27285
http://redtea.kr/pb/view.php?id=timeline&no=28941
이 문제에선 제가 좀더 생각을 해봐야 할 거 같네요. 그리고 새벽에 아무렇게나 막 쓴 글이라 지금보니 저 파트가 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고요. 일단 당장 떠오르는 것만 말하자면 말씀하신 부분은 최저임금이 아니라 기본소득으로 해결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최저임금을 올리는 게 기본소득제보다 더 쉬운 방편이긴 하겠지만요.
저는 빈곤함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자지만, 그렇다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식의) 약육강식을 옹호하는 자유방임주의자(내지는 자유의지주의자)는 결코 아니에요. 안 그럼 당장 제가 굶어죽는데요.
저는 빈곤함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자지만, 그렇다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식의) 약육강식을 옹호하는 자유방임주의자(내지는 자유의지주의자)는 결코 아니에요. 안 그럼 당장 제가 굶어죽는데요.
글을 읽다보니 여러 생각이 드네요
그냥 짧게나마 적어보자면
1.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는 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 경쟁에서 자본주의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으로서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았기 때문이거든요
체제 경쟁도 없는 지금 시점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은 자본주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책임 하에서 이루어지는 인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자본주의도 여러가지 스펙트럼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에 대해 사회주의다... 더 보기
그냥 짧게나마 적어보자면
1.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는 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 경쟁에서 자본주의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으로서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았기 때문이거든요
체제 경쟁도 없는 지금 시점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은 자본주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책임 하에서 이루어지는 인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자본주의도 여러가지 스펙트럼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에 대해 사회주의다... 더 보기
글을 읽다보니 여러 생각이 드네요
그냥 짧게나마 적어보자면
1.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는 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 경쟁에서 자본주의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으로서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았기 때문이거든요
체제 경쟁도 없는 지금 시점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은 자본주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책임 하에서 이루어지는 인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자본주의도 여러가지 스펙트럼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에 대해 사회주의다라고 말할 수 없어요
2. 서민주의를 문제라고 볼 수 있는가
사회적으로 미들클래스(중산층, 서민층)는 굉장히 중요해요
크게는 두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지표로서 유의미한 집단이기 때문이에요
미들클래스가 두텁고 튼튼하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 그 사회가 경제적이든 정치사회적이든 얼마나 건강한지 보여주거든요
또 하나는 다양한 형태의 소비가 가능한 집단이 두텁게 형성되어야만 선순환구조가 건강해질 수 있고 계급, 계층을 구분하지 않고 사회전반적인 상승효과를 유발시키기 때문이에요
요약하자면 미들클래스가 사회 다수이고, 이들에 대한 정책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3. 최저임금의 기본 개념
최저임금에는 크게 생존임금과 생활임금 2가지가 있어요
그런데 말씀하신 내용은 생존임금에도 미치지 못해요
노동력을 보존하고, 제공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비용=생존임금
전형적인 자유방임자들이 주장하는 최저임금의 내용이에요
그런데 대다수 국가들이 최저임금에 대해 기본 개념으로 삼고 있는 내용은 생존임금이 아니라 생활임금이에요
생존임금+자식을 교육시킬 수 있는 비용+최소한의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비용=생활임금
우리나라에서 채택한 최저임금은 생활임금이에요
그런데 "그 돈으로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냐"의 문제는 이미 최저임금에 포함된 내용이에요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냐는 말은 생존임금의 개념에서는 가다가 자의든 타의든 멈췄을 때 다시 노동력을 제공하며 살 수 있는 조건, 다시 노동력을 제공할 때까지 노동력을 보존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느냐,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상태(노후)에서 생존임금에서 보장한 사람을 누릴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고, 생활임금에서는 최소한의 문화생활-취미생활이 가능하냐,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는 상태에서 생활임금이 보장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4. 10년 전과 지금의 차이점
간단하게 말해 그때는 고성장 저고용 사회였고 지금은 저성장 저저고용 사회이기 때문이죠
수준과 정도에 차이가 있겠지만 자신의 불행을 드러내는 일이 나쁜 일이 아니에요
상처를 보여주지 않으면 의사가 치료해줄 수 없거든요
10년 넘게 한겨레와 한겨레21일 구독했던 독자로서 봤을 때 안수찬 편집장은 연대와 소통을 통한 문제해결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자주 했던 사람이고 인용하신 글 말미 내용도 대충 정치권에 이런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연대와 소통, 상처를 보여주며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 이후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지금 하시는 말씀은 연대와 소통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왜 대책 없냐 or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사실 자유방임주의자나 극단적으로 원리주의적 입장을 가진 통화주의자 입장에서 쓰신 글이라고하면 우리 사회에서 채택한 보편적 가치뿐만 아니라 원론적인 내용과 다소 어긋난다 하더라도 입장과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고 제가 문제의식을 가진 지점들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아귀가 맞아떨어지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그건 또 아니라고 하시니까...
