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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07/11 10:45:41 |
Name | Raute |
Subject | 예술가와 작품은 분리될 수 있는가? |
몇 년 전에 [진보의 재탄생]이란 책이 나왔었습니다. 노회찬을 중심으로 진중권, 홍세화, 김어준, 변영주, 우석훈, 한윤형, 홍기빈, 김정진 진보 관련 인물들과 벌인 담화를 모아놓은 내용의 책이죠. 이때만 하더라도 노회찬이라든가 진보 정치인들에게 꽤 큰 기대를 하고 있던 터라 열심히 읽었습니다. 여기 나온 대담 중 꽤 인상적이었던 게 [바그너를 좋아하세요?]였습니다. 변영주와 나눈 대담이었는데 [예술가에게 흠결이 있을 때 그의 작품을 분리시켜 향유할 수 있는가?]라는 내용이었죠. 우리에게는 서정주나 이광수 같은 사람들의 글이 먼저 튀어나올 것이고, 표절을 저지른 사람이라든가, 범죄를 저지른 자라든가... 뭐 그런 식으로 적용해볼 수 있겠죠. 정작 글의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만... 특히 미술이나 문예와는 달리 음악은 무의식적으로 듣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어쩌다가 듣게 되면 '음 노래는 좋군' 하다가도 정작 제가 노래 골라 들을 때는 안 듣게 되고요. 진지하게 고찰한다면 노래 역시 가수의 삶과 가치관, 그리고 감성이 묻어나오는 하나의 예술품 아닌가? 라는 측면일 것이고, 가볍게 본다면 그냥 불매운동 하는 기분으로 듣기가 싫어지는 걸테고요. 어차피 싱어송라이터가 아니라면 가수와 곡의 관계를 그렇게 엄밀하게 볼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있긴 합니다만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 어렵더군요. 저에게는 그 경계에 있는 게 이승철과 아이유(타 연예인과의 에피소드로 인한 개인적 불호), 자우림(표절), 드렁큰타이거(무단샘플링) 등이고 해외 락밴드로는 레드 제플린이 듣기 힘듭니다. [Stairway to Heaven]이 제가 듣는 유일한 레젭의 곡인데 사실 이것도 표절 논란 있다는 게 유머. 아무튼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궁금하네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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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제 경우에는 종교 관련이었습니다. 매우 유명하고 좋은 복음성가를 많이 제작하시던 분이 사생활이 매우 지저분하고 가정이 파탄이 난 사례가 있어서, 과연 예배때 이 사람이 작사작곡한 노래로 찬양을 해도 될것인가가 한참 화두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내린 결론은 사람은 죄가 많더라도 그 사람이 만든 찬양은 그 사람을 통해 일하신 하나님의 섭리이므로 그 노래로 찬양할수 있다 였습니다.
종교이야기가 불편하신 분들께는 부적합한 사례일수도 있지만 저는 위의 사례도 비슷하게 생각할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예술은 무형의 형태로 존재하다가 그 사람의 손을 빌어 탄생하는 것이고, 그 사람의 인격 여부와 상관없이 작품 그 자체로서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내린 결론은 사람은 죄가 많더라도 그 사람이 만든 찬양은 그 사람을 통해 일하신 하나님의 섭리이므로 그 노래로 찬양할수 있다 였습니다.
종교이야기가 불편하신 분들께는 부적합한 사례일수도 있지만 저는 위의 사례도 비슷하게 생각할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예술은 무형의 형태로 존재하다가 그 사람의 손을 빌어 탄생하는 것이고, 그 사람의 인격 여부와 상관없이 작품 그 자체로서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기본적으로 창작물에 대한 제 생각은 위의 파란아게하 님과 같습니다. 티가 있는 옥도 옥이고 옥에 있는 티도 티니까 옥과 티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개개인의 감수성 차이로 결론이 나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옥이 좋으면 그만이지 라고 티에 대해서는 무시할 것 같고, 또 다른 사람은 티가 있는 옥은 옥일 수 없다고 생각할 것 같고.
사실 이런 논란과 유사한 게 \'음악에 수준차이라는게 있는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음악적으로 대단히 단순하고 별 것 없는데 대중이 좋아하는, 일부에서는 \'저속하다... 더 보기
아마 개개인의 감수성 차이로 결론이 나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옥이 좋으면 그만이지 라고 티에 대해서는 무시할 것 같고, 또 다른 사람은 티가 있는 옥은 옥일 수 없다고 생각할 것 같고.