마무리가 애매하네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이런저런 예전 기억들을 더듬어 봤네요 ㅎㅎ
그냥 짧게나마 적어보자면
1.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는 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 경쟁에서 자본주의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으로서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았기 때문이거든요
체제 경쟁도 없는 지금 시점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은 자본주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책임 하에서 이루어지는 인권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자본주의도 여러가지 스펙트럼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에 대해 사회주의다라고 말할 수 없어요
2. 서민주의를 문제라고 볼 수 있는가
사회적으로 미들클래스(중산층, 서민층)는 굉장히 중요해요
크게는 두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그 시대를 반영하는 지표로서 유의미한 집단이기 때문이에요
미들클래스가 두텁고 튼튼하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 그 사회가 경제적이든 정치사회적이든 얼마나 건강한지 보여주거든요
또 하나는 다양한 형태의 소비가 가능한 집단이 두텁게 형성되어야만 선순환구조가 건강해질 수 있고 계급, 계층을 구분하지 않고 사회전반적인 상승효과를 유발시키기 때문이에요
요약하자면 미들클래스가 사회 다수이고, 이들에 대한 정책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3. 최저임금의 기본 개념
최저임금에는 크게 생존임금과 생활임금 2가지가 있어요
그런데 말씀하신 내용은 생존임금에도 미치지 못해요
노동력을 보존하고, 제공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비용=생존임금
전형적인 자유방임자들이 주장하는 최저임금의 내용이에요
그런데 대다수 국가들이 최저임금에 대해 기본 개념으로 삼고 있는 내용은 생존임금이 아니라 생활임금이에요
생존임금+자식을 교육시킬 수 있는 비용+최소한의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비용=생활임금
우리나라에서 채택한 최저임금은 생활임금이에요
그런데 "그 돈으로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냐"의 문제는 이미 최저임금에 포함된 내용이에요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냐는 말은 생존임금의 개념에서는 가다가 자의든 타의든 멈췄을 때 다시 노동력을 제공하며 살 수 있는 조건, 다시 노동력을 제공할 때까지 노동력을 보존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느냐, 노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상태(노후)에서 생존임금에서 보장한 사람을 누릴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고, 생활임금에서는 최소한의 문화생활-취미생활이 가능하냐,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는 상태에서 생활임금이 보장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4. 10년 전과 지금의 차이점
간단하게 말해 그때는 고성장 저고용 사회였고 지금은 저성장 저저고용 사회이기 때문이죠
수준과 정도에 차이가 있겠지만 자신의 불행을 드러내는 일이 나쁜 일이 아니에요
상처를 보여주지 않으면 의사가 치료해줄 수 없거든요
10년 넘게 한겨레와 한겨레21일 구독했던 독자로서 봤을 때 안수찬 편집장은 연대와 소통을 통한 문제해결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자주 했던 사람이고 인용하신 글 말미 내용도 대충 정치권에 이런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연대와 소통, 상처를 보여주며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 이후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지금 하시는 말씀은 연대와 소통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왜 대책 없냐 or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사실 자유방임주의자나 극단적으로 원리주의적 입장을 가진 통화주의자 입장에서 쓰신 글이라고하면 우리 사회에서 채택한 보편적 가치뿐만 아니라 원론적인 내용과 다소 어긋난다 하더라도 입장과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고 제가 문제의식을 가진 지점들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아귀가 맞아떨어지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그건 또 아니라고 하시니까...
마무리가 애매하네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이런저런 예전 기억들을 더듬어 봤네요 ㅎㅎ
늦었지만 부연설명을 좀 해볼게요.
1.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말아라'가 아니라 보장되어야할 '인간다운' 삶의 기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최저임금이나 최저생계비가 올라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도입부의 희망사항은 '인간다운 삶'(의 최저선)이 아니라고 봐요. '부족함이 없는 삶'이지요. '부족함이 없는 삶'>'인간다운 삶'이란 뜻이 아니라, [무엇을 인간다움이라 말할 수 있는가?]하는 얘기지요. 저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생활의 안정이나 여가의 유무 따... 더 보기
1.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말아라'가 아니라 보장되어야할 '인간다운' 삶의 기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최저임금이나 최저생계비가 올라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도입부의 희망사항은 '인간다운 삶'(의 최저선)이 아니라고 봐요. '부족함이 없는 삶'이지요. '부족함이 없는 삶'>'인간다운 삶'이란 뜻이 아니라, [무엇을 인간다움이라 말할 수 있는가?]하는 얘기지요. 저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생활의 안정이나 여가의 유무 따... 더 보기
늦었지만 부연설명을 좀 해볼게요.
1.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말아라'가 아니라 보장되어야할 '인간다운' 삶의 기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최저임금이나 최저생계비가 올라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도입부의 희망사항은 '인간다운 삶'(의 최저선)이 아니라고 봐요. '부족함이 없는 삶'이지요. '부족함이 없는 삶'>'인간다운 삶'이란 뜻이 아니라, [무엇을 인간다움이라 말할 수 있는가?]하는 얘기지요. 저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생활의 안정이나 여가의 유무 따위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공산주의가 이상 그대로 성공했더라도 그 구성원들은 인간보단 기계나 부품에 가깝다는 한계를 지녀요. 그걸 무시하든 믿지 않든 어쨌든 그것을 지향하는 걸 두고 사회주의적 태도라 하는 것인데, 차라리 진짜 좌파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 받아들이겠다만 사실 그것도 아니니까 고까운 거지요.
이를테면 요새 대남커에서 결과의 평등스러운 얘기 조금만 나오면 융단폭격을 맞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저는 한국사회가 할당제같은 기계적 평등이 여전히 어느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ㅋㅋ 세부사안에 들어가면 대남커 여론대로 온정주의적 평등 정책이 벌어지는 것도 사실이라 일단 암말 안하고 있지만 ㅋㅋ
2. 사회를 지탱하는 것이 어느 계층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프레임 속에 갇힌 좁은 시야를 지적하는 얘기입니다. 기득권층을 욕하고 비난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못나고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도 역시 상상을 벗어나는 적대감 또는 몰이해를 보이는 게 그들의 특징이지요.
3. 맞아요. 전 빈곤, 아니 경제와 사회적 연대에는 솔직히 별 관심이 없어요. 알 수 있는 학식도 없고 연대를 체험한 경험도 없고.
하지만 제가 관심이 없다고 그 문제가 없다거나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저는 그 문제에 대해선 복지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의 관점을 거의 전적으로 따라요. '인간다운 삶'이라는 테제에는 동의하지 않아도 어쨌든 평등은 지향해야할 가치 중 하나니까요.
그러나 제가 궁극적으로 다른 점은, 저는 유물론적 사고관의 유용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절대로 물적 조건이 전적으로 정신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거예요. 좌파뿐만 아니라 우파 자유주의자들도 마찬가지죠. 그들이 유물론을 공산주의와 묶어 자주 공격하지만, 제가 봤을 땐 그들 역시 (개인의) 경제 사회적 성공을 위한 노력이 문제를 해소할 열쇠라고 보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좌파들과 두 얼굴을 한 한 몸 같은 셈이죠.