사실 이런 논란과 유사한 게 \'음악에 수준차이라는게 있는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음악적으로 대단히 단순하고 별 것 없는데 대중이 좋아하는, 일부에서는 \'저속하다... 더 보기
기본적으로 창작물에 대한 제 생각은 위의 파란아게하 님과 같습니다. 티가 있는 옥도 옥이고 옥에 있는 티도 티니까 옥과 티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개개인의 감수성 차이로 결론이 나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옥이 좋으면 그만이지 라고 티에 대해서는 무시할 것 같고, 또 다른 사람은 티가 있는 옥은 옥일 수 없다고 생각할 것 같고.
사실 이런 논란과 유사한 게 \'음악에 수준차이라는게 있는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음악적으로 대단히 단순하고 별 것 없는데 대중이 좋아하는, 일부에서는 \'저속하다\'라고 말하기도 하는 음악은 공들여서 만들어서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정말 환상의 음악이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큰 호응 없는 음악보다 수준이 낮은 것인가? 딱 부러지게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는 부분이고 개인의 견해차이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요. (개인적으로는 김태원씨의 \'모든 음악은 평등하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아마 개개인의 감수성 차이로 결론이 나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옥이 좋으면 그만이지 라고 티에 대해서는 무시할 것 같고, 또 다른 사람은 티가 있는 옥은 옥일 수 없다고 생각할 것 같고.
사실 이런 논란과 유사한 게 \'음악에 수준차이라는게 있는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음악적으로 대단히 단순하고 별 것 없는데 대중이 좋아하는, 일부에서는 \'저속하다\'라고 말하기도 하는 음악은 공들여서 만들어서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정말 환상의 음악이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큰 호응 없는 음악보다 수준이 낮은 것인가? 딱 부러지게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는 부분이고 개인의 견해차이가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요. (개인적으로는 김태원씨의 \'모든 음악은 평등하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옥과 티 비유로 보면
티가 옥의 가치를 손상시킬 때에 비로소 옥의 진정한 가치도 떨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옥이 과연 가치가 있는가도 사실은 개인의 가치관에 의해서 구분이 될 뿐인데, 그렇다면 티도 티 나름으로 구분해서 생각해야 하고, 그 구분의 기준은 결국 개인의 가치관이라고 봐요. 오히려 그 티가 더 예술성을 강화하는 기제가 될 여지도 있구요.
어떤 분에게는 작가의 나치부역 그 자체로 그 작가의 작품도 끝일 수 있고, 어떤 분에게는 그정도로는 큰 의미 없다고 볼 수도 있겠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의 나치부역이 ... 더 보기
티가 옥의 가치를 손상시킬 때에 비로소 옥의 진정한 가치도 떨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옥이 과연 가치가 있는가도 사실은 개인의 가치관에 의해서 구분이 될 뿐인데, 그렇다면 티도 티 나름으로 구분해서 생각해야 하고, 그 구분의 기준은 결국 개인의 가치관이라고 봐요. 오히려 그 티가 더 예술성을 강화하는 기제가 될 여지도 있구요.
어떤 분에게는 작가의 나치부역 그 자체로 그 작가의 작품도 끝일 수 있고, 어떤 분에게는 그정도로는 큰 의미 없다고 볼 수도 있겠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의 나치부역이 ... 더 보기
옥과 티 비유로 보면
티가 옥의 가치를 손상시킬 때에 비로소 옥의 진정한 가치도 떨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옥이 과연 가치가 있는가도 사실은 개인의 가치관에 의해서 구분이 될 뿐인데, 그렇다면 티도 티 나름으로 구분해서 생각해야 하고, 그 구분의 기준은 결국 개인의 가치관이라고 봐요. 오히려 그 티가 더 예술성을 강화하는 기제가 될 여지도 있구요.