제가 좋아하는 모 인사의 글을 일부 인용할게요.
[예를들어 88만원 세대라는 문제에 대해서 좌파들은 구조적 변화로 그들이 150만원 세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경제가 바뀌기 때문에 다른 것들도 바뀌고 혹은 경제 바깥을 신경쓸 여유가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근데 나는 이 60만원의 차이가 뭘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속물들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소득수준은 인간을 나누는 아주 중요한 사회학적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음에 속하는 나같은 사람은 60만원을 더 버는 것이 나를 어떻게 바꿔준다는 건지 잘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그렇지 않음을 어떻게 대안으로 내세울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내가 그렇지 않음에 대해 부여했던 명칭들은 아웃사이더도 있었고 자발적 가난도 있었고 뭐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것들의 공통점은 당연히 경제 밖에 모르는 속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예를들어 아웃사이더는 주류적 가치관과는 다른 자기만의 가치관과 기준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위너와 루저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제 3의 존재) 자발적 가난 역시 경제보다 더 중요한 것을 추구하는 삶의 양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런 식의 좌우파에 대해 구역질 외에는 별 관심이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나는 119만원으로 잘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더 필요가 없다. 그냥 먹고 살면 되는 거지 그 이상이 왜 필요한가. 물론 속물들에겐 필요하다. 그들은 경제를 통해 성장가치를 추구하고 사회적 인정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돈이 필요한 것이다. 근데 속물이 아닌 사람들에겐 그런 건 필요없다.]
[즉 119만원 버는 게 큰 문제가 되는 건 오직 속물들 뿐이라는 거다. 인간다운 삶은 250만원 이상에만 존재한다고 믿는 속물들 말이다. 그건 우파든 좌파든 별 차이가 없고 둘 다 의견이 일치하는 사실이다. 단지 우파는 그걸 위해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좌파는 그걸 위해 공산주의나 복지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참고로 저는 이 글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 정도로 공격적이진 않아요 ㅋㅋ 앞서 얘기했듯이 이런 문제에 관심이 아예 없지도 않고.
어쨌든 패배주의나 허무주의라는 비판, 아니면 하다못해 허무맹랑한 소리라는 말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방임주의는 좀 ㅎㅎ;;
1.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말아라'가 아니라 보장되어야할 '인간다운' 삶의 기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현재의 최저임금이나 최저생계비가 올라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도입부의 희망사항은 '인간다운 삶'(의 최저선)이 아니라고 봐요. '부족함이 없는 삶'이지요. '부족함이 없는 삶'>'인간다운 삶'이란 뜻이 아니라, [무엇을 인간다움이라 말할 수 있는가?]하는 얘기지요. 저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생활의 안정이나 여가의 유무 따위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공산주의가 이상 그대로 성공했더라도 그 구성원들은 인간보단 기계나 부품에 가깝다는 한계를 지녀요. 그걸 무시하든 믿지 않든 어쨌든 그것을 지향하는 걸 두고 사회주의적 태도라 하는 것인데, 차라리 진짜 좌파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 받아들이겠다만 사실 그것도 아니니까 고까운 거지요.
이를테면 요새 대남커에서 결과의 평등스러운 얘기 조금만 나오면 융단폭격을 맞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저는 한국사회가 할당제같은 기계적 평등이 여전히 어느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ㅋㅋ 세부사안에 들어가면 대남커 여론대로 온정주의적 평등 정책이 벌어지는 것도 사실이라 일단 암말 안하고 있지만 ㅋㅋ
2. 사회를 지탱하는 것이 어느 계층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프레임 속에 갇힌 좁은 시야를 지적하는 얘기입니다. 기득권층을 욕하고 비난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못나고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도 역시 상상을 벗어나는 적대감 또는 몰이해를 보이는 게 그들의 특징이지요.
3. 맞아요. 전 빈곤, 아니 경제와 사회적 연대에는 솔직히 별 관심이 없어요. 알 수 있는 학식도 없고 연대를 체험한 경험도 없고.
하지만 제가 관심이 없다고 그 문제가 없다거나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죠. 그래서 저는 그 문제에 대해선 복지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의 관점을 거의 전적으로 따라요. '인간다운 삶'이라는 테제에는 동의하지 않아도 어쨌든 평등은 지향해야할 가치 중 하나니까요.
그러나 제가 궁극적으로 다른 점은, 저는 유물론적 사고관의 유용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절대로 물적 조건이 전적으로 정신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거예요. 좌파뿐만 아니라 우파 자유주의자들도 마찬가지죠. 그들이 유물론을 공산주의와 묶어 자주 공격하지만, 제가 봤을 땐 그들 역시 (개인의) 경제 사회적 성공을 위한 노력이 문제를 해소할 열쇠라고 보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좌파들과 두 얼굴을 한 한 몸 같은 셈이죠.
제가 좋아하는 모 인사의 글을 일부 인용할게요.
[예를들어 88만원 세대라는 문제에 대해서 좌파들은 구조적 변화로 그들이 150만원 세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경제가 바뀌기 때문에 다른 것들도 바뀌고 혹은 경제 바깥을 신경쓸 여유가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근데 나는 이 60만원의 차이가 뭘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속물들은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소득수준은 인간을 나누는 아주 중요한 사회학적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음에 속하는 나같은 사람은 60만원을 더 버는 것이 나를 어떻게 바꿔준다는 건지 잘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그렇지 않음을 어떻게 대안으로 내세울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내가 그렇지 않음에 대해 부여했던 명칭들은 아웃사이더도 있었고 자발적 가난도 있었고 뭐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것들의 공통점은 당연히 경제 밖에 모르는 속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예를들어 아웃사이더는 주류적 가치관과는 다른 자기만의 가치관과 기준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위너와 루저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제 3의 존재) 자발적 가난 역시 경제보다 더 중요한 것을 추구하는 삶의 양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런 식의 좌우파에 대해 구역질 외에는 별 관심이 없는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나는 119만원으로 잘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더 필요가 없다. 그냥 먹고 살면 되는 거지 그 이상이 왜 필요한가. 물론 속물들에겐 필요하다. 그들은 경제를 통해 성장가치를 추구하고 사회적 인정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돈이 필요한 것이다. 근데 속물이 아닌 사람들에겐 그런 건 필요없다.]
[즉 119만원 버는 게 큰 문제가 되는 건 오직 속물들 뿐이라는 거다. 인간다운 삶은 250만원 이상에만 존재한다고 믿는 속물들 말이다. 그건 우파든 좌파든 별 차이가 없고 둘 다 의견이 일치하는 사실이다. 단지 우파는 그걸 위해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좌파는 그걸 위해 공산주의나 복지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참고로 저는 이 글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 정도로 공격적이진 않아요 ㅋㅋ 앞서 얘기했듯이 이런 문제에 관심이 아예 없지도 않고.