어떤 분에게는 작가의 나치부역 그 자체로 그 작가의 작품도 끝일 수 있고, 어떤 분에게는 그정도로는 큰 의미 없다고 볼 수도 있겠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의 나치부역이 작품의 완결성을 부여한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발화자의 정치성향을 기준으로 어떤 글이나 발언의 가치를 상반되게 평가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고(예를 들어 진중권씨 발언이나, 토론에서의 \'잘했다\'는 평가등은 각 지지세력마다 극과 극으로 판단하기도 하더라구요) \'사실 그 진리값 자체는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티가 옥의 가치를 손상시킬 때에 비로소 옥의 진정한 가치도 떨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어떤 옥이 과연 가치가 있는가도 사실은 개인의 가치관에 의해서 구분이 될 뿐인데, 그렇다면 티도 티 나름으로 구분해서 생각해야 하고, 그 구분의 기준은 결국 개인의 가치관이라고 봐요. 오히려 그 티가 더 예술성을 강화하는 기제가 될 여지도 있구요.
어떤 분에게는 작가의 나치부역 그 자체로 그 작가의 작품도 끝일 수 있고, 어떤 분에게는 그정도로는 큰 의미 없다고 볼 수도 있겠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의 나치부역이 작품의 완결성을 부여한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발화자의 정치성향을 기준으로 어떤 글이나 발언의 가치를 상반되게 평가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고(예를 들어 진중권씨 발언이나, 토론에서의 \'잘했다\'는 평가등은 각 지지세력마다 극과 극으로 판단하기도 하더라구요) \'사실 그 진리값 자체는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뭐 저도 레젭 팬이긴 합니다만, 원본보다 낫기 때문에 표절 논란하고 구분된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이건 신경숙 표절 논란에서 쉴드칠때나 나올 법한 얘기고... 레젭의 표절 논란에서 일반적인 표절 논란과 다른 부분은 저작권이 명확하지 않은 멜로디의 차용이라는 점이고, 그 점에서 비슷한 표절 논란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기타 솔로 표절 논란입니다. 여기에 시대적 차이에 의한 음악 저작권에 대한 개념 차이가 추가로 붙어서 좀 달라지고...
사실 당대에도 표절과 오리지널리티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레젭이 잘 팔려서 다 묻어버렸다는게 맞을 겁니다. 물어준 돈도 적지 않은 밴드고요.
사실 당대에도 표절과 오리지널리티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레젭이 잘 팔려서 다 묻어버렸다는게 맞을 겁니다. 물어준 돈도 적지 않은 밴드고요.
예술의 가치는 주제가 아니라 주제가 표현하는 방식에 있지요. 개별 작품 역시 마찬가지고요. 정작 대단한 작품 중 주제만 놓고 볼 때 대단할 수 있는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서구 회의주의 꺼지시고 그리스 정교회 만세]라는 수꼴 마인드에 위대함이 터럭만큼이라도 있나요? 하지만 이 수꼴 마인드가 소설 속에서 소설적으로 정당화되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위대한 작품일 수 있는 거죠. 비교적 근작인 미셸 우옐벡의 소립자를 봐도 드러나고요. [발작적인 포스트모던, 더러운 동성... 더 보기
예술의 가치는 주제가 아니라 주제가 표현하는 방식에 있지요. 개별 작품 역시 마찬가지고요. 정작 대단한 작품 중 주제만 놓고 볼 때 대단할 수 있는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서구 회의주의 꺼지시고 그리스 정교회 만세]라는 수꼴 마인드에 위대함이 터럭만큼이라도 있나요? 하지만 이 수꼴 마인드가 소설 속에서 소설적으로 정당화되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위대한 작품일 수 있는 거죠. 비교적 근작인 미셸 우옐벡의 소립자를 봐도 드러나고요. [발작적인 포스트모던, 더러운 동성애와 페미니즘 가운데 유럽 정신은 썩었으니 인류는 멸종하고 다른 종에게 지구를 넘겨주는 게 바람직할듯]. 화자가 욕 처먹기 딱 좋은 말이지만 이 발화가 소립자라는 방식으로 완성된다면 이야기는 아주 달라지죠. 아마 우옐벡도 주제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을 거에요. 그 주제가 자신이 바라는대로 형상화될 때 비치는 어떤 심상이나 정서를 원했겠죠. 주제는 이를 위해 이용한 거나 다름없구요. 형식적으로 작품은 주제의 실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작품을 위해 주제를 갖다쓰는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소설의 결말을 쓰면서 바꾸었다는 작가들이 많은 것도, 작품에 있어 정작 관념적인 주제 자체는 결코 본질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고 보고요.