어쨌든 패배주의나 허무주의라는 비판, 아니면 하다못해 허무맹랑한 소리라는 말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방임주의는 좀 ㅎㅎ;;
1. 말씀하신 [빚 없이 사회에 나와 주5일 열심히 일하면 집이나 차를 자력으로 살 수 있고 아이 낳을 여유, 적당한 취미를 가질 여유가 있어 사랑하는 사람과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삶]이 인간다운 삶이라고 판단하게 되는 것도 개인이 그렇게 판단했다기보다는 사회구조적으로 이정도는 살아야 인간다운 삶이란 경제적 관점이 작용케 했던 면과 체제 차원에서 누구나 노력하면 경제적 관점에서 기본적으로 이정도의 삶은 누릴 수 있을 거라 유혹한 면 두가지가 작용했다고 봐요
그렇다면 헬조선을 말하는 사람들 보... 더 보기
그렇다면 헬조선을 말하는 사람들 보... 더 보기
1. 말씀하신 [빚 없이 사회에 나와 주5일 열심히 일하면 집이나 차를 자력으로 살 수 있고 아이 낳을 여유, 적당한 취미를 가질 여유가 있어 사랑하는 사람과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삶]이 인간다운 삶이라고 판단하게 되는 것도 개인이 그렇게 판단했다기보다는 사회구조적으로 이정도는 살아야 인간다운 삶이란 경제적 관점이 작용케 했던 면과 체제 차원에서 누구나 노력하면 경제적 관점에서 기본적으로 이정도의 삶은 누릴 수 있을 거라 유혹한 면 두가지가 작용했다고 봐요
그렇다면 헬조선을 말하는 사람들 보다는 경제적 관점에서 헬조선이라 판단하도록 만드는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와인하우스님이 인간다운 삶에 대해 판단할 때는 인문학적 관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떠올릴 때 인문학적 관점으로 판단하지는 않아요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죠
반대로 경제적 관점을 적용해야할 문제에 대해서는 원론적 내용, 실제 요구되어지는 내용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요
물론 경제적 관점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 또한 경제학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전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필수적인 요소라고 판단하지는 않거든요
다만 경제적 지표로 드러나는 대체적인 경향성을 개인적 경험과 느낌만으로 가벼이 여기거나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그런데 사회주의적 태도는 '공산주의가 이상 그대로 성공했더라도 그 구성원들은 인간보단 기계나 부품으로 여긴다'는 점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으로 보장하자는 것'을 비판하기위해 사용하셨죠
2. 타인이 프레임 속에 갇혀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어요
마음 속으로 들어가 확인할 수가 없으니까요
말씀하신 기득권층을 욕하고 비난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못나고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도 역시 상상을 벗어나는 적대감 또는 몰이해를 보이는 게 그들의 특징은 서민주의에 심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서민주의조차 무르익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사회의 상대적 약자에 대한 정책을 펼치려면 정책 책임자는 반드시 미들 클래스와의 강력한 증세 동맹을 맺어야 해요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책을 강화하고 늘리려면 반드시 증세가 필요하고 이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니까요
당연히 가장 다수인 미들클래스와의 합의가 이루어져야 기득권에 대한 증세도 가능해요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이재명 성남시장이에요
3. 어떤 유물론자가 물적 조건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아요
이건 우파 자유주의자도 마찬가지예요
정치공학, 행동경제학 자체가 우파 자유주의자들이 인간의 감정, 의식과 관련된 요소들이 역으로 물적 조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느냐에 대해 분석해놓은 것이니까요
또한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지기위해 사회 관계 속에서 물질 세계와 투쟁하며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자는 것과 물질적 요소가 가치의 전부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달라요
전자가 좌파고 후자가 우파죠
방금 인용하신 글의 원문을 읽고 왔어요
솔직히 보자마자 구역질 날 정도로 쿨병 걸린 비겁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
개인의 기준을 사회 보편적 기준으로 적용하고, 사회 메커니즘과 프로세스를 멋대로 해석하고 있으며, 구조적 관점 없이 모든 책임을 속물이라 칭한 개인에게 전가하고, 좌우파라 불리는 집단의 의도를 관심법을 통해 들여다보고는 다 알고있다 착각하고 있고, 스스로 약자로 비춰될까 두려워하고 있거든요
근데 88만원 세대 저자는 우파 경제학자인데...
와인하우스님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사실 저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ㅋ
물론 의도를 알면 더 편한 점이 있긴 하죠
제가 문제의식이 들었던 내용은 기본 개념을 벗어났거나 사실 관계와 맞지 않거나 매커니즘, 프로세스 측면에서 틀렸다고 판단한 부분들이에요
만약 제가 문제의식 들었던 내용에 대해 자유롭게 쓰고 싶어셨다면 구조적 해석이 동반되어야할 내용이 아닌 개인적 입장 차원에서 쓰시는게 좋았을 것 같아요
해석의 결과물이 자유방임주의자들의 그것과 유사하다
빈곤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구조적 문제보다는 개별 집단이나 개인의 문제로 접근하고 저항적인 태도보다는 순응적 태도를 지향한다
사실 이 3가지가 제가 자유방임주의라 느낀 이유인데 이게 문제라는 것도 아니고 와인하우스님이 자유방임주의자란 것도 아니에요 ㅎㅎ
그렇다면 헬조선을 말하는 사람들 보다는 경제적 관점에서 헬조선이라 판단하도록 만드는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와인하우스님이 인간다운 삶에 대해 판단할 때는 인문학적 관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떠올릴 때 인문학적 관점으로 판단하지는 않아요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죠
반대로 경제적 관점을 적용해야할 문제에 대해서는 원론적 내용, 실제 요구되어지는 내용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요
물론 경제적 관점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 또한 경제학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전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필수적인 요소라고 판단하지는 않거든요
다만 경제적 지표로 드러나는 대체적인 경향성을 개인적 경험과 느낌만으로 가벼이 여기거나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그런데 사회주의적 태도는 '공산주의가 이상 그대로 성공했더라도 그 구성원들은 인간보단 기계나 부품으로 여긴다'는 점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으로 보장하자는 것'을 비판하기위해 사용하셨죠
2. 타인이 프레임 속에 갇혀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어요
마음 속으로 들어가 확인할 수가 없으니까요
말씀하신 기득권층을 욕하고 비난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못나고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도 역시 상상을 벗어나는 적대감 또는 몰이해를 보이는 게 그들의 특징은 서민주의에 심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서민주의조차 무르익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사회의 상대적 약자에 대한 정책을 펼치려면 정책 책임자는 반드시 미들 클래스와의 강력한 증세 동맹을 맺어야 해요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책을 강화하고 늘리려면 반드시 증세가 필요하고 이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니까요
당연히 가장 다수인 미들클래스와의 합의가 이루어져야 기득권에 대한 증세도 가능해요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이재명 성남시장이에요
3. 어떤 유물론자가 물적 조건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아요
이건 우파 자유주의자도 마찬가지예요
정치공학, 행동경제학 자체가 우파 자유주의자들이 인간의 감정, 의식과 관련된 요소들이 역으로 물적 조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느냐에 대해 분석해놓은 것이니까요
또한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지기위해 사회 관계 속에서 물질 세계와 투쟁하며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자는 것과 물질적 요소가 가치의 전부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달라요
전자가 좌파고 후자가 우파죠
방금 인용하신 글의 원문을 읽고 왔어요
솔직히 보자마자 구역질 날 정도로 쿨병 걸린 비겁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
개인의 기준을 사회 보편적 기준으로 적용하고, 사회 메커니즘과 프로세스를 멋대로 해석하고 있으며, 구조적 관점 없이 모든 책임을 속물이라 칭한 개인에게 전가하고, 좌우파라 불리는 집단의 의도를 관심법을 통해 들여다보고는 다 알고있다 착각하고 있고, 스스로 약자로 비춰될까 두려워하고 있거든요
근데 88만원 세대 저자는 우파 경제학자인데...
와인하우스님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사실 저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ㅋ
물론 의도를 알면 더 편한 점이 있긴 하죠
제가 문제의식이 들었던 내용은 기본 개념을 벗어났거나 사실 관계와 맞지 않거나 매커니즘, 프로세스 측면에서 틀렸다고 판단한 부분들이에요
만약 제가 문제의식 들었던 내용에 대해 자유롭게 쓰고 싶어셨다면 구조적 해석이 동반되어야할 내용이 아닌 개인적 입장 차원에서 쓰시는게 좋았을 것 같아요
해석의 결과물이 자유방임주의자들의 그것과 유사하다
빈곤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구조적 문제보다는 개별 집단이나 개인의 문제로 접근하고 저항적인 태도보다는 순응적 태도를 지향한다
사실 이 3가지가 제가 자유방임주의라 느낀 이유인데 이게 문제라는 것도 아니고 와인하우스님이 자유방임주의자란 것도 아니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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