작품 속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표현되는 주제조차 이러할진대, 작가 개인의 가치관이나 인생사라면 말할 것도 없지요. 개인의 인간됨을 바라보는 잣대와 그가 빚어낸 작품의 미의식을 평가하는 기준은 전혀 다른 곳에 있어야하며, (위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실제로 그러합니다. 간혹 바그너나 서정주와 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논란되는 것뿐인데, 그조차 잘 알다시피 논란만 될 뿐입니다.
작품 속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표현되는 주제조차 이러할진대, 작가 개인의 가치관이나 인생사라면 말할 것도 없지요. 개인의 인간됨을 바라보는 잣대와 그가 빚어낸 작품의 미의식을 평가하는 기준은 전혀 다른 곳에 있어야하며, (위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실제로 그러합니다. 간혹 바그너나 서정주와 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논란되는 것뿐인데, 그조차 잘 알다시피 논란만 될 뿐입니다.
문제가 되는 게 작품을 바라보는 개인/독자/청자/평자의 가치관이라면, 다음 영역에서는 그 각각의 가치관을 평가의 잣대 위에 올려놓아야겠지요. 과연 그 가치관이란 게 어느 정도의 타당성과 내적 일관성 갖추며, 현상의 많은 부분을 비출 수 있느냐. 이것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만족되어야 제대로 된 심미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평자가 언제나 속편히 평자의 자리에만 설 수 있는 게 아니죠. 자신의 기준이 진정 기준이 되고자한다면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어야할 겁니다. 이를 포기한다면? 자신을 설득하기에도 부족한 개인의 \'호... 더 보기
문제가 되는 게 작품을 바라보는 개인/독자/청자/평자의 가치관이라면, 다음 영역에서는 그 각각의 가치관을 평가의 잣대 위에 올려놓아야겠지요. 과연 그 가치관이란 게 어느 정도의 타당성과 내적 일관성 갖추며, 현상의 많은 부분을 비출 수 있느냐. 이것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만족되어야 제대로 된 심미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평자가 언제나 속편히 평자의 자리에만 설 수 있는 게 아니죠. 자신의 기준이 진정 기준이 되고자한다면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어야할 겁니다. 이를 포기한다면? 자신을 설득하기에도 부족한 개인의 \'호불호\'에 그칠 뿐이고요. \'호불호\'가 타인의 가치관과 쟁론하는 영역에서 존중받기는 매우 어렵겠죠. 그리고... 이러한 쟁론의 영역과, 그 영역에서 각각이 투쟁하며 일궈낸 결과물이 오늘날의 미학일 것이고요(물론 정작 그 영역에서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러한 윤리의식과 미의식 사이의 대립은 이제 아무 의미값도 지니지 못합니다만)
이게 명확히 큰 틀에서 구분한다/구분하지 않는다로 나누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안의 경중, 창작자의 인격적 면모와 상관없이 제 자신의 지극히 주관적인 호불호 미터 아래서 적용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같은 성범죄자라 할 지라도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저는 이수의 노래는 좋아하지만 고영욱의 노래는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마누라를 속여서 바람핀 이병헌은 연기에 몰입하기 정말 힘들지만 마누라를 두들겨팼던 숀 펜의 연기는 그냥 저냥 감상하죠. 표절을 한 걸 알면서도 어떤 가수의 노래는 아직도 좋은 반면 어떤 가수 노래는 짜게 식을 때도 있고....
기대치나 평소의 인식이 오히려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기대치나 평소의 인식이 오히려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 전 \"주제조차도 그 관념 자체만으로는 작품에 대한 평가에 있어 본질적이지 않을텐데 하물며 작품에 극명하게 드러나지도 않는 작가의 일생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박완서 본인의 삶이 그 소설에 짙게 배어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삶이 그러한 소설을 완성도 높게 만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박완서와 비슷한 세대에 그녀와 같은 삶을 산 이가 박완서만은 아니겠지만, 그들 모두가 박완서와 같은 소설을 쓰지는 않죠. 그녀의 삶이 그녀로 하여금 그러한 주제에 인력을 느끼게 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작품 평가의 영역에서 얼마나 비중을 차지해야하느냐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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